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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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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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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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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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심호흡을 마친 탄투메는 단상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디우토르는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도크트리나 씨가 하지 않는 건가?”


“대외팀장은 저기 서 있는 탄투메 이우스야, 아디.”


“흠······ 대아메리고 작전 계획서에서 그 이름은 못 본 거 같은데.”


“콘트라가 주도한 작전이라서 그래.”


“저 남자가 팀장이라면서?”



“콘트라가 워낙 자신하기도 했고, 작전을 진행하려면 전권을 위임하는 게 편하잖아.”


파이니트의 설명에 아디우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미심쩍은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움브라의 입장에서는 그가 계속 다그쳐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콘트라가 작전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것에 대해 정보국과는 사전에 상의가 되었지만, 수상실에는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에게 일을 맡긴 것에 대한 부담과 어차피 움브라 실장 명의로 계획서를 상신하니 문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파이니트는 탄투메의 속셈을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에 실적을 중요시하는 대외팀장이 신입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콘트라에게 책임을 떠넘긴 후 적당한 보완책으로 마무리하려는 걸 알고 개입할 시기를 고민하던 실장이었다.


다행히도 콘트라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탄투메는 팀장으로서의 입지를 잃었다. 자업자득이지만 파이니트는 이번 남진이 그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속이 좁고 수지 타산에 예민하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분명한 탄투메니까.




상황이 정리되자 탄투메는 몇 날 며칠 밤새 작성한 계획서를 아디우토르에게 제출했다. 심혈을 기울였기에 어떠한 까다로운 기준도 충족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서류를 읽어 나가던 수상 보좌관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외팀에서는 남방으로의 진출을 위해 통칭 ‘개미 지옥' 작전을 계획하였습니다.”


“간략히 설명해 보게.”


“먼저 남진의 목적은 두 개라 말할 수 입니다. 첫째, 이데아 남부와 인접한 지오나 해의 완벽한 장악. 이를 위해 바다 건너편의 항구를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공장 가동을 위한 값싼 노동력과 자원 확보. 이를 위해 석유와 석탄이 있는 열등한 나라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 움브라는 바다와 인접하고, 사회가 혼란하며, 자원이 풍족한 팔리아를 선택했습니다.”


“나쁘지 않아. 계속해.”


“하지만 팔리안은 국민 전체가 마엘리교도인 종교 국가입니다. 그중에서도 해안가에 거주하는 자맘 부족은 타민족과 타교도에 대한 차별과 테러를 신성시하는 광신도들입니다.”


“그렇지. 팔리아는 과거 식민지였지만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까지 독립했어. 그것도 태양을 잃지 않는 나라 바르타니아로부터.”


탄투메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디우토르는 피식 웃었다.


“이데아는 분명 강해졌네. 하지만 그 생선 대가리나 먹는 놈들만큼은 아니야. 그런데도 팔리아를 장악할 수 있다고?”


아디우토르의 질문에 탄투메는 지도를 가리켰다. 팔리아의 수도 제리코를 향해.


“디바이드 앤드 룰. 저희는 종교를 종교로 상대할 겁니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게.”


“1 차 작전에서는 명분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리다이트 녀석들을 이용하기 위해 리다이교의 수뇌부와 접촉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는 돼지놈들을 움직이겠다고?”


순간 콘트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콘트라의 아내 아마레가 리다이트 혈통이기 때문이다. 리다이트는 지금 탄투메가 언급하고 있는 팔리아 지역을 지배했던 민족이다. 천 년도 전의 일이지만 말이다.


비록 나라는 사라졌지만 리다이트의 자긍심은 매우 강하다. 리다이교의 신인 뤠에게 선택 받았다는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있다. 고향을 잃고 각지로 뿔뿔히 흩어졌음에도 같은 리다이트 핏줄끼리만 결혼하는 전통이 있을 정도다. 때문에 아마레와 결혼하기 전, 장인에게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 콘트라였다.


그렇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내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모욕을 듣고 기분 좋을 리 없다. 하필 장소가 직장이고, 상대가 상관이기에 콘트라는 울분을 참았다. 바람을 피운 인간이 그럴 자격이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돈에 미친 역겨운 것들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자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늘 고향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팔리아에 리다이트만의 나라를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그곳에 사는 팔리안과 자원을 무상으로 받아 내고자 합니다. 물론 모든 내용을 비밀로 한다는 조건하에 합의할 겁니다.”


탄투메가 말을 마칠 때쯤 아디우토르는 턱을 괴고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이익과 손해가 명확하게 갈리는 이야기다. 거기다 하나라도 어긋나는 경우, 이데아에 돌아오는 리스크는 어마어마하다. 이를 수상에게 보고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되는 수상 보좌관이었다.


