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베는 천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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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13 17:13
최근연재일 :
2023.12.08 11:3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7,266
추천수 :
499
글자수 :
190,785

작성
23.11.19 10:03
조회
646
추천
21
글자
20쪽

검의 신탁(3)

DUMMY

콰아아아!




살을 찢고 뼛속까지 스미는 광풍.

쉬리더의 켄은 심판의 격노로 폭발하고 있었다.


"템파. 내 너를 마스터 퀸린에게 인도하려 했다. 그리고 그 스스로 네 목을 베게 하려 했지. 비록 네가 오래 전에 종적을 감추고, 이렇게 기사도마저 저버렸을지언정. 두 사람은 사제 지간이었으니까. 그것이 도리라 생각했어."


뿌드드득...

강대한 인력이 담긴 쉬리더의 오른손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허나 도를 넘어섰구나. 감히 마법사에게 심장을 바치다니!"

"쉬,쉬리더... 마스터 쉬리더!"


오러기사 템파.

그는 땅바닥에 도끼를 박아넣은 채 그것을 붙들고,

감히 상상도 못할 이 흡풍의 파도를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놔..주시오!"


그는 쉬리더의 말에 어떠한 성찰이나 대꾸조차 할 생각 없다는 듯,

이쪽을 향해 홱 돌아보며 두 눈을 부라렸다.


"당장! 안 그러면... 후회 할 테니까!"

"후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놈!"


쉬리더가 뻗은 손을 살짝 아래로 움직이자 켄의 궤도가 수정되었다.

이는 즉시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템파를 향해 정조준되었고,

거의 동시다발적인 속도로 '우르릉' 땅이 무너졌다.


"크윽!"


쏴아악!


지반 자체가 무너졌으니, 이제는 템파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잘게 분해 된 토사물과 함께 허공을 허우적대며,

쉬리더의 지근거리까지 훅 빨려 들어왔다.


"단칼에 베어주마."


마침내 쉬리더가 검을 빼어들었다.


"그것이 네게 베푸는 마지막 호혜다."


쌔액!


빙글 돌며 칼날을 아래에서 위로 깊게 휘두르는 참격.

팟 하고 빛나는 아찔한 빛의 궤적은 금방이라도 템파의 목을 훑고 지나갈 듯 했다.


그러나,


"!"


'캥!'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허공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놈!"


쉬리더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충격.

그 앞에 도낏날로 막아 선 템파의 모습이 보였다.


"마스터 쉬리더."


템파가 말했다.

침울하기만 하던 인상은 어느덧 사나워지고,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앙심이 드러났다.


"그 호혜. 절대로 베풀 수 없을 것이오."



캉! 카가강!!



도끼와 검이 부딪치며 허공에 불꽃을 그려 내었다.

어찌나 위력이 거센지 충돌할 때마다 바닥 아래로 먼지 바람이 촤 흩어졌다.


츗!


몇 차례 맞부딪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서로에게 익숙한 자세로 검세를 가다듬었다.


'예리함과... 위압감!'


지켜보던 앨런은 감탄했다.

두 사람의 공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확연히 다른데,

각자마다 무서운 비기라도 숨긴 듯 살기등등했다.


솻!


먼저 쉬리더는, 한 마리 비룡과도 같았다.

왼발은 앞으로, 오른발은 뒤꿈치를 들어올린 채.

양 손으로 붙잡은 칼자루는 오른쪽 관자놀이 옆까지 닿도록 비껴 올린 검세.

그렇게 송곳니처럼 예리하게 날 선 검에선 마치 해의 한 점이라고 뚝 떼어 온 듯 작열하는 광채가 느껴졌다.


훙, 후훙-!


그와 달리 템파는 거대한 흑곰 같았다.

통나무만 한 굵직한 팔을 가슴 앞에 모은 뒤,

머리통만큼이나 큰 두 주먹으로 도끼 손잡이를 꽉 쥔 자세였다.

그 악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손마디가 불거지며 '아드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야말로 중압감 그 자체.

아무런 기교 없이 저대로 달려들기만 해도 싹 다 밀어버릴 것만 같았다.


