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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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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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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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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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하루도 채 되지 않아 항구를 장악한 리다이트군은 풍요로운 녹지 지대를 점거하며 신속히 진격했다. 자경단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순식간에 사막으로 밀려난 이들은 다른 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군은 효율성을 중요시한다. 분산된 적의 병력이 집결하기 전에 각개 격파 하고 싶을 것이다. 거기다 팔리아의 영토는 대부분 사막이고, 지리적 특성상 수원에 모여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게 최선의 전략임이 자명하다. 다니아 슈바르 사령관도 그러길 원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리다이트의 수뇌부는 사막 근처에서 적의 접근만 막을 것을 지시하고는 진격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됩니까?!”


육군 참모 벤 디라임은 책상을 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옆자리의 해군 참모 유디아 고보가 말리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 역시 착잡했다.


“선지자분들의 명령이잖은가. 분명 깊은 뜻이 있을 것이야.”


다니아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참모들은 소란을 멈췄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모습이다.


현재 리다이트군의 장교 대부분은 타국에서 군 생활을 했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 리다이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사관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고, 한직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 이들에게 다니아 슈바르는 존경의 대상이다. 혈통과 신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바르타니아 왕국에서 장성까지 올랐으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지위를 포기한 건 모두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각하.”


다혈질로 유명한 벤마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의자에 앉았다. 다니아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며 사죄는 오늘 밤 뤠께 고하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유디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각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도 결국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유디아?”


“별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한 유디아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희가 따르는 건 선지자가 아니라 각하란 말입니다.”




참모진이 윗선의 지시를 기다리는 사이 점령한 마을을 이 잡듯이 수색하고 다니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불이 꺼져 있는 집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문을 부수고 진입했다. 안에는 중년의 여성이 아들과 딸을 끌어안고서 벌벌 떨고 있었다.


“어디 보자······ 아샤히 36 세, 압딜라 20 세, 아시나 14 세. 총 3 명이군.”


“어떻게 합니까, 대장?”


“엄마와 아들만 끌고 가. 딸은 사막에 내다 버리고.”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안 돼요! 제발··· 제발 아시나를 살려 주세요.”


“시끄러! 어디서 더러운 마엘리 년이 내 몸에 손대고 지랄이야!”


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간절히 비는 여자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여성 대원이 그를 말렸다.


“이러지 마세요, 대장. 선지자님들께서 아시면 큰일나요.”


“아······ 그러고 보니 할당량이 아직 많이 남았다 했지.”


그녀의 지적에 대장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일단은 폭행을 멈추었다. 대신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 여성의 손을 포박했다. 그걸 지켜보던 아들은 욕설을 내뱉다가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다. 아까 대장을 말렸던 여자는 구석에서 울고 있는 소녀의 입을 천으로 틀어막은 후 집밖으로 질질 끌고 가면서 중얼거렸다.


“막노동을 버틸 수 있는 건장한 남자 오천 명. 더이상 아이를 낳기 힘든 여자 천 명. 도대체 이걸 왜 모으란 거야, 윗대가리들은.”




리다이만의 첫 성소는 늦은 시간에도 기도와 찬양 소리로 가득하다. 이를 내려다보는 세 사람, 대선지자 엘리아스 야후와 소선지자 루기아 웁, 아바 아비란의 입가는 미소로 가득하다.


“요시가 데려온 이방인 장사꾼이 그렇게 쓸모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대선지자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게 다 뤠께서 우리 리다이트를 굽어살피신 덕분이지 않겠소.”


엘리아스는 풍성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위의 짙은 눈은 추악한 탐욕에 찌들어 있다. 이는 양옆의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대금의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소?”


“일단 자원은 사막의 광산을 확보해야 가능합니다. 이를 핑계로 군에는 진격을 미룰 것을 지시했습니다.”


“잘했군, 잘했어. 하지만 그 베니토란 녀석 여간내기가 아니오. 너무 질질 끌면 분명 이곳까지 찾아올지도 모르니 적어도 다음 주에는 군을 움직이도록 하시오.”


“그러겠습니다, 대선지자님.”


루기아의 대답에 엘리아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살벌한 눈빛이 번뜩였다.


“다음으로··· 팔리안 벌레들은?”


이번에는 아바 소선지자가 대답했다.


