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파일 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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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i에나
작품등록일 :
2023.10.06 10:58
최근연재일 :
2024.03.22 08:00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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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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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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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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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2화. 누구를 탓할까-어느 매춘부의 죽음

DUMMY

사건 사고는 왜 꼭 모두가 잠든 시간에 많이 일어날까?


근무 시간에 일어나면 조사하기도 편하고 해결하기에도 훨씬 수월할 텐데.


휴가나 연장근무 수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과잉수사다, 뭐다, 해서 말도 많고, 때려치울까도 생각해 봤는데 할 줄 아는 게 이 짓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


「ㅇㅋ」


정 형사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 뒤 현장으로 향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겨울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다.


사건 현장은 늘 사람들로 붐비고 바쁘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둡고 초라하다.


더군다나 오늘은 비까지 내리고 있어 더 을씨년스럽다.


비를 좋아하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딱 질색이다.


내 이름은 강태혁, 나이는 40대 초반에 하는 일은 다들 알다시피 경찰이다.


성질이 워낙 더러워서 같은 기수의 동기들이 진급하고 반장 달 때 난 말단 형사다.


어차피 진급해봤자 골치 아프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서 형사로 남아 있는 게 좋다.


내 개 같은 성질머리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동기는 없고, 고등학교 때부터 싸우면서 친구가 된 나의 유일한 절친인 서 한주, 지금 나의 상관으로 있는 서 반장뿐이다.


녀석이 아니었으면 잘리더라도 진작에 잘렸을 것이다.


고마운 녀석이긴 한데 서로 티를 내지 않는다.


결혼은 10년 전쯤에 했었는데 지금은 없다.


내 이 성질머리를 조금만 죽였었더라면 내가 조금만 참았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늘 남는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가 집어넣은 범죄자 중 한 놈이 나에게 앙심을 품고 내 딸을 납치하는 소동이 있었다.


다행히 좋게 마무리가 되어 내 딸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온갖 협박 전화에 시달리던 내 아내가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이젠 지쳤다는 말에 내가 그만 욱해서 헤어지자고 하는 바람에 진짜 헤어지고 말았다. 참 많이 사랑했는데.


이 죄스러움에 맨정신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한두 잔씩 꼭 마셔야 억지로라도 잠을 청할 수 있다.


“오셨어요.”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들어서자 정 형사가 날 반긴다.


"반장님은?"


“서에 계세요.”


“그 양반 웬만하면 현장엔 데려오지 마라. 짜증 난다.”


정 형사가 멋쩍게 웃어 보인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사건이야? 사창가에서.”


사건이 일어난 곳은 흔히 역전 뒷골목이라 불리는 사창가다.


“네, 여기에서 일하는 여성이 오늘 새벽에 목을 매고 죽어 있던 걸 여관 주인이 발견해 신고했습니다.”


“자살이야? 타살이야?”


“지금으로선 자살 쪽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습니다. 빚이 있는 것도, 원한을 살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더 자세히 조사해봐. 반장한테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면.”


“싫은 소리는 반장님보다 선배님이 더 많이 하시는데요. 농담입니다.”


옆에 있던 그냥 동생처럼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 달라던 우리 팀 막내 최동만 형사와 채 형사가 킥킥거린다.


“이것들이 빠져서! 얼른 일들 해! 일!! 이놈의 자식들아!!!”


난 정 형사의 안내를 받아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들어갔다.


세 평 남짓한 여관방 안에서 나는 분 냄새가 우리를 먼저 반겼다.


한 30대 중반에서 후반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짙은 화장을 하고 야한 옷을 입고 벽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있다.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쇠로 된 방범창에 자기가 신고 있던 스타킹으로 목을 맨 듯하다.


그 고통에 못 이겨 몸 안에 있던 오물들을 모조리 밖으로 뿜어내고, 혀를 길게 늘어트린 채 발버둥 치다 허망하게 간 것 같다. 바닥에는 그 오물들과 이불이 뒤엉켜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체를 봤는데 그중에서도 이렇게 목을 맨 게 제일 비참하다.


난 한 발짝 더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가 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마치 몇 년 전 나를 떠난 나의 와이프처럼..


“무슨 사연이 많아 이렇게 눈도 못 감고 가셨수. 이럴 거면 차라리 가시지나 마시지.”


난 위로 치켜뜬 그녀의 두 눈 위로 나의 손을 올려 감겨 주었다.


“야, 정 형사, 나 먼저 들어갈 테니까 애들하고 현장 마무리 짓고 들어와라.”


난 주변을 한번 살펴본 뒤 경찰서로 향했다.


“수고했다. 비도 오는데.”


서 반장이 나에게 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수고는 무슨.”


