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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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12 03:02
최근연재일 :
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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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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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010601 휴식

DUMMY

그렇게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로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몸도 너무 아팠다. 쥐새끼들과 뒹굴면서 알게모르게 온몸이 갉아먹혔나보다. 그렇다 해도.. 쥐들보다 훨씬 쎈 사도와 죽기살기로 싸운 당사자 둘만 하겠어?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긴 해도 이제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된 나나 보리스와는 달리, 두 사람은 아직도 들판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특히, 빅토르는 에르제가 옆에서 계속 치료를 하는데도 아직도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보리스가 그렇게 아무 미동도 없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누워있는 빅토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B 야, 빅토르! 너 죽은 거 아니지?]


[N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진짜 그렇게 됐을까 겁나니까! 에르제, 빅토르 상태는 어때요? 왜 치료를 했는데도 상태가 이런 거에요?]


[E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영체의 손상이 가장 심해요. 정신을 차리고 나갈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된다고 해도, 바깥에 나가서 일주일동안은 편히 쉬어야 영체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거에요.]


일주일이라고? 샤노브와 싸운 후 회복기간보다도 더 길잖아? 도대체 얼마나 얻어맞았길래 이렇게 튼튼한 애가 반 시체가 되어버린 거야? 나는 온몸에 깊게 베이고 긁힌 상처가 가득한 빅토르를 바라보며, 너무 미안해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저런 사도를 잡아야 되는데 엉뚱한 빅토르랑 안톤이 잡아야 했다니. 그래.. 빅토르야 전문적으로 전사교육을 받았으니 그렇다 치자. 앞으로 이런 전투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운 전투가 있을지도 모르니 인생의 경험치를 미리 쌓았다고 치자. 하지만 저 비실비실한 내 친구는 도대체 무슨 죄야? 쟨 완전 그냥 민간인인데!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 빅토르와 약간 간격을 두고 누운 안톤을 바라보았다. 석궁보단 칼로 계속 얻어터져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빅토르에 비해, 석궁만 몇발 맞아서 비교적 멀쩡하긴 했다. 하지만.. 덩치는 빅토르의 1/2수준이다 보니 불쌍하기는 얘가 더 불쌍했다. 아아.. 민간인인 내 친구를 여기로 들어오게 하다니! 나틸리 안보렌, 너 제정신이야? 해도해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궁하다고 해도 여자인 나보다도 뼈가 얇고 비실비실한 내 친구를 들어오게 하면 어떡해!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안톤을 안 데려왔으면 어떤 꼴이 났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이기지 못했겠지?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쟤가 저렇게 사력을 다해 싸워서 간신히 이긴 거잖아. 안톤이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오긴 한 거지만,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것 치곤 이번 전투에서 받은 도움이 너무나도 컸다. 우리들의 목숨을 살려줄 정도로 활약을 했으니까. 자식.. 여자애 몸처럼 비실비실한 애가 어쩜 외모에 걸맞지 않게 용기랑 투지는 우리보다 훨씬 나아보일 정도라니까? 난 너무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에 안톤의 이마에 살짝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주었다. 그러자마자, 안톤이 드디어 반나절의 잠에서 깨어난 후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A 으으.. 아야야..]


[N 어? 안톤, 드디어 일어났어?]


[A 응.. 근데.. 우리 어떻게 됐어? 우리들.. 다 죽은 거야? ]


[B 죽긴! 임마! 멀쩡히 다 살아있어.]


[A 아.. 이겼구나? 헤헤헤.. 우리가 이겼어! 저 사도를! 하하하!]


참..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안톤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뭐, 충분히 저렇게 기뻐할 만 하지! 이긴 것도 이긴 거지만, 그것도 자기 자신이 쓰러트렸잖아? 성취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지. 뭐, 싸움은 대부분 빅토르가 다 하긴 했고, 안톤은 막바지에 잠시 도와주긴 한 거지만, 그 막바지 도움이 없었으면 우린 오늘로 끝장났을 것이다.


[N 그래! 잘 했어! 임마! 어휴.. 이 쬐끄만한 몸뚱이에서 어쩜 그런 용기가 생겨난 거야? 들어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벌벌벌 떨어서 불안해 죽겠던데, 생각보다 엄청 잘 싸우네? 안톤? 우리들보다 니가 낫다, 야.]