"마스터 쉬리더."


템파가 말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답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어? 네 주제에?"


쉬리더는 기가 차다는 듯 찬숨을 하 내뱉었다.


"곧 죽는 마당이라고 입이 살았구나. 그래. 뭐라고 나불댈 셈이냐?"

"제가... 제가 많이 변했습니까?"

"뭐?"


엉뚱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서로 칼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은 더더욱이 아니다.


"궁금합니다."


허나 무슨 속셈인지 템파는 이렇게 계속 묻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지금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미련해. 미련 그 자체다."


쉬리더는 이렇게 일축하는 듯 하더니, 이어서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어떻느냐? 범 새끼가 미련한 곰탱이가 된 느낌이다. 그렇게 헌앙하고 단단했던 몸집이 지금은 무슨 살만 뒤룩뒤룩 쪄 여차하면 잠결에 병사病死나 하기 딱 좋게 생겼고, 저 죽게 생긴 와중에도 무슨 똥 마려운 깽깽이마냥 해지는 방향만 흘끔 보는데다, 빌어 처죽일 마법사한테 심장을 갖다바치면서 이렇게 헛같은 개소리까지 짓걸이는 걸 보니. 아주 가관 그 자체요 미련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자, 이렇게 하면 충분한 답이 되겠느냐?"

"하. 하하하!"


템파는 그 자리에서 자지러지듯 웃었다.


"그렇군요. 다름 아닌 범 새끼가, 미련 곰탱이가 되버린 격이로군요."

"모질한 놈. 그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네."


이렇게 말하는 템파에게선, 추호의 의심조차 묻어나지 않았다.


"이리도 미련해졌으나,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랑 하나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었을까?

템파의 두 눈이 잠시 앨런에게로 향했다.

뜻모를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밖에 없는, 내 소중한 자랑."


그러다 또다시 황혼으로 파묻히는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 자랑 하나로... 제가 여태까지 살아왔습니다."

"말장난 집어 치우거라."

"장난인지 아닌지는,"


훅! 한바탕 훅 끼치는 바람과 함께 템파의 신형이 쉬리더의 코앞까지 근접했다.


"지금부터 겪게 되겠죠."

"오냐. 와 보거라!"


파칭!


채채채챙!


두 사람은 서로의 칼날을 깨부술듯, 서로의 날붙이를 미친듯이 휘둘러댔다.


'..못 따라잡겠어!'


지켜보던 앨런의 동공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어찌나 칼질이 빠른지, 푸르스름한 오러만 번뜩거리는데.

이 움직임을 일일이 헤아렸다간 그의 시신경이 마비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야앗!"


살짝 벌어진 간합.

그 틈을 노려 템파가 벼락같은 기합을 내질렀다.

동시에 온몸의 체중을 실어, 번쩍 든 도끼를 크게 내리찍었다.


부우우웅...!


그러자 도끼 위로 서린 오러에 밀도가 집약되더니,

격타와 함께 '퍼-엉!' 큰 폭발을 일으켰다.


"하, 제법이구나!"


그 위험천만한 공격을 쉬리더는 가까스로 회피했다.


투웃-!


재빨리 척을 발동하며, 이후 후방 회피!

허공을 박찬 뒤 쭉 미끄러지는 미려한 동선이었다.

그렇게 안전 거리 확보하는데 꽤나 공을 들여야했다.


파지직, 콰콰쾅!


극도의 중압감이 실린 오러가,

격타점을 중심으로 마치 파도마냥 밀려오면서 땅을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탓, 휘리릭!


물찬 제비처럼 통통 튀어 넘는 공중제비.

이윽고 타이밍을 확보하자마자, 쉬리더는 템파를 향해 왼손을 쭉 뻗었다.


후욱!


그렇게 형성된 쉬리더의 켄.

곧장 템파의 한쪽 발이 삐끗하고 넘어졌다.


"윽!"


그 한 치의 흐트러짐이 쉬리더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고유한 호흡과 보법으로 성큼 다가간 뒤,

마치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처럼 '쉿쉿' 검을 내질렀다.


