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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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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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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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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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DUMMY

사우르 안디오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의 스캔들에 대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지지율은 다시 엇비슷한 격차로 돌아왔고, 결국 끝까지 가 봐야 결과를 알 만한 상황이 되자 캠프에서는 굳이 청년 보좌관을 채용해야 하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앤드류 머레이는 측근들의 우려에도 추세를 지켜보기로 했다.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다는 것도 있고, 사법부는 상대측이 장악한 상태지만 검찰 쪽은 걱정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결단을 내리자마자 예상치 못한 소식이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검찰은 금일 정오 대마초 재배 및 유통 혐의로 체포된 밴드 써킹 아메리고의 보컬 롤링 초콜릿 보이스 씨의 자금을 추적한 결과 일부가 올바른 아메리고 협회에 흘러든 정황을 포착했음을 밝혔습니다. 당시 협회장인 피기 스톤스 씨는 현재 앤드류 머레이 대통령 후보의 캠프에서···”


“이런 제기랄!”


앤드류가 집어던진 리모컨은 브라운관을 깨부수었다. 옆에 앉아 있는 랄프 호긴스는 심각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분노한 앤드류를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내 졸리 머레이밖에 없기에 말리지는 않았다. 한동안 고함을 지르며 집기를 던지던 앤드류는 손에 잡히는 게 없어지자 행동을 멈추었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괜찮을 리가 있겠어?!”


“어쩌겠습니까? 배경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영입한 저희 잘못인 것을.”


“이 새끼가···”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내가 언급되자 바로 입을 다무는 앤드류다.


“일단 그 돼지의 처리가 먼저 아니겠습니까?”



“랄프, 자네가 옳아.”


쓰러지듯 소파에 주저앉은 앤드류는 잔에 술을 채웠다. 그는 독한 술을 한입에 들이키고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일단 윤리위를 열자고.”


“선거가 코앞인데 윤리 위원회를 열면 반발이 크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걸 걱정했지만 이제 상관없어. 피기 스톤스가 쌓은 업보가 있잖은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군에서만 지냈으니 별 수 있나. 나도 군 생활을 함께한 모두에게 자리를 주고 싶어. 하지만 그대들은 정치를 배울 필요가 있어. 그래서 랄프, 자네보고 캠프에 들어오라 한 거고.”


“이해했습니다.”


“정식으로 윤리위를 열고 징계 절차를 밟아. 우리가 얼마나 국민의 눈을 두려워하는지 보여 주자고.”


“알겠습니다.”


“두려워하는 척만 하면 돼. 어차피 지금은 열이 올라서 시끄럽지만 조금만 지나면 바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멍청이들이니.”




상관의 지시에 따라 랄프 호긴스는 윤리 위원회를 소집했다. 사실 그는 걱정이 많았다. 이런 일이 생기면 캠프에서 내보내고 조용히 마무리짓는 게 보통이다.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정치판인 만큼 갈등을 빚지 않으려는 일종의 관례인 셈이다.


국민이 보기에는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권력자는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지금 같은 선거철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랄프의 걱정과 달리 윤리 위원들은 소집에 바로 응했다. 앤드류의 말처럼 피기 스톤스는 기득권층의 콧털을 건드렸다. 그들의 자식들이 정치판에 올라올 사다리를 없애려고 했다. 때문에 윤리 위원회는 다음 날 아침 바로 개최되었다. 피기 스톤스는 일주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으며, 이는 방어권 침해라고 항의했지만 통하지 않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서류를 준비한 피기는 윤리위가 열린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가 앉은 자리 건너편에는 윤리 위원장 루치아노 바렐라가 앉아 있다. 루치아노는 시계를 보더니 의사봉을 두 번 두드렸다.


“오전 9시가 되었습니다. 관계자 외에는 모두 나가시고 문을 잠그세요. 지금부터 윤리 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금일 안건은 중범죄자로부터 자금을 받은 피기 스톤스 성평등 위원장에 대한 징계 심의입니다.”


