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베는 천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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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13 17:13
최근연재일 :
2023.12.08 11:3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7,262
추천수 :
499
글자수 :
190,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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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5 14:00
조회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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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20쪽

검의 성소 (5)

DUMMY

"얘야... 잘 들어라."


한 마법사가 말했다.

창백한 입술로 소리 없이 웃는 미소.

입꼬리가 점점 길게 찢어지며 인간과 먼 듯한 인상으로 변해갔다.


"어떤 기억은, 스스로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기도 한단다."


마법사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온 가족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 할머니.

그리고 일곱 살이나 많은 매트 형까지.

양 팔을 허공에 건 채, 두 발은 공중에 띄운 채로.

유트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살아나고 자라나서. 마음껏 울부짖기도 하지. 이 자들처럼."


딱!


마법사가 지팡이를 두드리자 가족들이 입을 열어 소리 내기 시작했다.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주가 된 채, "으아아아" 신음 하며.


"이윽고 기억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를 잊지 말라고'. 그렇게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는 거야..."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

네 사람의 가슴이 쫘악 벌어지면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오고,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마법사는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그것이 '심장'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곤 한층 더 무섭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야. 지금부터 이 기억은 네 안에 살아나 자라게 될 것이다. 영원히."





*




유트는 울었다.

또 나쁜 기억이 떠올라 머리를 아프게 했다.


"흑. 흑. 으흑."


텅 빈 공간 사이로 아이의 흐느낌이 울려 퍼졌다.

괴물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잿빛 털투성이 몰골.

허나 두 손을 들어 촉촉한 눈두덩을 훔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 같았다.


"나빠. 너무 나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온 가족이 죽었던 날. 유트는 홀로 살아 남았다.

그리고 철창 안에 갇힌 채 몹쓸 짓을 당했다.


"약 먹고... 이상한 주문같은 것도 많이 듣고..."


점점 몸이 변해 갔다. 그럴수록 마법사는 점점 더 기뻐했다.

이후 시간이 더 흐르자 입은 주둥이로 변하고 말은 소리가 되더니, 마침내 짖음으로 변했다.

그때서야 마법사는 철창을 열어 주며, 그를 '키메라'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 첫 번째 성공작!


이렇게 알아듣기 힘든 칭찬을 해 주었던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 날 유트는 힘들었고, 아팠으며. 많이 울기만 했다.


"그...런데."


하염없이 울먹이던 유트의 입가가 순간 미소로 빙긋거렸다.


"맛은... 있었어."


츄르륵! 새하얀 비늘이 돋아난 유트의 혀가 입 속에서 뒹굴었다.

이내 볼 안에 침이 가득 배어나오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인간의 맛'이 떠올랐다.


"인간. 유트는 실컷 먹었어. 흐흐. 좋았어!"


유트는 격앙된 듯 두 손을 흔들었다.

농노의 자식일 땐 늘 배고팠다.

건더기 하나 없는 밀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고,

그렇게 배고프다 울 때마다 할머니와 형이 유트를 끌어안고 이런 노래를 불러주었다.


- 음음음, 음음, 음,음,음...!


멜로디만 선명할 뿐, 가사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그 노래.

유트는 이 노래가 참 좋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배고픔의 고통을 달랠 순 없었다.

그런데 그가 키메라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부턴 더이상 배고프지 않았다.


- 심장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마음껏 먹어라!


마법사는 유트에게 노래를 불러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배고픔에 굶주리게 하진 않았다.


'인간을 잡아먹으면,'


늘 배부르고 든든했다. 유트는 그 맛이 미치도록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안 돼!"


유트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제 머리를 쥐어 박았다.


"유트는 나쁜 생각했어! 안 돼!"


작고 못생긴 할아버지가 그랬다.

인간을 먹지 말라고. 그건 매우 나쁜 거라고.

그래서 여지껏 그 말을 잘 따라왔는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유독 참는 게 어려웠다.


