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036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12 18:10
조회
28
추천
1
글자
11쪽

챕터7-121.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3)

DUMMY

그렇게 수희 일행이 탄 카니발 차량이 떠나가는 동안 일월선녀와 백마녀는 마당에 서서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카니발이 멀어져가며 점점 작아지자 일월선녀는 차에서 시선을 떼고 자신의 옆에서 근심어린 눈으로 한참을 떠나간 차만 바라보는 백마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드실까요? 선생님도 보통 인생을 사신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아드님을 일찍이 여의시고... 손주 하나 남으셨군요. 그래도 손주 분은 잘 살아있고... 당분간은 그래요... 몇 년 정도는 무사히 더 살 수 있는 걸로 보이네요. 영특한 저 수희 녀석이 무슨 수를 쓴 모양이죠? 그동안 고생이 말도 못하게 많으셨겠습니다.”


자신의 사연뿐만 아니라 종우의 남은 수명을 단번에 맞춘 일월선녀를 보며 백마녀는 감탄했다.


수희가 그 더러운 성질머리를 죽여 가며 눈앞에 나이든 무당에게만은 공손히 대하는 것을 보면 보통 무당은 아닌 것 같았는데, 대번에 자신의 일을 맞추는 것을 보며 백마녀는 신기함을 넘어서 일월선녀를 향해 묘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럴까요. 뒷방 늙은이들끼리 우리 서로 신세한탄이나 합시다!”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호탕하게 웃으며 깔깔거리던 백마녀는 일월선녀의 말에 동의하며 휘적휘적 걸어 일월선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월선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카니발 쪽을 잠시 쳐다보다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시고는 백마녀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향했다.




***




경환이 모는 흰색 카니발이 향한 곳은 경상북도 구미의 산업단지였다.


지기(地氣)를 느낄 수 있는 선아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강한 염원(念願)이나 분노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선아는 그 말을 하면서도 굉장히 불안해했다. 자세한 것은 설명할 수 없지만 꺼림칙한 느낌이 들면서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라고 했다.


카니발 안에 타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했기에 차 안은 적막감만 가득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수희나 한결이 분위기를 띄워본답시고 재미난 농담을 꺼냈겠지만 수희도, 그리고 한결도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멍하니 달리고 있는 차 밖의 풍경만 보고 있었다.


수희 일행이 일월선녀의 집에서 출발해 선아가 안내하는 장소인 구미를 향해 카니발 차를 타고 고속도로 위를 이동하고 있는 동안, 윤재는 자신과 할아버지가 지냈던 동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이 무명스승님을 모신지 어느새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윤재는 할아버지와 지냈던 서울 신림동 반지하 방을 떠나 스승님과 경북 구미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로 온 것이 불과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윤재는 스승님께 할아버지의 기일이었기에 납골당에 다녀온 뒤 잠시 들릴 곳이 있다고 무명에게 외출을 허락받은 참이었다.


윤재는 매년 할아버지의 기일 때마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에 들렸다가 동네 정육점 가게 아저씨를 만나고 오곤 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이십년 가까이 장사를 해오고 있는 아저씨는 윤재가 찾아갈 때마다 여전히 고기를 가득 담아 건네주시곤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것도 정육점 가게 아저씨였다. 장례를 치를만한 상황도, 부를 사람도 없는 쓸쓸한 죽음이었지만 정육정 사장님만큼은 진심으로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해주었다.


‘쨍’하는 맑고 청아한 소리와 함께 문에 걸어놓은 경쾌한 풍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흔히 산속 절에 처마 끝에 달아놓는 물고기 모양의 풍경은 윤재가 몇 년 전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가게에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용도로 쓰라고 가져다 달아놓은 것이지만 사실은 윤재가 악(惡)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주술적 목적으로 달아놓은 수호부같은 것이었다.


“아저씨! 잘 지내셨죠?”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윤재 아니냐! 이게 얼마만이야!”


“작년 할아버지 기일 때니까 벌써 1년 됐네요! 어디 아프신덴 없으시죠? 아주머니는요?”


윤재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정육점 안쪽에서 파채를 썰어 여러 봉지에 나누어 담고 있던 그의 아내가 다가와 윤재를 힘껏 껴안으며 말했다.


