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베는 천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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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13 17:13
최근연재일 :
2023.12.08 11:35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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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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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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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의회 소집

DUMMY

늦은 밤.


나무가 열기 속에서 작열하며 주황색 불줄기를 피워냈다.

모닥불의 연기를 타고 날아오른 재는 무수히 많은 반딧불이처럼 어두운 허공을 부유했다.

그 어둠 속의 열기를 벗하며 앨런이 말했다.


"마스터.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그래."


우웅...


쉬리더의 무릎에 반듯이 올려진 검.

그 위로 조각 조각 부숴져 나오는 오러.

그것은 베이고 뭉개진 쉬리더의 상처를 급속도로 회복시키고 있었다.


"피 흘리고 다치는 역할이야 늘 익숙하지. 헌데.."


반만 열린 쉬리더의 눈꺼풀.

그 안 있던 청회색 눈동자가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그 시야가 닿은 곳에, 템파의 주검이 바르게 뉘여 있다.


"이건... 이런 죽음은 정말 아프구나. 마치 가슴 속에 칼 하나가 들어와 온통 휘젓는 느낌이야."

"..."


제자를 잃었다.

이후 후배를 잃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동료마저 잃게 되는 구나.."



기사도.

초대 의회단에 의해 발의,

천 년을 넘는 세월 동안 불문율로써 유지해 온 오러기사의 3계율.


이를 어긴 자가 받는 형벌은, 오로지 척살 뿐이다.


척살.


그것은 스승을 대상할 시 그 제자도 함께,

제자를 대상할 땐 그 스승도 함께,

동반하여 영을 받게 된다.


하나의 과오로 두 사람의 운명이 끊어지는 절대계율.

장구한 공화국의 세월 속에 이 규칙을 거슬러 살아 남은 이는..


"지극히 소수였지."


쉬리더가 말했다.


"물론 있다. 그런 자들이. 3계율을 거부하고, 신께 받은 힘을 오로지 그릇되고 사사로운 곳에서 발휘하는 집단. 그들을 '다크 터너Dark turner'라 부른다."


다크 터너.


그들은 변질된 오러인 '다크 오러'의 힘으로, 시시각각 공화국에 위협을 몰아오는 존재들이다.

그 구성원은 손에 꼽을 만큼 소수.

허나 그 하나가 열 기사를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극히 사악하고도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


"마법사들만큼이나 해롭고 위협적인 존재지. 허나 템파는... 아니었다. 확언하건대, 그에게선 다크 오러가 느껴지지 않았어."


휴... 쉬리더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헌데 어째서, 대체 무슨 까닭으로 마법사와.. 그리고 마스터 퀸린은 얼마나 통탄막심할지.."

"마스터.."


지금 이 순간, 앨런의 눈 앞엔 그가 익히 알고 있는 마스터 쉬리더의 모습은 없었다.

비탄의 수렁에 빠져 시름하는 지친 노인. 그 하나만 있을 뿐.


그 노인을 수렁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앨런이 알기로 그 방법은 오로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침묵하는 것.


...


그렇게 고요한 상태로, 얼마 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제자야."


쉬리더가 말했다.


"켄을 이용해, 나는 템파가 가지고 있던 기억의 일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물론 녀석이 급작스럽게 자진하는 바람에 그 형태가 온전하진 않았지."


쉬리더는 템파의 관자놀이를 짚었던 자신의 두 손가락을 바라보며,

아픈 곳을 찔린 것처럼 낮게 신음했다.


"허나 몇 가지 강렬한 이미지가 내게 전달됐다. 아이... 어쩐지 템파를 약간 닮은 듯한, 예쁘장한 여자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더구나. 나이대는 아마도,"


앨런 너와 얼추 비슷한 것 같더군. 쉬리더의 눈이 제자를 향하며 말했다.


"열 셋? 열 넷? 기껏 많아도 열다섯이나 될 법 했지. 이제 막 숙녀가 되기 시작한 아이 같았어."

"같네요."


앨런이 말했다.


"십년에서 십오년. 템파 씨가 행방불명 됐던 그 시기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그래."


쉬리더는 위축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도의 3계율 중, 마지막 계율을 기억하느냐?"

"예."


물론 한글자 톳씨 하나 틀린 것 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셋. 육욕과 재물의 탐욕에 초탈한다."

"..어긴 것이다."


쉬리더가 말했다.


"혼인인지, 혼외인지 알 도리는 없으나. 어쨌든 딸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템파는 기사도의 마지막 계율을 위배했다. 육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 정도는... 정말 그 정도가 전부였더라면."


죄책이 그리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고작 해야 구류 당하거나, 높은 강도의 정신 교육으로 계도받았을 터.


"허나 난 분명히 느꼈다. 그 아이.. 템파의 여식은, 틀림없이 마법사다. 그것도 보통 수준 이상일 게야."

"무엇 때문에 그리 생각하십니까?"

"템파의 기억과 끊어지던 찰나, 내 기억 속에 들어와 있던 그 아이에게서 마법사들에게나 느껴질 만한 마나가 느껴졌다. 그 농도가 어찌나 강렬한지... 묵도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지경이더구나."

"..."


앨런은 가만 듣고 있다가, 문득 '꽃'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꽃을... ..가 피워 낸... 아름다운 꽃을...'. 템파 씨는 죽어가면서, 분명 이러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래. 분명 그런 말을 했었지.."


쉬리더는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런 이미지 또한 스쳐갔다. 아이가 수많은 식물에 둘러싸인 모습. 아마도 그것과 연관이 있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도시에 있을 겁니다."

"무어라?"