[B 그래, 안톤. 니가 우리보다 낫다, 인마.]


[A 으으.. 고마워, 애들아. 근데, 빅토르는? 빅토르는 어때? 괜찮아?]


[B 괜찮겠냐? 한동안 혼자서 개처럼 두드려맞았는데? 저 멀리서 봤을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상상 이상이야. 얼마나 얻어터졌던지 거의 반 시체상태더라고. 영체가 저꼴이 되서 다행이지, 현실에서 저렇게 싸웠으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몰라.]


[A 그래? 그 정도야? ···으윽! 으으.. 아, 애들아! 도무지 못 일어나겠어! 애들아, 화살 맞은 데가 너무 아파! 바늘이 엄청 날카로웠었나봐!]


맞아봤자 3개정도 맞았나? 많이 맞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일어서지도 못하다니.. 난 빅토르의 상태를 보려고 일어서려다 고통때문에 다시 누워서 신음소리를 내는 안톤을 보며, 시작부터 석궁을 쓰지도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접근해 3,40분 내내, 그것도 중간에 석궁까지 맞았는데도 근접전을 하며 우리를 보호해준 빅토르가 다시 한번 너무 고마워졌다. 참.. 여름방학까지 잠시 도와주는 건데, 어쩜 임무 당사자인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싸우는 것 같애! 방학동안 진짜 잘 대해줘야지! 그럼!


[E 안톤, 미안해요.. 마력의 대부분을 빅토르를 위해 소모해야 해서, 치료를 온전히 하지 못했어요. 잠시만 좀 기다려줄래요?]


[A 괜찮아요, 전. 이제 움직일 만 해요. 마법사님, 빅토르부터 다 치료해주세요.]


[E 그래요, 고마워요.]


[B 어휴.. 설마 12시간동안 치료만 한 거에요? 얼굴이 하루만에 며칠 굶은 사람처럼 되어버렸는데요?]


[E 아니에요. 중간중간 저도 쉬면서 치료했어요.]


중간중간 쉬긴 했겠지. 자기도 싸웠으니까. 그렇다 해도, 12시간 동안 빅토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치료해준건 정말 대단했다. 치료 쪽으론 정말 최고급 마법사인 것 같았다. 싸울때도 보조마법과 공격마법을 적잖게 썼을텐데.. 마력 용량이 생각보다 큰가봐.


[B 참.. 우리 둘도 나름 에르제 보호해 가며 쥐새끼들 때려 잡느라 온갖 생고생을 했는데, 저 둘때문에 우리들은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 그렇지? 나틸리?]


[N 사도 잡는 게 아무래도 훨씬 힘들긴 하지. 우리 둘이 저 사도랑 싸웠으면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을걸?]


[B 그렇긴 하지.. 안톤, 정말 고생 많았어! 그나저나, 애들 다 치료해서 일어서게 만들고.. 사도까지 깨워서 나갈려면 하루 넘게 걸리겠네! 알리치 형이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는데, 어떡해야 되냐? 우리?]


[N 괜찮아.. 오늘 밤에 안 오면 다음 날에 오겠지.. 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을걸?]


[B 그렇겠지? 아무래도? 음.. 사도는 근데 어디에 있는거.. 아! 저기에 있군.. 어우.. 에르제, 저 누님, 아직 옷을 안 입혀놨네요?]


[A 어? 옷을 안 입혀놨다구?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변태 듀오가 정말? 에르제가 치료하느라 정신이 팔린데다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보니 사도 옷을 입히지 못한 상태였고, 보리스가 그걸 말하자마자 안톤이 갑자기 없었던 힘이 생겼는지 일어서더니 사도가 누워있는 쪽을 빤히 바라봤다. 에휴.. 안톤의 맑은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A 아아.. 사도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 알몸으로 돌아오는구나.. 신기하다..]


[N 안톤.. 충분히 봤으면, 고개 좀 돌려. 남의 벗은 몸을 계속 보는 건 예의가 아닌 거 알지?]


[A 아, 나틸리. 처음 봐서 신기해서 본 거야. 정말 다른 이유가 있어서 본 건 아니야.]


