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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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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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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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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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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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010529 모드니노프 가

DUMMY

다음날

17:30 모스토크과고 기숙사 앞


이제 두번째 사도를 처리해야 될 때가 왔는데, 난 주변의 쉬워보이는 곳부터 천천히 정리하기로 했다. 학교를 조금 벗어나서 조금 근처에 분명히 약한 파장이 하나 느껴졌었는데, 그 곳의 사도와 싸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파장이 되게 약하더라구! 그 정도 파장이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찰 개념으로 한번 갖다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낮중에 친구들에게 이 임무를 하러 가보자고 제안했다.


[B 야, 내일 기숙사로 가야되서 짐옮겨야 되는데, 오늘 싸울 거라고? 야, 내일 이사 안갈 거냐? 너?]


[N 싸우긴! 내가 언제 싸운다고 그랬어? 내일이 이삿날인데? 당연히 안 싸울거야! 그냥 사전 조사 개념으로 한번 가보는 거랄까?]


[V 사전.. 조사?]


[N 그래! 사전 조사! 우리들, 저번에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폭탄 맞고 도망가기 바빴었잖아! 첫날 우리가 그렇게 얻어터진 이유가 뭐겠어? 계획없이 막 싸워대서 그런 거잖아! 오늘 한번 들어가서 사도가 어떤 유형인지, 어떤 스타일의 공격을 하는지 어느정도 확인한 후 포탈을 나가자구. 그런 다음에 전략을 제대로 짜서 며칠 후에 다시 들어가면, 얼마나 싸우기 편하겠어? 안 그래?]


[B 좋은 생각이야. 우리들이 애도 아니고 전략 없이 싸울 순 없지. 이제야 좀 팀답게 굴러가네!]


다들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군말하는 애들이 없었다. 심지어 에르제마저. 그래서 우리들은 낮에 편한 복장을 한 채로 밖에 나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여관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보니, 게다가 파장이 쉽게 느껴지는 편이다보니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곧이어, 마당이 넓게 있고 말끔하게 지어진 3층짜리 고급 건물이 우리들 앞에 보였다. 파장의 근원지는 바로 여긴데.. 도대체 이렇게 이쁘고 세련된 건물에 무슨 나쁜 일이 생겼던 걸까?


[V 애들아, 이 집..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을 것 같은 집으론 정말 보이지 않는데?]


[N 야, 부사장님의 집도 나름 이쁘고 멋졌잖아! 집 외양만 보고 그걸 어떻게 판단해? 이런 멋진 건물안에서 수십명 목이 잘려 죽었을 지도 모르는 거야.]


[V 에이.. 설마!]


[E 보리스, 집 주인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B 아스말..모드니노프라는 사람의 집인데요? 근데 어째 이름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현관문 앞 명패를 읽어본 보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글쎄? 보리스와는 달리 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V 나틸리, 파장이 정말 이 집 안에서 느껴져?]


[N 응. 정확히 저 건물 안이야.]


[B 젠장.. 또 남의 집이야?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 낮엔 아무래도 절대 못들어갈 것 같은데?]


[N 그래.. 아무래도 밤에 들어가야겠어.]


[B 이거.. 밤에 들어가는 것도 전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N 아니야. 새벽엔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사람 별로 없어.. 없을 거야, 아마. 현관문만 빨리 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돼.]


[E 나틸리, 안타까운 말이지만.. 현관문이 마법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제 마법으로 열 수가 없을 거에요.]


[N 네? 그 비싼 마법잠금장치가 되어 있다구요? 망했다!]


[B 잘 사는 집처럼 보이더니 역시나.. 우리 완전 망했네? 건물 안은 커녕, 현관문도 못 열게 생겼잖아?]


[V 그럼 벽을 타고 올라가는 건 어때? 애들아?]


[N 거의 2층 높이까지 울타리를 쳐놓은 거 봐! 저 높이를 어떻게 올라가!]


[V 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N 그럼 너 혼자 올라가! 이 자식아!]


