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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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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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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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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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살인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아메리고 전역은 소란스러워졌다. 이민자, 특히 피해자가 속한 흑인 집단은 시위를 벌이며 범인뿐만 아니라 모든 아메리인들을 비난했다. 이에 아메리인들은 범인이 아닌 이들에 대한 비난을 멈출 것을 호소했다. 어떤 사람들은 시위대에 음식을 건네며 자신들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도 소용없었다. 거기다 극우 단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민자를 몰아내야 한다고 소리 내자 대중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는 아메리고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민자를 받아들여 국력을 비약시켰지만 단기간의 발전은 오히려 갈등을 초래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는 소통을 방해했다. 싱 와튼이 재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광경이 일상이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현 정부는 평등주의를 모토로 정책을 펼쳤다. 국민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민족별 대표자를 선출해 문제를 논의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을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갈등이 해소되었지만 쏟아부은 시간과 비용은 엄청났다. 차라리 경제를 발전시키는데나 투자하라던 실리주의 진영을 겨우 설득해 이룬 결과였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노력이 무참히 무너진 현실을 마주한 국무부 장관 오바 락은 다급히 대통령 관저를 찾았다. 집무실을 수차례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인자한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문이 열리자 창가에 서 있는 친근한 인상의 노인이 보였다. 그는 오바 락을 지긋이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도 급한 겐가, 오바 장관?”


“큰일입니다, 각하. 지금 모든 신문에서 아메리인이 이민자를, 그것도 유색 인종을 살해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발언은 좋지 않네. 이민자들 역시 아메리인이야. 심지어 장관 본인도 흑인이지 않은가? 내가 외국인을 장관에 임명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게나. 그나저나 난처한 상황이군.”


그러나 말과는 달리 싱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그는 옆에 놓여 있는 신문을 펼쳤다. 첫 면부터 오바 장관이 말한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리석어.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미워하고 공격하다니. 애초에 이 사건이 인종 차별로 인한 건지,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으로 벌어진 건지도 알아보긴 했을까 궁금해. 이 기사도 마찬가지야.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자극적인 소재로만 본 게 틀림없어.”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이미 온 거리에서 아메리인··· 백인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미 시위가 벌어지고 있나?”


“그렇습니다.”


오바 장관의 확고한 대답에 싱 대통령은 한숨과 함께 신문을 내려놓았다.


“일단 피해 규모를 파악하게. 그리고 경찰청장에게 폭력 행위는 막되 시위 자체는 금하지 말라고 전해 주게나.”


“말씀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만 시위를 허용해도 괜찮겠습니까?”


“지금 시위를 막으면 저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국가가 나서서 죽음을 방관한다고 볼 게야. 일단은 내가 시킨 대로 하고 자세한 보고가 올라온다면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각하”


오바 장관이 집무실에서 나간 후 싱은 씁쓸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언제쯤 이 무의미한 갈등이 끝날런지······”




아메리고의 상황은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이데아에도 전해졌다. 1 차 계획이 성공했다는 소식에 트라디토르와 포에나는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작전을 주관하는 대외팀의 장인 탄투메와 기안자인 콘트라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이니트도 두 사람을 멈추고서 업무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실장님, 그래도 신참이 활약을 했는데 축하 파티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콘트라가 이번 계획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피아니트의 입이 열리려는 찰나, 탄투메가 나서서 대내팀에게 한소리 했다.


“최종 단계까지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야.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질 거라는 걸 알잖아, 너희도!”


“...... 미안, 탄트.”


“죄송합니다.”


정작 작전의 핵심인 콘트라는 주변의 소란을 남의 일인 양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에만 향해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계획을 조정하느라 주말의 외출도 자주 반납한 콘트라였다.


그사이 필리우스의 입이 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어쩔 때는 한 달에 한 번 겨우 만나는 아들이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 줄 때마다 피로가 씻기는 듯한 콘트라였다. 아마레의 투정도 불러 오는 배를 보면 그 어떤 노래보다 듣기 좋았다. 콘트라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특히 곧 세상에 나올 두 번째 아이를 위해서 이번 작전을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가족 사진을 품속에 넣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게실에 가려고, 콘트라?”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을 정보국에 요청하고 오겠습니다.”


“벌써? 너무 이른 거 같은데.”


탄투메의 염려에 콘트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메리고의 대통령이 소문대로의 수완가라면 이미 대처가 진행 중일 겁니다. 그렇다면 시위가 정리되는 것도 시간 문제. 그전에 2 차로 넘어가야 합니다.”


“나도 콘트라와 같은 생각이야. 싱 와튼은 수상 각하께서도 예의 주시하실 정도로 보통이 아니다. 거기다 정보국장도 슬슬 움직이자고 하더군.”


“그렇다면 저도 이견 없습니다.”


