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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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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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7.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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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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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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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로 가시지요.

DUMMY

한양의 '소의문' 으로 향할 즈음에는,

진주에서 부터 실려 온 몸뚱이는 이제 거의 고깃 덩이처럼 재워진 채, 생사가 벌써 뒤엉킨 모양이 되었다.

환청처럼 멀리서 울리던 말발굽소리가 점점 현실처럼 느껴질 쯤,


소달구지안의 양반들도 하나 둘 삐죽빼죽 고개를 치켜들고,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뭘 털어갈게 있다고,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드나... 몰려들기를..."


"이 몸뚱이라도 좀 훔쳐가 주면 좋겠구려. 허허!"


"... 때가 가까워지니, 그래도 죽기는 싫은가 보오. 최 참판."


"왜 아니겠소. 이렇게 죽고 해 봤자, 누가 알아주는 이들이나 있을까 ... 하는 미련은 남소이다.

그보다 내가 이렇게 죽고 나면, 자식들도 역적 아닌 역적 대우를 평생 당하며 살터인데.

그것이 한이 되어, 그러지요..."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지그시 묵혀 듣던 이 명윤도,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할 뿐이었다.


사납게 달리던 말발굽 소리가 잦아 들고, 어느새 그들의 주변으로 다가 온 이들이 이리떼처럼 검은 모습으로 눈알만 번뜩이며 둘러 서 있었다.


소달구지를 운반하던 관군들의 모습이 비장해 지는가 싶더니, 준비라도 해 온듯 이 한 사람이 던져주는 진검을 하나씩 이어받고 있었다.

이내 소달구지를 사이에 두고 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엎어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달구지를 이송하던 관졸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술 실력이 대단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대치는 생각보다 치열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졸들이 문제야? 도적놈들이 문제야? 뭐가 저렇게 다들 잘 싸운담미까?"


"글쎄 말이외다. 허허 참, 별난 일도 다 있소."


그리고 그때였다.



도적놈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수려하고 귀티 나는 한 놈이 여러 소달구지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혹시, 노 상추 어른이 계십니까! 노 상추 어른이 어디에 계시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이 명윤이 타고 있던 소달구지 안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석성산을 지날 때, 노 상추 그자가 이미 튀끼지 않았소! 얘기를 해 줘야 할까요?"


"모른척 하시오! 이왕 튀껴서 나갔으면, 부인하고 몰래 어디라도 가서 자유롭게 살도록 비밀로 해 줍시다!"


"그래요. 그래, 그게 낫겠소!"


"저 저, 저 사람이 이제 이 쪽으로 오지 않소, 자 다들 모른 척 하시오!"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온 원범이 이번 달구지 안에도 이리 저리 흩어본 후, 똑 같은 말을 잇고 있었다.


"노 상추 어른을 아시오? 진정, 이 곳에도 없다는 말입니까!"


거의 울먹임에 가까운 소리라는 것을, 그들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명윤이 이 다급한 청년의 용모를 요리조리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거 참, 희한하다! 나도 저 젊은이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틀림 없는데?"


"그래요? 그래도 조용하세요. 나리!"


달구지 안의 사람들이 입술을 깨물고 낮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보시오, 젊은이!"


결국은 이 명윤이 또 일을 치는가 했다.

주변의 선비들이 모두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소리 없이 이 명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거 참, 어이 어이, 나리... 나리."


곁에 앉은 최 참판이 내리 깔은 엄지발가락으로 꼬집어도 보았지만, 이 명윤에게는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이보시오... 혹시 우리...."


이 명윤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원범도 입이 쑥 들어가려는 순간에,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왠지, 면이 참 많소! 그런데, 노 상추 어른과는 무슨 사이시오?"


"제 사부님이 되십니다. 꼭 만나야 합니다. 알고 계십니까 어른?"


고개를 몇 번 갸웃 거리던 이 명윤이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찾지 마시오! 이미 갈 길을 간 것 같다오. 오다가 버려진 시신이 하나 둘이 아니외다.

