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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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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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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77)

DUMMY

Episode 76 - 파스티비아 가문



두 번째 지구 - 아펠리온.

파스티비아 가문의 성역 - 보랏빛 은하.


하얀 망토를 몸에 두른 붉은 머리의 남성이 복도를 거닐고 있다.

그는 손에 들려있는 서류 더미를 넘기며 눈알을 굴렸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리스트야?"

남자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그저 단조로운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무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맑은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은 고개를 약간 앞으로 빼며 말했다.

"아 방주님, 로이엔 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들어와.

안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이엔은 조심히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책장과 함께 작은 조각상들이 즐비어 놓여있는 예술적인 방이 등장했다.


보라색 머리를 지닌 여성이 동그란 안경을 만지작 거리며 서 있었다.

로이엔은 즉시 머리를 조아려 인사했다.

"평안하셨습니까? 보고 절차 때문에 왔습니다."


보라색 머리의 여성은 피식 웃으며 로이엔에게 미소를 선사했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파스티비아 가문의 남쪽 방주.

셰리 파스티비아.


그녀는 로이엔에게 다가가 그의 고개를 강제로 들췄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는데 평안이라니요, 그런 인사말도 웃기긴 하네요."

로이엔이 동공을 아래로 떨궜다.

"죄송합니다."


셰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죠. 그보다도....."

그녀는 방 중심에 위치한 원형 테이블에 앉아 차를 음미했다.

"보고할 게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한번 볼까요?"


"아, 그게....."

로이엔이 들고 있던 서류를 셰리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방주님께서 뽑으라고 지시하셨던 후보 리스트입니다, 최대한 가능성 있는 인원들로 착출하긴 했는데 아직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아서요."


셰리가 로이엔의 서류를 받아들며 천천히 살폈다.

한 페이지당 하나의 얼굴과 함께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다양한 인종들의 인류가 상세 설명과 함께 자신들의 얼굴을 뽐내고 있었다.


셰리는 리스트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흠, 아직까지는 확실히 부족하네요. 물론, 조사 기간이 짧아 이 정도인 것은 이해하지만 더욱 분발해야겠어요."

그녀의 말에 로이엔이 눈을 감았다.


"면목 없습니다, 더욱 확실한 이들로 선별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당신 입장에서도 이게 최선이었겠죠. 그래봤자 이틀에서 삼일 가량 말고는 시간이 없었으니 이해는 합니다."

셰리는 로이엔에게 서류를 건넸다.


"가주님에게 보고는 드렸나요?"

그녀는 다시 한번 홍차를 마시며 말했다.

로이엔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제 눈으로 보더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보고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셰리는 안심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했어요, 제가 볼 땐 가주님이 이 리스트를 보시면 날뛸 것이 분명해요. 뒷수습은 제가 할테니 당신은 다시 조사에 임하도록 하세요."

"아, 알겠습니ㄷ......"


- 뭘 다시 조사하라는 거야?

밤을 비추는 창문 쪽에서 선선한 바람과 함께 보라색의 계수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보랏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아리따운 여성이 등장했다.

셰리와 로이엔은 잠시 동안 벙찌더니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곧장 무릎을 꿇었다.


"로, 로이엔 파스티비아가 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남쪽 방주, 셰리 파스티비아가 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두 사람은 최대한의 격식을 보인 후 눈앞의 가주를 맞이했다.


세계 8대 귀족 가문 파스티비아 가의 가주.

제인 파스티비아.


둘은 갑작스레 등장한 가주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로이엔은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뭐, 뭐지? 가주님이 갑자기 어째서 여기에? 아니 그것보다.....'


그는 눈을 살짝 들어 제인의 옷무새를 응시했다.

'저런 옷차림으로 이곳에 오시다니.....!'

그녀는 분홍색으로 물든 잠옷 차림과 함께 하얀 배게를 쥐고 있었다.


"하암, 오늘 하루가 좀 피곤하네."

제인은 태연하게 하품을 한 후, 눈물 방울을 떨어트렸다.

파란색의 동공과 함께 길게 기른 손톱은 거의 뱀파이어 수준이었다.


창문에서 발을 떼어 서서히 몸을 흘려 셰리의 방으로 들어오는 제인.

그녀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아직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아? 너희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빨랑빨랑 고개 들어!"

""네, 넵!!""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셰리야 방주의 위치에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로이엔은 가주의 실물을 처음 본다.

'부, 분명히 겉모습은 스무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인데....., 왜 이렇게 위압감이 드는 거지?'


가주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어서 그런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이 들었다.

하긴, 그것은 당연지사였다.

제인은 로이엔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지었다.


"아, 그 정도야? 내가 조금 어려보이긴 하지!"

로이엔의 심장이 덜컹했다.

'드, 들렸던 건가.....?!'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로이엔의 입이 저절로 벌려졌다.


