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베는 천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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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13 17:13
최근연재일 :
2023.12.08 11:35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7,259
추천수 :
499
글자수 :
190,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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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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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검의 성소(2)

DUMMY

앨런은 끔찍한 소음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크워-억.


다시금 들려 온 소리. 기분은 실체로 바뀌었다.

동시에 전방의 어둠 속을 뚫고 걸어오는 거대한 인영 하나가 보였다.


쿵, 쿵, 쿵!


제법 묵직한 발소리를 내다가, 앨런과 단 몇 걸음만을 두고 멈춰 선 낯선 존재.


"...쥐?"


그냥 쥐가 아니었다. 몸집이 너무 커서 매우 징그럽고 흉측하기까지 한, 거대 쥐.

놀랍게도 놈은 인간처럼 직립한 상태였다.


"..."


긴 팔에, 네 갈래로 나눠진 굵직한 손가락. 그 아래 칼처럼 솟아 나온 뾰족한 손톱.

역관절로 꺾어진 다리는 기괴할 정도로 쭉 뻗어있었다.


"워억."


쥐보단 소나 악어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괴물쥐는 멀거니 서 있었다.

앨런은 그것을 향해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걸어갔다.

몇 걸음 걷자 어둠 속에 파묻혀 흐릿했던 녀석의 면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크다.'


앨런보다 머리 두개 정도 높이 솟은 체고.

쥐는 보기 끔찍하고, 혐오스러우며, 털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과 주둥이엔 듬성듬성 칼자국이 가득했다.

더불어 다른 쥐들에게서 전혀 본 적 없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꼬리는... 마치 채찍같군.'


위압감과 혐오감을 동시에 주는 생김새.

앨런은 조심스럽게 칼을 꺼냈다.


스...르릉.


어둠 속에 검명이 천천히 울려퍼졌다.

마침내 괴물쥐는 어디에다 두고 있었는지 모를 시선을 옮겨 앨런을 내려다봤다.

놈은 하나도 놀란 것 같지 않다.


"유트는 꼬마에게 인사해."

"...어?"


벙찐 표정의 앨런 앞에, 괴물쥐 유트는 양손을 흔들며 정겹게(?) 인사했다.


"유트는... 워-억!"

"!"


유트는 갑자기 끔찍한 기성을 내질렀다.


"미안."


유트가 어눌하게 사과했다.


"유트는 안내자. 꼬마는 시험 봐야 해."


앨런은 잠시 아무런 말없이, 이 유트라는 괴물쥐를 살펴 보았다.

머지않아 놈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우웅...


앨런을 이곳까지 데려 온 쌍두독수리에게서 느껴졌던 오러의 형形.

그것이 놈의 두 눈동자에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꼬마는 못 말해?"


아무런 말도 없는 앨런을 보며 유트는 고민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다 이렇게 말했다.


"무서워? 유트는 꼬마 안 먹어."


유트가 제 나름대로 대단한 맹세를 했다.

마침내 앨런이 입을 열었다.


"무슨... 시험을 본다는 거야?"

"어, 말해! 꼬마가 말해!"


제딴엔 어지간히도 반가운 모양인지, 유트가 두 발을 쿵 구르며 고개를 들썩였다.


"유트는...!"


그렇게 한껏 기분 좋은 상태로 무어라 설명하려다, 아무래도 생각이 잘 안난다는 듯 다시 무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이내 보이지 않는 먼 어둠을 가리켰다.


"꼬마는 내 손 잡아. 저쪽에 가자."


유트는 앨런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손가락 하나가 앨런의 팔목만 했다.


"저기, 저어..기서 시험 봐. 같이 가면 돼."


앨런은 유트가 내민 손가락을 붙잡았다. 축축하면서도 맨들맨들한 것이 촉감이 이상했다.


"..그래."


앨런은 괴물쥐 유트와 어둠 속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앨런은 유트와 함께 계속 걸었다.


'어지간히 복잡하네.'


판석을 밟고, 땅을 밟고, 이윽고 굴을 밟았다.

심부로 갈수록 어두워져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지도 모를 길.

앨런은 무작정 따라가기만 하고 있었다.


"저기, 언제 도착해?"


유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음음음, 음음, 음,음,음~!"


