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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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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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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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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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화 (9)

DUMMY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이찬은 동료를 구하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만을 원동력으로 몸을 움직였다.

빠르고도 빠른 공룡을 타고 이찬과 이노는 한반도의 남쪽으로 향했다.


“따뜻해··· ···.”


이노는 본디 더운 곳에서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한반도의 추위, 그것도 최북단에서 갑자기 살게 되었으니 남쪽의 온도가 따뜻할 만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리는 둘의 앞에는 황금빛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 있었다.


“저게. 단서야?”


몇 시간 동안 적막한 고요를 내리 헤집고 다닌 결과물이었다.


“저건 가스페르의 화살이야.”

“그게. 왜?”


일전에 가스페르의 새 활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인시터애로우는 산산조각이 나 버려서 행성에서 제일가는 장인께서도 고치지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새로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이 활에서 생성되는 화살은 무조건적으로 제 활과 붙어 있으려 합니다. 떨어진 화살은 30분 후 제가 어디에 있든 평생을 걸쳐 최단거리로 쫓아옵니다. 뭐, 제가 그 정도로 칠칠 맞지는 않으니 괜찮죠.


‘내가 화살을 주운 후 약 3분 뒤에 바로 화살이 빛을 냈다. 그럼 이 화살을 떨어뜨린 건 약 27분 전이라는 뜻.’


늦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행동자, 즉 이찬을 자신들의 터전으로 불러들이려는 것.


“이미 성공했다고 말해 줘야 되나.”


그 치밀하고도 계산적인 녀석들이 그 땅에 버려진 화살을 보고도 수거하지 않았을 리 없다.

이찬이 그곳으로 올 것을 확신하고 또 그 화살을 찾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


“영악한 새끼들.”


이찬은 몇 시간을 내리 달리던 도중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실시간 뉴스를 클릭해 소문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역시 모든 내용이 과장되어 있었다.

주변 주민들의 증언, 해당 학교 학생들과 선생의 증언 등 여러 발언들이 오갔고, 그 중심에는 역시 신들이 있었다.

신들은 죽으면 시체가 남지 않는다.

그저 소멸할 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에 대한 이야기.

신이 담겨 있던 그릇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슨대의 그림자가 축축하게 자리했다.

인두조수의 키메라 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공포와 혐오감을 조성했고, 지귀의 모두 연소되어 이제는 재만 남은 지귀의 사체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치우고 오는 걸 깜빡했네. 치우고 올 시간도 없긴 했지만.”


이찬은 오히려 좋다는 듯 안심했다.

이계(異界)의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곧 허용 상상력과도 직결된다.


이런 존재가 우리 세상에 있다.


라는 것만 마음 속에 깊이 심어 두어도 사람들은 그 이계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허용 상상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 현상의 산 증인.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갑자기 운동장에 결계 같은 게 쳐지더니 저희를 그 밖으로 못 나가게 했어요.


그중 단연코 가장 신빙성이 있는 증언이라 하면 이것이었다.


-제 친구가 막 하늘을 날더니 그 괴물들이랑 싸워서 이겼어요.


현규는 나름 이찬과 절친한 사이였기에 이찬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 친구 이름 물어봐도 돼요?


현규는 이찬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친구로서의 신뢰는 조금 떨어지겠지만 그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이찬은 막대한 상상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존재가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아뇨. 그건 못 말하겠습니다.


이찬은 당황했다.

기자도 은근 당황한 듯 그 연유를 물었다.


-왜요?


그러자 현규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잖아요. 세상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 이름까지 얘기하면서 팔아요.


이찬이 뭉클하며 스마트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 넣기 전 경주에 관련된 기사를 훑었지만 굳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쟤도 오지랖 넓다니까.”


얼마나 달렸을까, 멀쩡히 가던 화살이 갑자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에 따라 이찬과 이노도 급정거하며 화살이 박힌 땅을 바라보았다.


“뭐··· ···.”


이찬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이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덜그럭.


이찬이 공룡의 등에서 내려 바닥에 박힌 화살과 그 밑에 깔린 물건을 하나 주웠다.

그것은 활이었다.

평범한 활이었다면 굳이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가스페르의 아르코 솔이었다.

이 활을 주운 순간 이찬의 머리에서는 수 가지의 가설이 떠올랐다.


먼저 가스페르의 아르코 솔에는 아공간 기능이 있다.

어떤 공간에 여러 물체를 집어넣을 수 있게 하는. 말하자면 하나의 인벤토리.

물론 이찬의 ‘기도’에도 그 기능이 있다.

하지만 가스페르가 이걸 떨어뜨렸을 리가 만무했다.

설령 떨어뜨렸다 한들 아공간 기능으로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게 지금 여기 있다는 건··· ···.”


여러가지 생각이 정립되며 이찬의 머릿속엔 단 하나의 가설이 남았다.

이곳에서 약간의 격전이 일어났고, 가스페르가 졌고, 이후 아르코 솔을 소환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이찬은 그제서야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 전투가 일어났던 험준한 산세가 눈에 겹치며 익숙한 광경을 자아냈다.

이곳은 경상북도 경주.

과거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어찌 됐든 희망적인 소식은 이 근처에 가스페르가 있음을 확실시했다는 것이었다.


“여기. 원래 이래?”


그것과는 별개로 이노의 궁금증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경주를 가로지르는 강의 양옆으로 반파된 건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이건 마치 <태극>의 일부분이었던, 그리고 이찬이 처음으로 《관념》에 발을 내딛었던 동자신의 행성과 굉장히 유사했다.