제인은 뒷짐을 지며 로이엔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응? 당연히 들리지! 너,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로이엔은 기겁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귀족 가문의 가주라 해도 상대의 생각까지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로이엔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며, 면목 없습니다! 저 로이엔 파스티비아, 가주님을 향해 몹쓸 생각을 한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제인은 그 말을 듣고는 폭소했다.


"푸, 푸하하하하!! 야, 너 왜 그래? 내가 너 잡아먹기라도 하니? 왜 그렇게 주눅들어 있어?"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로이엔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ㄴ, 네?"


제인은 오른손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야, 괜찮아. 어차피 나를 본 모든 사람들은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중앙에 위치한 원형 테이블에 다가갔다.


로이엔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한 반응이 이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인은 손을 휘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이, 어이! 됐고, 이제 그만 일어나는 게 어때? 네가 그러고 있으면 내가 마음 놓고 차를 마실 수 없다고."


가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이엔이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그녀는 셰리가 차려놓은 향긋한 홍차를 가만히 응시했다.


셰리는 곧바로 눈치챘는지 서랍장 위에 올려진 뜨거운 병을 들었다.

"호, 홍차 여기 있습니다, 가주님."

"오, 좋은데? 사실 요즈음 쓴 음료만 마셨더니 이런 것도 마시고 싶어져서."


제인은 테이블 오른쪽에 놓인 잔을 들었다.

주황빛의 액체가 병에서 흘러나와 잔에 스며들었다.

말끔하고 감미로운 냄새에 제인이 홍조빛 얼굴을 드러냈다.

"캬아아아, 이거지!! 그래, 이거야! 이런 걸 원했다고!!"


그녀는 가득 채워진 잔을 코 끝에 대며 향을 맡다가 입으로 내렸다.

목을 타고 들어가는 진한 홍차의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셰리의 입장에서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지옥과도 같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주가 자신의 방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다니.

이런 황당한 상황이 또 어디있을까.

오랜 정적이 흘렀다.

그 시간이 로이엔과 셰리에게는 영겁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기나긴 침묵 끝에 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음? 왜 그렇게 얼어붙어 있어? 어서 자리에 앉아."

제인은 테이블을 손으로 툭툭 치며 신호를 보냈다.

"아, 알겠습니다."

평소에는 절대 더듬거리지 않았던 그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제대로 된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또 흐른 후, 제인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아, 진짜! 왜 자꾸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거야! 너네 뭐 죄인이라도 돼?!"

어찌나 속이 터졌으면 자신이 직접 그런 말을 했을까.


얼어있던 셰리가 먼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웃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경솔했습니다. 가주님이 몸소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 주시니 제가 다 기쁜걸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었지만 제인은 장난감을 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정말?! 그렇지!!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왠만해서는 내 방에서 나오지 않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밖으로 나가고 싶더라고!"

"활기차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로이엔의 말에 제인은 손뼉을 쳤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거든, 그나저나."

제인은 로이엔이 쥐고 있는 서류를 보며 물었다.

"이건 뭐야?"

로이엔은 당황한 듯 눈알을 굴리다가 가주에게 서류를 건넸다.


"이건 이번에 새로 저희가 착출할 인원의 리스트입니다."

"아, '학방'에 추천할?"

로이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리스트가 아니기에 검수차 방주님의 방을 들렸었습니다."


제인이 중얼거렸다.

"흠, 그렇구만....."

그녀는 종이를 앞 뒤로 넘기며 리스트에 적힌 인원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로이엔은 아랫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하필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가주님의 손에 들어가다니. 이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걱정 마, 이 리스트가 최종본이 아닌 건 나도 감안하고 보는 거니까."


"아!"

생각이 전달된다는 사실을 깊이 망각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무릎에 두 손을 얹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또 이상한 생각을....."

"그게 왜 이상한 생각이야? 나 같아도 그렇게 생각할 거 같은데. 내 앞에서는 너무 그렇게 얼어붙지 않고 편하게 있어도 돼."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하게 있으라 말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후, 제인이 리스트 중반부를 넘겼다.

"흠, 기댓값이 높은 이들은 많은데 막상 착출하자니 조금은 미숙한 부분들이 있네."


원래 최종 리스트는 지금까지 1차 선별한 인원들 속에서 거르고 걸러지는 소수만을 뽑을 생각이었으니 제인의 그런 반응도 당연했다.

"아, 리스트 다시 주십시오. 제가 이 중에서 괜찮은 인원을 다시 뽑겠습니다."


"그래, 그래야겠다."

제인이 리스트를 건넸지만 로이엔이 긴장하였는지 받지 못했다.

"아!"

바닥으로 떨어진 서류 더미를 향해 그는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잠깐."

제인의 말에 로이엔이 행동을 멈췄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있는 리스트를 주웠다.

"헤에?"

제인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한 인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슬쩍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낼름거린다.

"내가 선별해도 돼?"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로이엔은 동의했다.

"예, 그러셔도 됩니다."


"좋아, 그럼."

제인은 리스트를 테이블 위에 얹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두 사람은 꼭 학방에 넣어줘."


그녀는 가녀린 두 손으로 최정혁과 윤 설을 지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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