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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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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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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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5)

DUMMY

마철은 이찬을 굉장히 밝게 맞이해 주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철의 철 가루 가득한 손이 그대로 이찬의 손과 맞닿았다.


“제가 돌아올 수도 있지 않았겠어요? 지금처럼 말이죠.”


[저와 제 제자들은 전부 그리 여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안 돌아오실 것 같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문득 마철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마철의 언변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그렇게까지 감동적인 말까지 하시며 지구로 떠나가셨는데 다시 돌아오신 것을 보니 어딘가 다급한 상황인가 봅니다.]


이찬은 마철의 저 한 문장에서 두 가지 정보를 얻었다.

첫 번째로 마철의 눈치가 과하게 빨라졌다는 것.


‘원래 저렇게 눈치가 빨랐던가?’


두 번째로는 아직 지구의 참사가 《관념》에 닿지 않았다는 것.


이찬이 주변을 슬쩍 흘기며 말했다.


“전부 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만, 혹시 듣는 귀를 줄일 수 있겠습니까?”


마철이 안될 것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장장이들을 물렸다.

조금 급히 들어오느라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마철의 공방은 이전에 봤던 크기보다 두 배가량 커져 있었다.


“무기 제조업이 잘 되시는 것 같군요.”


[어떤 사람 덕분에 입소문을 타게 되어서 말이죠. 횡포를 부리던 <올림포스>의 ‘그 신’도 이젠 없으니 이제야 이 업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는 실보단 득이 더 많았죠.]


<올림포스>의 그 신이라면 분명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칭하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이찬이 《관념》에 온 직후 <올림포스>가 태극본성의 결계를 뚫고 침공해 오자 전대 야철신이 헤파이스토스를 상대로 혈전을 벌여 막아낸 일이 있었다.

이후 놈들의 행방은 알려진 것이 없어 의아했지만, 마철의 언급으로 보아 자취를 감추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직도 그 씹어 먹을 놈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밉니다만.]


마철이 거대한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 무기 업계에서 복수는 이런 것입니다.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로소 경쟁 체제가 되는 이런 복수!]


아래에서 부르르 떨렸던 손이 이제는 천장을 부술 듯 위로 오르며 쥐어졌다.


“아··· ···예··· ···.”


떨떠름하게 이찬이 대답하자 아차 싶었는지 마철이 되물었다.


[너무 제 얘기만 했나요? 간만에 만나니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만, 이찬의 용건은 이런 게 아니겠죠.]


이찬이 멋쩍게 동의했다.


“맞습니다. 제가 마철에게만 따로 독대를 신청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


이찬은 그간 있던 일을 마철에게 최대한 간략하고 이해가 잘 갈 수 있게 설명했다.


이찬의 설명을 전부 들은 마철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흠··· ···.]


어디까지나 생각하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지구에 신과 관념인들이 막 활개치고 있고 《관념》으로 넘어오자고 하니 저기 태극별관에 있는 어린 백호가 진짜 사신수 백호인 데다가?]


마철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 사신수가 당해 저만큼 힘을 잃을 정도로 강한 집단이 지금 이찬과 저 백호를 죽이려 한다는 겁니까? 심지어 불과 몇 시간 전에 습격을 당했고?]


마철의 언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자 건물이 준동했다.


“야··· ···야철신이시여!”


[밖에 누군가 있느냐? 내가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터인데!]


“그게 아니고··· ···.”


콰앙!


마철의 작업실 공간이 활짝 열리다 못해 뚫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고성방가 지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앙칼지고 음 높은 목소리가 마철을 타박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기는!”


[손님도 계시는데.]


“손님?”


미모의 여성이 이찬을 돌아보았다.


“반갑습니다. 이찬입니다.”


이찬이 그녀에게 예를 갖춘 것은 단순히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격이 범상치 않아.’


그녀는 백의에 푸르고 긴 머릿결을 갖추고 있었다.

푸른 머리칼도 관련이 있을 터였지만 이찬의 눈에 그녀는 유려하고 유연했다.

마치 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반가워요. 유수(柳宿)예요.”


[소개가 늦었습니다. 제 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유수입니다. 세간에서는 신모(神母)의 화신이라고 불리고 있죠.]


“난 그 별명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내 성주한테 그런 이야기 전승받은 적도 없는데.”


이찬은 곰곰이 신모의 정체를 파악하기에 나섰다.

추측의 범위를 세계로 넓혀 찾아본다면 ‘신의 어머니’라는 수식은 수도 없이 많다. 구태여 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정도.

하지만 그 범위를 한반도의 신화, 설화로 좁히면 그리 다양하지도, 많지도 않다.

그중 단연코 가장 신모에 가까운 이는.


“유화부인의 주민을 뵙습니다.”


유화(柳花).

부여의 건국시조인 해모수와 결혼한 신이자, 주몽의 어머니. 하백의 딸이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다니. 한반도에도 아직 인재가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이찬은 유수를 더욱 띄워 주었다.


“한반도에 출생이라면 모를 리 있겠습니까.”

“알아봐 주니 고맙네. 가만.”


유수가 이찬을 향해 얼굴을 들이 밀어 이찬을 면밀히 살폈다.

마철이 다급하게 자신의 거구를 이끌어 유수의 어깨를 잡고 뒤로 당겼다.


“어딘가 익숙한데··· ···.”


