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새글

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최근연재일 :
2024.09.23 21:57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520
추천수 :
6
글자수 :
266,333

작성
23.12.04 23:09
조회
8
추천
0
글자
10쪽

21화

DUMMY

콘트라는 집에 들러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만 보고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했다. 어느덧 능숙하게 책을 읽는 아들 필리우스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탄투메의 소식을 알려야 했다. 그런데 그가 움브라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콘트라 도크트리나가 도착했습니다, 수상 각하.”


당황스러운 상황에 콘트라는 서류철을 숨기며 경례를 올렸다. 하지만 앙겔루스는 인사에는 대꾸도 않고 호통부터 쳤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게야?!”


“죄송합니다, 각하.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알코즈로부터 연락이 왔어! 그 짜증나는 왕세자 녀석한테!”


연신 고함을 질러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대는 앙겔루스의 얼굴은 끓는 주전자처럼 새빨갰다. 상관을 달래며 자리에 앉힌 아디우토르 수상 보좌관은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오늘 알코즈 대사관을 통해 항의가 들어왔네. 빈 제마 왕세자의 최측근이자 첩보 장관인 나크 사드의 친척이 이데아에서 여행하던 중에 연락이 끊겼다더군.”


“큰일이군요. 하지만 그게 저희와 무슨 상관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보국에 따르면 그자의 마지막 목격지가 남부 해안가라고 하네. 거기서 만난 사람은 탄투메 이우스, 움브라의 대외팀장이고. 이 정도면 납득이 되나?”


지금의 정보를 전혀 몰랐던 콘트라는 입을 열지 못했다. 아디우토르는 정보국이 출처라고 했지만 칼비티움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사안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콘트라는 복부에서 느껴진 고통에 주저앉고 말았다.


곧이어 괄괄한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리다이트 새끼들이 팔리아를 장악해도 알코즈가 개입하면 남방 진출은 물거품이야. 네놈들의 잘못은 알아서 책임지고 처리해. 3 개월, 딱 3 개월을 주지. 알았어?!”


“알겠습니다, 각하.”


“난 파이니트 자네를 신뢰하고 있다네. 그래서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움브라를 유지해 왔어. 하지만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군.”


“이해합니다.”


“약속한 기한 내로 빈 제마를 설득하지 못하면 움브라는 해산이다. 이상일세!”




이후에도 앙겔루스 디아볼리는 한참이나 패악질을 벌이다가 떠났다. 트라디토르와 포에나가 부축하는데도 콘트라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 복부의 고통은 이미 가셨지만 진정으로 존경했던 수상이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사실이 안 그래도 지친 마음을 괴롭혔다.


아디우토르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파이니트는 콘트라를 붙들고 휴게실로 들어갔다.


“라쿠스가 뭐라고 하던?”


“제 설명보다는 이걸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파이니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콘트라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하 한 명보다는 조직 전체가 우선이다. 일단은 책상에 놓인 서류철을 집었다.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자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한 그녀였다.


“이래서 그 새끼와 일하고 싶지 않다니까.”


“국장은 알코즈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숨기는 게 있습니다.”


“라쿠스라면 그러고도 남지. 일단 콘트라 넌 오늘 쉬어라.”


“하지만 대외팀은 저밖에 없습니다.”


소파에서 일어나려는 콘트라를 넘어뜨린 파이니트는 단호히 말했다.


“내가 처리하면 돼. 지금 그 상태로는 제대로 일하지도 못해. 오히려 방해만 된다.”


“...... 죄송합니다. 실장님 말씀이 옳아요.”


“미안하면 푹 쉬고 멀쩡하게 돌아와. 그리고 밤새 야근하도록.”


이야기를 마친 파이니트는 문을 닫고 휴게실을 나왔다.


“콘트라는 좀 어떻습니까?”


“괜찮겠나?”


상사의 핀잔에 트라디토르의 입가가 내려갔다. 실장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폭풍보다 심한 잔소리가 시작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파이니트는 트라디토르를 그대로 지나쳐 밖으로 향했다.


“어디 가십니까?”


“정보국. 혹시 나나 대외팀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모조리 기록해 둬. 돌아와서 처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뒤돌아보지 않고 손만 흔드는 파이니트지만 트라디토르는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배웅했다. 평소에는 무섭기 짝이 없는 상사지만 이럴 때만큼은 누구보다 듬직한 실장님이니 말이다.




“어서 오세··· 요.”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던 안내 데스크 직원은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상대하기 힘든 거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둘러 책상 아래의 버튼을 찾았지만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헛짓하지 말고 라쿠스 새끼한테 당장 내려오라고 전해.”


“그러겠습니다, 실장님.”


어쩔 수 없이 다이얼을 돌리는 직원이지만 순순히 국장을 부를 생각은 없었다. 경호반이 전화를 받자 그녀는 국장과 통화하듯이 연기를 했다. 하지만 움브라의 실장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파이니트는 자연스럽게 전화기를 빼앗고는 통화를 이어받았다.


“문제가 생긴 것 같군. 곧바로 경호반 1 조를 출동시키겠다.”


“난 너희 같은 조무래기한테는 관심 없어. 라쿠스 새끼를 데리고 오라고!”