이렇게 별 대답도 없이, 못 알아먹을 콧노래만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기! 대체 언제 도착.."


앨런은 후 한숨을 쉬었다.


"됐다. 무슨 세 살바기 애랑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맞아."

"응?"

"세 살. 유트는 세 살."


유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앨런을 향해 왼쪽 겨드랑이를 쫙 열어보였다.


"?!"


유트의 갈비뼈 쪽에 뭔가 살짝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웬 아이의 손이었다.


"까꿍."


유트가 겨드랑이를 흔들자, 아이의 손도 반 박자 늦게 흔들거렸다.

앨런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동요를 애써 억누른 채, 천천히 말했다.


"...이게 뭐야?"

"유트야."


유트는 어쩐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유트. 여기 하나 남았어."

"옛날...유트?"

"유트는 키메라."


유트의 얼굴이 낯설게 굳는 듯 하더니, 곧 평정을 잃고 새된 목소리를 냈다.


"유트는 키메라! 유트는 키메라! 키... 키메라!"

"키메라라니, 그게 무슨...?"

"마법사."


이윽고 유트의 시선이 마구 흔들렸다. 어떤 나쁜 기억이 떠올라 큰 고통을 받는 것처럼.


"마법사가 유트, 옛날 유트 없앴어. 그리고 지금 유트. 이렇게 됐어."

"...마법사가?"


앨런은 순간 가슴이 콱 막히고 시선이 하얘지는 듯했다.


"그럼 유트는... 원래 인간이었던 거야?"

"응."


유트의 목소리가 살짝 먹먹했다.


"지금 유트는, 크-워어억!!!"


유트가 또다시 발작했다.


"미안."

"괜찮아."


이제 앨런은 유트의 사과를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허나 다음에 들려 온 말까지는 아니었다.


"그래. 지금 유트는, 사람 먹었어. 아주 많이."

"지, 지금 사람을 먹었다고. 그렇게 말한 거야?"

"응."


유트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배불렀어. 많이 먹었어. 근데 어떤 할아버지 만났어."

"할아버지?"

"응. 할아버지. 꼬마보다 훨씬 작았어. 웃겼어. 이빨도 없어! 얼굴은 주글주글. 못생긴 할아버지."


'그랜드 마스터를 말하는 건가..?'


"그 할아버지가, 지금 유트 사람 안 먹게 만들어준 거야?"

"응."


유트는 앨런에게 보라는 듯, 싯푸른 안광이 씌인 자신의 두 눈을 깜빡여 보였다.


"할아버지가 명령했어. 착하게 살라고. 유트 말 잘 들었어. 할아버지 명령 들었어."


길지 않은 대화.

그럼에도 앨런은 유트가 겪게 된 정황에 대해 빠르게 유추할 수 있었다.


'마법사에게 저주 받아 괴물이 되고, 인육까지 먹었던 거야. 그런데 그랜드 마스터의 능력으로 이지理智를 되찾게 된 것이고.'


앨런은 어쩌면 그랜드 마스터의 능력이,

켄을 이용한 강력한 정신지배 혹은 복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마. 있잖아."

"응?"

"유트 다시 노래 불러도 돼?"


유트가 어쩐지 그 나이에 딱 맞는 듯한 어리숙한 목소리로 수줍게 물었다.


"유트는 노래 좋아해. 노래 부르게 해줘."


어째서일까?

앨런은 잠시 보얀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섯 살. 두 사람이 딱 유트만 한 나이일 때.

보얀은 항상 앨런의 이름을 부르며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 앨런! 앨런! 노-올자!!


이렇게 마을이 떠나갈듯 고함을 지르며.


- 싫어.


그럴 때마다 앨런은 항상 거부했다.

오감이 극도로 예민한 아이.

주변의 자극과 정보에 지쳐, 새롭고 낯선 것에 느껴지는 강력한 두려움과 거부감.

그렇기에 앨런은 바깥이 싫었다.

항상 집에만 있고 싶었다.


- 응, 내 맴~


허나 보얀은 만만찮은 호적수였다.

기를 쓰고 버티는 앨런을 끝끝내 끌고 나와, 강으로 들로 데리고 다녔다.


- 야, 앨런!


