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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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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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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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군사 공항을 빠져나온 나크 사드 알코즈 첩보 장관의 얼굴은 지옥에서 나온 악귀와 같다. 당장에라도 사람 하나 잡을 듯한 살기에 부하들은 말조차 걸지 못했다. 실제로 나크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괜히 콘트라와 접선했다는 후회조차 잊을 정도다.


사실 나크의 입장에서는 굳이 움브라와 만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첩보 장관으로서의 위신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탄투메라는 쥐새끼를 잡으려다 특수팀 한 개 조를 잃었다. 첩보원 한 명을 육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엄청난 피해였다.


설마 이데아 측에서 경고도 없이 창고를 폭파시키는 무식한 방식을 쓸 줄은 몰랐던 게 문제였다. 그 안에는 무고한 이데아의 국민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움브라의 대외 팀장이 있었다. 요직의 인물인 만큼 귀중한 정보도 있을 것이고, 상대도 조심스러울 것이라 판단했지만 그게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고 말았다.


탄투메 생포 작전의 실패에 대한 문책은 없었지만 영향력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눈엣가시인 시종 장관 카마르 압딜라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일단 빈 제마가 외교 라인을 통해 손을 써서 일단락했지만 언제 숙청 당할지 모르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왔다.


그런 와중에 이데아에서 귀빈 초청이 왔다. 재빠른 판단과 화끈한 성격으로 유명한 빈 제마조차 심사숙고할 정도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국 방문하기로 했다. 이데아의 연락을 부친인 국왕에게 숨기기 위해 카마르가 알코즈에 남았다.


이데아로 오기 직전 대사관에서 나온 직원에게 콘트라가 공항에서 면담을 원한다는 연락을 받은 나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연이 있는 움브라의 직원이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외교관 시절에도 약삭빨랐던 남자는 훨씬 더 교활해졌다. 자신이 손쓸 수 없는 권한을 꺼내들어 협박했다.


만약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모두 말한다면 자신은 멀쩡하게 귀국할 수 없다. 그걸 알고 있는 나크는 복잡한 심경에 담배를 꺼냈다. 옆자리의 부관이 불을 붙여 주자 얼굴이 조금 풀려 보인다.


“전하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일정상 수상 관저에 계실 겁니다. 각하께서 도착하실 때쯤이면 연회가 시작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천천히 가자고. 취해 계실 때가 나을 테니.”


“이봐, 속도 낮춰.”


“예, 알겠습니다.”


나크가 창문을 열자 연기가 밖으로 흘러나간다. 곧이어 이데아의 아름다운 하늘이 드러난다.


“참 아름다운 나라야. 사막밖에 보이지 않는 알코즈와는 달라.”


“하지만 이곳도 아국에서 자원을 수입하지 않습니까? 결국 일단일장이라 봅니다.”


“그렇지.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은 부수면 끝이야. 우리는 그 힘을 얻을 때까지만 참으면 돼.”


한숨을 내쉰 나크는 담배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다. 마침 이를 포착한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었지만 무시하며 창문을 닫았다. 그 힘을 얻을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나크 사드 일행이 수상 관저로 가는 동안,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자택에 들렀다. 하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우는 딸을 달래는 아내와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역시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보물들이다. 콘트라란 한 남자가 악마가 되더라도 세 사람이 행복하면 족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최근 자신의 생각에 허점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콘트라다. 악마는 가족의 곁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설령 가족이 허락한다고 한들 주변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다. 사랑스러운 아마레가 핍박을 받을 것이다. 총명한 필리우스가 멸시를 받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이 냉대를 받을 것이다.


때문에 콘트라는 더 이상 저들에게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아마레에게는 남방으로 장기 출장을 간다고 말해 뒀다. 당연히 한 시간 넘게 투정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전직 외교관답게 뛰어난 화술로 아내를 설득하면서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한마디를 남겼다.


“돌아오면 셋째를 가지자.”


“정말요?”


“응, 꼭이야.”


물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다. 그게 외교다. 약속이란 건 지키라고 있지만,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있는 것이 외교니까.


“역시 여기 있었네요.”


“포에나.”


나긋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던 콘트라지만 이내 움브라의 동료 포에나 쿠아이스티오라는 걸 눈치채고 안도했다.


“저 사람들 부럽네요. 콘트라한테 따뜻한 눈빛을 받을 수 있다니요.”