하아.. 쉬운 사건이라 생각해서 두번째로 고른 거였는데, 막상 와보니 전혀 쉬운 게 없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 데다가, 현관문부터 잠금장치를 해놔서 건물은 커녕 현관문도 열고 들어가기 힘들었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 막막한 마음에 주변을 열심히 바라본 나는, 하나의 물건에 눈길이 꽃혔다. 아.. 저 방법은 정말정말 싫은데!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 방법이란 건.. 바로 또 하수구 통로를 통해 저 마당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당 쪽에 하수구 뚜껑이 하나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애들이 정말 안좋아 할텐데..


[N 애들아.. 잘 봐? 저~기, 저 쪽에 말이야.. 바닥에 놓인 철제 원형 쟁반! 보이지?]


[V 응! 나틸리! 저기 동그란 거 하나 말하는 거지? 하수구 뚜껑인 것 같은데?]


[B ..젠장! 더럽게 또 하수구로 내려가자는 거야? 모스토크에 있는 동안 내내 하수구만 돌아다녀야 되는거야? 우리?]


[N 그럼 방법이 뭐가 있어! 방법이 있으면 아무나 말해봐! 나도 저 똥내나는 하수구로 들어가고 싶은 줄 알아?]


[B 젠장! 그래! 다른 방법이 없긴 하지! 아.. 이거 왠지 모스토크에서 사건 해결하는 내내 하수구를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


[N 재수없는 소리하지 마. 하수구 돌아다니는 건 딱 이번 사도까지야. 그 다음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수구엔 들어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 누가 대문 앞에 모여있는 거야? 어서 나가지 못해?]


갑자기 건물 현관문으로 풍채가 튼튼해 보이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작은 개를 들고 나오더니 철문을 열고 우리들을 귀엽게 째려보셨다. 두 친구들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바라보며 처리해달라고 눈빛으로 빌고 있었다. 이런 일은 어쩜 다 내가 처리해야 돼? 이 책임감 없는 자식들아?


난 첫인상이 반이라는 걸 사회생활하면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3년간 익힌 그 사람좋게 웃는 얼굴로 반갑게 어머님한테 인사를 드렸다.


[N 아.. 저희들은 관광객인데요, 어머님. 집이 너무 예뻐서 잠시 보고 있었어요. 집을 참 이쁘게 꾸미셨네요! 마당도 너무 멋져요!]


[? 아.. 그런 거였어요? 젊은이들? 난 또 문앞에서 장난치는 애들인줄 알고.. 어쩌다가 한번씩 못배운 어린애들이 벨을 누르고 도망가기도 하거든요.]


[V 헤헤, 어머님.. 저희들은 그런 장난 절대 안쳐요!]


[B 저희들 덩치를 보십시요, 여사님. 그런 유치한 장난 칠 사람처럼 전혀 보이지 않으시죠?]


[? 아, 네.. 그렇긴 하네요.]


[N 어머님, 이 집 정말 이쁘네요. 혹시.. 누가 지은 건지 아시나요?]


[? 그건 왜 물어보는 거에요? 학생?]


[N 아, 그, 그건 제가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요.. 헤헤헤..]


내가 생각해 봐도 쓸데없는 걸 묻는 것 같아 무안해서 헤헤헤 웃었다. 하지만, 의외로 질문은 쓸데없는 게 아니었다. 어머님이 뭐때문인지는 몰라도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시더니 귀에도 털이 북실북실 난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아.. 그래서 물어본 거군요? 이 집은 제 아들이 5년전에 저를 위해 지어준 집이에요. 제 아들이, 모스토크에서 가장 큰 극장인 <쉐르 드 파레>극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 아들이 직접 건축사무소에 가서 요청하고 직접 디자인까지 해준 건물인데, 참 이쁘죠?]


[N 아아.. 그래요? 아드님이 지어주신 건물이구나! 정말 대견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 그렇죠? 하하하! 제 아들 덕분에 제가 인생 말년에 아주 호강을 하고 있긴 하죠.. 젊은이들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제 아들처럼 훌륭하고 멋진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을 거에요. 힘내세요!]