서걱!


싸늘한 바람이 템파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후 반 박자 늦게 신체 곳곳에서 칼집이 툭 터져 나오며,

템파가 윽 소리를 내며 비틀댔다.


솨솨솨솩!


경이로운 검술이었다.

두 발은 고양이처럼 사뿐 전진하는데,

칼을 든 손은 섬광을 흩뿌리듯 여러 방향으로 난무했다.


"...후우. 역시 대단하군요!"


채채챙!


템파는 횡방향으로 도끼를 붕붕 회전시켜 쉬리더의 검격을 떨쳐낸 뒤, 어렵사리 한 호흡 가다듬었다.


"마스터 쉬리더. 아니, 역시 '신속의 쉬리더'라 불러드러야 할까? 척으로 사뿐히 내딛고, 켄으로 휘두른 검격을 회수하는 과정이 그야말로 신출귀몰. 역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빛의 신이 춤추는 듯한 검술이군요."

"흥. 네 도끼도 꽤 묵직하니, 받을 맛이 나는 구나."


쉬리더는 냉소를 차갑게 담아 중얼거렸다.


"압도의 형形. 네 스승께서 연구하고 가다듬어 온 그 전승비기를... 네 멋대로 더럽히지 마라!"


쏴솩!


쉬리더가 사뿐 발을 구르며 칼을 휘둘렀다. 그 동작은 앨런의 눈에 거의 읽히지 않았지만, 어쩐지 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빛으로 응어리 진 초승달을 뿌리는 것처럼!'


눈앞의 것을 분살시키는 섬뜩하고 우아한 검술이다.


"압도, 2형!"


템파도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유파의 비기가 담긴 척의 발구름으로,

한 걸음마다 천둥 소리를 꿍, 꿍 내며 땅 아래로 번갯불을 튀겼다.


파츠츳!


그 장중한 땅구름이, 쉬리더가 그리는 초승달 형태의 검격을 차츰차츰 앗아갔다.

그러더니 무서운 기세로 성큼 다가 와,

포효성과 함께 도끼를 젖혀들었다.


"받아... 보시지!"





꽝!!!




흉악한 파공음과 함께 땅으로 내리꽂히는 쇳덩이.

종전의 그 살벌한 뇌격이 다시 한번 대지를 울리며,

이번엔 스승의 코 앞까지 재빠르게 장악했다.


"마스터!"


펑!


터지는 폭발음.

이내 붕 띄워 올라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쉬리더의 몸이 몇 차례나 데구르르 굴렀다.


"크윽!"


마침내 스승의 입에서 통렬한 신음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후우. 예상했지만 치열한 싸움이군."


템파는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꽤나 밀도있게 응집된 켄이 그의 오른손 위로 지글거리고 있었다.


"마스터 쉬리더. 그러게 내가 부탁했잖소... 제발 좀 놔 달라고!"


츗-!


누워 있던 쉬리더의 몸이 템파를 향해 훅 끌려갔다.


"마스터, 조심하셔야 합니다!"


앨런의 말에 잠시 멍해졌던 쉬리더가 정신을 다잡았다.


파바밧!


누워 있던 몸을 금세 일으킨 뒤, 빠르게 중심을 잡았다.

연로함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기민하고 유연한 동작.

이후 두 발로 바닥을 접지한 채 척을 발동, '치지직' 마찰하며 저항했다.


퉁!


결과적으로 쉬리더의 척이 더 우세했다.

손쉽게 템파의 켄에서 벗어나 다시 검세를 가다듬었다.


'다행이다!'


앨런은 안도했다.


"..."


하지만 스승의 표정엔 왠지 모를 석연찮음이 어려 있었다.


"그래. 느끼셨소?"


그런 스승의 위화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템파가 말했다.


"우리 두 사람 간 격차가 이리 좁을 리 없는데. 아무래도 수상하시겠지."


템파는 자신의 앞섬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목에 걸려 있던 무언가를 꺼내 보였는데,

앨런이 보기엔 조금 이색적인 형태를 갖춘 목걸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건.. 설마!"