[N 아니긴! 아까전에 화살맞은 게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애가, 어쩜 보리스가 저 말을 하자마자 금새 멀쩡하게 일어날 수가 있어? 너, 정말 괜찮아? 안 아파? 이정도 봤으면 다시 누워서 쉬어!]


[A 아, 아니야! 나틸리! 나 진짜 알몸 보려고 일어난 게 아니라, 진짜 과학적인 호기심때문에 궁금해서 본 거야! 사도가 다시 현실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어떤 상태인지 보려구 말이야. 아아.. 빅토르가 몸에 큰 상처를 냈고, 나도 화살을 3개를 박았는데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 몸상태가 진짜 깨끗하고 멀쩡하네? 우리랑은 다르게? 신기하다.. 보리스, 그치?]


[B 어, 어! 와.. 진짜 신기하다. 우리들은 싸움이 끝나서 바깥에 나가도 고통때문에 침대신세를 져야 하는데.. ○나 불공평하다, 그치?]


[A 아아.. 이 고통, 바깥에 나가도 그대로 느껴진댔지? 아.. 큰일났네?]


[N 어휴.. 이 녀석! 과학소년 아니랄까봐 호기심은 되게 많아요! 이제 그만 보고 좀 누워서 쉬어! 너 진짜 계속 보면 저 언니한테 얘가 벗은 몸 봤다고 알려버린다?]


[A 으, 응.. 알겠어! 나틸리, 이제 절대 안볼게!]


[N 보리스! 안톤따라서 어영부영 신기한척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내가? 너 여자 사도들 나올때마다 그러면 파티에서 빼버릴 줄 알아?]


[B 아.. 알겠어! 임마! 나도 안톤처럼,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그냥 저 누님 몸 상태가 멀쩡한지 살펴본 것 뿐이야! 날 뭘로 보는 거야? 이 자식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저 두 변태 친구들의 눈이 맑게 빛나는 걸 보니 저 누님의 몸매가 어지간히 이상형이긴 한 것 같았다. 어휴.. 저 둘 때문에라도 앞으로 저런 몸매 좋은 여자 사도는 제발 안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런 우리들을 잠시 바라보며 참 한심한지 한숨을 푹 쉰 에르제가 다가와서 뒤늦게 마법으로 옷을 입혀주었다. 근데.. 사도외의 부하 두 사람은 어디에 있지? 샤노브때처럼 옆에 나란히 누워있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내가 에르제에게 물어보니, 에르제가 저편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E 그 두사람, 애초에 이번 전투때 나오지도 않았잖아요? 아마 저 집에서 회복하고 있었을 거에요.]


[B 아, 그러고 보니, 부하 사도 둘은 오늘 나타나지 않았었지? 어휴.. 아픈 건 별로 없는데, 40분동안 검이랑 방패를 휘둘러서 그런가.. 근육이 아파 죽겠다! 좀 더 자야겠어.]


[N 나도 그래.. 무슨 쥐새끼가 끊임없이 튀어나와! 자기도 중급사도라 쎄면서 부하들도 저렇게 많이 모아놓으면 어떡해! 저 사도 언니 진짜 치사하다니까?]


[B 야, 나틸리, 이거.. 아무리 봐도 말이지.. 우리 다섯으로도 어림도 없어! 어림도 없다구! 중급 사도 둘이랑 싸우다가 둘 다 간신히 이겼잖아. 그것도 빅토르가 있는데도! 다음에 중급 사도 나온다고 또 이길 거란 보장이 없어! 저 놈이 삐끗해서 큰 실수 한번이라도 하면 다음엔 다 ○되는 거라구!]


[N 그럼 어떡하라구! 답답하면 니가 방법을 좀 말해봐!]


[B 방법은 나도 모르지! 임마! 어쨌든 한두명 더 집어넣어야 돼. 특히, 오오라 쓸 줄 아는 전사 한명 집어넣어야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을 거라구. 어때, 너도 동의하지?]


[N ...오오라 쓰는 전사가 흔한 것도 아니고, 그걸 갑자기 어떻게 구해! 나도 구하고 싶어. 주변에 있으면 손발을 싹싹 빌면서 데려오고 싶을 정도라구.]