노 상추란 자도, 어디쯤에서 부턴가 보이지 않습디다!"


그의 말을 듣던 원범이 무엇에라도 얻어맞은 듯, 무릎에서 힘이 빠지고 자리에서 주춤한 것 같았다.


"어 어.. 젊은이, 조심 하시게. 넘어지오."


누군가 챙겨주는 말이었다.


"너무 걱정 마시오 젊은이. 죽어서 나간 겐지 살아서 나간 겐지, 사실 알 수가 없소이다!"


소달구지를 꼬옥 붙잡고 서 있던 원범의 얼굴빛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리...! 매화...나리!"


그의 귓전으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또 다른 말발굽 소리와 함께, 거침없이 그를 불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공륭의 목소리였다.


"이름도 참 희한하오. 사내 이름이 매화요?"


소달구지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공륭의 의외의 등장에 원범이 걸음을 돌렸다.


아직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격전을 조심스럽게 피해가며, 용케 공륭은 그의 주군을 잘 찾아 낸 것 같았다.


"나리, 매화 나리. 급한 전갈이라 하여..."


그에게 다가온 원범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처럼 퀭하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요. 매화 나리?"


원범의 눈을 요리조리 살펴가며 공룡이 작은 목소리로 옹알거리고 있었다.


"아니다, 예까지 웬일인 게냐?"


"아 네,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거!"


"이게 뭣이냐?"


"나리께서 아침에 후원으로 나가시고 난 다음에, 곧바로 병판 김 병기 나리가 찾아 오셨습죠."


"그런데?"


"잘은 몰라도, 급한 서찰인 것 같습니다요.

매화 나리께 빨리 전해 드려야 한다고 하여서, 소신 아니 .. 소인 이렇게 말을 타고 급하게 달려왔습니다요!"


"그래, 어디보자!"


주변의 격전이 많이 신경이 쓰이는 듯, 검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공륭의 어깨도 함께 움찔움찔 거리고 있었다.


서찰을 꺼내어 든 원범의 표정이 환해졌다.


"공륭아, 빨리 말에 올라라!"


"네? 아 네. 나리!"


그와 함께 말에 올라 고삐를 당기려던 원범이, 뭔가 잊은 것이 있는 듯 소달구지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보시오. 지금 여기서 나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아하니, 그렇게 큰 죄를 지으신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소달구지의 안의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한 결 같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아니오!"


" ... ?"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역시나, 이 명윤 쪽이었다.

소달구지 안에서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도, 여지없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를 구하고 싶다면, 나라에서 먼저 사면서를 내리는 것이 우선인 것이오.

만약 그러하지 않은 채로 우리만 살아서 나간다면,

우리는 모두 도망자에다, 나라의 명을 거역한 대역죄인의 명목까지 더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오!"


웅성거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 그러면, 지금 남아 있는 식솔들은 어찌 되겠소.

우리 목숨을 댓가로 그들에게 오히려 더 가혹한 벌이 내려질 것이 뻔한 것 아니겠소.

나는 그냥, 내 목숨 하나로 모든 걸 마무리 짓겠소!"


"...맞네... 그렇긴 하겠어."


이 정도의 소리뿐이었다.


더 이상 웅성거림은 전혀 새어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내려 깔릴 뿐이었다.


"젊은 양반. 마음은 감사하나, 일의 순리가 아닌 것 같소!

그대도 더 복잡한 일에 얽히기 전에, 얼른 저들을 데리고 이 곳을 떠나시오.

어쩌면, 그대의 스승도 찾을 수가 있을 것이외다!"


그들이 하는 말은 ...

이 나라의 임금이 이 일이 잘못 된 것임을 알면서도 뭣하나 해주지 못하는 마음에, 채찍이라도 후려갈기는 듯하였다.


하지만 만약, 이 일이 김 좌근을 옥죄고 빨리 마무리 지어질 수만 있다면,

어쩌면 이들에게도 다른 결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원범에게 들었다.


"선비님들, 어쩌면 다른 결과도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희망을 가지고 조금만 더 견뎌 내십시요."