“모든 가족들이 그렇잖아.”


“글쎄요. 적어도 저희 집은 안 그랬어요. 아버지는 도박 중독에 어머니는 남자에 미쳤었죠.”


“고생 많았겠어.”


“그땐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추억이에요. 과거를 숨긴다고 연기를 하는 것도 은근히 재밌었고요.”


하지만 말하는 내내 포에나의 얼굴은 살짝 얼어 있다. 콘트라는 이미 눈치챘음에도 애써 모르는 척했다.


“요즘 콘트라가 편하게 대해 줘서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 원래는 존대했었지. 요즘 피곤하다 보니···”


“전 이게 좋아요. 제가 꿈꾸던 그림이기도 하고요.”


“꿈꾸던 그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게 있어요.”


말을 마친 포에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은 진심이 담겨 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콘트라다.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알코즈 건은 잘 해결됐어. 내일 아침에는 연락이 오겠지.”


대답을 들은 포에나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예요?”


“확답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그럴 거야. 아무리 왕세자라도 국왕의 약속은 무르기 어렵겠지.”


“다행이다······”


짧은 대답에는 깊은 여운이 담겨 있다. 포에나가 얼마나 움브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밝은 미소를 지은 포에나는 콘트라에게 팔짱을 꼈다. 예전이라면 움찔하며 피했을 콘트라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자, 이제 돌아가요. 움브라로.”


“그러지.”




나크가 차에서 내리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맞이했다. 이미 연회도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빈 제마의 주량을 생각하면 아직도 부족하다. 양주 한 병을 비워도 끄떡없는 괴물이니 적어도 한 시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판단을 마친 나크는 부하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후 정원을 거닐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주변을 둘러보자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수풀 속에는 수많은 남녀가 뒹굴고 있다. 나이 차도 그렇고 정상적인 관계로는 보이지 않는다. 외교적인 자리에서 이런 경우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약아빠졌군.”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특히 성적인 욕망에 약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생명체는 번식을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적 활동이 동반될 수 없는 것이다.


외교와 첩보 활동에서는 이러한 욕망을 자주 활용한다. 술, 약, 그리고 성을 활용해 상대에게서 필요한 걸 얻어내는 건 유구한 전통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양국의 정보원들은 임무 대상의 취향에 맞게 접근해 정보를 얻으려 하고 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아국의 기밀이 유출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나크는 방관하고만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세자의 분노를 돌릴 타겟을 만들기 위해서다. 여기서 중요한 정보가 이데아 측에 새어 나간다면 빈 제마의 성격상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 일벌백계할 것이다. 범인 수색은 당연히 첩보 장관인 자신이 담당할 것이고, 이를 통해 왕세자의 총애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나크 사드는 이데아 정보원 위에 올라탄 자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자신의 계파는 없다. 하나같이 시종 장관의 주변 인물들이다. 냉정하게 지적하자면 나크의 세력이 그만큼 줄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카마르 그 새끼의 얼굴이 썩는 것도 볼만하겠어.”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잣말한 나크는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성냥도 손바닥으로 가려 불빛이 보이지 않게끔 조심했다. 이런 것만 보면 참으로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애초에 타국 한가운데서 흡연을 하는 것부터가 조심스럽다고 하는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정원인지 동물원인지 혼동이 올 때쯤 저 멀리서 묵직한 구두굽 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사람들도 이를 들었는지 교성이 멈췄다. 어떤 짜증나는 놈이 완벽한 계획을 망쳤냐며 짜증을 내는 나크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나크 사드 첩보 장관 아니십니까?”


“맞긴 하다만 넌 누구지? 이데아 사람이 알코즈 말을 자연스레 하다니 영 수상한데.”


“반말은 조금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나름 직책이 있는 입장인지라.”


불쾌한 기분에 막 내뱉긴 했지만 상대의 교양 있는 말투에 살짝 눌린 나크는 태도를 바꿨다.


“흠, 그쪽은 누구십니까?


“절 기억하지 못하시다니 서운합니다. 그때도 한 번 뵈었는데.”


의아해하던 나크를 보며 웃던 남자는 모자를 벗었다. 순간 지금껏 가려졌던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제서야 나크는 잊고 있던 또 한 명의 콘트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만입니다, 나크 사드.”


“아디우토르 데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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