“이의가 있습니다, 위원장님. 롤링 초콜릿 보이스 피고인은 아직 유죄를 선고···”


“시끄럽습니다. 발언은 허락받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발언하고 싶습니다.”


“윤리 위원들의 의견부터 듣겠습니다.”


루치아노는 피기의 말을 무시하며 옆에 앉은 위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행태에 울화가 치미는 피기 스톤스다. 누가 봐도 자신의 아들을 불합격시킨 것에 대한 앙갚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피기의 편이 아무도 없다. 위원들은 하나같이 징계가 합당함을 주장했다.


“현장에서 마약 재배가 걸렸으면 확실하지. 내가 검사로 일한 짬밥이 있잖아. 무조건 유죄야, 유죄. 그럼 스톤스 씨의 협회에 유입된 자금도 불법이란 소리지.”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거기에 검은돈을 세탁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죠. 검찰도 그렇게 생각하고 조사 중일 거고요. 스톤스 선생님, 미안하지만 저 판사로만 20 년 일하다가 배지 달았어요. 어떤 판결이 나올지는 대충 예상이 가요. 알겠어요?”


법조인들의 지적에 피기는 잠시 멈칫했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할 말이 있다. 애초에 롤링 초콜릿 보이스에게 받은 후원금은 그리 많지도 않다. 물론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큰 액수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돈세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수치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피기는 준비한 장부를 꺼냈지만 이미 다음 위원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그 딴따라 문제아로 아주 유명하더만. 스톤스 위원장은 그런 사람이랑 엮인 것부터가 문제야. 우리 캠프의 이미지를 깎아 먹었어!”


딴따라라는 차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이미지를 언급하는 위원에게 한마디하고 싶은 피기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위원까지 순서가 돌자 징계를 받는 것이 만장일치로 정해졌다.


“이제 징계 수위를 논의할 차례입니다.”


“위원장님, 그래도 스톤스 선생의 발언도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까 판사 출신이라고 말한 위원이 의견을 내자 루치아노는 뱀눈을 떴다. 두려웠는지 위원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후, 좋습니다. 말해 보세요, 피기 스톤스. 대신 1 분, 딱 1 분입니다.”


“너무 짧습니다.”


“자, 지금부터 1 분 시작하겠습니다.”


“하······ 일단 먼저 롤링 초콜릿 보이스가 후원한 당해 연도의 장부를 제출하겠습니다. 그의 기부금은 만 아메로 돈세탁을 하기에는 불가능한 금액입니다.”


“흠, 지금 말이 사실이면 협회와 연관 짓는 건 섣부른데.”


“그러게요.”


법조인 출신 위원들이 태도를 바꾸자 피기는 다소 안심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또한 그 남자와 만난 적은 한 번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회의장에 오기 전에 찾아보니 위원장께서는 주지사 시절 그와 수차례···”


“1 분 지났습니다. 징계 수위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의사봉을 세게 두드리며 피기의 말을 끊은 루치아노는 주제를 바꾸었다. 싸늘한 공기에 위원들은 고개만 끄덕였다.


윤리위는 결과를 정해 놓고 한다는 말이 있다. 위원들 역시 지인의 부탁도 있고, 서로 상의도 한 결과 징계를 받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루치아노의 적개심은 상상 이상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갔다.


그 결과 피기 스톤스의 징계는 캠프 내 모든 직위 박탈 및 당원권 정지로 간추려졌다. 피기는 발언권과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 그나마 양심적인 위원들이 안타깝게 보는 게 전부였다.


마침내 위원장이 징계를 가결하기 위해 의사봉을 쥔 순간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랄프 호긴스가 들어왔다.


“회의 중이니 나가 주시게, 랄프 호긴스.”


“알고 왔으니 듣기나 하시지, 루치아노 바렐라.”


헛기침을 한 랄프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펴고는 크게 외쳤다.


“에··· 윤리 위원회의 회의는 선거 이후에 재개한다. 이는 헌법에서 말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름이며,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시선에 맞추기 위함이다. 대신 피기 스톤스의 모든 활동은 제한한다. 앤드류 머레이 대통령 후보.”