'유트가 나쁜 아이여서일까?'


그래서 가족들도 죽고, 자신도 이렇게 흉측한 괴물이 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서러웠다.


"음음음, 음음, 음,음,음...!"


반은 울먹이고, 또 반은 흥얼거리면서. 유트는 노래 불렀다.

유트는 잠시나마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노래를 부르면 늘 형이 떠올랐으니까.

유트는 진짜로 형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마.. 아니 형아."


새로 생긴 형도 보고 싶었다. 유트보다 많이 작은데, 무려 열 몇살이나 더 많은 형.

여기서 할아버지가 시킨 시험을 봐야 하는 형.

유트는 그 형을 생각하자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슬쩍 웃음이 지어졌다.


"히히. 엄청 작은데. 형이야!"


새 형은 매트 형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매트 형이 형 같았다면 새 형은 친구같고, 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안쓰러운 느낌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트에 비해 너무 작았으니까.


"그래도. 보고 싶어."


유트의 손을 잡아주며 새 형은 말했다.

꼭 다시 만나자고. 세상에서 제일 쎈 '약속'이라는 것을 하면서.

그때 유트의 마음은 슬프면서도, 어쩐지 기쁜 마음이 들었다.

유트는 새 형을 다시 만나면 저번보다 꼭 오래 있으면서, 같이 노래도 부르자고 할 생각이었다.


끼이이익...!


그렇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



"와!"


행복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표정이었다. 유트는 열린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앨런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다.


"형이다! 형이 왔다!"


혹자가 보았을 때 그 광경은 기묘하고도 소름 끼쳤다.

영락없는 쥐의 몰골에,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몸뚱이와 발성기관으로 울부짖는 괴물.

벽면에 나란히 걸린 횃불의 은은한 조도마저도 그 흉측한 모습을 부각시킬 뿐이었다.

제아무리 담력이 센 사람이라도 뒷걸음질 칠 만한 모습이다.


"또 만났다. 형아는 약속 지켰어!"


그럼에도 쿵쿵 뛰면서, 기뻐하며 환호하는 그 모습은.

차마 괴물이라는 말 한마디로 폄하할 수 없는 깨끗함과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 가련함을 앨런도 알았다.

그렇기에 북받치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유트."


앨런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이어서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할아버지!"


유트는 문제의 정답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씩씩하게 외쳤다.


"작은 할아버지가 여기 있으랬어. 유트는 말 잘 들었어. 그런데, 와! 형이야!"


기쁨에 겨워 막 떠드는 유트와 달리 앨런의 표정은 어두웠다.

불현듯 마지막 3관문의 문구가 떠올랐다.



- 악을 멸하라.



글자는 스스로 생명이라도 얻은 듯, 앨런의 마음 속에 엄정히 선고함으로써 파문을 일으켰다.


'악을 멸하라.'


하지만 이곳의 어디에 악이 있는가?

그저 세상 모른 채 기뻐하는, 순진한 네살바기 아이만 있을 뿐인데.


"악은... 없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앨런은 허공을 향해 부르짖었다.


"멸해야 할 악 따위, 여기엔 없어!"


- 그렇다면 넌 기사가 될 수 없다.


앨런의 머릿속에 퍼지는 목소리. 그랜드 마스터 렉스뮤였다.


- 싸울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


- 그것은 오로지 자네의 선택일세. 마스터 쉬리더의 제자 앨런.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앨런은 미친듯이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 따윈 없었다.


"...유트?"


유트가 변하기 시작했다.

두 눈에 어려 있던 오러의 형이 급격히 흐려지면서, 동공 가득 새빨간 핏줄이 불끈 솟아났다.


"어? 형."


목소리도 변했다. 쇠를 갈듯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앨런의 머릿속이 뒤흔들렸다.


"형... 혀,엉!"


유트의 목소리가 마치 개가 짖듯 긁어대더니, 점점 발음이 형편없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싯누런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유...트가, 유흐가 헝, 어거도 애?"