이찬이 눈살을 잠깐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빠른 포커페이스 덕분에 유수는 이찬에게서 다른 이상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너··· ···. 걔지? 걔 맞지?”


황급히 유수가 시스템을 켜 시청 기록에 들어가 어떤 영상을 찾았다.


“맞네! 맞아.”


시스템과 이찬을 번갈아 보던 유수가 이찬의 손을 잡았다.


“우리 행동자가 여기 있었네!”


우리 행동자?


“네?”


이찬이 반문하자 유수가 얼굴에 광채를 드리웠다.


“그냥 반가워서. 뭔가 유명인사 보는 거 같네.”


마철이 유수를 붙잡고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달려들어 안기기라도 할 것처럼 시동이 걸려 있었다.

물론 이찬은 피했겠지만.

유수의 손목을 주시하자 이찬의 눈에 그녀가 이찬을 구분한 수단이 보였다.


“어?”


이찬이 유수의 손목을 낚아채 자신이 나오는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건··· ···.”


틀림없다.

드넓은 들판과 휘몰아치는 폭풍, 폭우가 쏟아지는 환경과 우물, 화면 밖으로도 느껴지는 격의 향연.

지구였다.


“이 영상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정확히는 차크몰과 풍백의 성지.

격전의 배경이 되었던 지구였다.


‘풍백의 말로는 아무리 강한 격이 발현되어도 시스템이 들어올 일말의 실마리조차 없다고 했다.’


화질은 낮았지만 느껴지는 격과 상상력의 양에 의거한다면 이것은 조작이 아니었다.


“걱정 마. 이 영상은 지금 <태극>과 <마야> 성단의 고위급 신에게만 전달되었으니까. 많아 봐야 서넛일 거야.”


유수의 말로 유추해 보건대 전투를 치르고 있는 이들이 소속된 곳에는 영상이 생중계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야는··· ···.”

“이미 멸망했지. 그래서 서넛이라는 거야.”


아직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꽤나 유의미한 실마리를 건질 수 있었다.


“이 영상이 막 다른 곳으로 퍼지거나 그렇지는 않겠죠?”

“내부자가 있지 않는 한 그렇겠지.”


그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면, 이 영상이 유포된다면 분명 <태극>에 내부자가 있다는 것이 방증되는 셈이었다.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죠.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마철이 잡고 있던 유수의 어깨를 놓으며 그녀를 바깥으로 밀쳤다.


“아, 왜! 나도 같이 있게 해 달라고!”


마철이 안절부절 못하자 이찬이 합석을 허용했다.


“괜찮습니다.”


[아··· ··· 감사합니다. 워낙 고집이 센 양반이라.]


“고집은 그렇게 안 세.”


[가만히 있어. 그나저나, 자리를 좀 옮길까요?]


“그래 주시면.”


다탁이 있는 손님 방으로 자리를 옮긴 셋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기엔 너무 멀리 돌아왔습니다만.”


이찬이 유수의 쪽을 일별하며 말했다.


“태극별관의 방어를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마철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부재 상태가 되면 적은 분명 백호양을 노릴 겁니다.”

“백호양이 뭔데?”


[잠깐 가만히 있어 봐.]


유수를 다그친 마철이 다시금 이찬의 말에 경청했다.


“제가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놈들은 백호양을 제거하려 들 겁니다. 만에 하나 백호양의 목숨이 끊어져 버린다면.”


[정말 사신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요.]


사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딴청을 피우던 유수도 경청에 접어들었다.

이찬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서 전 놈들의 본거지를 쳐들어 가려 합니다.”


[안 됩니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


마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찬의 의지가 너무도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백룡도, 마철도, 풍백과 가스페르, 아윤마저도. 이찬과 연이 닿은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사람이, 이 행동자가 한 번 마음을 먹은 순간 이것을 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마철은 이찬의 의견에 일시적으로 수긍했다.


[동의는 하겠습니다만, 저는 대책이 없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말이죠.]


그 일은 분명 야철신의 죽음에 대한 말일 터.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찬이 구체화된 계획을 그들의 머릿속에 그려 넣으면 그려 넣을수록, 정말 이 사람이 작정하고 왔음을 느끼는 마철이었다.


“··· ···까지입니다.”


단순하고 감으로만 움직일 것 같은 마철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까다롭고 계획적이다.

다만 지능이 조금 아쉬울 뿐.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만 있다면 당장 야철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사를 해도 될 정도이다.

그렇게 침묵을 유지하던 마철이 입을 열었다.


[계획을 전부 들으니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병력을 모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철의 인맥은 넓다.

무기를 주문 제작하고 수리를 맡으며 숱한 이들과 안면을 텄을 것이었고, ‘그들’도 온다면 차질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


이찬이 말을 하다 말고 하늘을 훑었다.


[신의 허락이 있어야겠죠.]


이찬이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났다.


“다녀오겠습니다.”


[승리를 쟁취하십시오.]


이찬은 하나의 망설임도 없었다.

분명 수성전을 벌이는 상황이라고는 하나 주변이 파괴되고 망가지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허락해 줄 수 있는 이는 <태극>에 단 하나뿐이었다.


“오랜만에 찾아 뵙겠군요. 옥황상제 님.”


이찬의 몸이 황금빛으로 뒤덮이며 그곳으로 향했다.

<태극>의 중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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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경계 (7) 24.04.05 18 0 11쪽
119 경계 (6) 24.04.03 1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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