할 일을 마친 랄프는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며 회의실을 나갔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위원들은 결국 다음에 모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일단락했다. 아무리 루치아노가 주지사 출신에 위원장이라고 한들 당권을 쥐락펴락하는 앤드류에게는 안되니 말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피기 스톤스는 서둘러 펜을 쥐었다. 자신의 역할은 끝났지만 청년 보좌관까지 중단된 건 아니다. 오늘 중으로 최종안을 완성해서 인수인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피기가 손을 바삐 움직이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연 사람은 루치아노 바렐라였다.


“바쁘니까 나가 주세요.”


“젊은 놈이 말버릇 좀 보게. 그나저나 사무실이 참 더럽군. 돼지한테 어울리는 돼지우리야.”


“알아서 잘 정리하겠습니다.”


불쾌한 대답이지만 루치아노는 화내지 않았다. 윤리 위원회에서는 당의 기강을 잡는다는 명분이 있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걸 누군가 본다면 그간 쌓은 이미지가 무너진다. 그렇기에 루치아노는 억지로 웃었다.


“자네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군가?”


“자민 프랑크, 아메리고의 대들보입니다.”


“흔한 대답이군.”


“그만큼 누구나 인정하는 대통령이니까요.”


“틀에 박힌 대답밖에 못하나?”


“평범하게 하면 틀에 박힌다 하고, 창의적으로 하면 눈에 띄고 싶냐 하고. 그렇게 젊은이들을 쥐잡듯이 하고 싶습니까, 그쪽 세대는?”


순간 화가 오른 루치아노지만 차마 반박은 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들도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힌 후 대화를 계속했다.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은 누군가?”


“지금 눈앞에 있다고 말해도 됩니까?”


“대단하다 해야 할지, 어리석다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은 누구인가?”


“눈앞의 사람은 아니군요. 대통령이 될 그릇은 아니니.”


루치아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피기는 신경쓰지 않았다.


“노아 하노프.”


“어째서지? 사상이 반대쪽이라지만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아닌가?”


“인간미가 있으면 뭐 합니까? 실상은 국익을 버리고 자기 이미지만 챙긴 쓰레기인데.”


피기의 대답을 들은 루치아노는 갑자기 미친듯이 웃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피기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자네에게 충고하지. 여기서 하루라도 빨리 발을 떼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제가 두렵습니까?”


“아니, 우스워서 그래.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애송이가 날뛰고 있으니.”


“무슨 의미입니까?”


“정치는 정책을 세우고 나라를 운영하는 게 다가 아니야. 그걸 하려면 사람들, 행정 각료과 국회 의원 같은 정치인들을 움직여야 하고, 아랫것들도 조종할 수 있어야 하지.”


“국민보고 아랫것들이라니······ 그리고 누가 그걸 모릅니까?”


“자네는 모르고 있잖은가? 그 모든 걸 가능케 하는 게 이미지야. 결국 정치는 이미지 싸움이라고. 아무리 뛰어나도 누가 알아 주지 않으면 쓸모없어. 양심적으로 정치를 한다는 건 헛소리지. 이익을 쥐어 주지 않으면 주변에 인간이 모일 것 같아? 당에서 밀어 주고 법안을 상정해 줄 것 같아? 올바른 정책을 내놓아도 밉상이면 아랫것들이 말을 듣겠어? 국민의 반절인 여자가 싫어하는 그쪽 뜻대로 뭐가 되겠냐고!”


“정치인들이 그러니까 아메리고가 썩어 버린 겁니다. 애초에 전 여자를 싫어하지 않고, 여자라고 절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남을 헐뜯는 혐오자나 그렇게 생각하죠.”


“사실은 중요치 않아. 대중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끝인 거지. 자네가 쇼밖에 안 했다고 하는 이들은 정치를 못한 게 아니야. 이미지 하나만으로 대통령에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부터 미련하기 짝이 없군!”


침을 튀기며 훈수를 둔 루치아노는 껄껄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회의실에서도 굳세던 피기의 눈동자를 뒤흔든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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