“윤재야! 아이고 벌써 시간이 그리 됐니! 오늘이 할아버지 가신 날이구나! 나는 그것도 몰랐네!”


미안해 하는 그녀에게 윤재는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살다보면 바쁘셔서 그런 걸 챙기게 되나요! 그나저나 건강하시죠? 아저씨랑 아주머니는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아이고, 말도 마라. 우리도 이제 오늘 내일 해. 허리고 어깨고, 팔다리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어!”


너스레를 떠는 그들을 보며 윤재는 작년에 자신이 가게 곳곳에 설치해 둔 수호 결계가 아직 잘 있나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행히 어딘가 부서지거나 따로 옮겨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윤재는 슬그머니 결계를 수정해야할 부분이 있나 주변을 몰래 살피며 정육점 내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아직... 아이 소식은 없으신거죠?”


윤재의 질문에 정육점 여자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다시 파채를 썰기 위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고, 정육점 사장은 윤재의 어깨를 툭 치며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던 윤재가 덤덤한 표정으로 하지만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아기가 곧 생기실 거에요! 꼭 그렇게 될 거니까. 아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만 꼭 유지하세요. 꼭 갖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셔야 해요! 자주 자주 생각하시면 좋아요. 꼭이요!”


윤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정육점 사장은 호탕한 웃음을 크게 터뜨리며 윤재에게 말했다.


“오늘은 목살 좀 가져가라! 팔리지도 않아서 처치 곤란이야!”


윤재는 오랜만에 만난 정육점 가게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주인 부부 몰래 가게 곳곳에 액운을 없애는 비방과 부적을 또 숨겨놓았다.


아저씨에게 양손 가득 무거운 고기를 받은 윤재는 아저씨가 늘상 그래오듯이 자신을 어깨로 밀며 가게 밖으로 내밀자 어쩔 수 없이 고깃값을 계산도 하지 못하고 가게 밖으로 쫓겨났다.


자신을 배웅한 뒤, 가게로 다시 들어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지켜본 뒤에서야 윤재는 가게 입구 양 옆 땅 속에 작은 구멍을 파고 자신이 미리 준비해온 작은 조각상 두 개를 양옆 좌우 하나씩 묻고서야 길을 나섰다.


- 아저씨! 제가 해드릴 건 이것밖에 없네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실진 몰라도 크게 다치시거나 아픈 일은 없을 거에요.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시던 아기도 가지실 수 있게끔 제가 도와드릴게요!


윤재는 자신과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정육점 사장 부부를 위해 무명스승님께 조르고 졸라 얻은 비방술을 설치한 것이었다.


무명스승님께 간절히 부탁해 겨우 조르고 졸라 간신히 얻어낸 아이를 갖는 잉태 비방술에 관련된 부적과 결계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얻느라 윤재는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었다.


남자 아이를 많이 출산한 여자의 팬티 속옷과 영험한 강철로 된 도끼를 구해 제주도에 있는 돌하루방의 코를 갈아낸 돌가루를 섞어 쓴 부적을 묻고 결계를 쳐두었다.


정육점 부부는 아이를 오랜 시간동안 갖지 못했는데, 무명스승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이유를 여쭈어보니 짐승을 해(害)하는 일은 아닐지라도 그 육체를 훼손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이기에 그 영향으로 집안에 자손이 귀한 것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윤재 자신이 하도 졸라대자 무명스승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부적과 비방술을 알려주시며 주의사항을 말씀해주셨다.


무명 스승님은 간절한 마음이 아니면 부적이나 결계 역시 무용지물이라고 하시면서 꼭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강력한 염원이 있어야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윤재는 정육점 아저씨에게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마음을 꼭 가지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 간절한 마음을 지녀야 아기가 생기실 거에요! 제 말 꼭 기억하셔야 해요!


윤재는 고맙고 측은한 눈빛으로 정육점 가게를 잠시 쳐다보고는 서둘러 무명 스승님이 계신 구미로 찾아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한 윤재였지만 지금 무명 스승님에게 언제 공격이 들이닥칠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윤재는 무명 스승만큼은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





한편 수희 일행이 일월선녀의 삼척 집에서 구미까지 가는 길은 차로 4시간 가량 걸리는 장거리였다.