그럴 떄마다 보얀은 하늘 위로 날아갈 것처럼 두 팔을 벌려 길 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앨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렇게 마음껏 뛰어다니니 얼마나 좋냐?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다섯 살 보얀이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꼬마 앨런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 시끄러워. 부르지 마.

- 아니, 부를 거야!

- 부르지 말라고.

- 부를 거야.

- 왜, 도대체 왜!


참다 못한 앨런이 이렇게 따지자, 보얀은 기 하나 죽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 왜긴. 사람은 신날 때, 이렇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하하하하!



기억에 생생하다.

꼬마 보얀의 활기찬 웃음소리.


'그 날 보얀, 자그마치 10곡을 연달아 불렀더랬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보내왔던 어린 시절이 찰나 같이 스쳐갔다.


"..도 돼?"

"응?"


다시금 들려 온 유트의 목소리가 앨런의 상념을 깼다.


"노래. 유트 노래 불러도 되냐고."

"..응."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어야 정상이건만.

어쩐지 유트의 끔찍한 얼굴에서 보얀의 어린시절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노래, 불러도 돼.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유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괴물이라 불러야 할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동작이 과장되고 커서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한 태가 남아 있었다.


"그게 뭐야?"

"조건이란 건... 약속이야. 지금부터 유트는 약속 하나를 지켜야 노래 부를 수 있어."

"약속. 그게 뭐야?"

"그..."


앨런은 살짝 머리가 아파왔지만 인내심을 발휘했다.


"엄청나게 쎈, 세상에서 제일로 쎈 거야. 그래서 함부로 취소할 수가 없어. 아무도."

"와, 엄청나게 쎄다고!"


비로소 수준에 와 닿은 말이었는지 유트가 그제서야 호들갑을 떨었다.


"좋아. 약속! 근데 무슨 약속?"

"지금부터 나한테 형이라고 불러."

"혀엉?"


유트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훗 코웃음을 쳤다.


"꼬마는 너무 작아. 근데 무슨 형. 웃겨!"

"..그, 너보다 작은 건 맞는데. 아무튼 형 맞아. 그것도 아주 많이 형."

"진짜?"


별 의심도 없는지 유트는 순수하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꼬마는 나보다 형이야? 얼마나 많이?"

"열여덟 살이니까. 너보다 열 다섯 살이 더 많아."


유트는 잠시 붙잡고 있던 앨런의 손을 놓고, 자신의 양손을 이용해 하나하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도 못 세더니 다 포기해버리곤 이렇게 외쳤다.


"우...와!!"


이게 그렇게 대단해 할 일인가? 삼일 밤낮을 헤메다 금광이라도 찾은 듯한 탄성이었다.


"꼬마! 꼬마는 엄청 형이야!"

"그래. 그러니까 지금부터 형이라고 불러야 해. 알았지?"

"알았어."

"형이라고 하랬잖아."

"알았어. 혀엉!"

"풉, 오냐."


유트는 좋음과 싫음 따위 없는,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음음음, 음음, 음,음,음~!


빈 동공 사이로,

괴물이 된 아이의 명랑한 콧노래가 울려 퍼졌다.





*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큰 공터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기야."


유트가 말했다.


"여기가 시험장."


유트는 마주잡고 있던 앨런의 손을 스르르 떼어냈다.


"유트는 가. 꼬마는.."

"형이야."

"응. 형아는, 이제부터 혼자."

"..그래."


유트의 역할은 안내자.

헤어짐은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유트는 가."


유트가 멋쩍기도, 동시에 어색하기도 한 듯한 몸짓으로 앨런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유트도 혼자. 형아도 혼자."


앨런은 무어라 작별의 인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유트의 품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리곤 그의 왼쪽 갈비뼈 사이에 돋아난, 작은 인간의 손을 살며시 맞잡아 주었다.


"잘 가."


말랑말랑한 아이의 손이 앨런의 손바닥 안에서 꼼지락댔다.


"그리고 잘 지내. 유트."


똑,


갑자기 앨런의 머리 위로 차가운 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가..기 싫어."


유트가 울고 있었다.


"가기, 싫은데. 할아버지가..."


스으으...!


유트의 눈꺼풀이 파들거리면서 푸른빛 안광이 한층 더 짙어졌다.


