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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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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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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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14화, 시련(試鍊)

DUMMY

유한철과 주청기는 울상을 하고 그들 뒤에 서있었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신웅비에게 물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창고에 시체가 있는데 아무래도 문주님 같다는 거야, 빨리 가보세.”


마호는 깜짝 놀라 세수를 할 새도 없이 신웅비와 포졸을 따라 저잣거리로 갔다. 유한철과 주청기도 울상을 하고 뒤를 쫒아왔다.


이들이 포졸을 따라 막다른 골목에 있는 커다란 창고에 다다르자 다른 포졸들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혼잡하였다.


사람들을 밀치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진포두가 신웅비에게 말했다.


“이 분이 서천문의 문주님 아니신가?”


“맞소, 문주님이오.”


유환철과 주청기는 멀리서도 장문인을 알아보고 울며 달려왔다.


“사부님, 이게 웬 일입니까. 아이고, 아이고!”


진포두가 걱정스런 얼굴로 신웅비에게 말했다.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침 일찍 나왔다가 시체를 보고 놀라서 관아에 신고했다네. 아마 여기서 싸움이 벌어진 것 같네.


우선 범인을 잡아야겠지만 그보다도 먼저 이 사건처리를 해야 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시체를 관아로 옮겨 절차를 밟는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어떻겠으면 좋겠나?”


정승의 개가 죽으면 조문을 오는 사람이 많아도, 막상 정승이 죽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신웅비나 마호도 마찬가지였다.


신웅비는 공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려 관아에서 오라 가라 하는 시끄러운 일에 엮이기 싫었고,


마호는 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면 공연히 골치를 썩일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딴청을 부렸다.


결국 울고불고하는 유한철과 주청기에게 뒷일을 맡기고 신웅비는 황인교에게 알린다는 명목으로 파양호를 향해 떠났다.


마호는 그래도 스승이 죽었기에 장의사에게 돈을 주어 관을 부탁하고는 유한철에게 경비를 구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구백청이 있을 때는 명성을 팔아 돈을 긁으려는 마호의 말이 먹혀들었다.


그러나 이제 문주가 죽었으니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한 푼이라도 돈이 있을 때 돌아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마호는 혹시나 해서 왕준상을 찾아갔다. 왕준상은 벌써 소식을 듣고 걱정을 해주었다. 마호는 짐짓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왕 대협, 문주님께선 돌아가셨지만 우리 서천문에서는 왕 대협께서 힘껏 도와주신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마호가 서천문을 들먹거리며 말하자 왕 준상이 뒷일을 생각해서 마호에게 장례비로 쓰라고 돈을 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은 마호는 감격해서 자신도 모르게 정말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왕준상은 마호가 눈물을 뚝뚝 흘리자 스승의 죽음에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하여 따듯한 말로 위로하였다.


마호는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리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았는지, 혹은 뒤가 구렸는지, 받은 돈 중에 절반을 떼어 유한철에게 주고는 낙양을 살며시 빠져나갔다.



***********



용과 호랑이의 기상이 서린 용호산을 등지고 있는 용호표국에는 생각지도 못한 변고가 생겨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총표두 하일웅이 직접 표물을 호송하다가 노상에서 복면을 한 약탈자들을 만나 중상을 입고 표물을 도둑맞은 것이다.


우선 표물을 찾아야 했다. 만약 표물을 찾지 못한다면 막대한 금액으로 변상해야 했는데, 총표두가 중상을 입어 꼼짝을 못하고 누웠으니 난감한 일이었다.


우선 임시로 하일웅의 동생, 탁탑수(托塔手) 하정웅이 표국의 일을 대신 맡기로 했다.


하정웅은 팔 척의 거구에 힘이 장사였지만, 매사에 머리보다는 힘을 중시하는 자였다.


형님을 대신해 총표두가 되자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표사들을 데리고 표물을 찾아 나섰다.


표물을 찾는다고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던 하정웅은 단서조차 찾지 못한 채 결국 빈손으로 들어왔고, 막대한 금액을 변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위용을 자랑하던 용호표국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대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돌아오리라 믿고 있던 장중표의 아내는 용호표국이 문을 닫자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었다.


하일웅이 보내주던 생활비도 지난달에 끊겨 남은 쌀도 거의 바닥이 났다.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한숨과 눈물로 지새던 부인 전씨는 이젠 생활고에 시달렸다.


부인 전씨는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전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바느질거리를 얻어오거나 빨래를 해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부인 전씨가 사는 동네엔 시장에서 장사를 크게 하는 부자 두풍만(杜豊滿)의 집이 있었다.


평소 안면이 있던 그곳의 집사가 전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바느질과 빨래거리를 주어서 그런대로 생활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씨가 일감을 들고 대문을 나오다 주인 두풍만과 마주쳤다.


전씨가 한쪽으로 비켜서서 두풍만이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자, 두풍만은 전씨의 아래위를 흩어보며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전씨는 아직 젊었고 비록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미모가 뛰어난 편이었다.


두풍만은 오십 대로 몸은 뚱뚱했으나 윤기가 흐르는 얼굴로 항상 웃음을 짓는 전형적인 상인이었다.