개를 참 아끼시는 모양인지 저 말을 하는중에도 계속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고 계셨다. 저렇게 몇분동안 짜증날 정도로 머리를 쓰다듬는데 개가 가만히 있는 게 신기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아드님이 참 효자이신가보다. 아들 자랑을 하시면서 내내 귀에 걸린 미소를 보니, 참 행복하게 살고 계시는 것 같았다. 저 행복에 가득 잠긴 얼굴을 보니 너무 미안해지는걸? 우리들이 며칠 후 새벽에 도둑놈처럼 집안을 침입해서 난데없이 사람 한명을 꺼내와야 되니까. 일단, 집에 침입하기 전에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좀 해놓는게 좋겠지? 몇시에 자고, 몇시에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아놓는 게 좋을 것이다. 들어올려면 새벽에 들어와야 하니까.


[N 그럼 혼자 사시는 거에요?]


[? 아니요? 뽀니랑 같이 사는데요? 뽀니야, 그렇지?]


<왈왈!>


빅토르는 뭐가 재밌는지 깔깔깔 웃었지만, 나와 보리스는 괜히 짜증이 났다. 사람하고 같이 사는지 물어봤지 개랑 같이 사는지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어머님!


[B ..개 빼고, 사람이랑은 같이 살지 않으시는 거죠?]


[? 아니에요, 제 아들도 당연히 같이 살죠. 하지만 아들은 일이 너무 많고 극장에 딸린 침실에서 자기도 해서 자주 오진 않아요. 이틀에 한번 꼴로 들어온답니다. 그래서 아들이 없을 땐 얼마나 외로운 지 몰라요. 저택은 큰데 이 큰 저택을 저랑 뽀니만 쓰고 있는 거니까. 뽀니야, 그렇지?]


<왈왈!>


[N 네? 이 큰 저택안에서 사시면서 하인 한명 안 쓰고 계신 거에요? 불편하지 않으세요?]


[? 어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불편해요! 평생동안 하인으로 살면서 누구 명령만 받아봤지, 누구한테 함부로 뭘 시킨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하인 쓰기가 너무 어색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번에 하인 한명을 보낸 이후론 쭉 혼자 지내고 있어요.]


[V 오우.. 이런 큰 집에서 대부분을 혼자서 지내시면 되게 외로우실 것 같은데요..]


[? 아니에요. 낮엔 주변에 사는 친구 몇명이 자주 집에 놀러오거든요. 아! 내 정신 좀 봐! 손님을 바깥에 세워두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젊은이들, 우리 집에 들어와서 간식 좀 먹고 가요! 여러분들을 보니 우리 아들 젊었을 적이 생각나서 참 좋네요! 어서 들어와요!]


[N 어머님.. 현관문을 열어주셔야 들어갈 수 있는데..]


[? 아! 내 정신 좀 봐! 어휴! 제가 이렇게나 정신이 없답니다. 잠시만요?]


어머님이 문 뒤편의 뭔가를 조작하자 곧바로 현관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보리스의 어머님처럼 참 사교성이 좋아보이시는 어머니셨다. 아.. 이렇게 사람 좋은 어머님의 집을 새벽에 무단침입해서 들어가야 되다니, 너무 미안해 죽겠다! 정말! 다행인 건, 아들이 집에 없는 날엔 하인 한명 없이 혼자 3층 집을 쓰신다는 말이었다. 어머님을 위해서 어머님이 혼자 집에 있을 때 조용히 들어가서 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 아니요.. 어머님, 괜찮..]


[V 헤헤헤.. 맛있는 거 정말 주시는 거에요? 감사합니다! 애들아, 들어가자!]


어쩜 저렇게 단순할 수 있을까? 간식 준다는 말에 애완견처럼 헤헤헤 웃으며 좋아하는 빅토르를 보며, 보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의 눈치를 봤다.


[B 음.. 나틸리, 들어가도 괜찮겠지?]


[N 그래! 호의를 거절할 순 없지! 그리고 건물 내부도 멋질 것 같은데 한번 살펴보는 게 좋지 않겠어?]


[B 아하! 그래! 호의를 거절할 순 없지!]


건물 내부에 들어가서 포탈의 제대로 된 위치를 파악하겠다는 의도를 파악한 보리스가 빅토르 다음으로 마당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포탈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밝고 정많은 성격 아니랄까봐, 꽃을 키우는 게 어머님 취향이신지 입구부터 화분이 참 많기도 했다. 아.. 우리 엄마도 그렇고 빅토르 엄마도 꽃 키우는 걸 참 좋아하셨는데.. 꽃을 키우는 게 정 많고 착한 중년 여자들의 특징인 걸까? 음.. 나도 나이가 들면 여관 근처에 화분을 저렇게 한가득 쌓아두게 될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복도가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쌓아두고 싶진 않다.