"하, 할아버지가 자꾸.."

"..."


앨런의 머리가 순간 차갑게 식었다.


'설마 그랜드 마스터가,'


어디선가 유트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걸까?


"...곧 볼 거야."


앨런이 말했다.


"유트야. 형이 이 시험을 끝내면, 우린 곧 볼 수 있을 거야."

"진...짜?"

"진짜야. 약속할게. 유트는 약속을 기억하지? 지금부터 우린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 거야."

"...약속!"


유트가 특별한 별자리를 찾은 아이처럼 목청을 높였다.


"세상에서 엄청나게 쎈거. 약속! 형아는 유트에게 약속할거야?!"

"응."


앨런이 유트의 아기손을 꼭 붙잡았다.

흉물스런 몸체 한가운데 돋아나 이질적이었지만 어쩐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우린 꼭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유트를 떠나 보내고, 앨런은 홀로 남았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가자 눈앞의 공터가 시야에 오롯이 담겼다.

공터의 입구에는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제1 관문」


- 주황색은 1, 보라색은 2, 파란색은 3, 빨간색은 4.

- 준비된 자는 원 위로 위치하라.




"이게 뭐야?"


다짜고짜 당면하게 된 '관문'.

그것도 모자라 무슨 말인지 모를 주석까지 달려 있으니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주황색은 1, 보라색은 2, 파란색은 3... 이게 무슨 말이지?"


각기 다른 색깔과 연결맺은 숫자들.

의미를 헤아려 보려 했지만 딱히 추론할 만한 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이해할 만한 건...'


'준비된 자는 원 위로 위치하라'는 말 하나 뿐.


"..일단 해보자."


계속 생각한다고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한번 부딪쳐 보는 게 나을 듯했다.

앨런은 비석을 지나쳐, 공터의 한 가운데 바닥에 그려진 작은 원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그 한 가운데 자리했다.


쿠릉!


그러자 멀쩡히 서 있던 비석이 땅으로 쑥 꺼져 버렸다.


훙-!


동시에 앨런이 선 원의 둘레 위로 푸른빛의 기운이 훅 솟아 올라왔다.


"!"


쿵! 쿵! 쿠궁!


그것은 어떤 신호였을까?

갑자기 천장 위에서 시커먼 인영들이 마구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긱.. 기기긱!


이질적인 소리를 내며 앨런을 향해 걸어오는 자들.

제대로 살펴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흉내를 낸 '무언가'.'


뚝뚝 끊기는 듯한 걸음걸이가 기괴했고, 무엇보다 온몸이 황동으로 되어 있었다.


'이건... 황동인형이라 해야 하나?'


기기기긱!


연신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래도 저것들의 관절에서 나는 듯했다.

이어서 '핑' '차랑!' 하는 갖가지 소리와 함께, 그것들의 손에서 무기가 튀어나왔다.


'숫자는 다섯. 무기는.'


검, 활, 도끼, 그리고 방패.

외양은 같았지만, 각기 들고 있는 무기의 형태가 다르다.


'맨 뒤에 있는 녀석은...'


어째선지 무기가 없다.

아무것도 없이 말끔한 빈손인데, 다른 녀석들보다 덩치가 훌쩍 큰 것 같았다.

아무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듯 싶었다.


'공격 궤도와 타이밍이 각각 다를테니..'


전투 경험이 일천한 앨런으로선 상당한 난전을 각오해야 할 터.

앨런은 보얀의 검을 가슴 앞까지 끌어모은 채, 좁혀오게 될 포위망을 경계했다.


긱,

기기긱!


"?"


다 대 일의 이점을 살려 포위하려나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놈들은 그러지 않았다.

앨런을 앞에 두고 자리잡은 지그재그 형태의 포진.

네 놈이 각각 좌우 방향에 섰고, 덩치가 가장 큰 녀석이 동 떨어진 상태로 멀리서 앨런과 마주보고 있다.


'뭐야? 이건 마치...'


한놈 한놈 각개격파라도 하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앨런은 맨 앞에 있는 검을 든 인형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기릭,


다른 놈들은 미동도 않은 채, 오로지 녀석 하나만 반응하는 모습.

앨런은 속으로나마 한시름 놓았다.


