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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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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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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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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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 (6)

DUMMY

한바탕 전투가 끝난 지 이틀째 되던 날 아윤은 잠에서 깨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아윤은 탑의 내부가 평소와 뭔가 다름을 직감했다.

아니,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잠에서 깨 바깥으로 나오면 지옥 특제 아침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식사는커녕 식탁에 그 어떤 음식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아윤아!]


다급히 그녀를 부르는 벨리알의 모습이 부엌 건너편 세탁실에서 들려왔다.


[여기! 이리 와!]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아윤이 벨리알에게 달려갔다.

벨리알의 옆에는 마신들의 강령을 만드는 데 몰두하던 나베리우스도 퀭한 몰골로 앉아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는—"


아윤의 첫 번째 질문을 간파한 벨리알이 아윤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답했다.


[집안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어. 알아봤을 때, 다행히 여기에는 카메라가 없어서 여기로 온 거야.]


“근데 도청기도 있어? 왜 이렇게 수군대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없던데?]


벨리알이 속삭이던 목소리를 키웠다.


“뭐야?”


[뭐긴 뭐야. 네 신 아냐.]


“아, 그러네.”


벨리알은 평소 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시스템 영상을 켜 인기 동영상에 올라온 영상을 클릭했다.


[어······? 이게 여기 올라와 있으면 안 되는데?]


“왜? 무슨 일인데?”


아윤이 벨리알 앞에 있는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화면을 본 아윤은 괄목했다.


“이······이게 무슨······.”


벨리알의 시스템 화면에는 마신들의 주민들과 치열한 혈전을 벌이는 아윤의 모습이 인기 동영상 1위에 게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카메라를 사용한 것인지 다양한 화각에서 촬영된 아윤의 모습이 고화질로 표현되었다.


[카메라를 설치한 건 이 때문이었나.]


마침내 영문 모를 카메라의 용도를 이해한 벨리알이 격을 발현해 탑 구석구석에 있던 카메라를 모조리 기능 고장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쉽게 제거할 수 있으면서 왜 아까는 안 지운 거야? 영상 올라온 거 보면 꽤 옛날에 설치된 것 같았는데.”


아윤의 원초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에 벨리알 대신 나베리우스가 답했다.


[귀찮으셨단다.]


“응?”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귀찮았다! 왜! 내 탑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생각이나했겠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 아윤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아하니 저 속담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는 아윤이었다.


“이미 지난일 어쩔 수 없죠. 그럼 이 영상은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일단 2행성에 문의 넣어서 내려 달라고 해보고, 아니면 다 부숴야—]


“안 돼. 그건 진짜 안 돼.”


물론 아윤은 2행성 시스템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 무식하고 대책 없는 벨리알이 ‘문의를 넣어보는 것’을 제의한 것이라면 시스템이라는 집단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윤이 타이르듯 벨리알을 진정시키고는 덧붙였다.


“일단 관심이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려 보자. 아니면 정말 정식으로 문의를 넣어보고.”


아윤의 의견에 나베리우스가 몇 차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근데, 카메라도 다 사라진 마당에 저희 여기서 뭐합니까?]


곰곰이 생각을 거듭한 벨리알이 깨우친 듯 말했다.


[그러네! 우리 여기 왜 있는 거냐?]


성인 남성 네 명이 겨우 들어갈 듯한 공간에 거구의 벨리알이 들어서니 좁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아윤이 문을 밀치며 밖으로 나왔다.


“후아!”


아윤의 뒤로 벨리알이 끙끙대며 바깥으로 탈출했고 아까보다 더욱 수척해진 나베리우스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벨리알이 세탁실을 빠져 나오자마자 나베리우스를 추궁했다.


[아, 맞다. 야 너 만들던 그거 어디 갔어?]

[그거라면······마신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너한테 추궁할 게 그거 말고 더 있어?]

[아······아뇨······.]


어쩐지 불쌍한 감정이 나베리우스로부터 전해지는 것 같은 아윤이었다.


[어떻게 됐냐니까?]

[셋은 복구하여 문제없이 잘 움직입니다. 명령도 잘 듣고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한 녀석이 말썽입니다.]

[왜? 어느 부분에서?]


벨리알에게 말할 것을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나베리우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벨리알 님이 죽여 데려오신 푸르카스, 라움, 오리아스는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푸르손은 아직 녀석의 자아가 남아있는 것인지 강령술이 놈의 자아를 채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벨리알이 이건 계산에 어긋난다는 듯 나베리우스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제 상상력을 조금 풀어주시거나—]

[그건 안 돼.]


나베리우스가 첫 번째 요건을 꺼내자마자 벨리알이 이를 반대했다.

벨리알은 현재 나베리우스의 상상력을 「지배 권속」을 통해 철저히 제한해 두었다.

이 이상 상상력을 풀어준다면 나베리우스는 틀림없이 벨리알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사이 탈출할 것이 분명했다.


[너 무조건 도망갈 거잖아.]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제가 그렇게 의리가 없을까요.]

[어. 없잖아.]


팩트를 후려 맞은 나베리우스가 벨리알의 의견에 긍정했다.


[그럼 두 번째는······.]

[뭔데 이렇게 뜸들여?]

[사실······이게 방법이라고 하는 것도 조금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그래서 빨리 말해봐요. 뭔데 그래요?”


[단단한 물체로······머리를 찍으면 확실히 자아가 사라지기는 하죠.]