파이니트의 말에 탄투메는 바로 수긍했다. 거기다 이미 모든 권한과 책임을 콘트라에게 넘긴 그의 입장에서는 개입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어차피 콘트라의 작전은 도중에 실패할 것이라며 속내에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탄투메였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여러 요소를 연계해 구상한 콘트라의 계획에 놀랐었다. 하지만 이내 흥미롭지만 도박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려 부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고는 실패할 경우 이를 대체할 작전을 세워 둔 상태였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콘트라는 움브라에서 초라한 입지가 되는 건 물론 모든 공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때를 기다리며 서랍 속의 계획서를 어루만지는 탄투메였다.




이중 사무실을 운영하는 움브라와 달리 정보국은 정부 청사 옆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다고 공개적인 장소는 아니었다. 여길 방문하기 위해서는 군의 검문을 통과해야 하니 말이다. 이는 협력 기관인 움브라에 소속된 콘트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원을 밝혀 주십시오.”


“외교부의 콘트라 도크트리나입니다.”


“확인되었습니다.”


사실 이 절차는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안 그래도 비밀이 많은 정보국 본부에 특혜를 받고 입장한다면 수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콘트라는 이 시스템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조심하는 게 조국을 위한 길이라 여기며.


건물에 들어서자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질문을 마침과 동시에 그녀는 책상을 세 번 톡톡 쳤다.


“외교부의 콘트라 도크트리나입니다. 친나즈와 관련된 문건을 확인하려고요.”


콘트라의 대답을 들은 여직원은 장부를 꺼내 방문 사유에 ‘외교 문서 확인'이라고 썼다.


“알겠습니다. 담당자를 만나서 서류를 확인해 주세요.”


여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 콘트라는 3 층으로 올라갔다. 정보국의 건물은 창문이 하나도 없는 흰 온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보안을 위한 설계인 걸 알지만 가끔은 정신 병원과 혼동되기에 쓴웃음을 짓는 콘트라였다.


3 층에 도착한 콘트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 사무실의 문에는 호수를 알려 주는 숫자만 적혀 있었다. 콘트라는 그중 306 호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는 정보국장 칼비티움 라쿠스가 인사를 건네 왔다.


“벌써 우리의 암호 방식에 익숙해진 모양이군.”


“덕분입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암호를 해독하는 콘트라지만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만큼 정보국은 까다로운 보안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방문하는 사무실의 장소를 안내해 줄 때도 특이한 암호 방식을 썼다. 데스크의 직원이 질문을 마친 후 무언가를 치거나 어루만지는 횟수가 층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류철에 쓰는 방문 사유의 글자 수로 사무실의 호수를 알려 준다. 괜히 탄투메가 정보국을 다녀올 때마다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아메리고의 대통령은 이미 시위를 멈출 방법을 생각해 냈을 겁니다. 그가 움직이기 전에 선수쳐야 합니다.”


“올바른 판단이야. 안 그래도 싱 와튼이 흑인 민족 대표자들을 호출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메리고가 신생국이라 다행이야. 그게 아니었다면 대통령 관저에 약을 치는 건 포기해야만 했겠지.”


“라쿠스 국장님을 비롯해 정보국에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콘트라의 말에 칼비티움은 피식 웃었다.


“빈말은 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나 말하게.”


“2 차까지만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싱 와튼은 그 정도도 금방 정리할 텐데?”


“그걸 기다리는 겁니다. 이번 단계는 더 큰 분란을 만들기 위한 촉진제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확신에 찬 콘트라의 얼굴을 보고서 칼비티움은 껄껄 웃었다.


“역시 자네가 마음에 들어. 아메리고가 무릎을 꿇으면 축하주나 들자고.”


“영광입니다.”


하지만 콘트라는 정보국장과 사적인 만남을 가질 의향은 없었다. 저 남자를 조심하라던 자신의 상관 파이니트의 충고에 따르기 위해서.




며칠 후, 아메리고의 국무부 장관 오바 락은 싱 와튼 대통령과 흑인 대표자들의 만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신문사들에 언질을 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목적을 말하기도 전에 오히려 편집장들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동방의 이주민들이 아메리인들과 손을 잡고 다른 이주민들을 몰아내려 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다. 지금 정부는 아메리인과 흑인 이민자의 갈등을 봉합 시키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오바는 그렇지 않다고 확답했다. 하지만 다른 신문사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제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한 장관은 서둘러 집무실을 나섰다. 관용차를 호출한 후 현관에서 기다리는데 마침 지나가던 비서가 그를 붙잡았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대화할 시간이 없네. 대통령 각하를 뵈어야 하니 나중에 이야기하세.”


“장관님도 소식를 들으셨군요. 부디 각하께 서둘러 보고해 주세요.”


“소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오바 장관의 물음에 비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흑인 시위대가 동방 이민자의 마을들을 습격한 걸 보고하시려는 거 아니셨나요?”


“...... 미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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