"템파 씨는 이 근방에서 사람을 죽이고, 심장을 강탈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마스터와 싸우던 와중에도 연신 해 지는 방향만을 바라보고 계셨죠. 그렇다면..."


앨런의 속눈썹이 잠시간 파르르 떨렸다.


"그 강탈물의 「공급처」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스터께서 말씀해주셨듯, 도시는 여기에서 금방이고요."

"그래. 그럴 듯 하구나."


쉬리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쓸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도시가 근거지임을 확정할 수 있을까?"

"여장이 무척 가볍습니다."


앨런은 템파가 뉘여진 곳 근처를 가리켰다. 거기엔 죽은 템파의 소지품들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목 축일 수통 하나, 그리고 건량 주머니 하나가 전부. 특히 이것들, 보이십니까?"


앨런이 주머니를 집어, 그 안에 있던 건량 하나를 꺼내 보였다.


"별 모양입니다."


그 다음 앨런은 다른 건량들을 차례차례 꺼내보였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진 그것들의 모양은 가지각색이었고, 크기 또한 균일하지 않았다.

어딘가 모를 조악함이 느껴지는 모양과 만듦새.


"이건... 파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직접 만든 모양이구나. 설마.."

"예."


앨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템파 씨의 딸이 만든 것이겠죠."


최소한의 조리 환경을 갖출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추론으로 그들의 근거지가 척박한 야지나 황무지가 아님을 예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십 여년이 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딸을 키웠다는 건."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있다는 말이겠지."

"맞습니다. 이렇게 저희가 수집하고 추론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템파와 그 딸은 도시에 근거하고 있다.

딸은 마법사이며, 나이는 열셋에서 열다섯 정도로 추정,

아마도 식물과 관련 된 권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먹을 심장은 대부분(어쩌면 항상) 템파가 조달하고 있는 듯 하나, 오늘 밤 그녀는 굶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게 되겠죠. 어쩌면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겠고요."

"..."


굳게 다문 입술과 함께, 쉬리더의 이마에 깊게 미간이 패였다.


"아무래도 그 아이를, 빨리 만나야겠구나."

"엘쉬나."

"응?"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앨런이 꺼낸 건량 하나.

그것을 본 쉬리더의 두 눈이 차츰 커졌다.


"이게 우리가 찾는 아이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다른 것들보다 유달리 커다란 크기를 가진, 하트 모양의 건량.

그 한 가운데, 앨런이 말한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




날이 밝았다.


"의관을 정제해라."


쉬리더가 말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되도록 머리도 가지런히 정리하도록."

"예."


앨런은 스승의 말을 곧이 따랐다.

쉬리더 역시도 모처럼 공을 들여 수염을 다듬고,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있었다.


쓰- 쓰르르-


풀벌레가 우는, 양지 바른 곳.

템파의 시신은 그곳에 바르게 뉘여 있었다.

다만 어제와 달리 방치되어 있지않고 깨끗한 천으로 염殮해져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그래."


이제 앨런도 쉬리더도 격식을 다 갖추었으니,

마침내 장례식을 시작할 참인가 싶었다.

하여 무덤 자릴 만들어 볼 참이었는데,


"마스터, 땅을 팔까요?"

"아니다."


어째선지 쉬리더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할 것은, 템파의 장례식이 아니야."

"예? 그게 무슨..."

"지켜 보거라."


그렇게 말하고서 쉬리더가 한 것은,

두 손으로 다잡은 검을 바닥에 푹 꽂아넣는 것이었다.


"로드-그랜드 마스터Load-Grand Master."


쉬리더의 입에서 나온 뜻모를 문장.

그와 함께 검 손잡이를 중심으로, 검신의 밑부분까지 싯푸른 오러가 치지직 흘러내렸다.


우우웅...!


바닥까지 적신 오러. 이윽고 검신과 직각을 이루는 수직선이 그려지며 그 위로 빛이 확 뿜어져 나왔다.


윙- 파밧!


일정한 간격을 두고 훅 쏘아지는 빛의 선.

그 선의 끝에서, 별안간 사람의 형체를 한 인형 하나가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터?"


앨런이 채 놀랄 틈도 없었다.

검을 중심으로 펼쳐진 오러의 선.

그리고 그 빛깔이 고스란히 입혀진, 오러의 환영.


- 마스터 쉬리더.


- 오랜만이로군.


그 환영체가, 스스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렉스뮤."


환영체를 향해 쉬리더가 길게 읍했다.


"오러의 정점에 달하신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위대한 신탁을 따르는 기사단의 무상의장無上議長이시여."

"...!"


'그랜드 마스터'라는 극존칭. 덧붙여 한껏 격식을 차린 존경의 인사.

그것만으로 앨런은 환영체가 가진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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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검의 성소(2) 23.11.22 556 14 18쪽
11 검의 성소(1) 23.11.21 595 17 14쪽
» 의회 소집 +2 23.11.20 626 19 10쪽
9 검의 신탁(3) 23.11.19 646 21 20쪽
8 검의 신탁(2) 23.11.18 654 23 12쪽
7 검의 신탁(1) +2 23.11.17 720 27 14쪽
6 훈련 +1 23.11.16 822 29 17쪽
5 당기는 손, 밀어내는 발 +1 23.11.15 920 27 13쪽
4 네 능력이 참 유용하구나 +1 23.11.14 1,074 25 14쪽
3 심장을 먹는 마법사(2) +4 23.11.13 1,284 34 16쪽
2 심장을 먹는 마법사(1) +4 23.11.13 1,517 38 19쪽
1 모두에게 천재로 불리웠다. +3 23.11.13 2,342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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