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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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최근연재일 :
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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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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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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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농민항쟁

DUMMY

"여러분, 우리 진주 백성들의 뜻은 하나하나 모두 소중합니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강하게 하든 유하게 하든 각자의 생각대로 노력하면 됩니다."


유 계춘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꽤 합당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말을 듣던 이 명윤과 노 상추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러니, 저 사람 말을 왜 안 따르겠나!

저렇게 백성들을 위한 마음이 가득해 보이는 데, 백성들이 보기엔 온전하게 순종할 만한 사람이지."


"아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명윤과 노 상추가 나설 짬도 없이 유 계춘의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모두가 다 한 뜻이 될 필요는 없소이다.

하지만 진주 관아의 목사와 아전, 그리고 전횡을 일삼던 양반들을 벌주는 일에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며칠 후 봉기 날짜를 정해서 각 고을 대표들에게 전달을 해 놓을 테니,

그때 함께 해 주면 될 것이오!

물론 수탈당했던 곡식을 되찾게 되면, 그 곳에서 있던 사람들이 알아서 나누어 가질 것이니

자리에 없던 사람들은 너무 섭섭하게 생각 하지는 말아 주시오!"


"오라는 말 보다 더 무섭구만!"


이 명윤이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참, 우리가 한 뜻이 되었다는 징표는 여기 이 흰 머릿수건으로 보여 줄 것이오!

지금부터 뜻을 함께 하고 싶은 이는 앞으로 나와서, 이 흰 수건을 받아서 가도록 하시오.

우리의 봉기가 있는 그날, 반드시 머리에 동여매고 와야 합니다!"


"좋소 좋소, 그 수건 나도 주시오!"


"내도 주이소!"


사람들이 앞 다투어 수건을 받아 가는 모습을 본 이 명윤이 발길을 돌렸다.


"나리, 그냥 가십니까?"


"이 곳에서는 우리가 나설 일이 없네.

이제 자네와 나 또 다른 양반들을 규합해서, 백성들보다 먼저 관아나 토호들에게 가서 미리 허리를 굽히라고 얘기하러 다녀야지."


"나리, 오리려 양반들 쪽이나 백성들 쪽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못 마땅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하지, 우리가 앞잡이처럼 보이지 않겠나! 허허."


모자란 사람인지 호기로운 사람인지, 참 애매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한 표정의 상추가 가만히 이 명윤을 들여다보았다.


"그래도 이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선, 우리가 나서야지."




****




흥선군의 노복이 '완위각' 안으로 들어온 후 주인장을 찾았다.

문규가 나서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그래, 무어 찾는 게 있는가?"


노복이 허리를 굽히며 문 밖을 연신 쳐다 본 후 말을 이었다.


"저 나리, 밖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김 주부가 의아한 듯 조금 열린 문 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짚더미로 가득 덮여진 손수레가 보이고, 한 사내가 수레 곁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희 나리께서, 밖에서 기다리십니다요."


"무어, 우리를? 아는 사이인가?"


"아마도, 그러하실 겁니다요."


수레 앞에서 한동안 어색하게 어슬렁거리던 흥선군이, 문 앞으로 나오는 문규와 김 유천을 발견하자

얼른 다가가서 그들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무슨 일입니까 흥선군 나리"


문규가 놀라지도 않고, 나름대로 애써 변장한 흥선군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나를 알아보겠소?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소?"


김 유천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흥선군 나리, 말 수염은 왜 갖다 붙이셨습니까, 쫓기는 중이십니까?"


"아, 그건 차차 얘기해 드리리다. 사실 이걸 몰래 가지고는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믿고 도움을 청할 곳은 이 곳밖에 없는 듯해서 말이오."


"무슨 말입니까. 흥선군 나리?"


흥선군이 사뭇 비장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문규와 유천을 바라본 후, 손끝으로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했다.