마샤 모드니노프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머님이 우리들에게 간식과 음료수를 주시며 환영해주시고 아껴주신 건 이야기랑 아무 관련이 없으니 길게 적진 않겠다. 참 붙임성있고 너무 착하고 인정깊은 분이셨다. 난 어머니의 호의가 너무 감사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최대한 어머니의 비위를 맞춰드렸다. 그러던 와중, 어머님께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해 주셨다.


[N 집이 정말 이쁘네요, 어머님. 근데 지은지 오래된 건물 같지가 않아 보여요. 원래 이 땅은 빈 땅이었어요?]


[M 아니? 원래는 다른 집이 있었는데, 5년전에 건물이 갑자기 불타서 6명이 죽고 3명이 실종되는 바람에 빈 땅이 되버렸지 뭐야? 불길이 얼마나 거셌는지 크고 넓은 3층건물을 다 불태운 다음도 불길이 멈추지 않았대. 그래서 결국 빈 땅이 되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순식간에 9명의 사람이 죽은 불길한 곳이라 그런지 땅을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뭐야? 게다가 건물과 주변 시설도 썩 새로 다 지어야 되니까 더더욱 인기가 없었나봐. 그래서 번화가 주변에 위치한 것 치고는 땅값이 엄청 싸게 나왔어. 그래서 우리 아들이 바로 사버린 다음에 이렇게 멋진 건물을 지어준 거야. 참 운이 좋다니까? 주변에 병원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시장도 있고.. 아무리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왜 그렇게 땅값이 싸게 나온 건지 모르겠다니까?]


[V 아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머님?]


[M 응! 나도 한동안은 9명의 귀신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더라구! 5년동안 밤동안 쥐소리나 몇번 들었지, 이상한 소리 한번 들은 적이 없어.. 사람들은 참 바보 같다니까? 사람 몇명 죽은 게 두려워서 이 좋은 부지를 구매하지 않다니. 덕분에 나랑 아들만 노났지 뭐야? 하하하!]


아아.. 6년전에 6명이 조각상에 의해 불타 죽었나 보구나? 실종된 3명이야 당연히 한명은 사도고, 두명은 부하로 빨려들어간 거겠지.. 사건의 스케일을 보니, 하급 사도의 스케일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파장은 분명 약했는데.. 좀 이상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이후의 대화들은 길게 적을만한 게 없다. 왜냐구? 대화의 절반 이상이 아드님 자랑이시니까! 자랑도 한두번이지 똑같은 레파토리의 칭찬을 1시간 내내 하고 있으시니 솔직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머리도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전 처음 보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비싼 간식을 내놓으시며 맞아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서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웃으며 추임새를 넣으며 빅토르와 함께 웃으면서 잘 들어드렸다. 나머지 두 사람은 뭐하냐고? 그냥 가만히 듣고 있거나 딴짓하고 있었다. 어쩜 이런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호감 쌓는 일은 맨날 나랑 빅토르가 다 하게 된다니까?


그래도, 그렇게 인내심 있게 아들 칭찬을 다 들어준 덕분에, 우리들은 뜻밖의 행운을 포착할 수 있었다. 뭐냐고? 그건 바로..


[M 우리 아들이, 어릴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연극도 많이 보고.. 그런 데에 과할 정도로 관심이 많더라구. 난 어릴땐 얘가 커서 공부는 안하고 그런 것만 하다가 직장이나 제대로 구할지 정말 걱정이었는데, 그 철부지 아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을 그렇게나 열심히 해서 돈을 번 다음 그 돈으로 극장사업을 벌여서 이렇게 잘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대견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이렇게까지 잘 클 줄은 생각도 못했다구. 내 아들 정말 멋지지?]


[N 아.. 네.. 어머님, 아드님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빠져들 것 같아요!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아드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은 걸요?]