'떼거리로 두들겨 맞을 일은 없겠군... 잠깐!'


곧 놈들에게서 다른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형형색깔로 빛나는 보석.

그것들이 놈들의 몸에 박혀 있었다.


'위치는 각기 다르다.'


한 놈은 어깨, 한 놈은 무릎, 한 놈은 가슴에 박혀 있는 식.

그렇게 각각 총 네 개의 보석이 가로 혹은 세로로 나란히 박혀 있다.


'주황, 보라, 파랑, 빨강... 설마?'



- 주황색은 1, 보라색은 2, 파란색은 3, 빨간색은 4.



보통 사람이었더라면 경황이 없어 쉽게 떠오르지 않았을 테지만, 앨런의 기억력은 남달랐다.

그러니 비석에 쓰여 있던 문구를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단집중!'


주변의 시야가 온통 흐려지며, 앨런은 맨 앞의 검병을 단집중으로 살펴보았다.

놈의 왼쪽 어깨에 네개의 보석이 나란히 박혀 있다.

놈은 이미 앨런을 향해 검을 들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기....긱.


단집중이 발현되니 세상이 잠시 느려진 느낌이 들었다.

점으로 좁아진 동공과 집중력 때문인지 황동의 질감과 마모된 부분까지 생생히 느껴진다.


'저거다!'


마침내 앨런의 눈에 포착된 그것.

그것은 다름아닌 숫자였다.


- 1324.


마치 바늘로 그린 듯하여, 육안으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네 자리 숫자.

그것이 보석이 박힌 부분 근처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


2134, 1423, 2413. 각기 다른 조합의 순서가 각자의 몸에 새겨져 있다.


이제 앨런은 명확한 추론을 할 수 있었다.


'보석을 파괴하는 순서!'


휙!


앨런은 뒤로 자빠질 듯 넘어가면서, 기습적으로 먼저 달려든 검병의 칼질을 코끝으로 빗겨냈다.

곧이어 척을 실은 오른발로 놈의 턱 부분을 올려 찼다.


댕-!


맑은 구리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신형이 살짝 떠올랐다.

온통 황동으로 되어 무거운 몸이었지만 척이 실린 강력한 척력을 버텨낼 순 없었다.

앨런은 곧장 단집중을 하여 놈을 주시했다.


'1324. 순서는... 주황, 파랑, 보라, 빨강!'



지이잉...



앨런의 오른손이 오러로 빛나면서, 그 위에 켄의 묘리가 덧씌워졌다.

이윽고 목표의 어깨짬에 박혀 있던 주황색 보석 하나가 '펑!' 소리를 내며 빠져나왔다.


휙! 콰직!


앨런의 손아귀로 빨려든 보석.

앨런은 그것을 잡자마자 곧장 바닥에 내부쳤다.

그러자 목표의 동태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우기긱, 꽈륵!


멀쩡한 관절을 뒤틀며 발광하더니, 곧장 팔 하나를 바닥에 뚝 떨어트리는 모습.


"좋았어!"


보석의 파괴는 곧 인형의 결손.

네 가지 보석 중 하나만 파괴해도 데미지를 입는 모양이었다.


'모든 보석을 다 파괴하면, 인형도 완전히 파괴되겠지!'


앨런은 비로소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파악하게 되었다.


'다음은 파란색.'


한팔을 잃은 인형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돌며, 앨런은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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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검의 성소(1) 23.11.21 595 17 14쪽
10 의회 소집 +2 23.11.20 626 19 10쪽
9 검의 신탁(3) 23.11.19 646 21 20쪽
8 검의 신탁(2) 23.11.18 654 23 12쪽
7 검의 신탁(1) +2 23.11.17 720 27 14쪽
6 훈련 +1 23.11.16 822 29 17쪽
5 당기는 손, 밀어내는 발 +1 23.11.15 920 27 13쪽
4 네 능력이 참 유용하구나 +1 23.11.14 1,075 25 14쪽
3 심장을 먹는 마법사(2) +4 23.11.13 1,285 34 16쪽
2 심장을 먹는 마법사(1) +4 23.11.13 1,517 38 19쪽
1 모두에게 천재로 불리웠다. +3 23.11.13 2,342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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