마침 집사가 나오자 전씨에 대해 물었다. 집사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두풍만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도 전씨가 일 때문에 자주 들락거리자 두풍만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두풍만은 살짝 웃음을 띠우고 전씨의 자태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전씨는 두풍만의 집에서 나오는 바느질거리가 끊이지 않아서 그런대로 두성이를 서당에 보내고 아이들과 먹고살 수가 있었다.


또한 바느질에 매달리다보니 남편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도 있었다.


전씨가 일한 것을 갖다 주고 다시 일감을 받아 나오는데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부인, 주인께서 부인의 바느질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오. 잠시 들어가 차나 한 잔 하시지 않겠소?”


전씨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집사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네, 고맙습니다.”


전씨는 집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집사는 대청을 지나 안쪽에 있는 널찍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의 창은 모두 얇은 흰색비단으로 발라 빛이 은은하게 들어왔고 벽에는 고서화가 걸려있었다.


서가에는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었고 커다란 책상위에는 종이·붓·먹·벼루 등 문방사우가 놓여있는 걸로 보아 서재인 것 같았다.


집사가 앉으라고 권하자 전씨는 방 중앙에 놓인 원탁의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시비가 찻주전자를 들고 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차를 따르고 나갔다.


“부인, 바느질 하시느라 힘드시지요. 차를 드시고 잠시 쉬었다 가십시오.”


집사가 친절하게 권하자 전씨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데 발걸음소리가 들리며 두풍만이 들어왔다.


전씨는 당혹감에 얼른 일어서서 고개를 숙인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두풍만은 전씨를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부인이 계신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개의치 마시고 앉아 차를 드십시오.”


두풍만은 몸을 돌려 나갔다. 그러자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어른, 이왕 오셨으니 차나 한 잔 하시지요.”


그러자 두풍만이 다시 원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부인, 그래도 되겠습니까?”


전씨는 자신의 집이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어서 단지 얼굴을 붉히고 다소곳이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풍만이 싱긋이 웃으며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앉으시지요. 어쩌면 그렇게 바느질 솜씨가 좋으신지.”


전씨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전씨의 얼굴을 찬찬히 보면서 두풍만이 입을 열었다.


“집사한테 부인의 딱한 사정을 들었지요. 부군께선 아무 탈 없이 돌아오실 것입니다. 애들도 어리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집사와 상의하십시오.


송 집사! 부인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지체 말고 도와드리게.”


“네, 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차를 얼른 마시고 전씨가 일어나자 두풍만도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부인. 살펴가시오.”


전씨는 답례를 하고 정신없이 그 집을 나왔다. 자리가 얼마나 불편했던지 잔뜩 긴장해서 등에 땀이 배었다.


옷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두풍만이란 사람은 행동거지가 점잖았고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집에 당도하자 문 앞에서 오빠 두성이의 손을 잡고 엄마를 기다리던 취영이가 품에 안기며 어리광을 부렸다.


저녁을 먹은 후 까불며 뛰놀던 취영이가 잠들자 전씨는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했고, 두성이는 책을 읽느라 삼매경에 빠졌다.


두성이는 성격이 활발했고 얼렁뚱땅하는 기질은 있었으나, 한번 정신을 쏟으면 누가 불러도 대답을 안 할 정도로 집중력이 있었다.


아직 열 살밖에 안됐지만 이십여 명이 공부하는 서당에서 제일 뛰어났다. 이미 논어와 맹자를 떼고 요즘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배우고 있는데 지금 시경 북풍을 외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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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1화, 비극의 서막 23.06.15 737 10 10쪽
20 제20화, 불상사 23.06.15 758 11 10쪽
19 제19화, 탈출 +1 23.06.14 779 13 10쪽
18 제18화, 탈출 23.06.14 749 12 10쪽
17 제17화, 위기 23.06.13 775 14 10쪽
16 제16화, 무정나찰(無情羅刹) 23.06.13 809 12 10쪽
15 제15회, 일격필살의 각오 23.06.12 833 12 10쪽
» 제14화, 시련(試鍊) 23.06.12 854 13 10쪽
13 제13화, 구백청의 말로 23.06.11 841 15 10쪽
12 제12화, 노련한 구백청 23.06.11 838 13 10쪽
11 제11화, 붉은 말을 탄 괴인 23.06.10 877 14 10쪽
10 제10화, 늦게 핀 첫사랑 23.06.10 907 14 9쪽
9 제9화, 하오문 두령 왕준상 +1 23.06.09 950 14 10쪽
8 제8화, 황룡지미 신웅비 23.06.09 994 15 9쪽
7 제7화, 청룡검객 황인교 +2 23.06.08 1,148 14 11쪽
6 제6화, 비상식량 육포(肉脯) 23.06.08 1,110 14 10쪽
5 제5화, 어둠속의 괴인 +1 23.06.07 1,185 15 10쪽
4 제4화, 잔인한 선물 23.06.07 1,261 12 9쪽
3 제3화, 철마단창 장중표 23.06.07 1,456 12 9쪽
2 제2화, 본색 +1 23.06.06 1,474 12 10쪽
1 제1화, 탐욕 +1 23.06.06 2,110 1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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