허나 이를 본 쉬리더의 두 눈동자는 퉁방울만큼이나 벌어졌다.


"탈리스만!"


그것은 상태를 악화시키는 저주 부적,


탈리스만talismán이었다.


오러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대칭 전력으로,

오직 마법사만이 연성할 수 있는 이물異物이다.


"정확히는 그린 탈리스만이오."


템파가 말했다. 손가락에 주렁 매달린 목걸이 소켓엔 기이한 초록빛을 띈 보석 하나가 박혀 있었다.


"마스터께서도 알고 계시듯, 근접 상대의 오러를 대폭 약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

"역시. 그래서였구나."


불길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어쩐지 템파와 맞붙어 싸우면 싸울수록 오러가 영 신통치 않게 느껴졌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마스터."


툭! 템파가 들고 있던 도낏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시 한 번 청컨대, 보내주시오. 한 때 하늘 같이 여겼던 당신과 이렇게 얽히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부탁 드립니다."

"그 입 다물어라."


쉬리더가 늑대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완전히 앞잡이가 되버려선, 주제도 모르고 나대지 말란 말이야."

"후, 분노에 눈이 멀으셨군."


템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조적으로 웃더니, 다시 도끼를 어깨 위로 턱 걸머졌다.


"감정에 휘둘리는 살생은 하지 말라더니. 이게 정녕 기사도의 정신입니까?"

"닥쳐라!"



패챙챙챙!!



두 사람이 다시 접검했다.

서로 한발짝씩 조금만 움직이면 목덜미며 겨드랑이를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지근거리.

싯푸른 오러가 섞인 불티는 사정없이 튀겨 나갔다.


"늙긴 하셨군. 예전보다 힘이 한참 약하시오!"


템파의 말이었다. 탈리스만의 효과로 부쩍 자신감이 생겼는지,

켄으로 과감하게 쉬리더의 멱살을 낚아챈 뒤 그대로 바닥에 메다 꽂으려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


쉬리더는 잡혀 있던 멱깃을 확 베어버렸다.

관성으로 인해 템파가 잠시 주춤하는 순간, 그대로 척을 실은 발차기로 복부를 후려찼다.


"흐-으억!"


하마터면 몸뚱이가 돌멩이마냥 훙 날아갈뻔했으나,

템파 역시 척을 발동하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추추축 소리를 내며 두 발이 고랑을 만들었고, 곧 응분을 담은 주먹질로 쉬리더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퍽!


흑 하는 미약한 신음소리.

이후 허공에 자맥질하듯 쉬리더의 두 팔이 허우적댔다.


'이러면... 호각이다!'


앨런의 판단이 맞았다.

초전까지만 해도 템파는 쉬리더에게 코끼리 앞의 개미에 불과했다.

허나 근접전이 되니 양상이 달랐다.

저 탈리스만이라는 기물이, 점점 스승의 에너지를 앗아가고 있었다.


"마스터. 후회 할 짓 그만 하시오!"


훙!


템파는 망설임없이 곧장 도끼를 휘둘렀다.


캥!


쉬리더는 중압감이 서린 도끼를 아슬아슬하게 검으로 막아냈다.

조금만 늦게 대응했더라도 머리가 두 쪽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윽..!"


안면에 받은 데미지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

그로 인해 아찔한 공방이 쉴 새없이 연이었다.


캥! 캥! 캐캥!


한쪽은 휘몰아치는데 한쪽은 겨우 막기만 하고 있는 형국.

앨런은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힘을 보태야 해!'



촤촷!


앨런은 척으로 몇 발자국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템파의 배후를 향해, 아주 은밀히 움직였다.


'여기까진 성공.'


이미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 전력투구 중이라,

다행스럽게도 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앨런은 두 사람의 공방을 눈에 담지조차 못하는 햇병아리 애송이였으니까.


그러한 기우가, 앨런에겐 큰 기회가 될 참이었다.


'지금이다!'


완벽한 시야의 사각에 놓였다는 판단이 들 때쯤,

그가 훈련한 장기가 발휘되었다.