이미 체념이 배어 든 그들의 표정엔, 감정 없는 웃음기만 살며시 떠오르다 사라질 뿐이었다.


"고맙소, 젊은 양반. 어서 가시오!"


발걸음이 채 떨어지지 않는 그를, 딱하게 바라보던 공륭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매화 나리. 어쨌든 빨리 움직이셔야, 어떤 결과라도 바꾸지 않으시겠습니까!"


공륭이 같지 않은 속 깊은 소리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원범이 고개를 들어 힘껏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갑니다! 형님-!"


임금의 목소리가 격전사이를 뚫고 전해졌다.

이어 검 날을 하나 둘 거두어들인 무리들이 그들의 주군의 뒤를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다 실었소이까?"


새벽동이 터오는 즈음에 맞추어, 풍성한 짚 풀에 둘러싸인 상자들이 소달구지 안으로 가득가득 채워졌다.


"흥선군 대감, 완위각에 보존 되어있던 소 진천뢰도 함께 실었으니, 마차로 운반할 때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아범, 들었지. 조심해야 해!"


오늘도 그의 험난한 길을 살펴줄, 노복과 함께 나선 걸음이었다.

노복이 이끄는 소 달구지의 앞을 흥선군이 길을 살펴 나서고, 완위각의 식구들이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이월의 이른 새벽길은, 사람도 짐승도 시린 길 위로 그 모습을 보태지 않았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어둑어둑한 길 위로, 한 번씩 뿜어내는 늙은 소의 하얀 숨결을 위안삼아 묵묵한 이들의 행진은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광나루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사람의 그림자는 귀했다.


흥선군이 미리 통으로 잡아 둔 주막 안으로 들어 선후 국밥으로 온기를 채운 이들은, 순번을 정해가며 광나루를 지켜보기로 하고 따뜻한 방안에서 노근한 몸을 녹였다.


어제 밤 미리 날라다 놓은 대완구 한기와 중완구 두기를, 광나루를 향하도록 화포의 주둥이를 잡아놓고,

언제든 발포 할 수 있도록 비격진천뢰와 문규가 만든 소 비격진천뢰를 곁에 쌓아두었다.


광나루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주막 마당 앞에 선 흥선군의 눈매가 깊어지고 있었다.

어제 밤 김 병기를 찾아간 후, 그의 선택을 아직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김 병기는 그의 양아비와는 분명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고는 있었다.





어제 밤, 불어대던 찬바람은 온 몸을 베어 버릴 듯 옷 속까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쩐 일이시오. 흥선군!"


촛불의 흔들림이 그의 얼굴위에서 놀고 있었다.


"병판 나리도 이리 난치기를 즐기는지 몰랐소이다."


"난화 한 두 뿌리 그리지 않는 조선의 사대부가 어디 있겠소이까!

마음 없이 긋기에 좋아서 그러지, 그다지 즐기지는 않소이다."


"그렇군요."


흥선군 답지 않은 무거운 대답을 느낀 김 병기가, 붓을 놓고 그의 앞에 앉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야심한 밤이지 않소? 내게 다급한 일이라도 있으시오?"


"난 잎이 참으로 날카롭소이다. 화가 난 사람 같지 않소이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겠소!"


김 병기와 흥선군의 눈빛이 사납게 얽히기 시작했다.


"궁으로 가지 말고, 강화로 가시지요!"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은 채, 내뱉은 흥선군의 말이었다.


" ...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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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폭풍전야 23.11.06 63 4 12쪽
» 강화로 가시지요. 23.11.05 7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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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움트는 진주민란 23.10.31 70 3 12쪽
106 섭정왕 23.10.30 77 5 12쪽
105 졸(卒)의 길 +2 23.10.29 8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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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추노꾼잡는 귀신 23.10.25 87 4 12쪽
100 비밀 향회 23.10.24 77 5 12쪽
99 선대왕의 유산 23.10.23 82 5 11쪽
98 조총을 가져오게 23.10.22 9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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