홀리듯이 흥선군의 손끝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수레에 가까이 다가선 흥선군이 수레위로 덮인 짚더미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렸다.


"'비격진천뢰'가 아닙니까!"


"그렇소."


탄성을 기대했던 흥선군이 풀이 죽었다.

이런 대단한 무기를 가져왔는데, 이 사람들은 전혀 놀라거나 신기한 기색을 띠지 않았다.


"자자, 저 쪽으로 좀 갑시다!"


조심스럽게 짚풀을 덮고 노복에게 잘 지키라고 당부한 후, 흥선군이 문규와 유천을 다시 잡아끌었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완위각의 구석진 담벼락 밑쪽으로 데리고 가서, 이들의 등을 눌러 자리에 함께 쭈그리고 앉았다.


"이걸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살펴 볼 수 있겠소?"


흥선군이 조그마한 소리로 물었다.


"보아하니 관군의 물건인 것 같은데, 어찌 이 곳에 와서 이런 이야길 하십니까?"


문규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보시오. 나도 내 목숨이 귀한데,

내가 이 곳에 올 땐, 알 만 한 건 좀 알고 왔다는 말이 아니겠소.

그러니 다른 말은 두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문규와 유천의 표정에 차가운 기운이 스물 올라붙기 시작했다.


"또, 공륭이 입니까?"


"대전내관 홍 공륭 말이오? 그 자가 왜요?"


"그럼 어찌 알고 이런 일을 우리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까!"


"아, 내가 눈썰미가 원래 좀 있는 사람이오.

상갓집 개라는 소리를 한동안 듣다보니, 정말 개처럼 냄새도 잘 맡아지고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잘 보이고 하더이다.

내가 주상전하께서 이 곳으로 왔다 갔다 하시는 걸 눈여겨 보다보니, 대충 알 것 같지 않겠소!

전하도 믿으시는 곳이고 하니, 나도 의심 없이 들른 것이오.

그보다 얼른 준비부터 해야 하오!"


"무슨 준비 말입니까?"


주변으로 몇 번 목을 돌려대던 흥선군의 눈매가 한층 더 작아지고 날카롭게 변한 후, 야무진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소. 늦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지."


"...?"


"그리고 나와 어디를 좀 가줘야겠소!"


"...?"




****




삼남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항쟁이, 이월 십사일 진주부근의 작은 고을 단성에서 시작되었다.

농민항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재빨리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목적을 향한 농민들의 항쟁이 빠르게 번져가고 있었다.


이월, 날씨는 차가왔지만 흰 머리 수건을 둘러매고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나온 농민들의 열기 앞에

추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군(樵軍)과 농민들이 합세한 무리는, 노래를 부르며 수곡장과 덕산장을 휩쓸고 진주성으로 쳐들어갔다.


육일간이나 이어진 그들의 분노는 악질 아전 몇 명을 불태워 죽이고, 농민들을 못살게 굴었던 토호들의 집을 때려 부수거나 불태우며 약탈을 이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농민들은 진주목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고, 다급한 상황에 이르러 그 소식은 조정안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편전 안으로 모여든 대신들의 낯빛이 어둡고 저마다 입술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입니까? 폭동 이라구요?"


"그렇다니까요. 글쎄!

지금 까지는 어쩌다 한 곳에서 소란이 일어나기는 했어도, 이런 일은 처음 이지요.

이 지역 저 지역 가리지 않고, 줄줄이 이어지고 있대요. 글쎄!"


"한양까지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돈 많은 양반들을 가만두지 않는다고들 하던데, 집 식구들부터 피난 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거 참 말셉니다 말세요. 한낱 농민이 양반을 해하다뇨!"


"누가 아니랍니까! 허허 참."


"주상전하 납시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임금이 편전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만 한 치 아래로 숙인 대신들의 눈초리는 여전히 정신 사납게 요동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모두 낯빛이 어두워 보입니다!"


능청스런 임금의 말투였다.