'단집중!'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얼음처럼 경직된 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그때부터 앨런의 눈에서 빛이 나며 안력에 힘이 돋기 시작했다.


'지향점은 템파.'


앨런의 눈에서 템파의 움직임을 꿰뚫어 버릴 듯한 시선이 쏘아졌다.


츠즈즈즈...!


그러자 템파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뭉개지듯 형체를 잃어갔다.



콰광!



앨런의 머릿속에 퍼지는 정신적인 굉음.

이어서 느려진 시간 사이로 앨런의 세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붕괴, 분리, 파편화, 해체, 그리고...'



증발!



마침내 템파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앨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보인다!'


그때부터 템파의 움직임이 읽히기 시작했다.

단집중 이전엔 그냥 빛살을 뿌리며 활개를 치는 듯 보였던 것이,

이제는 어느 방향으로 휘두르고 내지르는지 수가 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만 했다.


템파의 도끼가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떨어질 때쯤,

앨런의 오른손이 앞을 향해 쭉 뻗었다.


"켄!"


앞선 두 사람에 비하면 너무도 미약한 인력이, 앨런의 손 끝으로 방출되었다.

그러니 수준급의 오러를 발산하는 템파에게 먹힐 리 없었다. 하지만,



"!"



그 표적이, 상대가 아닌, 그 상대에 속한 귀속물이라면 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탈리스만'이었다.


한순간 이물감이 들더니,

난데없이 템파의 목걸이줄이 툭 하고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뒤늦게 움직였으나, 이미 목걸이는 허공으로 휙 날아가 버렸다.

이내 템파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이럴 순 없는데... 어찌 이런 일이!"


대對 오러기사 부적 탈리스만.

이것은 오러와 최악의 극상성을 띠기에,

귀속자가 아닌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

켄으로 끌어올 수도, 척으로 짓밟을 수도 없다.


'일절도 통하지 않을 것인데...'


눈 앞에서 버젓이 저 소년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황당무계함만 가득했다.


"잘했다 앨런!"


하하하! 정신없이 흐느적대던 쉬리더가 파안대소했다.


"여봐라 템파, 아무래도 내 제자가... 저 이물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설마!"


템파는 무언가 뒤늦게 생각난 듯 움찔했다.


"설마 저 아이... 양여의 재능인 것이오?!"


황망한 템파와 달리 쉬리더는 기세등등했다.

이때부턴 문답무용이었다.

그저 조용히 칼을 고쳐 잡더니, 언제 얻어맞고 허우적댔냐는 듯 맹렬한 기세를 담아 템파의 혼을 쏙 빼놓았다.


"이것이 너와 나의 진정한 격차다!"


쉬리더는 만전의 베테랑.

예전보다 힘은 달릴지언정 노련함과 몰입 차가 상당했다.

예상치도 못한 동선과 리듬으로 템파를 거의 공 굴리듯 다루었고,

그럴 때마다 템파의 몸에서 불그죽죽한 혈선이 촥 촥 그어졌다.


"헉... 헉...!"


마침내 템파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어찌나 피를 땀처럼 흘리는지, 손으로 이마를 연신 훔쳐도 빨간 물이 질질 흘러 나올 정도였다.


"대단, 역시, 대단하시오!"


하하하!


템파는 완전히 날고기가 되기 직전 상태로, 힘겹게 웃음 지었다.


"용감하고.. 대단한 제자를 두셨군. 훌륭하오. 하아, 근데 정말 힘들 군요 이거."

"너도 훌륭한 제자였다."


훅! 쉬리더가 켄으로 템파의 목덜미를 끌어 잡았다.


"너도, 한때는 모두에게 촉망 받던 뛰어난 오러기사였다고. 이 마스터 퀸린의 제자 템파 놈아."


노장의 팔뚝에서 으드득 힘이 들어가며, 템파가 힘겹게 허우적댔다.

두 눈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냐."


쉬리더가 말했다.


"대체 왜, 마법사의 잡졸 노릇이나 하게 되었느냐. 어서 말해라."

"말.. 못하오."