“댁은 누구야? 감히 국장님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고···”


전화기를 집어던진 파이니트는 벌벌 떨고 있는 여자에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마지막 기회다. 그 새끼를 불러.”


여자가 몸을 쪼그리고 죄송하다고 비는 중에 계단 쪽에서 누군가가 내려왔다. 능글맞고 여유로운 얼굴, 파이니트가 찾던 칼비티움 라쿠스 정보국장이다.


“올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주지 그랬나? 숙녀분이 오시는데 다과를 준비하지 않은 교양 없는 신사로 소문날까 겁나는데.”


“동료를 버리는 쓰레기로 소문나는 건 괜찮고?”


칼 같은 일침에 잠시나마 칼비티움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그래도 금방 평정심을 되찾는 걸 보면 그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뭔가 오해를 산 것 같군. 조용한 데서 대화 좀 하지 그래.”


“만약 날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각오해라. 움브라가 사라진다면 네놈도 그 자리를 부지할 수 없을 거다.”




파이니트가 움브라의 사활을 걸고 칼비티움과 마주한 지금 아메리고에서는 정식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 지지율 1 위를 달리던 대통령 권한 대행 앤드류 머레이는 전임자의 부정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여성 우월주의 진영과의 결별을 선포했다. 때문에 여당의 지지 기반이던 여성표가 상당수 이탈했고 경쟁자인 사우르 안디오와의 격차가 좁혀졌다. 거기다 사우르 캠프가 이민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이민자 계층의 사랑을 받는 싱 와튼까지 합류하자 일부 언론에서는 지지율이 역전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팔리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다른 국가와 달리 아메리고 임시 정부는 리다이트 민족이 주동 세력임을 즉각 공표했다. 사우르 안디오가 리다이트 혈통이기에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아메리고가 다시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며 불안감을 부추기기 위함이었다. 설사 개입하지 않더라도 팔리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도적 테러를 선전했다. 또한 장성 출신인 앤드류 머레이가 안보를 지킬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서로 치열한 여론전을 벌이는 와중에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최종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조금씩 선거일이 다가왔다. 불안해진 앤드류는 지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늘은 지인의 소개로 어떤 남자를 소개 받게 되었다. 절도 있는 노크 소리가 들린 직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상당히 통통했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바른 아메리고 협회의 협회장 피기 스톤스라고 합니다.”


악수로 피기를 맞이한 앤드류는 농담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반갑네. 빌리의 말대로 풍채가 아주 좋군. 군인이라 해도 믿겠어.”


“아쉽게도 예체능에는 재능이 없는 편입니다.”


“노래를 잘 부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하하.”


비서가 커피를 내오자 두 남자는 소파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사실 난 스톤스 협회장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


“솔직하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신뢰가 갑니다.”


“그 편이 서로에게 낫다고 판단했네. 전쟁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보니 병력 확보에 지장을 준 그대를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여성 우월주의에 찌들었던 전 정부에 선 각하를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 사우르 안디오와 싱 와튼이 여성 우월주의자들과 손을 잡았으니 말이야.”


“동감입니다. 어쩌면 그 세력에 밀려 정권을 잃었던 싱 와튼이니 오히려 겁을 먹은 게 아닐까 합니다. 심지어 피 메이라까지 직접 섭외했다는 소문도 돌고요.”


“하, 그 여자는 참······”


앤드류의 깊은 한숨을 본 피기는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아 반가웠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피기는 이미 수많은 기득권자들에게 배신 당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그를 확고히 믿고 지지해 준 건 빌리 앙뿐이다. 물론 빌리 회장 역시도 이데아 정보국에 놀아나 피기를 이용했지만 말이다. 이를 모르는 피기 스톤스는 빌리를 자신의 은인으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빌리는 스톤스 협회장이 젊은 나이에도 정치판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묻고 싶네. 어떻게 하면 내가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나?”


잠시 고민하던 피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보에서 사퇴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26화 24.01.08 9 0 10쪽
25 25화 24.01.01 11 0 10쪽
24 24화 23.12.25 10 0 12쪽
23 23화 23.12.18 9 0 11쪽
22 22화 23.12.11 11 0 12쪽
» 21화 23.12.04 9 0 10쪽
20 20화 23.11.28 10 0 11쪽
19 19화 23.11.14 10 0 10쪽
18 18화 23.11.06 7 0 11쪽
17 17화 23.10.30 12 0 11쪽
16 16화 23.10.23 8 0 10쪽
15 15화 23.10.16 11 0 12쪽
14 14화 23.10.09 9 0 12쪽
13 13화 23.10.02 12 1 10쪽
12 12화 23.09.25 11 0 9쪽
11 11화 23.09.18 10 1 13쪽
10 10화 23.09.11 11 0 11쪽
9 9화 23.09.06 11 0 12쪽
8 8화 23.08.28 13 0 15쪽
7 7화 23.08.21 11 0 13쪽
6 6화 23.08.14 12 0 11쪽
5 5화 23.08.07 12 0 11쪽
4 4화 23.07.31 12 1 11쪽
3 3화 23.07.24 15 1 13쪽
2 2화 23.07.17 17 1 12쪽
1 1화 23.07.10 39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