이찬은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금방 지나간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경주에서 발생한 참극. 광화문과 유사해.


이찬은 넘쳐흐르는 자괴감과 회의감을 억눌렀다.

울컥울컥 감정의 격랑이 솟구치긴 했으나 결국 참아냈다.


“여기는 맞아. 혹시 찾아낼 수 있겠어?”


이찬이 이노의 감각에 의탁했다.


“가능해. 근데 시간이 조금 걸려.”

“그럼 찾으면 공룡 통해서 전해줘. 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게.”


어쩌면 적진 한복판에 이노를 두고 가는 꼴이 될 수도 있겠지만··· ···.


이찬은 잡념을 털어내고 「한계 돌파」의 각력을 통해 높게 점프하려는 순간.


“이찬.”


이노가 이찬을 불러 세웠다.


“어?”


그러곤 어떤 물체를 던져 이찬에게 건넸다.

이찬이 그것을 받아내고는 이노에게 되물었다.


“알?”


그것은 알이었다.


“내가. 신호를 보낼 거야. 알의. 색이 변하면 이곳으로 와.”


이찬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하늘로 날았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이제. 그만 돌아와.”


***


[돌아왔다.]


차크몰이 완공된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메인 연회장의 양쪽에 의자와 탁자가 없는 것만 제한다면.


[내부는 크게 바뀌지 않았군.]


“그렇습니다.”


타닷!


차크몰이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뒤로 또 누군가가 입장했다.


[통성명이 필요한가? 이쪽은 멕시코에서 친절히 모셔온 너희의 심복이지.]


차크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친절하게 친분을 쌓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친절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진절머리 나게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애초에 독단으로 행동하기를 마음먹은 가이드와 그 집단의 우두머리에 있는 사회자는 잠시 불화를 빚은 적 있기에 더욱 어색했다.


“예··· ···. 그러죠.”


억지로 악수한 가이드와 사회자가 웃음을 지었다.

사회자가 가이드의 손을 잡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이드의 손을 뿌리쳤다.


“뭐··· ···뭡니까?”


그가 당황한 이유는 가이드의 손에 흥건하게 묻은 피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옆구리에는 피칠갑을 하고 쓰러진 인간이 있었다.


“이게 그겁니까?”


[그래. 행동자의 일행이다.]


“대어를 낚아 오셨군요.”


[일단 잘 보이는 곳에 묶어 두어라. 그래야 절망이 배가 되지 않겠나?]


사회자의 눈은 예리했다.


“가이드라는 분은 온몸에 피가 흐르고, 저 인간 둘 중 남자 쪽도 그렇고. 신님의 복장에도 피가 흐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꽤나 혈투였나 봅니다?”


[흥. 그래 봤자 벌레다. 같잖은 연민이 볼 만하더군.]


“대비하십시오. 곧 올 겁니다.”


정성스레 둘을 스크린 중앙에 포박한 가이드가 보고했다.


“아뇨. 아직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여기저기에 함정을 설치해 두었거든요.”


[그냥 너희의 심복 중 아무나 데려온 건데. 꽤나 쓸 만하더군.]


“과찬이십니다.”


연회장이 위치한 곳은 경주 금천사의 뒤로 쭉 뻗어 난 산세였다.


“괜히 사당이나 절을 건드리면 그 신이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 마라. 그래서 내가 이곳에 지은 것 아니더냐.]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가이드.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예상 도착 시간은 약 세 시간입니다.”


[많이도 남았군.]


차크몰이 휴식을 위해 퇴장하려는 순간.


덜컹!


안쪽 의무실의 문이 과히 세차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허억. 허어억.]



옅지만 분명한 신언.


“아탈란테?”


이찬과 싸우다 이찬이 잠깐 당황한 순간 빠르게 몸을 숨겨 달려온 아탈란테가 의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살아 계셨습니까?”


사회자도 그녀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신님께서 들여오셨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중간에 먼저 보냈다.]


“근데 어떻게 제가 감지하지 못한 건지··· ···.”


[궁금한가?]


차크몰이 내뱉는 상상력의 파랑에 사회자가 꼬리를 내렸다.


“아··· ···아닙니다.”


[차크몰이라고 했나? 넌 여기서 빠져라. 상상력은 내 거야.]


아탈란테의 말을 들은 차크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쓰레기가 말이 많군.]


사회자에게 뱉었던 상상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의 상상력이 발출되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아탈란테도 압도되었다.


[별 같잖은 것에게도 신경을 써야 한다니. 우리 성단이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군. 들어가 쉬겠다.]


그렇게 차크몰이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서야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 아탈란테. 저분에게 무례한 말은 삼가십시오.”


[생각해 보지.]


그렇게 모두가 숨을 돌리고 있을 때쯤.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하던 서생원이 당황한 듯 일어섰다.

사회자가 다급히 물었다.


“왜? 무슨 일 있나?”


그러자 서생원의 시야가 천장으로, 그 너머에 있는 하늘로 향했다.


“온다. 아니, 왔다.”


콰아아아앙!


고막을 찢어발겨 버릴 것만 같은 굉음이 연회장의 전체에 울려 퍼지며 그에 못지않은 흙먼지가 일었다.


“누구냐!”


아탈란테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이 왔다.]


사회가 발끈하며 반문했다.


“뭐라는 거야! 벌써 왔을 리가—”


사회자의 복부가 뚫리듯 뭔가에 맞으며 뒤로 밀려나 벽에 박아 흔들렸다.

이윽고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타난 것은 공룡을 대동한 이노와 분노에 사로잡힌 이찬이었다.


“이노야. 다 소멸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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