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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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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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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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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80)

DUMMY

Episode 79 - 선택



백조전대 생활관 AM. 01 : 29

밝은 달빛을 맞으며 침대 위에서 골아 떨어진 윤 설.

정혁은 자신의 자리에 누워 곰곰히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고민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백화람의 제안.


분명히 단점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응어리가 남는 기분이었다.

최정혁과 윤 설이 아닌 다른 누구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후, 마리 아프네.....'


정혁은 달빛에 비춰진 천장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렸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적호학사관에 전입된 자신과 윤 설의 모습.

강해진 자신의 이미지.


근육질 몸매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마력.

더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마법이 펼쳐졌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정혁은 창문 너머 밖을 잠시 쳐다보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바깥 공기나 조금 쐬러 가볼까?'

윤 설이 깨지 않게 생활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는 어두운 복도를 조심히 걸어 중앙 계단을 통해 1층으로 향했다.


전대 대원들의 코골이 소리가 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들어왔다.

중앙 출입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정혁은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후우, 좋다."

이런 적막한 세상 속에서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알아차렸다.


"서울 시내였다면 이런 말끔한 공기는 전혀 마실 수 없었겠지."

거의 산 정상쯤에 전대가 있다 보니, 시골과 같은 밤을 맛볼 수 있었다.

정혁은 외곽을 따라 밤길을 천천히 걸었다.


맑은 공기가 육체를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미궁의 퀘퀘한 공기를 마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이런 한적한 곳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걷고 있다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래였다면 이 망가진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라는 고민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그의 머리였는데.

지금은 온통 긍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다.


"흠, 그건 그렇고....."

정혁은 걸음을 멈춰 턱에 손을 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휘부대장님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도저히 모르겠네."


몇 시간을 계속 고민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까지 직면했다.

"밖에서 조금 걸으면서 생각하다 보면 정리가 되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나왔던 건데....."


-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거냐?

정혁의 귀에 목소리가 스쳤다.

그는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는 생활복을 입고 있는 하진명이 있었다.


"아, 지휘대장님!"

정혁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상급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여기는 어쩐 일로....."

진명은 손목에 찬 헬스 링을 보여주었다.


"아, 운동을......"

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명은 보여진 헬스 링을 소매 안으로 감추며 말했다.

"내가 밤산책을 좋아해서 말이야, 걷기 운동이 몸 건강에 좋다는 얘길 어렴풋이 들어서 보름 전부터 이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었지."


"아, 그렇군요."

진명은 정혁의 옆에 나란히 섰다.

"같이 걷겠나?"

그의 물음에 정혁이 밝은 표정으로 응답했다.

"네, 물론이죠."


솔직히 지휘대장처럼 높은 상급자가 하는 말을 어떻게 거역하겠는가.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미운털이 박히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둘은 외곽을 천천히 걸었다.

단 몇 분 동안은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이 있었고, 그 속에서 친밀감이 오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만남을 주고 받은 적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걷기에 바빴다.

'하, 하하, 진짜 너무 어색한데. 뭐라도 말을 걸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보통 이럴 때에는 하급자가 먼저 대화의 주제를 건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어느 누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정혁은 헛기침을 한번 내뱉고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진명이 먼저 선수를 쳤다.

"고맙네."


"ㄴ, 네?"

감사 인사가 들리자 정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진명의 얼굴 주름이 약간 눈에 들어왔다.

그는 정혁을 바라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의 공이 가장 컸어, 만약 최정혁 군이 아닌 다른 이를 데리고 갔다면 우리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네."

화람에 이어 하진명의 칭찬이 귀에 들어오자 오히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정혁이었다.


"물론."

진명이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윤 설 대원 또한 너무나도 많은 수고를 해주었지."

정혁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진명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는 비장한 눈빛을 내보였다.

"네?"

정혁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뭔가 불안한데.....'


진명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본론을 전했다.

"혹시 최정혁 군과 윤 설 양이 비어있는 2지휘대 지휘관 자리를 맡아줄 수 있겠나?"

아, 씨발.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들을 줄은 몰랐다.


가뜩이나 화람의 제안에 의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두 배로 통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

최정혁이 거절하는 의사를 보낸다면 의견을 철회할 수도 있으니.

대신 너무 직설적이면 안된다.


약간 흘리듯이 자신의 의견을 어필할 수 있게끔, 그렇지만 또 너무 거만해 보이지 않게 말해야 했다.

정혁은 동공을 키우며 당황한 척, 연기를 선보였다.

예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진명에게 들키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지휘대장님, 말씀은 너무 감사하지만 아시다시피 저와 설이 누나는 아직 전대에 들어온 지 한 달조차 되지 않은 신입입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너무 섣불리 결정하시는 게 아닌지......"