"전하, 지금 진주를 시작으로 해서 전국의 농민들이 양반들과 관아를 습격하고, 그 행패가 극에 도달하였다고 하옵니다!"


"저런, 어쩌면 백성들이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으니, 그들이 먼저 살기위해 나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겠소!"


"전하! 이 무슨 말씀 이시 온지!

지금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 세 명의 아전과 그 아들까지 한명을 살해하고, 백 이십여 호의 양반가들의 집과 관아까지 파괴하고 약탈을 일삼고 있다고 하옵니다."


"도대체 그들이 농민들의 것을 얼마나 빼앗고 힘들게 하였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된다는 말입니까!

쥐도 몰리면 이빨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정에서는 안핵사를 보내어 사태를 수습하고 선무사를 보내어 민심을 어루만지고 안정시키도록 하세요."


하지만 임금의 말에 조정 안은 더 술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전하, 지금의 난을 일으킨 지역의 백성들은 이미 어리석거나 순박한 이들이 아니옵니다.

잠자던 관아의 수령까지 불시에 쳐들어가, 이 추운 엄동설한에 고을 밖으로 내쫒은 극악무도한 자들입니다."


원범의 말에 분개한 듯 대신들은 저마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하옵니다.

해를 입을 것이 뻔한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 어찌 몇 명의 안핵사와 선무사를 보내려 하시옵니까!

군사를 보내어 먼저 사태를 진정시켜야 하옵니다."


"맞사옵니다.

이미 잘못을 많이 한 자를 추려 잡아 들인후, 강상의 죄를 물으셔 야 하옵니다!"


한 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고만 있던 영의정 김 좌근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하, 조선의 백성들은 순박하고 어리석기만 하옵니다.

단지 재해와 역병에 시달리느라 먹고 사는데 지친 백성들을 선동한 몇몇 무리들이, 이런 포악한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황당한 꿈을 꾸게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을 먼저 잡아들이셔야, 백성들이 자신들을 이끈 자들의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아, 그런 자들이 있었단 말입니까?"


조정 안이 또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이 어찌 이리 가당찮은 일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맞아요. 일개 농민들의 조직력이나 체계적인 흐름을 보아하니, 분명 이들을 이끈 주모자가 있었던 탓입니다.

세상을 어지럽게 해서 이 조선을 난관에 빠트리려고 하는, 그런 역당 같은 놈들이 있었던 탓일 거예요."


원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당 같은 주모자가 있다는 말씀이오? 무슨 말이시오 영상?"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11.02 18:16
    No. 1

    1862년(철종 13)에 발생한 진주민란을 소설에 담았군요.
    몰락한 양반들이 주동자가 됐던 진주민란 이야기.......
    재밌게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1.02 21:09
    No. 2

    안녕하세요. kant91님~
    최근편에서 이렇게 또 뵙게 되니... 너무 반갑습니다..ㅎ
    작가님은 역시, 역사에 넘 해박하시고, 한줄평까지 항상 명쾌하세요.
    어색한 역사의 흐름은 만들지 않도록, 신경 바짝 써야 할 것 같아요.^^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밤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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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강화로 가시지요. 23.11.05 72 4 12쪽
111 오지랖이 넓었다. +2 23.11.04 77 5 12쪽
110 민란의 주동자. 노 상추 +2 23.11.03 74 5 12쪽
109 인삼뿌리 못받으셨어요! +2 23.11.02 75 6 12쪽
» 시작된 농민항쟁 +2 23.11.01 83 4 11쪽
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4 4 11쪽
104 엽전 헹굼 23.10.28 68 4 12쪽
103 나랏일만 생각할 것이다. 23.10.27 72 4 12쪽
102 출결장 23.10.26 82 4 11쪽
101 추노꾼잡는 귀신 23.10.25 87 4 12쪽
100 비밀 향회 23.10.24 77 5 12쪽
99 선대왕의 유산 23.10.23 83 5 11쪽
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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