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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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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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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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7-110.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4)

DUMMY

엘림 복지원에서 완장을 찬 원생들은 ‘조장’이라고 불리면서 특권을 누렸다.


사실 대단한 특권이랄 것도 없었다. 무자비한 폭행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점과 배식 받는 급식의 양이 조금 늘어난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하지만 조장들 역시 작업 수량을 맞추거나 기한 안에 일을 끝마치지 못하면 소대장들로부터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는 것은 일반 원생들과 똑같았다.


그 곳은 지옥이었다.


조장이 된 원생들은 자신들이 다른 원생들에게 악독하게 굴지 않으면 그대로 자기가 소대장에게 쳐 맞아야만 했고, 조장이라는 직책에서 잘리게 되면 자신이 애써 누린 그 특권들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폭력을 행사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정말 극악무도한 구조였다.


조장들은 자신들 역시 소대장의 명령에 불복종하지 않으면 언제든 원생의 처지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자발적으로 소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욱더 심하게 원생들을 괴롭히고 때렸다.


건물 밖에서는 단체기합이 시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고함 그리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연이어 만월의 귓가에 들려왔다.


“얘! 지금 히로시마 인가봐!”


주변에서 낚시 바늘을 구부리는 초록색 바퀴를 돌리던 침대 옆자리 동무가 만월을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만월은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유심히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그녀들이 말하는 ‘히로시마 단체기합’은 땅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팔과 다리를 들어 올린 채 그대로 유지하는 동작이었다. 그러다가 기합을 받는 원생들이 힘에 부쳐 다리를 떨어뜨리거나 팔을 내리는 순간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된다.


비슷한 단체기합은 ‘전깃줄 기합’이었는데 벽을 등 뒤로 하고, 앞으로 몸을 빼낸 채 팔 힘에 의지해 자신의 몸을 버텨야하는 기합이었다. 바닥에는 흰색 분필로 그려놓은 선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금을 밟게 되면 또다시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는다.


어차피 아무리 버티고 버텨봐야 인간의 팔과 다리가 무한정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은 아무리 용을 쓰며 버텨봐야 폭행을 받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리 내리면 뒈질 줄 알아!”


바락바락 악을 쓰며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만월은 바깥 상황이 보고 듣지 않았지만 만월의 눈에 훤하게 예상되었다.


분명 다리를 앞뒤로 후들거리며 어떻게든 버티려고 원생들 모두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 터였다.


만월은 서글픈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는 서둘러 낚시 바늘을 돌리는데 집중했다.


어제 자신들 팀원 역시 낚시 바늘 개수를 맞추지 못해 ‘한강철교 기합’을 받지 않았던가. 오늘도 수량을 맞추지 못한다면 무자비한 단체기합과 폭행이 펼쳐질 것이다.


어제 만월과 조원들이 받았던 '한강철교' 기합은 이곳 엘림 복지원에서 제일 악랄한 고문으로 통했다.


이삼십 명이 한 줄의 긴 한갈 철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원생들은 엎드려뻗쳐를 해서 상대방의 등에 발을 올린 채 버텨야했다. 만일 중심을 잃은 누군가의 실수로 한강대교가 무너진다면 다 같이 폭행을 당해야했다.


몸 상태가 안 좋거나, 어딘가 아프기라도 한 원생이 실수로 다리를 떨어뜨려 한강대교가 흐트러진다면 모두가 그 원생을 원망했기에 서로를 미워하고 구박하게 되면서 원생들 사이에서 서로를 원망하면서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는 무서운 기합이었다.


“아얏!”


잠시 어제 받은 ‘한강철교 기합’을 생각하던 만월은 그만 낚시 바늘에 왼쪽 엄지를 꿰뚫리고 말았다.


반쯤 박힌 낚시 바늘을 타고 새빨간 핏줄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익숙한 듯이 이를 악물고 옆자리 동무를 불렀다.


“열열아! 나 바늘 좀 빼주라!”


만월이 ‘열열’이라고 부른 친구는 수인 번호 끝자리가 ‘1010’으로 끝나기 때문에 원생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열열은 서둘러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하나 둘 셋’하고 신호를 준 뒤 바늘을 순식간에 확 빼냈다.


이윽고 주변에 널부러져 있던 작은 헝겊조각으로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꽁꽁 묶어준 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가 초록색 챗바퀴를 무심히 돌리는 열열이었다.




***




만월은 어느새 주름이 가득 지고, 살이 빠져 살가죽만 남은 자신의 거친 늙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왼손 엄지손가락에는 아직도 낚시 바늘에 뚫린 흉터가 깊숙이 패여 있었다. 자신이 늙은 중년의 여인이 된만큼 손바닥에 각인된 이 흉터도 함께 나이 들어갔다.


“아... 아바이 수령은.... 아직... 아직도 살아있나요?”


울음기가 가득한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만월이 여자 무당을 향해 묻자 여자 무당이 한숨을 한번 깊게 내쉬고는 말했다.


“죽었죠. 아주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비참하게 남은 여생을 살아야만 했는데... 너무 편안히 죽었습니다. 그것 또한 원통합니다!”


안타깝다는 듯한 여자 무당의 말에 만월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어떻게 죽었죠? 감옥에서 죽은 거 아니었나요?”


“사형 당해 마땅한 인물이었지만, 몇 십 년의 징역은 커녕.... 부산 시장도 풀어주라고 하면서... 정부 고위층에서 여기저기 난리를 쳤나보더군요. 결국 무기징역 구형은 실패했고. 수사는 그대로 종결되었답니다.”


