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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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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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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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움브라의 대내팀장 트라디토르는 벌레 씹은 얼굴로 책상에 한가득한 일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포에나는 고개를 돌려 빈자리를 살폈다. 탄투메는 여전히 결근 중이다. 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스푸아티 코퍼레이션의 조선소를 방문하겠다며 출장 간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정보국을 통해 확인한 결과 조선소를 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업체 담당자가 예약한 음식점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텔로 돌아가 버린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은 동료들의 속을 타게 만들었다. 정작 탄투메의 신변을 걱정하는 건 친구인 트라디토르 혼자뿐이다. 파이니트와 포에나는 탄투메가 출장을 가려고 했을 때부터 불순한 의도라고 생각했다. 그의 평소 행실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홀로 남은 대외팀원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개미 지옥 작전을 진행하느라 남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도 리다이트와의 교신 내용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경우의 수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한 손으로는 펜을 움직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음 자료를 찾는 모습은 두 팔로는 모자르다는 말을 절로 연상시킨다.


엉망이 된 사무실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파이니트는 때마침 울린 전화벨 소리에 욕설을 집어삼켰다.


“노비시메다.”


“오늘따라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 실장.”


“아침부터 누구 목소리를 들어서. 이번에는 어떤 쓰잘데기 없는 걸 알려 주려고 전화한 거지?”


가시 돋힌 비난을 능구렁이 같은 웃음으로 넘긴 칼비티움 정보국장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기뻐해라. 탄투메 이우스의 흔적을 발견했다.”


“다행이네. 너희는 월급이 아깝지 않다는 걸 증명했고, 우리는 그놈의 면상을 쥐어박을 수 있겠어.”


“그런데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 주겠나? 내용이 꽤 복잡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그래.”


“설명은 너희가 사람을 보내서 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는데.”


하지만 파이니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반복적인 신호음이 들려왔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그녀는 손에 든 걸 집어던지듯이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부서원들의 시선은 실장에게 쏠렸다.


“마침 잘 됐다. 정보국에 다녀올 사람 한 명. 나다 싶으면 나와.”




콘트라가 정보국에 들어서자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오랜만이네요, 도크트리나 님.”


“안녕하세요. 외교부 회의에 필요한 문건을 받으러 왔습니다.”


“스케줄표에도 있네요. 자, 여기 적힌 곳으로 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콘트라에게 여직원은 상냥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외교관 출신인 콘트라가 이를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다만 정보국에 올 때마다 겪은 일이기에 별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안내 받은 606 호실의 문에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사르토리 박사라······”


간만에 본 반가운 이름에 콘트라는 저절로 중얼거렸다. 사르토리 박사는 그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준 은사였다. 지금은 앙겔루스 디아볼리 수상에게 밀렸다지만 한때 콘트라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한동안 추억에 잠겨 팻말을 바라보던 콘트라는 가까스로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리고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을 열자 작지만 안락한 서재가 나타났다. 단출하고 깔끔한 밤나무 원목 책상에는 정보국장 칼비티움 라쿠스가 다리를 올린 채 앉아 있다.


“이게 얼마 만인가, 콘트라 도크트리나!”


“국장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영웅을 잊을 수 있겠나?”


방이 떠나라 웃은 칼비티움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서류철이 들려 있다. 탄투메의 행방이 담긴 보고서라고 짐작한 콘트라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을 통해 느껴지는 건 빳빳한 종이의 질감이 아닌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었다.


“왜 저에게 총을 주시는지······”


콘트라가 당혹감을 숨기며 애써 웃자 칼비티움은 안주머니에 넣어 두라고 말했다.


“이렇게 위험한 걸 소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말이야. 스스로를 지킬 무기가 있어야 하네.”


“군에 소속된 정보국이면 몰라도 저는 다릅니다. 애초에 움브라는 정체를 숨기고 다니지 않습니까?”


“정론이군. 하지만 그 전제 조건에 오류가 생긴다면?”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콘트라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칼비티움의 말투는 농담 같지는 않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탄투메 이우스는 납치당했네.”


“방금 납치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우리 요원들에 따르면 사건 당일 시내를 배회하던 탄투메를 목격한 사람이 있었어.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예쁘장한 갈보가 접근하니 탄투메는 대화를 나누다가 그년을 따라 골목으로 향했다고 하는군. 그쪽은 갈보집이라는 보고도 덧붙여져 있었고.”


듣기 거북한 표현의 연속에 콘트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따라서 핵심적인 요소를 짚으며 화제를 돌리는 콘트라였다.


“그 사창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루어졌습니까?”