"뭐라고...?"

"형, 먹어도, 되...냐고!"


당혹, 슬픔, 분노. 그런 것들이 앨런의 얼굴에 드러나며 부유했다.


"안돼.."


앨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안에 피 맛이 쓰게 번졌다.


"이런 시험은 납득할 수 없-!"


촤악!


앨런의 가슴 위로 붉은 피가 와락 터져 나왔다.

살갗을 훑고 지나간 서늘한 감각이 반 박자 늦게 찾아 오면서, 눈앞에서 유트의 양 발톱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크워어억!!"


유트가 짐승에 가깝도록 사납게 포효했다.


"잡아, 먹-어-!"


유트의 열 손가락이 사신의 손짓처럼 앨런을 향해 뻗쳐왔다.

공기의 파편이 손끝으로 쫘아악 찢어지며 앨런의 사지를 파편으로 날려버릴 것 같았다.

앨런은 그 기세를 피해 두 발로 땅을 박차 공중으로 떠올랐다.


"유트, 정신 차려!"


핏물이 울걱 터져 나오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앨런은 애닳는 심정으로 외쳤다.


"싸우면 안 돼. 서로 해치거나, 다쳐서는..."


크워억!


허나 돌아오는 건 섬뜩한 포효성 뿐이었다.

역관절로 휘어진 유트의 다리가 화살처럼 튕기면서, 앨런과 사이에 둔 몇미터 거리가 순간적으로 없어졌다.


쉬익!


날카로운 다섯 개의 손톱이 얼굴을 할퀴어 왔다.

마침내 앨런은 검을 한 바퀴 크게 휘둘렀다.


"신속 제1형,"



""쉬리켄!""



카카캉!



마치 방어막을 형성하듯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검.

칼보다 더 흉흉한 손톱 두 개가 한 번의 검로에 불꽃을 튀기며 싹둑 잘려 나갔다.

그 과정이 흡사 찰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휘리릭!


유트는 공중제비를 돌며 요란하게 착지했다.

이후 부러져 나간 손톱을 조금 늦게 인지한 뒤, "크아아아!" 하고 사납게 울어댔다.


- 괴물.


렉스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놈은 악이다.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 저주 받은 본능으로 타락했으니, 이를 어찌 악으로 규정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닥치세요!"


과감하게도 그런 말이 나와버렸다. 그만큼 이 상황에 앨런은 환멸감을 느꼈고, 렉스뮤의 처사 또한 반발심이 들었다.


"남의 정신을 지배해놓고 조종하면서, 멋대로 악을 규정하지 마십시오!"


- 놓아준 것이다.


촤악!


렉스뮤의 목소리가 또렷하고 차갑게 들려오면서, 유트의 꼬리가 앨런을 향해 채찍처럼 휘둘렸다.


- 녀석이 가진 본성으로 돌아올 수 있게, 그저 놓아주었을 뿐이야.


꼬리는 앨런의 허리를 휘감고는 그대로 당겼다.

끌려온 앨런의 얼굴에 낭패감이 떠올랐다.

유트는 주둥이를 쩍 하고 벌리면서 그대로 앨런의 머리를 집어삼키려 했다.


"켄!"


벽쪽에서 우득 하고 뜯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횃불 하나가 날아왔다.

앨런이 켄을 실어 끌고 온 것이었다.


퍽,

화르륵!


횃불은 유트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뜨거운 불티가 등허리까지 와르르 쏟아지자 유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서걱!


뒤이어 말끔한 소리를 동반한 참격이 선을 그렸다.

유트는 사냥감을 묶고 있던 자신의 꼬리가 잘린 채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피슛.


꼬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어찌나 빠르게 절단했는지 통증조차 뒤늦게 찾아왔다.

앨런은 감겨 있던 꼬리를 풀었다.

그리고 훅 끼쳐오는 바람과 함께 캉! 캉! 입질을 해오는 유트의 공격을 척의 발걸음으로 빗겨냈다.