[M 응? 그러면 한번 보고 갈래? 내 아들, 내일 저녁엔 반드시 집에 올 거거든!]


[N 네? 갑자기 그게 무슨..]


[M 에이.. 그러지 말고, 한잠 자고 가! 아니, 괜찮으면 이틀 넘게 자고 가도 아무 문제 없어. 우리 집이 커서 손님이 쓸 방은 참 많거든. 네스터가 너희들 같은 젊은애들이랑 노는 걸 참 좋아하니까, 내일 내 아들이랑 실컷 놀며 며칠 지내고 가렴.]


[V 어? 어머님, 정말 그래도 돼요?]


[M 그럼? 2시간밖에 안본 사이지만, 내가 사람을 많이 봐와서 딱 보면 알아! 너희들은 착한 애들이라는 걸!]


[B 정말 제가 착해 보이세요?]


[M 그럼!]


자기 얼굴을 보며 착해 보인다고 들은 적이 정말 처음이었는지, 보리스는 조금 감동을 한 것 같았다. 보리스한테까지 저러는 걸 보니, 어머님 정말 착하고 사람 좋으시다!


[N 그럼 이틀정도만 머물고 갈게요!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왠 횡재야? 포탈을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오늘 새벽에 자는 척 하다가 조용히 나와서 포탈 열고.. 들어가서 사도 처리하고 조용히 나오면 되잖아! 아까전에 잠시 화장실에서 팔찌를 껴봤을 때 느껴진 파장을 보니 이번 사도는 하급 사도인 게 분명했다. 들어가는 게 문제지,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들어가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되어버렸잖아? 하급 사도를 빅토르가 처리하는 동안 나머지 우리들은 부하들이나 좀 처리해주면 쉽게 끝날 것이다. 부사장님 때처럼. 아! 일이 너무 쉽게 돌아가잖아?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완전 싱글벙글해 했지만, 당연히 어머님은 그 신난 표정의 의미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오해하셨을 것이다.


[M 하하하.. 그렇게나 좋아하는 걸 보니 내가 더 고마운걸? 너희들, 저녁 안 먹었지?]


[V 네! 안먹었어요! 어머님!]


[M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오랜만에 30년 하인인생으로 갈고닦은 음식솜씨를 좀 뽐내봐야지!]


[N 어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도 요리 좀 하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나와 어머님이 협력해서 내놓은 명품 요리들로 밥까지 아주 든든히 잘 챙겨먹은 우리들은, 벌써 10시가 된 걸 깨닫고는 손님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어머님께선 다른 사람들 중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나만 혼자 거실에 앉혀두고 1시간 내내 끊임없이 대화를 하셨다. 내 요리솜씨가 평범한 범주의 실력이 아님을 깨달으셨는지, 나한테 1시간 내내 요리실력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 거냐, 요리 실력의 노하우가 어떤게 있는지를 계속 물어보셨다. 난 당연히 친절하게 다 설명해 주었지만, 덕분에 친구들은 10시에 들어간 방을 나 혼자만 11시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휴.. 내일도 요리 관련해서 날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만드실 건 아니시겠죠? 그러기 전에 빨리 사도 데리고 도망치듯이 여길 빠져나가야겠다.


그렇게 손님방이 있는 3층, 에르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에르제가 책을 보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N 에르제, 아무래도 어머님같은 성격은 침대에 눕자마자 주무실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자정을 알리는 시계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아요.]


[E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나저나, 어머님과 3시간동안이나 말상대를 해주느라 지치지 않았어요? 나틸리? 괜찮겠어요?]


[N 여관에서 술주정하는 아저씨들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어요. 나름 재밌었어요. 어머님 덕분에 한번도 보지 못한 네스터 모드니노프씨가 생선 알러지가 있는 것까지 알게 됐으니까요.]


[E 하하하! 그러게요. 아드님이 최근에 모스토크의 유명 연극배우한테 차인 것까지 저희들에게 다 이야기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아마 어머니가 그런 사적인 이야기까지 우리들한테 해주신 걸 알게 되면 네스터씨가 매우 난처해지시겠지? 눈치없는 빅토르가 말하지나 않을까 괜히 두려웠다. 아.. 하지만, 네스터씨를 우리들이 만나게 될 일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어머님한텐 참 미안한 말이지만.. 사도를 구하면 새벽에 몰래 여길 떠날 거거든.