보리스의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었다. 어쩜 전투를 고작 5번 했는데, 겨우겨우 이긴 게 절반 이상이었다. 우리들이 필사적으로 싸운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위기마다 약간씩 운이 따라서 그 수많은 고비를 넘긴 거지, 우리 조금만 재수가 없었으면 그날로 다 뻗어버리고 이공간에 영원히 갇혀 사도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중급 사도 이상은 절대 싸우지 말고, 하급 사도나 처리하면서 도와줄만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오오라를 쓰지도 못하면서 오오라 쓴 사도 둘, 상급 사도 한명이랑 싸워가며 맨날 전투끝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빅토르의 모습을 보니, 빅토르한테 너무 미안해서라도 빨리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전투 시작부터 끝까지 혈투를 벌인 빅토르를 위해서라도, 아까 전에 사도가 썼던 그 폼멜과 가드에 악마가 새겨진 멋진 검이 전투의 보상품으로 나오길 원했는데, 사도 언니가 쓰러진 곳 주변엔 무기 하나 보이질 않았다. 아.. 분명 검이나 석궁이나 정말 평범해 보이지 않는 무기였는데, 정말 이렇게 사라지고 끝나는 거야? 이렇게 죽일듯이 싸워서 쓰러졌는데 보상 하나 없다니. 난 괜히 아쉬운 마음에 들판 주변을 살펴봤지만 회색 풀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다음 2시간이 다시 지나갔고, 우리들은 다시 2시간을 자거나 누워서 쉬며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 2시간동안 쉬면서 에르제의 치료를 받은 후가 되서야 나와 보리스는 꽤나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안톤도 어느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빅토르? 아직도 시체처럼 누워있었지만 다행히 연기는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몇시간은 더 자야 깨어날 것 같았다.


[B 와.. 얜 아직도 못 일어난거야? 응? 얘 하나 치료하느라 에르제 얼굴이 거식증 환자처럼 초췌해졌는데?]


[E 제가 그렇게 몰골이 말이 아닌가요?]


[B 아니요? 당연히 농담이죠! 헤헤헤.. 그래도 진짜 피곤해 보이긴 한데.. 괜찮아요?]


[E 솔직히 말하면, 전혀 괜찮지 않아요. 바깥에 나가면 이틀동안 푹 자고 싶어요.]


그렇겠지!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으니까. 얼마나 치료에 정신력을 쏟아부었는지, 에르제의 안색은 보자마자 불쌍해.. 라는 마음이 솟아오를 정도였다. 뺨이 움푹 파이고 생기 하나 없는 죽은 나무같은 안색으로, 아직도 빅토르를 간호해주고 있었다. 이젠 빅토르보다 에르제가 더 딱해 보인다, 정말. 어휴.. 이 언니도 보기보다 고생이 많다니까? 이 언니를 위해서라도 중급 사도는 당분간 잡아선 안되겠어. 그리고..


[V 하암.. 아우.. 잘 잤다!]


빅토르의 몸에 대고 있던 지팡이알이 빛을 잃고, 에르제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앉은채로 자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빅토르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보기보다 멀쩡해보였다. 에르제의 건강을 자기가 다 뺏어먹기라도 한 것처럼.


[V 어? 에르제! 왜 앉은 채로 자고 있어요?]


[N 다 너 때문이잖아, 임마! 조용히 해! 지금 막 잠들었단 말이야.]


빅토르가 우렁찬 목소리로 앉은 채로 자는 에르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치 없긴! 진짜! 14시간이나 치료했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깨울까봐 난 빅토르에게 제대로 주의를 줬다. 어깨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려다가.. 병자인걸 감안해 살짝 때렸다.


[V 아야! 나틸리.. 나 환자야.. 저 누님한테 얼마나 얻어터졌는줄 알아? 어떻게 환자를 때릴 수가 있어?]


[N 살짝 때린건데 엄살은? 야, 에르제, 너뿐만 아니라 우리들까지 14시간 넘게 치료하고 있었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깨우지 말고, 조용히 해. 알겠어?]


[V 그래? 어우.. 미안해서 어떡해? 14시간이나 치료를 했다구? 오우.. 공부를 해도 2시간 이상 하면 머리가 아프던데..]


[A 그러게.. 진짜 피곤해 보이니까, 우리 마법사님을 누워서 쉬게 하고 좀 멀리 떨어져 있자.]