"...젠장!"


정신 차리고, 이제 그만 싸우잔 말을 하고 싶었다.

허나 유트가 들어줄 성 싶지 않았다.


"크...워어어어!!"


더이상 예전의 유트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앨런에게만 시선을 꽂아 넣고 주둥이를 딱딱거리면서 아쉬움에 몸을 떠는 모습.

식욕에 젖은 포식자의 눈빛이다.


- 상대의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보는 눈이 흐려졌구나.


렉스뮤가 말했다.


- 그건 위선이지, 온정이 아니다.


앨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유트와 싸우지 않기 위해 시간을 벌었다.


훙, 훙!


유트가 뛰어드는 발걸음마다 횃불을 끌어왔다.

인력으로 끌려온 불이 유트의 발끝에 튀겨나가면서 불똥을 튀겼다.

유트는 더욱 포학하게 울부짖었다.

횃불이 밟혀 사라질 때마다 공간의 어두움도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유트는 그 어둠이 익숙한 듯 그림자 속으로 물러나, 설치류 특유의 싯뻘건 안광을 번뜩였다.


캬아악!


소름끼치는 하악질이 흘러나왔다. 어둠이 괴물의 본성을 더욱 부추긴 것 같았다.

주둥이에 뻗친 수염은 팟 하고 가시처럼 솟구쳤고 손톱은 예리하게 세워져 까딱거렸다.


"크르르... 카아아악!"


그 상태로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허리를 숙인 채 두 무릎을 낮추었다.

양 시선은 정확히 앨런을 직시한 채로.


"유트.. 들어 봐."


한 자락 희망을 붙잡는 듯, 앨런은 침착하게 타이르는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나가자. 같이. 난 지금부터 이 시험을 포기할 거야."


- 소용 없다.


렉스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포기하든 안 하든, 키메라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아.


"나가자!"


붉게 타는 듯한 유트의 시선을 받으며, 앨런은 시선을 떨구지 않고서 소리높여 외쳤다.


"나가자 유트. 네가 여기까지 데려다줬던 것처럼. 같이 손 잡고 나가는 거야."


스으으으...


소년의 검은 머리칼 사이로 드리워진 초록빛 눈동자. 그 색이 한층 더 깊어졌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유트의 동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큭, 크르르륵..."


잔뜩 일그러뜨린 표정이 살짝 풀어지더니, 낯설지 않은 소리를 들은 것처럼 이마를 꿈틀 움직였다.

이내 일으켜 세웠던 손톱이 풀 죽어 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 방금 네게서 마나가 느껴졌다.


그때부터 렉스뮤의 목소리가 무섭도록 돌변하기 시작했다.


- 기사를 지망하는 이가, 그런 삿된 짓을 해서야 되겠느냐!


바닥을 딱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어딘가에서 렉스뮤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유트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지더니 고통스럽게 머리를 감싸쥐었다.


"각, 가하하학!!"


주둥이 아래론 거품이 흘러나왔다. 머리를 부여잡은 채 몸을 덜덜 떠는 걸 보니 뇌가 진탕이 되어가는 듯했다.


- 켄으로 속박한 정신 지배를 완전히 풀었다.


렉스뮤는 더할 나위 없는 차가움으로 말했다.


- 이제 그 키메라는 완벽한 괴물이다.


"그만!"


앨런은 더 이상 정의라는 이름아래 자행되는 모순을 견딜 수 없었다.


"관두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쿵!


크와오오오!!!



유트가 힘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며 앞으로 돌진했다.

빛살처럼 빠르면서 동시에 매서웠다.

앨런은 유트가 저쪽 멀리 떨어져 있다가 그냥 코앞까지 짓쳐온 것처럼 보였다.

유트는 양 손톱을 세워 그대로 내리그었다.


푸쉬익!


압력이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앨런은 피 보라를 흩뿌리며 뒤로 멀리 나가떨어졌다.