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의 신념은 정해진 듯 보였다.

무한 신뢰였다.

하긴, 정혁과 윤 설의 포텐셜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더 이상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명이 약간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주름이 달빛에 비춰졌지만 전혀 추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자네에게는 지금 힘이 있네. 미궁에서 보여준 그 엄청난 힘. 충분히 여기 존재하는 모든 지휘관들을 능가하는 수준이었어."


'내가? 그 정도였다고?'

솔직히 생각은 그렇게 해도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었다.

올로소와의 싸움이 손쉽게 흘러간 것만 해도 체감이 들었을 정도이니까.

물론, 화람과의 전투로 인해 치명상이라는 언밸런스를 가지고 전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긴 건 이긴 것이다.

고작 며칠 밖에 되지 않은 발현자가 차르카 올로소라는 거물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것은 놀랄만큼의 발전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혁은 아직까지 확신이 없었다.


"저에게는 단체를 인솔할 능력도, 카리스마도, 모든 부분에서 다른 분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믿게."

진명이 조금 목소리를 키웠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그의 형체는 선명했다.


"내가 자네와 윤 설 대원을 키워주겠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은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휘대장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이미 자네가 가지고 있는 각성은 나의 힘을 뛰어넘었어."


그 말이 정혁을 침묵하게 했다.

이러나 저러나 하진명은 발현자가 되어 전대의 소속이 된지 최소 20년은 넘은 베테랑이었다.

그런 이가, 자존심을 접고 발현자가 된지 얼마되지 않은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라니.


정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곧바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화람의 제안과 더불어 아직 윤 설은 이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로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는 꼭 답을 내겠습니다."


진명은 아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흠, 그래. 확실히 이런 제안은 곧바로 결정하기 힘든 법이지. 그럼 천천히 생각해본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아니, 천천히 생각할 시간은 없어요.


당장 내일 아침까지 결론을 내야 한다.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시간애서 4시간 남짓.

이런 중대한 결정을 어떻게 그런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정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명은 뒤를 돌아 손인사를 건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밤 보내길 바라네."

그의 나지막한 말에 정혁이 90도 인사를 건넸다.

"아, 푹 쉬십시오, 지휘대장님!"


철컥.

진명이 떠나가자 정혁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조졌다 진짜."

얼떨결에 화람과의 약속 시간을 맞춰 진명에게도 오전 중에 결론을 내겠다고 말은 했지만 대책이 서지 않았다.

정혁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손에 힘을 쥐었다.


'아, 어떡해야 하는 거지? 적호학사관 전입과 백조전대의 지휘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거냐고!!!'

잠자리가 편하지만은 않을 밤이었다.


------


다음 날 AM. 08 : 01


기상송과 함께 아침 눈이 떠졌다.

정혁은 밝게 빛나는 햇빛을 두 눈으로 받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새벽 늦게 잠을 청했다 보니 아직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아아암, 어제 저녁에 너무 늦게 자서 그런가? 아직도 피곤하네."


사실 그가 늦게 잔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새벽 산책을 다녀온 후, 두 시간 가량을 더 고민해 봤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 일단 설이 누나도 알아야 하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자.'


정혁은 눈을 돌려 아직 새우자세로 자고 있는 윤 설을 응시했다.

귀를 울리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는 그녀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하, 누나가 일어나면 뭐라고 말해야 하냐?'


30분 후.

정혁은 샤워를 끝내고 생활관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윤 설은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으으으으으으!!!"

괴로운 신음을 내며 그녀는 따갑게 비춰지는 햇빛을 정면으로 맞았다.


윤 설이 등을 돌려 정혁을 확인했다.

"아, 뭐야? 언제 일어났었어? 샤워하고 온거야?"

온갖 질문공세가 들이닥쳤다.

"아, 기상송 소리 울리자마자 바로 일어났어요. 누나는 귀신이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주무시던데."


윤 설은 정혁의 말에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문질렀다.

"야, 조금만 봐줘. 지난 며칠동안 많이 힘들었잖아. 그러니까 쉴때는 또 푹 쉬어줘야지."

어련하시겠습니까.


정혁은 샤워 바구니를 침대 아래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말할 때가 왔다.

아직까지 그녀는 스트레칭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누나."

"응?"


윤 설은 곧바로 정혁에게 시선을 맞췄다.

"할 말이 있어요."

그녀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은 채로 정혁에게 물었다.

"뭔데?"


"그게 사실은 어제 새벽에 진명 대장님을 만났는데....."

정혁이 잠시 머뭇거리자 윤 설은 답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 왜? 뭘 말하려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지, 지휘관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아, 그래?"

윤 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정혁을 당혹스럽게 했던 건 그녀의 다음 말이었다.

"나도."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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