안톤의 말을 들은 빅토르가 에르제를 천천히 들판에 눕혔다. 그리고 조금 옆으로 걸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B 야, 아무래도 에르제 일어나려면 한참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 그동안 저 집에 한번 가보는 건 어때?]


[A 아아.. 저 흰 집 말하는 거지? 응, 그러자! 저 집 안에 뭐가 있을 지 너무 궁금해!]


[N 사도가 사는 집이라고 특별할 건 없어, 안톤. 대부분 자기가 현실에서 살던 집의 형태 그대로 만들어져 있더라구. 그래도 할게 없으니까 한번 가볼까?]


[A 으응, 그러자! 애들아, 헤헤헤.. 도대체 뭐가 있을까?]


안톤.. 무슨 소풍 왔니? 왜 이렇게 사소한 거에도 재밌어 하는 거야? 저 집안에 특이하게 볼 만한 거, 진짜 아무것도 없을 걸?


방금 전에는 아주 멀쩡하게 일어난 것 같았던 빅토르는, 조금 걷게 되자 칼에 제대로 베인 허벅지가 아직도 아프다며 여기 있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에르제를 보호하기 위해 남아있는 거겠지만. 차가운 평소와는 달리 정말 온순한 아기새처럼 입을 살짝 벌리고 자고 있는 에르제를 바라보는 빅토르의 얼굴이 참 기분좋아 보였지만, 보리스나 안톤처럼 자기 이상형이라고 허튼 짓 할 애는 절대 아니란 걸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편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그 고전적인 아치형 현관을 가진 흰색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이 집.. 그 화재가 났던 집의 형태와 거의 비슷한 것 같은데? 신문에서 봤던 화재 전의 건물 사진과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 만약 그렇다면, 사도는 그레고리나 샤노브처럼 서민 출신이 아닌, 부사장님처럼 좀 잘 사는 집의 딸인 것 같았다. 벽면에 널려진 화려하면서도 현대적인 문양의 태피스트리하며, 큰 중앙 홀에서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 넓고 현대적인 방의 구조들이, 아무리 봐도 잘사는 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B 사도 누님, 아무래도 좀 잘사는 집 아가씨였나 본데? 부사장님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중산층 이상은 됐겠어.]


[A 응? 오히려 가난해서 사도로 살 때는 좋은 집에 사는 건지도 모르잖아, 보리스.]


[B 아니야. 현실에서 가난하거나 평범하게 사는 사도들은, 거주지가 좀 비현실적인 경우가 있었거든. 왜냐? 평범하거나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좋은 집엘 살아 봤어야지! 그러니까 현실적인 디테일이 좀 부족했어. 근데 이 집은, 비싸 보이면서도 되게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 이런 집에서 살아봤으니까, 이공간에서 만드는 집도 이렇게 현실적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는 거지.]


[A 아아.. 그렇구나. 아, 그러고보니, 그 누님, 키도 170정도로 크고 몸매도 매우 탄탄해 보이긴 했는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영양소 공급도 잘 받은 누님인 것 같았어.]


[B 그래, 안톤. 좋은 집이니까 비싼 요리 먹고, 시간이 여유로우니까 운동도 좀 하며 지냈던 거지.. 못사는 집 누님이었으면 저렇게 키도 크고 몸도 탄탄하지 못했을 걸?]


[A 휴.. 나처럼 말이지?]


[B 야, 니가 덩치가 비실비실한 건 못먹고 운동할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 그러게 잘때 자고, 밥도 많이 좀 먹으며 살았어야지!]


[N 그래! 우리 엄마가 중학교 내내 음식 챙겨주고, 제발 좀 자면서 공부하라고 해도 귓등으로 듣고 깨작깨작 먹고 잠도 4시간만 자서 그렇게 된 거 아니야!]


[A 헤헤, 생각해보니까 그렇긴 하네?]


머리를 긁적인 안톤이 급하게 화제 전환을 했다.


[A 음.. 근데, 너희들 말대로 생각보다 되게 볼게 없어. 그냥 일반인 집안에 들어온 것 같은데? 난 사도의 집이라서 안에 켈베로스같은 개 키우고 되게 사악한 인테리어로 꾸며놨을 거라 기대했는데.. 실망이야..]