쾅 하고 그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유트는 네 발로 벽을 타며 사냥감을 추적했다.


"캬하!"


기합이 들어간 단절음과 함께 유트는 그대로 앨런의 위로 뛰어내렸다.

칼처럼 벼려진 손톱이 허공에서 시리게 번뜩였다.

그 순간 앨런의 검이 쉬지 않고 날뛰었다.

앨런의 발휘한 쉬리켄은 신속의 묘리를 완벽히 담아내고 있었다.


쌔새색!!


바람이 입자 단위로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허공 위로 핏조각이 비산했다.


"끄-워어억!"


유트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남아 있던 여덟 손톱 중 다섯 개가 부러져 나가고 곳곳에선 칼집이 투두둑 터져 나갔다.

앨런은 아까와 같은 기적을 바라며, 또다시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유트. 이제 그만하고 나랑 같이 나각!!"


꽝!


무언가 강력하게 메다 꽂히는 소리가 나면서 앨런의 허리가 바깥으로 꺾여 나갔다.

복부 한 가운데 유트의 발이 꽂혀 있었다.


"크와오!"


떨어져 나가려던 앨런의 몸뚱이를 유트의 꼬리가 낚아챘다.

잘려나가 반쯤 남아 있었지만 목을 휘감기엔 충분했다.


"크윽!"


앨런의 두 발이 허공에서 발버둥쳤다.

축축하고 질긴 꼬리가 살과 살 사이를 쫘아악 파고들어 더 이상 호흡할 수 없었다.

갈 곳 잃은 혈액이 안구 위로 모여들어 붉게 소용돌이쳤다.


"쿠-와아악-!!!!"


촤악!


유트의 주둥이가 앨런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한움큼이나 되는 살덩이가 떨어져 나오며 핏줄기가 튀어 나갔다.

앨런의 두 눈이 고통과 절망으로 깜깜해졌다.


- 악을 멸하라.


렉스뮤가 굴곡 없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 네가 살고, 그 불쌍한 키메라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앨런은 두 눈을 감았다.

손에 쥔 검은 서서히 놓아주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유트의 입속에서 생살이 마구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앨런은 눈을 떴다.


"..미안하다."


다시 검을 쥐었다.

이윽고 자신을 둘러싼 대기와 그 너머에 있는 오러까지 호응하는 것을 느끼며,

완벽한 초승달 모양의 검식을 펼쳤다.


"신속 제2형,"



""달빛섬광""



진흙을 베는 것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졌다.

달을 그리는 칼날이 유트의 목을 지나갔다.


"큭, 커걱. 커어억!"


유트는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목덜미에서 파스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핏빛 선이 뿜어져 나왔다.


쿵!


유트의 두 무릎이 땅을 울렸다.

소년의 두 뺨은 눈물로 번들거렸다.

앨런은 그 앞에 같이 무릎 꿇으며, 또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이려 했다.


촤악!


허나 곧바로 유트의 꼬리가 앨런의 턱을 후려쳤다.

공기가 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앨런의 고개가 크게 흔들렸다.


"극, 그와아악!"


유트는 한 손으로 목을 틀어막은 채 성큼 앨런에게로 다가갔다.

포식의 본능만이 남은 주둥이가 쉴 새 없이 딱딱 거렸다.

앨런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정말 유트가 악의 존재인지 생각했다.

그러다 끝내 결론짓지 못한 채, 슬프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쿵, 쿵!


마침내 유트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피비린내, 누린내가 훅 끼쳐왔다.

그렇게 약 5초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혀...형."


유트의 발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앨런은 내렸던 고개를 들었다.


뿌득, 뿌드드득...!


유트가 울고 있었다.

온 몸에 힘을 잔뜩 넣은 채, 양 팔을 들어올린 상태로.


"미, 미안해."


온통 새빨갛던 동공에 검은 눈동자가 맺혔다. 그 아래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두 뺨을 타 턱밑으로 흘러 내렸다.