주변 성당에서 자정을 알리는 낮은 종소리가 3번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우리들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방을 나왔다. 아까 전 식사시간 후에 보리스에게 12시라고 조용히 귓속말을 해준 덕분에 보리스도 어느새 2시간을 자서 꺼벙해진 눈을 한 빅토르와 함께 조용히 문을 열고 우리 뒤를 따라왔다.


어머님은 2층에서 자고 계신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아주 조용한 집안에서 그르릉거리는 코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많이 뚱뚱하신 분이라, 코고는 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뚱뚱한 사람들이 코에도 지방이 껴서 코를 심하게 고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


다시 한번 파장을 느껴봤는데.. 역시 아주 약했다. 사도는 한심할 정도로 약한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최약체였던 부사장님보다도 약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코고는 소리 외엔 쥐죽은 듯 조용한 2층 복도를 친구들과 고양이처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파장은 코고는 소리가 문틈을 뚫고 생생하게 들리는 어머님의 방 바로 옆, 화장실에서 끝나는 것 같았다. 어휴.. 정말 하필이면 포탈이 화장실 안에 있냐?


뭐.. 어머님 방 바로 옆인 게 문제지, 화장실은 구린 냄새 하나 없이 샴푸냄새만 나는 깨끗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을 열고, 조심스레 포탈을 열었다. 변기통 바로 앞에서 포탈이 열렸다. 열리자마자,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는 어마어마한 빛 때문에 어머님이 깨실까봐 급하게 친구들의 등을 떠밀며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에르제가 들어가려는 순간, 어머님의 애완견인 뽀니가 왈왈거리더니 갑자기 코고는 소리가 끊기는 것이었다! 혹시나 깬 게 아닐까 싶어 화들짝 놀란 나는 급하게 에르제 등을 떠밀며 동시에 포탈로 들어갔다.


***


[E 나틸리, 넘어질 뻔 했잖아요.]


[N 미안해요.. 에르제. 갑자기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어머님이 깨신 줄 알구요.]


[B 으으.. 이번 이공간 컨셉은 하수도인 것 같은데?]


보리스가 한 말에 주변을 바라보니, 발목이 이상한 파란 물에 잠겨 있었고, 통로도 정말 하수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동그란 통로였는데, 모스토크의 사각형에 좌우에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 하수도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마치 요즘 시대의 하수구가 아니라 몇백년 전의 하수구가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컨셉은 거지같은 하수구긴 했지만 다행히 냄새는 약한 물 썩은 냄새 외엔 나지 않았다. 악취가 났다면 들어오자마자 코와 입을 틀어막아야 했을 것이다.


[V 나틸리, 포탈은 그냥 파란색인게 특별할 게 없어 보였는데.. 들어 오기 전에 파장은 어땠어?]


[N 파장? 정말 별 거 없었어. 부사장님때보다도 더 약해 보였는데?]


[V 아아.. 그래? 참 잘됐다.]


[B 참.. 6명이나 죽이고, 애꿎은 주변 사람 둘도 빨려들어오게 한 사도가 파장이 약했다고? 그거 참 이상한데..]


[N 그레고리때를 봐봐. 3명 죽이고 혼자 들어왔는데 중급 사도였잖아. 사도의 세기랑 죽이고 같이 들어간 사람 숫자는 별 상관이 없나봐. 에르제, 그렇죠?]


[E 글쎄요.. 하급 사도라기엔 현실에서 벌인 일이 너무 크긴 했는데..]


[B 그래! 건물 하나를 다 태워먹고 사람까지 6명을 죽였는데 별거 아닌 사도일 리가 있어?]


[N 에이.. 파장부터 별 게 아니었는데 왜 시작부터 겁을 먹고 그래? 다 잘될 거야!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긍정적으로!]


[B 쳇, 평소에는 전혀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니면서 오늘따라 긍정적인 척 한다니까?]


난 보리스의 말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장서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통로는 길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두 갈래 길로 나뉘었다. 아.. 정말! 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거야, 귀찮게?


[E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군요.]