[N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생각보다 볼 거 없다구.]


처음엔 실망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톤은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방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보리스는 흥미가 금방 꺼져 버렸다. 화려하기 그지없던 부사장님의 집을 봐서 눈이 높아져서 그런가.. 아니면 바깥의 화분이 가득한 모드니노프 집이 더 특이해서 그런가 크기만 하지 별 특징없는 사도의 집이 정말 재미가 없었다. 게다가, 빨리 나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조명이 없는데다가 에르제까지 같이 오지 않았다 보니 건물 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던 데다가, 깜깜한 건물 내부가 왠지 기분나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N 자, 안톤, 다 봤지? 나가자, 빨리.]


[B 그래,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살펴보냐? 눈도 안좋은 주제에. 너 이런 어두운 곳안에 계속 있는거 불편하지 않냐?]


[A 혼자 들어온 것도 아닌데, 뭘. 너희들이 있어서 그런지 전혀 무섭지 않은데? 애들아, 이제 2층으로 올라가보자.]


[B 야, 2층도 볼거 1도 없어! 임마! 아아.. 조명도 없고 에르제도 없으니 뭐 제대로 보이는게 없는데 뭐가 그렇게 계속 보고 싶은 거야?]


[N 에휴.. 몰라! 얘 호기심 알잖아. 해결하지 못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거. 빨리 들여다보고 나가자. 아아.. 건물 안이 밝기만 해도 괜찮을 텐데. 어쩜 불빛 하나 없을 수가 있지?]


[B 그러게! 이 등불 올려진 곳들은 장식인가? 어쩜 하나도 작동되는 게 없어! 누가 좀 켜줬으면 좋겠네!]


라고 보리스가 말하자마자, 2층 복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 있던 등불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등불은 하나같이 불쾌한 빨간 빛을 띠고 있었다. 밝아진 건 좋긴 한데.. 그 등불들이 하나같이 불쾌한 핏빛을 내뿜어 내고 있어서, 난 오히려 이 불빛이 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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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1-114: 010601 사도와의 전투 B 24.09.09 7 0 31쪽
114 1-113: 010601 사도와의 전투 A 24.09.09 6 0 30쪽
113 1-112: 010601 다시 이공간으로 24.09.07 7 0 15쪽
112 1-111: 010601 알리치 집 24.09.07 4 0 23쪽
111 1-110: 010601 석궁 시험/교장실 24.09.05 6 0 31쪽
110 1-109: 010601 석궁 소동 24.09.04 6 0 24쪽
109 1-108: 010601 안톤의 데모 24.09.04 7 0 28쪽
108 1-107: 010601 알리치 집들이 2 24.09.01 8 0 31쪽
107 1-106: 010601 알리치 집들이 24.08.28 6 0 27쪽
106 1-105: 010601 새 기숙사와 급식 24.08.28 8 0 29쪽
105 1-104: 010530 네스터 모드니노프 24.08.28 7 0 16쪽
104 1-103: 010529 사도와의 전투 24.08.22 7 0 26쪽
103 1-102: 010529 하수구 던전 B 24.08.22 8 0 22쪽
102 1-101: 010529 하수구 던전 A 24.08.22 7 0 21쪽
101 1-100: 010529 모드니노프 가 24.08.21 8 0 25쪽
100 1-099: 010528 총경님과 만남 B 24.08.20 9 0 34쪽
99 1-098: 010528 총경님과 만남 A 24.08.20 7 0 24쪽
98 1-097: 010528 격려 24.08.13 10 0 26쪽
97 1-096: 010528 교장 선생님과 협상 24.08.13 8 0 21쪽
96 1-095: 010527 안톤의 억지 24.08.09 7 0 20쪽
95 1-094: 010527 방 배정 24.08.09 8 0 20쪽
94 1-093: 010526 종결 24.08.09 7 0 27쪽
93 1-092: 010525 사도의 기억 3 24.08.06 10 0 21쪽
92 1-091: 010525 사도의 기억 2 24.07.27 8 0 21쪽
91 1-090: 010525 사도의 기억 1 24.07.27 8 0 20쪽
90 1-089: 010525 엉망진창 추격전 24.07.17 11 0 18쪽
89 1-088: 010525 사도와의 전투 24.07.17 6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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