템파가 쓰게 웃었다.

검은 그늘이 패인 그의 눈가 아래로 눈물이 주륵주륵 떨어졌다.


"절대... 나는 절대 말 못하오..."

"..."


그 표정이 어찌나 처연한지, 잠시나마 쉬리더가 움찔 몸을 떨 정도였다.


"오냐. 그럼 내가 알아보마."


쉬리더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모아, 템파의 관자놀이에 갖다댔다.

앨런은 그게 무슨 행동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템파는 뭐에라도 찔린 듯 몸을 떨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마인드 켄Mind Ken이다."


쉬리더가 말했다.


"상대의 생각과 기억을 가져오는 인력이지."

"큭, 크으으윽!"


템파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자신의 기억을 어떻게든 뺏기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대, 절대 안돼에에에!!!"


템파가 부르르 떨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 위로 오른손을 갖다 댄 뒤, 한순간 둥- 울려 퍼지는 켄을 형성했다.


촤아악!


"!"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손길을 따라 가슴이 찢어지더니,

새빨간 심장이 훅 딸려 나왔다.


"큭."


템파의 고개가 푹 고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숨을 힘겹게 몰아쉬며,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다.


"헉."


놀란 쉬리더가 경기를 일으켰다.

그는 쓰러진 템파를 뒤늦게 수습하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왜...!"

"죄.. 죄송.."


쿨럭!


입 밖으로 튀어 나온 선혈로 템파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곤 무슨 회광반조라도 느끼는 것인지, 웃을 듯 말듯한 미묘한 표정으로 이렇게 읊조렸다.


"꽃을... ..가 피워 낸... 아름다운 꽃을..."

"뭐? 방금 무어라고...?"

"꽃... 꽃을..."


그것이 템파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망연한 안색을 한 채, 뜬 눈 그대로 숨을 멎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걸까. 횡설수설하는 쉬리더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자야."


쉬리더는 두 눈을 꾹 감고 한참 말이 없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앨런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 마법사가... 템파의 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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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사령관 에고시 (3) +1 23.12.08 122 5 11쪽
27 사령관 에고시 (2) +1 23.12.07 149 4 16쪽
26 사령관 에고시 (1) 23.12.06 154 5 11쪽
25 천재의 묘수 23.12.06 145 6 16쪽
24 그가 제일 잘 하는 것 23.12.05 210 8 13쪽
23 마법의 식물 23.12.04 246 10 10쪽
22 영주의 야망 +1 23.12.03 333 10 16쪽
21 새로운 동료 23.12.02 353 11 17쪽
20 쇠꽃의 비밀 +1 23.12.01 399 10 10쪽
19 첫 번째 임무 (2) 23.11.30 396 10 16쪽
18 첫 번째 임무(1) 23.11.29 430 13 15쪽
17 마법을 베는 검 (2) 23.11.27 520 15 21쪽
16 마법을 베는 검 (1) +1 23.11.26 497 12 14쪽
15 검의 성소 (5) 23.11.25 498 24 20쪽
14 검의 성소(4) +1 23.11.24 506 17 15쪽
13 검의 성소(3) 23.11.23 532 15 19쪽
12 검의 성소(2) 23.11.22 557 14 18쪽
11 검의 성소(1) 23.11.21 595 17 14쪽
10 의회 소집 +2 23.11.20 626 19 10쪽
» 검의 신탁(3) 23.11.19 647 21 20쪽
8 검의 신탁(2) 23.11.18 654 23 12쪽
7 검의 신탁(1) +2 23.11.17 721 27 14쪽
6 훈련 +1 23.11.16 823 29 17쪽
5 당기는 손, 밀어내는 발 +1 23.11.15 920 27 13쪽
4 네 능력이 참 유용하구나 +1 23.11.14 1,075 25 14쪽
3 심장을 먹는 마법사(2) +4 23.11.13 1,285 34 16쪽
2 심장을 먹는 마법사(1) +4 23.11.13 1,517 38 19쪽
1 모두에게 천재로 불리웠다. +3 23.11.13 2,342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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