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십 사만 사천 명
잠깐의 짬이 나 서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동만아, 뭐 재미난 걸 보길래 사람이 와도 눈길도 안 주냐? 그러다 대가리들끼리 부딪쳐 불나겠다.”
“선배님 오셨어요. 요즘 핫한 사이비 관련 영상 보고 있었습니다.”
동만이 머 쩍은 듯 인사한다.
“아, 그. 뭐. 동산인가 그거.”
“어. 선배님도 아시네요?”
팀원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본다.
“이것들이 나를 완전 개무시하네. 뭐, 난 맛동산밖에 모르는 줄 아냐!”
“그냥 웃어넘기면 될걸. 왜 그렇게 발끈해.”
서 반장의 핀잔에 뻘쭘해진 나는 말을 돌렸다.
“자. 자. 일들 해. 일! 여기 일하러 왔지 놀러 왔어.”
“강 선배는 일하는 시간보다 딴짓하는 시간이 더 많잖아요.”
채 형사의 팩폭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의실로 가자고. 일하러.”
서 반장의 지시에 우리는 회의실로 모였다.
회의실 안은 마치 사건 현장 같았다.
서류 뭉치와 커피를 담고 있던 빈 종이컵들이 여기저기 널브려져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매일 반복 되는 야근에 잠복까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과로로 쓰러질 법도 한데, 아직 쓰러진 적이 없는 걸 보니 우리는 인간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우린 지금 초등학교에서 폭탄을 터트린 주범인 교감이라는 자를 보름째 쫓고 있다.
그의 집에서 사제폭탄을 제조하는 방법을 찾았던 검색 기록과 사제폭탄을 만들고 남은 소량의 재료들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재료들을 살 때 결재한 카드내역이나 이체내역은 물론 영수증까지 찾을 수 없었다.
꼭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흔적을 지우고 자취를 감췄다.
탐문 조사도 소용이 없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이웃 간의 왕래도 없으며, 심지어 부모는 그가 아주 오래전 죽은 줄 안다.
전국에 현상 수배를 해놨지만, 이것 역시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유령처럼 사라졌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우린 그 유령을 잡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를 기다리며 교대로 보름째 잠복을 하는 중이다.
늦은 밤, 차 안에 타경찰서 형사들과 같이 있노라면 어색함도 없애고, 더 친해지기 위해 술이 절실하지만 그건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고, 담배를 피우거나 오줌을 누러 가는 것까지 참아야만 한다.
오늘도 편의점에서 산 빵으로 허기를 채우며 밖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다.
“강 형사님, 밖은 저희가 보고 있을 테니까 눈 좀 붙이십시오.”
이젠 그들과 좀 친해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정도는 됐다.
“야, 내가 의리 빼면 시체인데, 여기서 눈을 붙이면 나보고 죽으란 거냐.”
난 특유의 조크를 날린다.
바로 그 순간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린 숨을 죽인 채 그 인기척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최 형사, 안에 있는 애들한테 준비하라고 해.”
교감의 집 안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서 반장과 팀원들이 대기 중이다.
수상한 인기척은 주위를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교감의 집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집안에서 우당탕탕 잠깐의 소란이 있은 후, 그가 황급히 집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팀원들도 그의 뒤를 따라 쫓길 시작했고, 그걸 보고 있던 차 안의 일행들도 거기에 동참했다.
그렇게 한밤중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나이도 우리보다 10살 정도가 많은데, 달아나는 속도도 우리보다 빠르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없던 힘도 생긴다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한참을 달리던 나는 옆에서 같이 달리던 최 형사를 불러 세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나한테 좋은 수가 있으니까 날 따라 와봐.”
최 형사는 미련이 남았는지 사람들이 사라진 쪽을 한참 동안 보다가 나를 따랐다.
주변을 살펴보니 마침 택시가 보였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양해를 구한 뒤 택시를 빌려 탔다.
“야, 최 형사, 내가 보기엔 저놈 아주 철두철미한 놈이야. 그러니 앞에 잘 숨어있어.”
조수석에 탄 최 형사에게 단도리를 시킨 뒤, 차를 몰았다.
최 형사는 조수석 아래로 몸을 잔뜩 움츠렸다.
택시는 힘겹게 달리고 있는 형사들을 뒤로 한 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를 지나쳤다.
내 예상대로 그가 택시를 세웠다.
“어디든 빨리 좀 갑시다.”
헐떡이며 택시에 타는 순간 차 문을 잠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할 때 움츠려 있던 최 형사가 정체를 드러냈다.