“당연하지. 탄투메에게 접근한 년은 어떤 외국인에게 거금을 받았다는군. 약을 탄 술을 먹여 재운 다음 그 남자의 차에 태워 보냈다는 자백까지 받아 냈어.”


전형적인 스파이의 수법이다. 그렇게 생각한 콘트라는 당장 항구의 외진 창고들을 수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스파이는 사적인 이익은 추구해도 사적인 방향으로 일하지는 않는다. 정부나 기업, 즉 조직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탄투메가 움브라의 직원인 것을 알고 납치했다는 건 그만한 위치에 있는 엄청난 조직의 소속인 게 분명하다. 그들에게 더 많은 비밀이 새어 나가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콘트라의 의견을 들은 칼비티움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군. 하지만 그건 외교관으로서의 판단이야. 군인은 조금 다르게 행동한다네, 콘트라 도크트리나.”


“국장님께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드디어 칼비티움은 쥐고 있는 보고서를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받아든 콘트라는 빠르게 읽어 나갔다. 안에 적힌 내용은 칼비티움이 이야기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덕분에 머지 않아 본론에 이르렀다. 탄투메를 납치해 간 남자에 대한 정보국의 결정이 나온 것이다.


그때부터 보고서는 더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콘트라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한군데에 꽂힌 채 다음 장으로 향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칼비티움이 입을 열었다.


“이게 군인의 판단일세. 정보국과 함께하는 이상 알았으면 좋겠군. 그래서 자네에게 총을 선물한 것이니 부디 늘 품속에 간직해 주게나.”


말을 마친 정보국장은 이제 나가 봐도 좋다고 허락했다. 하지만 콘트라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보고서를 향하고 있었다. 탄투메와 창고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항전하는 스파이 집단을 폭탄으로 제거하고 단순 화재 사고로 위장하라는 지령서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지금 뭐라고 했나?”


“어떻게 함께 일하는 동료를 버립니까? 더군다나 스파이 몇 명을 잡기 위해 국민을 버린다니 말도 안 됩니다.”


“괜찮네. 절대 걸릴 리는 없으니 말이야.”


“걸리고 말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 결정으로 죽는 사람들은 무슨 죄입니까?”


“운이 없는 거지. 아니지.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자기 목숨으로 조국을 위협하는 간첩을 제거할 수 있으니 말이야.”


광기에 찬 미소를 본 콘트라는 그 기세에 압도되어 입을 열지 못했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반박하려는 순간, 칼비티움은 소름 끼치는 조소를 날렸다.


“아메리고에서 수많은 놈들을 죽인 자가 할 소린지 모르겠군 그래.”


“예······?”


“온갖 음모를 꾸며 서로 원망하고 싸우게 만든 자가 할 말인가 해서 물었네.”


“...... 그건 이데아를 위해서였지 않습니까?”


“정말로 이데아를 위해서였는가?”


“죄송하지만 국장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자기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는 거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이번 일도 이데아를 위한 일이니 말이야.”


“하지만 아메리고에서 해친 건 적국의 국민이었지, 자국의 국민은 아니었습니다.”


“어디의 국민이건 간에 이데아의 국익을 챙기면 될 일이야.”


상대가 정곡을 찌르자 콘트라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말하려고 했다. 조국이나 움브라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콘트라 자신을 위해서였다. 여기서 정보국장과 콘트라가 동일시되어선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한마디 한마디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걸 정당화한 국익이라는 근거가 무너지게 된다. 순간 거울에 비친 콘트라 도크트리나라는 남자의 흉측한 몰골이 보인다. 이를 사랑하는 아내 아마레와 소중한 아들딸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콘트라의 속마음을 눈치챈 칼비티움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걱정 말라고. 아까도 말했을 텐데. 절대 걸리지 않아.”


“그걸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아까와 달리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칼비티움은 손을 들어 콘트라를 가리켰다.


“그러라고 자네들이 있는 거야. 협잡꾼 집단 움브라가.”




콘트라가 방에서 나간 후, 칼비티움 라쿠스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을 깊이 마신 그는 연기와 함께 핀잔을 입 밖에 뱉었다.


“이제 나오지 그러나, 아디?”


그러자 커튼 안쪽이 들썩이더니 누군가 나왔다. 멀끔한 자태의 신사, 수상 보좌관 아디우토르다.


“사람 홀리는 솜씨는 여전하군, 칼.”


“글쎄.”


아디우토르의 칭찬을 빙자한 비아냥에 칼비티움은 어깨를 으쓱하며 책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보고서가 놓여져 있다. 만약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예상과 다르게 나올 때를 위한 대비책이었다.


표지에 담배를 비벼 끈 뒤 칼비티움 라쿠스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니지. 그냥 저 인간들이 이용하기 쉬운 거야.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바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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