일단 계획서의 보고를 재가한 파이니트도 머리가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리다이트를 앞세우는 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이후의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리다이교나 마엘리교나 광적인 건 똑같다. 애초에 그들은 한갈래에서 나온 친척과 같은 관계니까.


그러나 두 종교는 서로를 원수처럼 싫어하고 적대시한다. 서로에게 칼과 총구를 겨눈 채,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식민지를 세우지 않고 괴뢰국을 만든 다음 이익만 얻어낸다는 판단은 훌륭하다.


다만 알코즈가 가만히 있을지도 의문이다. 마엘리교의 성지가 있는 국가답게 남방의 맹주 알코즈는 자국이 아니더라도 마엘리교국을 건드린다면 십중팔구 움직일 것이다.




사무실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남진과는 무관한 대내팀의 두 사람도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았다. 아디우토르와 파이니트는 여전히 계산을 하면서 판단을 보류하고 있었다. 탄투메는 겨우 입지를 회복할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까 봐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제가 발언해도 괜찮겠습니까?”


침묵을 깬 건 콘트라였다. 반가운 목소리에 포에나는 참았던 숨을 밖으로 내쉬었다.


“이야기해 봐.”


탄투메는 껄끄럽지만 일단 허락했다. 계획서가 휴지통에 들어가는 것보단 부하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나으니 말이다.


“일단 저희가 세운 작전에 대해 보충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들어보고 싶습니다, 도크트리나 씨.”


“아마도 수상 보좌관님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은 네 가지로 추측됩니다. 먼저 리다이트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다이트는 우리를 배신하거나 각서를 유출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떻게 그걸 자신합니까?”


콘트라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말했다.


“그들은 각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금융이란 신용이 필수입니다. 만약 한 국가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누가 그들을 신뢰하겠습니까?”


“확실히······”


설명을 들은 아디우토르는 납득했다는 얼굴을 했다. 파이니트와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콘트라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다음은 팔리안에 대한 건입니다. 노동력이 목적이지만 난민 수용을 명분으로 내걸면 국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이데아의 이미지가 개선되겠죠. 하지만 팔리안, 특히 마엘리교도는 믿기 힘듭니다.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간단한 생산 공장이나 항구 지역에 난민촌을 만들고 거기서 못 벗어나게 제한해야 합니다.”


“의견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식인을 자처하는 선생님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들은 분명 인권을 노래할 겁니다. 물론 대부분은 돈을 쥐어 주면 입을 닫겠지만, 그중에는 진짜 사명감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마엘리교는 교리상 차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과 외부인에 대해서요. 그걸 언론을 통해 강조한다면 오히려 인권 운동가들이 지탄 받을 겁니다. 그래도 마엘리교도를 지지하는 멍청이들이 있다면 자원자의 가정에 이민자를 들이는 법안을 발의하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 손을 내릴 겁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디우토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콘트라는 무슨 문제가 있냐며 물었다. 그러자 수상 보좌관은 고개를 젓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크트리나 씨가 움브라로 가더니 많이 변한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계속 외교부에 둘 것을······”


순간 정적이 흘렀다. 멍하니 친구의 부친을 바라보던 콘트라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디우토르 보좌관님. 어딜 가든 조국을 위해 일할 수만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콘트라의 대답에 아디우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아들의 친구에게 걸어가 품에 안겼다. 콘트라는 어깨가 축축해진 걸 느꼈다. 그런데 어쩐지 차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고서 아디우토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못난 모습을 보여 미안하군.”


“아니야, 아디. 원래 늙으면 감정적이게 되더라.”


“넌 좀 그래야 해, 파이.”


“그 입 다물어.”


파이니트가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자 아디우토르는 쾌활하게 웃었다. 침울했던 분위기가 사라지자 회의가 재개되었다.


“그럼 남은 두 가지 걱정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보좌관님께서 염려하시는 건 알코즈의 개입 가능성과 차후 팔리아에서 벌어질 분쟁이라 생각됩니다.”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가볍게 웃어 보인 콘트라는 삼십 분에 걸쳐 설명을 진행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사무실에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디우토르는 박수를 치며 그대로 수상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파이니트는 예상대로라며 컵에 물을 따랐다. 트라디토르는 천재냐고 물으면서 성공하면 자길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 포에나는 자랑과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콘트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탄투메는 조용히 휴게실로 향했다. 분노와 역정, 좌절과 절망, 시기와 질투. 세상의 모든 악감정이란 악감정을 가슴속에 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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