최 형사를 본 그가 팔꿈치로 차 유리를 깨려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연석! 그만 포기해!”
최 형사가 그를 제압하려는 순간 그가 품고 있던 칼을 꺼내 휘둘렸다.
“선배 문요.”
그와 실랑이를 하려는데 채 형사에게서 무전이 왔다.
무전을 받은 나는 잠긴 뒷문을 열어주었고, 그가 열린 문으로 택시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채 형사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발차기의 충격으로 그는 택시 뒷좌석을 관통해 반대쪽으로 차 문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그는 정신을 잃었다. 잠깐이지만 발차기를 맞고 뻗은 범인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먼저 데리고 갈까 생각했는데, 70%만 힘을 줬다는 채 형사의 말에 경찰서로 바로 가기로 했다.
저 멀리 나에게 차를 빌려준 택시 기사에게 잘못했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서 반장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서로 옮겨진 그는 몇 시간 만에 겨우 눈을 떴지만, 발차기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정말 채 형사 70%의 힘으로 찬 게 맞습니까?”
최 형사가 채 형사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야, 너 채 형사 발차기 100%로 안 맞아 봤지. 내가 맞을 수 있는 영광을 줄 테니까 나중에 한 번 맞아봐. 정 형사는 그때 일주일 만에 깨어났을 걸 아마.”
최 형사가 내 말에 아주 기겁을 한다.
최 형사. 권 서장 사건 때 나를 체포하러 왔던 형사 무리의 리더다. 처음에 악연으로 만났지만, 보름간 잠복을 하는 동안 대화를 해보니 나와 코드가 잘 맞았다. 그걸 계기로 형 동생을 하기로 했다.
“최 형사, 이제 조사를 하러 들어가자고. 정신없을 때 물어봐야 바른대로 말하지.”
“이연석 씨,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묻는 말에 바른대로 말하세요.”
나와 얘기 할 때와는 다른 얼굴로 최 형사가 포문을 열었다.
“십 사만 사천 명을 채워야 해. 십 사만 사천 명을 채워야 해···.”
그는 우리가 묻는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봐요. 이연석 씨! 십 사만 사천 명이 뭔데 자세하게 말 좀 해 봐요.”
그를 다그치려는 나를 최 형사가 밖으로 불러낸다.
“형님, 저 사람 아무래도 이단이나 사이비와 연관이 있는 거 같습니다.”
“사이비? 뭐. 내가 예수다. 그러는 놈들 말하는 거야.”
잠시 인숙이 아줌마 때의 일이 떠올랐다.
“네, 저 사람이 말하는 십 사만 사천 명이라는 말이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인데,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입니다. 선택받은 십 사만 사천 명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서 반장을 불렀다.
“뭐야? 그럼 그 십 사만 사천 명을 채우기 위해 폭탄을 터뜨려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지 조사 한 번 해봐.”
몇 시간 후, 외근을 나갔던 정 형사와 동만이 돌아왔다.
“반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한 20여 년 전 모 군부대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점호하던 도중 수류탄이 터져 많은 수의 병사가 죽었습니다. 근데.. 그게.. 그 군부대가 이연석 씨가 근무하던 부대였습니다. 당시 사건 일지를 가져왔는데 좀 보십시오.”
우리는 정 형사가 가져온 사건 일지를 봤다.
사건 일지에는 당시 조사를 받긴 받았는데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놨다고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조사실 안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 사탄의 무리들아, 썩 물러가라. 우리 주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모두 다 회개하고 천국에 가자꾸나.”
그 말을 남긴 채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해하려는 그를 테이저건을 쏴 제압했다.
그는 그 두 번으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희생자가 더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걸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실종 신고가 된 사람들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몇몇 실종자에게서 똑같은 종교 단체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우리는 상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리를 필두로 경찰 타격대와 군부대가 동원되었다.
그들의 완강한 저항을 뿌리치고 그들이 성전이라 일컫는 곳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단서가 될만한 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주교라는 사람이 노발대발하며 전부 천벌을 받을 것이라며 난리를 쳤다.
괜히 뻘쭘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 눈에 성전 뒤로 있는 동산이 보였다.
서 반장과 나는 두말 할 것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을 파보니 파는 곳마다 시체가 나왔다. 그걸 본 우리는 모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주교라는 자를 체포해 조사하려는데, 지금껏 헛소리만 하던 그가 모두 자기가 단독으로 저지른 짓이라고 자백을 했다.
그 이후 주교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모든 죄를 이연석 교감 그가 전부 뒤집어썼다.
이런 부당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비록 경찰이긴 하지만 불법적으로라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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