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새글

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최근연재일 :
2024.09.23 21:57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523
추천수 :
6
글자수 :
266,333

작성
23.10.02 22:57
조회
12
추천
1
글자
10쪽

13화

DUMMY

사령부로부터 지시를 하달 받은 이데아 해군 사령관 레오나르도 가리발디는 망원경을 꺼냈다. 잠시 뒤에 벌어질 일을 모르고 평화로운 해안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망가뜨리기 아까울 정도다. 하지만 군인은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다.


이윽고 레오나르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관은 발포를 명령했다. 곧이어 수많은 함포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비처럼 쏟아진 포탄은 공장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가루로 만들었다. 최우선 타겟인 조선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강탈하다시피 기부 받은 함선은 모두 수장되었다.


“뭘 지켜보고만 있어?! 얼른 공격해!”


“하지만 거리가 닿지 않습니다.”



“일단 쏘고 봐!”


지휘관의 고함에 각 초소에선 힘겹게 반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함대를 견제할 수 있는 포대는 진작에 파괴되었다. 이런 초소의 작은 화포로 싸우는 건 무리다. 적선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포탄은 바다에 빠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이를 지켜보는 아메리고군은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마냥 절망했다.




그날 밤, 아메리고 정부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논의된 안건은 이데아의 공습이 아니었다.


“포격 이후 사태 수습에 나섰던 정찰대가 발견한 문서입니다.”


“이게 어떻게 저곳에······”


“보고가 사실이라면 한두 군데서 발견된 게 아닙니다.”


“그말은 즉···”


대통령의 신음 섞인 물음에 국방부 장관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데아놈들이 공격을 마치고 배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쉰 조는 눈을 감았다. 눈치를 살피던 부통령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그러고는 피 메이라의 후임, 알지니 핑 장관을 데리고 옆 사무실로 갔다.


“무슨 일이야, 카라멜?”


“친한 척 부르지 마세요, 핑 장관.”


“대학 동창끼리 왜 그래? 같은 로펌에서도 일해 놓고.”


“당신 같은 낙하산이랑 엮일 생각은 없어요.”


카라멜은 알지니를 누구보다 싫어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종이컵을 애용했다. 그 뻔뻔함은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인권 변호사라고 외치면서 살인자를 변호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중요한 게 있다.


“저 서류, 사실인가요?”


“무슨 서류?”


“이데아가 해안가에 두고 갔다는 여성 권리부의 특활비 내역이요!”


그제야 알지니는 미소를 멈췄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라멜은 어서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알지니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나왔다.


“그런 것까지 캐묻는 건 너무 잔인하네요, 부통령님.”




다음 날 아침, 아메리고의 유명 일간지들은 앞다투어 속보를 보도했다. 공습 당한 공장터에서 정부의 공문서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여성 권리부에서 사용한 특수 활동비의 내역서였다는 소식이 전역에 퍼졌다.


문제는 그 세부 내용이었다.


“하! 우리의 세금으로 한 짓거리가 그따위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그래.”


“그러게 말이야.”


“차관 남편이 예산으로 스테이크 10 인분을 샀다며?”


“그렇게 이데아를 욕하고 불매를 외치더니 전쟁 기간에 이데아산 와인을 마셨다는군.”


“왜 장관의 가족이 공석에서 입는 옷을 세금으로 사는 거야? 말이 돼?”


아메리고의 노인들은 선술집에서 소리치며 화를 냈다. 자신의 가족과 이웃은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동안 정치인이라는 인간들이 한 짓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앞에선 조국과 국민을 외쳐 놓고, 뒤에선 자신의 이익만 취했다. 그 현실에 노인들은 비참하고 서러웠다.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이 울려 퍼졌다.


“차라리 그 정도면 양반이지. 피 메이라였나? 자기 아들은 다른 나라로 보내려던 인간보단 말이야.”


“아, 맞아. 그 여자는 예산으로 남자랑 놀러 다녔다며?”


“여자를 사는 남자는 범죄자로 만들면서 말이야. 입과 머리가 그렇게 따로 놀려면 얼마나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걸까? 이래서 정치인 중에 명문 출신이 많나 봐.”


구석 자리에 앉은 두 남자의 대화에 모두의 눈과 귀가 쏠렸다. 그만큼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이윽고 한 노인이 힘겨운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자네들이 한 이야기··· 정말인가?”



“나도 지인한테 들은 거야. 언론에서 모든 정보를 구했지만 정부에서 공개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더라고.”


“증거가 없다면 신뢰하기 힘들군.”


“믿지 않아도 괜찮아. 근데 그 녀석이 어디서 일하더라.”


“프랭크? 걔 거기잖아. 이번에 내역서 털린 곳.”


“아, 여성 권리부랬지.”


증오의 대상이 언급되자 군중의 분노를 억누르던 인내의 한계이 무너졌다. 저들이 한 발언의 신빙성따윈 중요치 않다. 그게 인간이란 감정적인 동물의 특성이다. 감정은 안대처럼 시야를 차단한다. 그렇기에 술집의 손님들은 두 남자가 징집됐어야 할 연령대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데아의 요원들은 웃음을 숨기며 술집을 나섰다. 아직도 방문해야 할 가게들이 많았기에.