"나.도. 미안해. 형."


앨런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왼쪽 겨드랑이.

그 위로 돋아난 통통한 아기 손.


꾸우욱...!


그 손이, 꽉 주먹을 쥐고 있었다.

네 손가락이 엄지를 감싸 말아 쥔, 흔히 말하는 고사리손 형태로.


"형은... 가."


바르르르...


고사리손이 덜덜 떨렸다. 안간힘을 다하는 듯했다. 솜뭉치를 뭉쳐놓은 듯한 그 작은 손이 힘이 들어가 빨갛게 물들었다.


"유트는 혼자."


유트의 입은 덜덜 떨리면서 겨우 겨우 사람 말을 흉내 내었다.


"형아도, 혼자."


크으윽! 괴물로 변해버린 아이에게서 침과 눈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


"잘...가."


괴물의 어딘가에 남아 있는 인간의 이지理智.

아이는 그러한 인간성을 끌어 모으고 또 끌어모아, 형에게 외쳤다.


"나, 죽여 줘!"


앨런의 가슴에 뭔가가 급속도로 북받쳐 올랐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통곡에 가깝게.


"흑. 으흐흑. 유트! 유트으-!"


참아보려 했지만 주체할 수 없었다.

목이 쉴 때까지 부르짖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앨런은 검을 들었다.

아이는 인사했다.


"형아. 잘 가."


촤악!


소년의 검 끝에서 슬픈 달빛이 떠올랐다.

유트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며, 몸뚱이가 땅으로 기울어졌다.


쿵!


한 차례 흐윽 하고 숨 몰아쉬는 소리와 함께, 유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꽉 주먹을 쥐고 있던 조그만 아기 손은 꽃봉오리가 피는 것처럼 천천히 벌어졌다.

앨런은 털썩 주저 앉아, 그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짧은 노래 하나를 불렀다.


"음음음, 음음, 음,음,음..."


붙잡은 작은 손에서 체온이 빠져 나갈 때까지, 소년은 노래를 수없이 되뇌었다.

마침내 괴물의 눈밑에서 눈물이 마르고. 소년은 한참 동안이나 목놓아 울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어 자리에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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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가 제일 잘 하는 것 23.12.05 210 8 13쪽
23 마법의 식물 23.12.04 246 10 10쪽
22 영주의 야망 +1 23.12.03 333 10 16쪽
21 새로운 동료 23.12.02 353 11 17쪽
20 쇠꽃의 비밀 +1 23.12.01 399 10 10쪽
19 첫 번째 임무 (2) 23.11.30 396 10 16쪽
18 첫 번째 임무(1) 23.11.29 430 13 15쪽
17 마법을 베는 검 (2) 23.11.27 520 15 21쪽
16 마법을 베는 검 (1) +1 23.11.26 497 12 14쪽
» 검의 성소 (5) 23.11.25 498 24 20쪽
14 검의 성소(4) +1 23.11.24 505 17 15쪽
13 검의 성소(3) 23.11.23 532 15 19쪽
12 검의 성소(2) 23.11.22 557 14 18쪽
11 검의 성소(1) 23.11.21 595 17 14쪽
10 의회 소집 +2 23.11.20 626 19 10쪽
9 검의 신탁(3) 23.11.19 646 21 20쪽
8 검의 신탁(2) 23.11.18 654 23 12쪽
7 검의 신탁(1) +2 23.11.17 720 27 14쪽
6 훈련 +1 23.11.16 823 29 17쪽
5 당기는 손, 밀어내는 발 +1 23.11.15 920 27 13쪽
4 네 능력이 참 유용하구나 +1 23.11.14 1,075 25 14쪽
3 심장을 먹는 마법사(2) +4 23.11.13 1,285 34 16쪽
2 심장을 먹는 마법사(1) +4 23.11.13 1,517 38 19쪽
1 모두에게 천재로 불리웠다. +3 23.11.13 2,342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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