“그게 말이 돼요? 그 때 죽은 사람만 천 명이 넘을 거에요!”


“무슨 말씀을요. 천명이면 적은 거죠. 더 될 겁니다. 그런데도... 특수감금은 정당한 직무행위라며 1년도 되지 않아 풀려났고, 겨우 횡령이라는 죄목으로 부여받은 벌금은 기나긴 소송 끝에 결국 한 푼도 내지 않았어요. 그 후로.... 박창근은 몇 년을 더 잘 먹고 잘 살다가... 치매가 와서 요양원에서 홀로 죽었답니다.”


“하... 말도 안 돼... 치매요? 치매라고요? 자기가 저지른 일을 다 잊었다는 건가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는데요?”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질끈 감은 만월을 애처롭게 쳐다보는 여자무당이었다. 그녀 역시 역시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 앞에 놓인 신당의 탁상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여자 무당이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엘림복지원 원장의 횡령액을 줄이라고 그를 기소한 검사에게 협박을 해댔으며, 그 당시 ‘내무부훈령 410호’에 따라 국가의 명령대로 수행했다는 변호인단의 변호에 따라 그는 결국 가벼운 처벌을 받고 1년 만에 특사로 풀려났다.


내무부훈령 410호는 당시 대한민국에 수없이 존재했던 부랑자를 강제수용하기 위한 ‘사회정화 국민운동 전국대회’였다.


그것은 ‘부랑인’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었는데, 정부에서 부랑아와 걸인들을 시설 만들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운영비를 지급하여 그들을 노동시켜도 된다는 규정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1982년 올림픽 주최 결정에 환경미화작업의 일환으로 외국인들이 보기 싫은 하급 인간들을 치운다는 정책이었다.


1년 만에 명절 특사로 출소한 원장은 그 이후 다른 이름으로 복지시설을 다시 열었으며 교회 목사가 되어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모두 용서받았다고 떠들고 다녔다.


다시 설립한 새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들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예산 받기까지 했다.


그 후로 박창근의 외아들 박영호는 박창근의 재산을 모조리 상속받아 호위호식하며 아버지의 과오를 바로잡기는커녕 자신의 아버지 박창근 역시 피해자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책까지 출간했다.


“기주 님... 매달 아니 매주 시간 나실 때마다 틈틈이... 복지원 터에 가서 제사상을 차려주시고 계시지요?”


어느새 분노를 가라앉힌 여자 무당이 다정한 말투로 만월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저 역시 복지원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매일 같이 치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 다른 분들의 명복까지 빌어 그들을 천도하기는 힘들지만... 기주(祈主) 님께서 그토록 애절한 마음으로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시니... 우리 신할머니께서 기특하시다 대견하시다 통곡을 하시며 칭찬을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도 기주님께 제사상 얻어드신 적이 있으시다고 감사하다고 하시네요. 또... ”


“또요...?”


신기하다는 듯이 동그래진 눈으로 만월이 여자 무당을 바라보고 물었다.


“제 눈에 죽어간 동무 분들과 오라버니 분이 기주님 뒤에서 기주님을 지켜주시는 것이 보이네요. 이리 성품이 고우시니 도와주셔야지요. 지켜주셔야지요!”


오빠라는 말에 깜짝 놀란 만월이 소리쳤다.


“오빠요? 제 오빠가요?”


“키가 조금 크시고 얼굴이 희고 깡마르신 분이 오빠시죠?”


“네! 맞아요!”


큰 오빠 만호의 모습을 떠올리던 만월은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슬픔에 만월은 그대로 몸을 바닥에 엎드려 바닥을 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서글프게 '꺽꺽'대며 숨이 넘어지게 울고 있는 만월에게 살며시 다가온 여자 무당이 만월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그러니 대주 님! 슬퍼하지 마시고 굳세게 사셔야합니다! 따님을 정말 너무 잘 키우셨어요. 내가 가슴이 다 먹먹해서 눈물이 흘러넘치려 하네! 따님을 어찌 그리 잘 키우셨대요. 엄마 밖에 몰라. 딸이 엄마 밖에 모르고, 엄마만 생각하네! 어쩜 그렇답니까? 대주 님 말년엔 정말 평안히 사실 겁니다. 그리 되실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서글프게 울지마셔요!”


“맞아요. 우리 수연이... 저밖에 몰라요. 못나고 부족한 이 엄마 때문에 평생을 그렇게 힘들게 고생만 해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만월은 울면서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며 답답해 했다.


그런 만월의 주먹을 양손으로 꼭 잡은 채 무당이 말했다.


“대주님! 울지 마세요. 따님은 곧 좋은 인연 만나 백년해로 하시고 행복하실 겁니다! 과거의 인연이 또다른 인연을 낳았습니다. 이제 대주님도 남들처럼 행복하게 사셔야죠! 그렇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제 오빠들은요! 저 아바이 수령의 아들 놈은요! 천벌을 받아야하는 저 사람들과 억울하게 죽어간 죄 없는 사람들은요!”


처음으로 바락바락 소리를 치며 언성을 높인 만월의 등을 연거푸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하던 여자 무당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곧 죽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요, 곧 죽을 겁니다! 그러니 원통하고 슬퍼도 조금만 참으세요!”


아바이 수령의 아들이 곧 죽는다는 말에 만월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여자 무당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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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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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1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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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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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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