아메리고 정부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거짓이 섞여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심의 불길을 걷잡히지 않았다. 앞뒤가 다른 역겨운 행위와 이를 감추려 언론을 압박한 게 드러났다. 거기다 그동안 표만 생각하면서 쌓은 업보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정부는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전쟁 속에서도 멈추지 않던 공장과 관공서는 업무를 멈춰야만 했다. 훈련소조차 난리가 났다. 안 그래도 강제로 끌려왔던 훈련병들은 전쟁터에 가지 않겠다며 저항했다.


문제는 여기에 장교들까지 가세한 것이다. 그들은 훈련병들에게 세상을 바꾸자며 설득하고서 무기를 쥐여 줬다. 그러고는 대통령 관저와 각 부처의 청사로 향했다.


당황한 정부는 경찰청과 소방청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청장들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군이 건물을 포위하고 나서야 출발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무너지는 정권의 비참한 말로였다.


결국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군은 관저를 제외한 대부분을 점거하는데 성공했다.


관저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경호실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지만 포위망은 점차 좁혀들고 있었다. 마지막 수조차 잃은 조는 횡령한 돈으로 용병들을 고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용병은 이익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급해진 상대에겐 최대한 바가지를 씌우는 게 상인이다. 용병 업체가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자 조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각하?!”


카라멜 부통령의 물음에 조는 책상을 내려쳤다. 이제는 그 누구도 놀라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따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네가 대통령인 줄 알아?”


“너 같은 머저리를 믿은 내가 바보지.”


“싱 와튼을 버린 우리가 어리석었어!”


수많은 비난에도 조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대선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삼선에 도전하려면 거금이 필요하다. 지금 용병을 고용하면 대선을 포기해야 한다. 때문에 조는 용병을 고용하기보단 군부와 협상하기로 했다. 자신의 높은 지지율만 믿고서.


대통령의 생각을 읽은 부통령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비웃었다. 그가 사라져도 여성권은 새로운 체스말을 찾아 이권을 요구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렇게 아메리고의 대통령 관저는 독립 전쟁 이후 처음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그리고 조 플라잉 맥트럼은 최초로 총살 당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장관님?”


앤드류 머레이 국방부 장관은 걱정스러워하는 참모 총장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최선이야. 알지 않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장관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능력도 되지 않는 것들을 장교로 임관하라면서 정작 징집은 못하게 했을 때부터 갈아엎고 싶었습니다.”


“거기다 성과도 없는데 어떻게든 진급 비율을 맞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말이나 됩니까?”


“난 정치적인 건 관심 없어. 하지만 그렇게 말려도 이데아 본토 침공을 억지로 진행해 막심한 피해를 입힌 멍청이를 대통령으로 모실 생각도 없어.”


총장들의 대화를 들은 앤드류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그는 엘리트 군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만큼 자부심이 컸고, 불량배와 범죄자가 많은 이민자 집단을 혐오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자에게 세금을 많이 쓰는 싱 와튼을 싫어했다. 싱과 상반된 성향인 이번 정부로부터 장관을 권유 받았을 때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작 어리석은 건 앤드류 자신이었다. 엘리트니까 모든 걸 안다고 생각했다. 더 배운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개를 세웠다. 그 결과, 조국은 패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앤드류는 쿠데타를 결정했다. 대통령에 오를 생각은 없다. 그저 조를 실각시키고, 이데아와 휴전을 맺는다. 이후의 일은 국민들에게 맡긴다. 그렇게 다짐하는 앤드류였다. 물론 그 마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삼 일 후, 이데아군은 아메리고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육지에 상륙한다.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했던 말대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26화 24.01.08 9 0 10쪽
25 25화 24.01.01 11 0 10쪽
24 24화 23.12.25 11 0 12쪽
23 23화 23.12.18 9 0 11쪽
22 22화 23.12.11 12 0 12쪽
21 21화 23.12.04 9 0 10쪽
20 20화 23.11.28 10 0 11쪽
19 19화 23.11.14 10 0 10쪽
18 18화 23.11.06 7 0 11쪽
17 17화 23.10.30 12 0 11쪽
16 16화 23.10.23 8 0 10쪽
15 15화 23.10.16 11 0 12쪽
14 14화 23.10.09 9 0 12쪽
» 13화 23.10.02 13 1 10쪽
12 12화 23.09.25 11 0 9쪽
11 11화 23.09.18 10 1 13쪽
10 10화 23.09.11 11 0 11쪽
9 9화 23.09.06 11 0 12쪽
8 8화 23.08.28 13 0 15쪽
7 7화 23.08.21 11 0 13쪽
6 6화 23.08.14 12 0 11쪽
5 5화 23.08.07 12 0 11쪽
4 4화 23.07.31 12 1 11쪽
3 3화 23.07.24 15 1 13쪽
2 2화 23.07.17 17 1 12쪽
1 1화 23.07.10 39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