옷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있는 나에게 커피 한잔을 권했다.


“여기에 침 뱉은 건 아니지.”


“내가 넌 줄 아냐. 새끼야. 이 새낀 저 생각해서 타다 줬는데도 지랄이야. 처먹기 싫으면 줘.”


“싫긴요. 잘 마시겠습니다. 반장님.”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거렸다.


우린 늘 이렇다.


이게 서로를 위로하고 고생했다. 고맙다. 칭찬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잠시 후 현장에 나가 있던 정 형사를 비롯해 우리 팀원들이 들어왔다.


우린 회의실로 모였고 이어서 정 형사의 사건브리핑이 이어졌다.


“이름 고재희, 나이 39세, 직업 무직(매춘부), 거주지 현재 장미여관 102동에 장기 투숙 중, 가족 고아, 현재 미혼, 사망원인 자살로 추정, 현재 부검센터로 이동, 그 외 특이 사항 없습니다.”


“그럼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받은 손님은?”


“네, 어젯밤 11시경 군인이 한 시간 반가량 머물다 갔다고 합니다. 지금 소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서 반장의 물음에 정 형사가 대답했다.


“그럼 정 형사와 동만이는 사건 현장에 가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주변 탐문 수사도 다시 체크 해봐. 그리고 강 형사와 채 형사는 부검센터 가서 결과 확인하고 그 군인 소재파악 되면 찾아가 봐.”


“반장님, 정 형사나 동만이랑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럼 채 형사 사무실 지키라고 하고 나랑 갈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채 형사 가지.”


난 채 형사를 데리고 부검센터로 향했다.


사인은 역시나 자살이었다.


채 형사는 서 반장에게 보고했다.


“선배님, 그 군인 소재파악 됐다는데요. 방금 반장님으로부터 신상정보와 주소도 문자로 받았습니다. 이름은 허상훈 일병, 20살이고 휴가 나왔다가 오늘 부대로 복귀 예정이라고 합니다. 부대는 강원도입니다.”


“얼른 갔다 오자. 또 강원도까진 언제 갔다 오냐.”


우린 강원도로 향했다.


“채 형사는 근데 결혼 안 해? 웬만하면 정 형사 받아 주지 그래. 정 형사가 채 형사 많이 좋아하더니만.”


채 형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에이, 무뚝뚝한 것! 어째 남자보다 더 무뚝뚝하냐.”


“근데 형부는 언니하고 연서 언제 보내 주실 거에요? 형부도 이제 새 출발 하셔야죠. 그때 그 사고 형부 책임 아니니까 너무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몇 년 전 아내와 그렇게 이혼을 하고 얼마 후, 사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 운영하시던 식당에 졸음운전을 하던 덤프트럭이 덮쳤다는 전화였다.


손님이 없던 시간이라 다행이긴 한데 당시 식당 안에 있던 장모님과 일을 도와주려 같이 있던 아내,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엄마를 쏙 빼닮은 사랑스러운 내 딸 연서까지 그 자리에서 전부 목숨을 잃었다.


내가 그때 아내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아니 내가 잘못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빌었더라면 아내와 연서는 지금 나와 행복하게 살고 있을 텐데.


채 형사는 내 와이프의 동생, 즉 내 처제다. 자매여서 그런지 언니를 참 많이 닮았다.


채 형사를 볼 때마다 죽은 아내와 딸 연서가 자꾸 떠오르고 보고 싶다.


고등학생일 때 처음 봤는데, 형부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고 형부 같은 경찰이 되기 위해선 맨탈이 강해야 한다며 남자들도 못 견디는 특전사에 입대하고 전역을 해 경찰 준비를 해서 사고가 있고 이듬해에 지금 내가 있는 경찰서로 전근을 왔다.


내가 그때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자기가 경찰이 되는 게 먼저 떠나버린 가족을 잊는 데 도움이 된다나. 어떻게 말릴 수가 있겠는지.


“난 아직도 형부가 자랑스러워요. 내리시죠. 도착했습니다. 선배님.”


채 형사의 간결하지만 큰 위로에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허 일병이 있는 부대 앞에 내렸다.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허 일병과 만났다.


20살의 허 일병은 참 앳되다. 잘 다듬어 놓은 밤톨 같다.


나도 저 나이 때 저랬을까? 세월이 참 야속하다.


우리는 신원을 밝히고 사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허 일병은 우리의 이야길 듣고 많이 황당해하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이상하다고 느낀 건 없으셨습니까?”


채 형사의 물음에 허 일병이 대답했다.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이제 휴가가 끝나고 부대에 복귀하게 되면 더는 못 온다고 하니 제가 나올 때쯤엔 많이 울었습니다.”