[B 빨려 들어간 사람이 두명이나 있잖아. 혹시, 나뉘어진 길마다 각각 한명씩 있는 거 아니야?]


[V 아아! 길마다 사도의 부하가 한명씩 있다는 거지?]


[B 응, 아무래도 그럴 것 같은데?]


[N 그럼 쉬워 보이는 부하를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E 두 갈래 길에 있을 적들을 각각 조사해보죠, 그럼.]


[B 그게 좋겠어. 굳이 안해도 될 고생을 할 필요가 없잖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뭔지 살펴보고, 쉬워 보이는 길을 뚫자구.]


[N 좋은 생각이야! 사서 고생하는 거, 정말 멍청한 짓이거든! 그럼, 일단 왼쪽 길부터 조용히 걸어가서, 거기에 뭐가 있는지 보고 슬쩍 빠져나오자.]


[V 알겠어. 으음.. 왠지 이번 이공간은 색달라 보여서 좋은데? 뭔가 던젼 탐험하는 것 같아서 정말 재밌어! 그렇지 않아?]


[B 그러게? 게다가 사도도 좁밥이라 그렇게 긴장도 안돼고. 오늘 그냥 사도까지 다 처리하고 세명 구해서 나오자!]


[N 그래! 어떻게 맨날 힘들고 어려운 싸움만 해? 한번 정도는 좀 날로 먹는 날도 있어야지! 자, 출발!]


나는 평소답지 않게 발랄한 마음으로 하수구 통로를 걸어갔다. 파장이 약하다 보니 빅토르가 쉽게 처리해주겠지 라는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인생은 어째 늘 이런 식이야? 쉽게 풀릴 것 같은 일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최악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딱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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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17: 010601 영혼 결합 NEW 11시간 전 0 0 18쪽
117 1-116: 010601 건물 내부와 이상한 가루 NEW 11시간 전 0 0 19쪽
116 1-115: 010601 휴식 NEW 21시간 전 2 0 21쪽
115 1-114: 010601 사도와의 전투 B 24.09.09 6 0 31쪽
114 1-113: 010601 사도와의 전투 A 24.09.09 5 0 30쪽
113 1-112: 010601 다시 이공간으로 24.09.07 6 0 15쪽
112 1-111: 010601 알리치 집 24.09.07 4 0 23쪽
111 1-110: 010601 석궁 시험/교장실 24.09.05 6 0 31쪽
110 1-109: 010601 석궁 소동 24.09.04 6 0 24쪽
109 1-108: 010601 안톤의 데모 24.09.04 7 0 28쪽
108 1-107: 010601 알리치 집들이 2 24.09.01 7 0 31쪽
107 1-106: 010601 알리치 집들이 24.08.28 6 0 27쪽
106 1-105: 010601 새 기숙사와 급식 24.08.28 7 0 29쪽
105 1-104: 010530 네스터 모드니노프 24.08.28 7 0 16쪽
104 1-103: 010529 사도와의 전투 24.08.22 7 0 26쪽
103 1-102: 010529 하수구 던전 B 24.08.22 7 0 22쪽
102 1-101: 010529 하수구 던전 A 24.08.22 6 0 21쪽
» 1-100: 010529 모드니노프 가 24.08.21 8 0 25쪽
100 1-099: 010528 총경님과 만남 B 24.08.20 8 0 34쪽
99 1-098: 010528 총경님과 만남 A 24.08.20 7 0 24쪽
98 1-097: 010528 격려 24.08.13 10 0 26쪽
97 1-096: 010528 교장 선생님과 협상 24.08.13 8 0 21쪽
96 1-095: 010527 안톤의 억지 24.08.09 7 0 20쪽
95 1-094: 010527 방 배정 24.08.09 8 0 20쪽
94 1-093: 010526 종결 24.08.09 6 0 27쪽
93 1-092: 010525 사도의 기억 3 24.08.06 10 0 21쪽
92 1-091: 010525 사도의 기억 2 24.07.27 8 0 21쪽
91 1-090: 010525 사도의 기억 1 24.07.27 8 0 20쪽
90 1-089: 010525 엉망진창 추격전 24.07.17 11 0 18쪽
89 1-088: 010525 사도와의 전투 24.07.17 5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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