“카레디를 동원해 조건에 맞는 것들을 잡아들이는 중입니다. 다만 깐깐한 기준 탓에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여튼 장사치 놈들은 손해를 절대 안 보려고 합니다.”


“어쩌겠소? 그자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성소도 얻지 못했을 것을.”


엘리아스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이곳도 원래는 마엘리의 신전이었다. 녹지에 모여 사는 부족들이 매일 찾아 그들의 신 훼를 경배하던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는 리다이의 성소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리다이트 민중이었다.


물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가진 물질이 많을수록 바라는 건 더욱 커져만 간다. 세 선지자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팔리아 전역을 얻으려면 남은 물자도 받아야 할 것이오. 얼른 벌레들을 잡으라고 카레디들을 독촉하고 정 안되면 기준을 조금 어겨도 좋소.”


“...... 괜찮겠습니까?”


“내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소?”


날카롭게 쏘아붙인 엘리아스는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뒤뚱거리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두 남자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저 미친 노친네 언제 뒈지나 몰라.”


“조금만 버티자고, 아바. 엘리아스만 사라지면 그때부터는 우리 세상이야.”


“그건 맞지. 약속한 대로 두 원로 체제로 가자고. 꼭두각시 선지자로는 역시 요시가 좋겠어.”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 세상에서 다툼과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갈등은 복수를 낳는 법이다.




원한이 뿌린 씨앗은 바로 다음 날부터 싹을 틔웠다.


카레디 분대가 한 가정집에 진입한 직후 폭발이 일어났다. 그걸 밖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길가 반대편에서 열 살 남짓한 소녀가 걸어왔다.


“엄마······”


그 소녀는 여성 대원을 모친으로 착각했는지 안기려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 대원은 일단 그 아이를 받아주었다. 그때 귓가에서 삐빅 하는 신호음이 났고, 곧이어 그 자리의 모두가 폭사했다.


“금일 각지에서 다발적인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발포해도 좋다고 전파하게.”


“그게··· 이제 네다섯 살 정도인 어린 아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그걸 사격했다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심지어 유모차에 폭탄을 넣어 보내는 미친 놈도 있었다고 합니다.”


부관의 보고에 다니아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난색을 표했다. 이는 다른 참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국제법과 윤리관마저 버린 정신 나간 방식으로 대항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이러면 사막으로 진격전을 펼치기도 난처해진다.


물론 가능하긴 하다. 애초에 전력 자체는 리다이트군이 훨씬 우세하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팔리아 근방에는 마엘리교 국가들이 많다. 그들이 언제 합류할 지 모른다. 특히 종주국 알코즈가 참전한다면 팔리아 전역을 장악하기는 커녕 지금 점령 지역조차 지키지 못할 것이다.


이제서야 바르타니아의 선임들이 팔리아를 버린 이유를 이해한 다니아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이 상황을 타개할 작전이 있다. 적어도 손쓸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마엘리교도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시기에 팔리아가 국토 전부를 잃는다면 주변국들도 개입하기 껄끄러워진다. 물론 영토를 되찾아 준다는 명분은 있다. 하지만 이민자를 받아 주랴, 병력을 투입하랴, 부담에 대한 손익 계산이 확연히 달라지면 스탠스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를 위해 선지자들과 직접 만나야겠다고 판단한 다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윤리적인 행태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국제 언론에 알릴 것을 지시하고서. 자폭 테러가 일어나게 만든 주범이 지금 자신이 만나려는 자들인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한편 전쟁으로 소란스러운 바다 건너편과 다르게 평화로운 이데아의 밤길. 한 거리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다. 은은히 살갗을 드러낸 스타킹은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걸어오는 이들을 무시한 채 도도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쏜살같이 뛰어가더니 통통한 남자에게 팔짱을 꼈다. 정작 당사자는 어찌할 바 몰라하며 누구냐고 물었다. 하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마냥 싫은 건 아닌 듯하다.


“한 시간에 세 장. 어때요?”


“아, 뭐야? 창년이네.”


탄투메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손가락 두개를 피며 속삭였다.


“하나만 깎아 줘.”


그의 제안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어두운 골목으로 탄투메를 데리고 갔다. 그 다음 날, 출장이 끝났음에도 탄투메는 움브라의 사무실에 복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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