“무슨 얘길 나누셨나요?”


내가 재차 물었다.


“그냥 제 어릴 적 이야길 잠시 했고, 제 목 뒤에 있는 하트 모양의 점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여성분도 저처럼 목 뒤에 하트모양의 점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근데 오래전에 헤어졌는데 얼마 전에 다시 만났다고 그랬습니다. 근데 제가 그런 곳에 간 것이 죄가 됩니까?”


“아니요. 그렇진 않은데 될 수 있으면 가지 마십시오.”


난 단호하게 얘길 했다.


채 형사와 난 침묵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경찰서엔 정 형사와 동만이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수고했네. 근데 뭐 특이 사항은?”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군인이 단순 호기심에 갔던 것뿐입니다.”


서 반장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그렇군. 정 형사 얘기 계속해 봐.”


“네, 죽은 고재희 씨와 친하게 지내던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여성분 말이 고재희 씨는 18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나와 일을 했고, 당시 사귀던 남자와 원치 않던 임신을 해 남자와 헤어지고 아기를 낳았다고 하는데, 도저히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 보육원 문 앞에 버렸다고 합니다. 몇 년 후 찾아가서 행방을 물어보니 벌써 다른 집으로 입양 간 지 오래 지났다고. 평소에도 그 아이를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근데 며칠 전 그 잃어버린 아이를 만났다고 참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야, 혹시 그 잃어버린 아이 목 뒤에 하트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그러지 않았어?”


“어, 그걸 선배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정 형사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채 형사와 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사건은 자신의 삶을 비관한 어느 여성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 뒤, 모처럼 만의 쉬는 날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납골당으로 갔다.


그곳엔 채 형사가 이미 와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28 wanderlu..
    작성일
    23.10.09 10:39
    No. 1

    너무 슬퍼요 ㅠ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Hi에나
    작성일
    23.10.10 12:00
    No. 2

    항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ka****
    작성일
    23.10.18 07:25
    No. 3

    어긋난 운명....
    그런 운명의 갈림길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군요.
    때론 어긋난 운명이 비극의 시발점이 되는지도 모르겠죠.
    고아 출신 매춘부의 죽음이.... 가슴을 후려치는군요.
    그 매춘부의 수많은 꿈, 환상, 사람답게 살고 싶은 몸부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이 자살과 함께 이름 없이 묻히겠군요.
    어느 매춘부의 죽음......
    곰곰 음미하며 읽고 갑니다.
    건칠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Hi에나
    작성일
    23.10.18 07:39
    No. 4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우리집빌런
    작성일
    23.10.24 13:11
    No. 5

    가슴아프내요.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Hi에나
    작성일
    23.10.24 13:14
    No. 6

    글을 지어내면서도 너무한거 아닌가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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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1화. 완전 범죄를 꿈꾸며 +2 23.11.03 76 6 10쪽
20 제20화. 귀신 헬리콥터(2) +2 23.11.02 91 7 10쪽
19 제19화. 귀신 헬리콥터(1) +2 23.11.01 88 6 9쪽
18 제18화. 십 사만 사천 명 +2 23.10.31 92 7 10쪽
17 제17화. 독극물 테러 사건 +2 23.10.30 93 9 9쪽
16 제16화. 서서히 드러나는 음모 +2 23.10.27 91 7 9쪽
15 제15화. 보고픈 엄마 +2 23.10.26 101 8 9쪽
14 제14화. 불효자 +6 23.10.25 106 10 9쪽
13 제13화. 누명 +2 23.10.24 101 7 9쪽
12 제12화. 권 서장의 죽음 +4 23.10.23 105 7 11쪽
11 제11화. 여아유괴사건(3) +6 23.10.20 115 6 9쪽
10 제10화. 여아유괴사건(2) +6 23.10.19 118 8 9쪽
9 제9화. 여아유괴사건(1) +6 23.10.18 121 8 9쪽
8 제8화. 엔젤 사수작전! +4 23.10.17 129 7 11쪽
7 제7화. 사이비 +6 23.10.16 138 7 13쪽
6 제6화. 사이코패스 +7 23.10.13 138 8 9쪽
5 제5화. 연쇄 살인 +6 23.10.12 195 8 11쪽
4 제4화. 천사의 탈을 쓴 악마 +4 23.10.11 195 12 9쪽
3 제3화. 어디로 갈까나-어느 노파의 죽음 +4 23.10.10 203 9 9쪽
» 제2화. 누구를 탓할까-어느 매춘부의 죽음 +6 23.10.09 257 9 11쪽
1 제1화. 누가 죽였을까.-어느 고등학생의 죽음. +4 23.10.06 426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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