중간에 상현의 권유로 일행 모두는 마지못해 휴게소를 한번 들렸을 뿐, 그들은 좀처럼 차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기에 경환은 어쩔 수 없이 구미로 가는 차의 엑셀만 열심히 밟았다.


일단 구미시내로 접근한 그들은 선아가 눈을 감고 더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안내를 받아 차를 천천히 이동했다.


결국 한참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곳은 구미시와 칠곡군 사이에 위한 낡은 폐공장이 위치한 산기슭 마을이었다.


마을 초입 입구에는 낡은 흰색 간판이 길게 세로로 하나 세워져있었는데 흰색 페인트는 다 녹이 슬어 군데군데 붉은 갈색 빛으로 색이 바래있었다.


촌스러운 옛날 글씨체로 ‘산업단지 제1공단’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모두가 천천히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초라할 정도로 드문드문 몇집만 보일 뿐, 사람이 사는 곳 같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모두가 떠나버린 유령도시 속 폐공장과 폐마을 같았다.


그들이 내린 곳은 초창기 구미 국가산업단지의 제1공단이었다.


구미국가산업단지는 본래 반도체 산업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산업단지 조성 초창기에는 섬유나 직물과 같은 의류관련 생산이 중점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휴대전화 생산 단지가 들어서면서 반도체와 디지털 산업을 중심으로 공단이 변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1단지에 생겼던 직물공장이나 의류 생산공장은 그 문을 닫게 되면서 폐공장들이 하나둘씩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긴장한 채 천천히 마을 입구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철책(鐵柵)으로 둘러싼 울타리와 담장이 보였다.


붉은 벽돌을 조악스럽게 쌓아올려 덕지덕지 시멘트를 발라 굳혀놓은 탓인지 담벼락은 엉성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절대로 안에 사람들을 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만큼은 확고하게 느껴졌다.


담벼락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주변으로 연두색 철망을 얼기설기 묶어놓고, 깨진 유리병까지 덕지덕지 올려놓아 보기 흉할 정도였다.


담장 옆에는 조잡한 붉은색 락카로 써놓은 위협적인 글씨가 보였는데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써져 있었다.


모두가 숨죽여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인기척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작가의말

[email protected]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들의 벽사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3 챕터8-133. 전생- 전생의 기억 (2) 23.12.18 20 1 11쪽
132 챕터8-132. 전생- 전생의 기억 (1) 23.12.18 22 1 11쪽
131 챕터7-131(완).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4) 23.12.17 21 1 11쪽
130 챕터7-130.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3) 23.12.17 19 1 11쪽
129 챕터7-129.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2) 23.12.16 20 1 11쪽
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127 챕터7-127.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3) 23.12.15 20 1 11쪽
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0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2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5 1 11쪽
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122 챕터7-122.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1) 23.12.13 26 1 11쪽
» 챕터7-121.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3) 23.12.12 29 1 11쪽
120 챕터7-120.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2) 23.12.12 27 1 11쪽
119 챕터7-119.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1) 23.12.11 21 1 11쪽
118 챕터7-118. 무명도사- 폭풍전야 (3) 23.12.11 23 1 11쪽
117 챕터7-117. 무명도사- 폭풍전야 (2) 23.12.10 24 1 11쪽
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6 1 11쪽
115 챕터7-115.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9) 23.12.09 25 1 13쪽
114 챕터7-114.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8) 23.12.09 27 1 11쪽
113 챕터7-113.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7) 23.12.08 24 1 11쪽
112 챕터7-112.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6) 23.12.08 26 1 11쪽
111 챕터7-111.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5) 23.12.07 30 1 11쪽
110 챕터7-110.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4) 23.12.07 28 1 11쪽
109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23.12.07 27 1 11쪽
108 챕터7-108.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2) 23.12.06 26 1 11쪽
107 챕터7-107.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1) 23.12.06 28 1 11쪽
106 챕터7-106.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2) 23.12.06 26 1 11쪽
105 챕터7-105.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1) 23.12.06 26 1 11쪽
104 챕터6-104(완). 사이비(似而非)- 폐아파트 (9) 23.12.06 27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