듣기만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섬뜩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몇 개월 간 무수히 많은 살생을 저지른 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물론 이는 나베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새삼 마계임을 다시 한번 감각하는 아윤이었다.


[뭐야 간단하네. 내가 할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죽은 마신들의 신체는 경질화가 일어나 웬만한 격으론, 아니 정말 단단한 물체가 아니면 깨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뭐? 그럼 어떡해?]

[아무래도······단단한 무언가가 필요하겠죠?]


“만년한철 같은······?”


전쟁을 벌이던 틈틈이 책을 읽던 아윤이 나베리우스의 말에 거들었다.

그 책 중에는 무림에 관련된 책도 있었다.


[만년한철 같은 게 아니라. 만년한철이 필요해.]

[만년한철······?]


만년한철이란 무엇인가?

현재 전 성단을 통틀어 경도가 가장 강한 금속 중 하나가 아니던가?

현재 만년한철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

중국 성단인 <반고>와 과거 <반고> 소속 세계관이었으나 현재는 독립하여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 <무림>뿐이다.


[간단하네. 무림이나 반고에 가서 얻어오면 되잖아?]


옅은 한숨을 내쉰 나베리우스가 벨리알의 질문에 답했다.


[그게 안 되니까 문제죠.]


“왜요?”


[지금 <반고>는 폐성(廢星)해서 외부인을 받지 않아.]


“그럼 무림은요?”


[그곳은 고지식한 늙은이들이 절대 외부인을 살려 놓지 않아서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가 불가능에 가까워.]


“검존, 천마 같은 당대 천하제일인이 놓아주지 않을 테니······.”


[천마 같은 놈들은 내가 부리면 되는데?]

[좀 조용히 하십쇼.]


벨리알이 순진한 눈으로 나베리우스를 응시하자 나베리우스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어떡하죠? 만년한철을 구할 곳이 없는데?”


[만년한철······만년한철······.]


만년한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벨리알이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번뜩였다.


[아! 맞다! 만년한철 있는 데 알아.]

[예? 당신이 그걸 어떻게?]

[언제였지······? 이 년 전인가? 일본 성단 놈들이 내 행성에 들어 와서 뭘 주섬주섬 줍고 있길래 걔네 다 때려잡고 거기 찾아갔거든?]


은연중에 떠올린 영혼들의 상태를 상상한 아윤이 고개를 저어 그들의 처참한 몰골을 털어 냈다.


[그래서요?]

[아니 막 패다 보니 우두머리 같은 놈이 나와서 그만하라고 소리치더라고? 시끄러워서 걔도 팼더니 이상한 돌 같은 걸 주더라고?]


“설마 그게······.”


[어. 아마 만년한철이라고 했던 것 같아.]

[그······그거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예상 시일보다 빠르게 이 강령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채가 나베리우스의 눈에 비쳤다.


[그거, 상상력 채운다고 갖다 팔았는데?]

[예? 팔아요? 그걸?]

[어.]

[어······얼마에?]


만년한철이 없다는 절망감도 잠시.

만약 만년한철을 팔았다면 그에 걸맞는 값어치에 팔아 넘겼을 터.

그 상상력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라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얼마였더라······? 이천?]

[이······이천? 이천???]


게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 나베리우스를 아윤이 낚아챘다.


[말도 안 돼!!!!]


나베리우스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울부짖음을 멈춘 것은 벨리알이었다.


[아, 하나 더. 그 만년한철. 거기에만 있던 건 아니었을 거야.]

[예?]

[아니, 얼핏 듣기로는 여기 말고 한 군데에 더 있다고 들었는데?]


게거품을 퉤 하고 뱉어낸 나베리우스가 다시 한번 벨리알을 향해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이 영 부담스러운 것인지 벨리알은 나베리우스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일본 성단의 <네노쿠니>, <타카마가하라>, <요미노쿠니>까지. 거기 셋 중에 하나는 만년한철인가 뭔가 하는 게 있을 거야.]

[근데 신 님 그거 아십니까?]

[뭐?]

[일본 성단은 저거 세 개랑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 구역 중에 세 구역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누구라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저곳은 지상세계,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라고요! 거기에 만년한철이 있겠습니까? 예? 지나가던 일본인이 비웃겠네!!]


열변을 토해낸 나베리우스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이고 수련을 좀만 더 열심히 할 걸. 그럼 저런 쓰레기에게 지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고 내 팔자야.]


나베리우스의 신세한탄에 어쩐지 벨리알은 입을 다물었다.


[일단 세 곳의 핵심 행성을 가보는 게 중요하겠지. 아윤아.]


“어.”


[네가 좀 수고해 줘야겠다. 나베리우스 이놈은 사실 죽은 거나 다름이 없고, 난 이곳저곳에 현상금이 붙었을 테니. 네가 빠르게 가서 만년한철을 구해서 돌아 오거라.]


"말툰 또 왜 저래?"


깊은 한숨을 내쉰 아윤이 끄덕였다.


“구해서 돌아올게.”


벨리알이 이행향구의 문을 열어주며 아윤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후······.”


어쩐지 오늘의 「쿰란」에는 한숨이 많이 감도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07.08 18:22
    No. 1

    <신>을 만년한철로 죽일 수 있다는 혹은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물리적인 존재로 설정한 대목이 재밌군요. 이 대목에서 문득 생각을 해봅니다. <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즐감하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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