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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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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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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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DUMMY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자!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오늘부터 정신 개조가 들어간다! 썩은 마음을 버리고 새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그들을 각목과 몽둥이로 위협하며 사내들이 어린 아이들을 이끈 곳은 기다란 방에 수십 개의 2층 침대가 놓여 진 창고였다.


이미 침대 곳곳에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모두 군인들처럼 짧은 머리에 파란 츄리닝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부터 너희는 28소대다! 소대장! 안내해!”


대장같아 보이는 검은 가죽 자켓을 입은 사내의 외침에 맨 앞에 나와 있던 모자를 쓴 파란 츄리닝의 남자 아이가 군인처럼 경호를 하며 앞으로 나왔다.


그렇게 남자 아이는 지금 막 끌려온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만월과 만원은 끌려온 오늘 날짜가 적힌 파란색 츄리닝 운동복을 손에 쥐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입고 있는 옷은 다 벗어! 소지품은 하나도 있으면 안 돼. 하나라도 숨겼다가 들키면 그대로 죽는 거야!”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것인지 앙칼진 앳된 목소리의 남자 아이가 소리쳤다.


그와 비슷한 또래의 건장한 남자 아이가 그를 향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소리 지른 남자 아이 옆에 서있던 다른 아이 하나가 쇠파이프로 말하려던 어린 남자 아이의 어깻죽지를 거세게 내리쳤다.


“닥쳐! 어디서 소대장님 말에 대들어! 너 죽고 싶냐?”


소리치는 남자 아이는 왼팔에 어떤 빨간색 완장 같은 것을 차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엔 ‘조장’이라고 적힌 것 같았다.


“에헤이! 너 안 되겠다. 따라 와!”


이윽고 완장을 찬 다른 남자 아이와 함께 두 명은 어깻죽지를 맞고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아이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내 ‘퍽퍽’하는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로 무자비한 매질이 시작된 듯 싶었다.


“에구... 말 좀 듣지! 너희들 까불다가 첫날부터 이빨 다 뽑힌다? 정신 차리고 얼른 환복!”


소대장이라 불린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외치자 오늘 끌려온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서둘러 알몸으로 옷을 모두 벗고 일사불란하게 파란색 츄리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츄리닝 옷을 쥔 만월의 손이 겁에질려 덜덜 떨고 있자, 어느 새 옷을 갈아입은 만원이 서둘러 만월의 옷을 벗기고 츄리닝을 입혀주었다.


“오빠... 여기가 어디야? 우리 왜 이래야 해?”


울음기가 가득 찬 만월의 말에 만원은 조용히 하라며 검지손가락을 만월의 입가에 가져다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 만월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곳이 고아, 장애인, 부랑자들의 지옥과도 같은 ‘엘림 복지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곳에는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나이와 성별의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술을 먹고 시비가 붙어 온 취객은 물론이거니와 길거리에 노상방뇨를 했다고 잡혀온 사람도 있었고, 노숙자는 흔하디 흔했다.


그들은 그렇게나 아무런 이유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



“힘드시죠? 옛날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나 아프고 힘드실 겁니다.”


과거를 회상하던 만월은 자신의 앞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나직히 말해오는 여자 무당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만월이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 아버님께서도.... 그럼.... 엘림 복지원에서.... ”


“저희 아버지는.... 죽지는 않고... 나오셨어요. 그게 더 지옥같으셨으려나요... 아버지가 나오셔서... 한 3개월 사셨나...? 결국은 몸져 누우시고 돌아가셨죠.”


만월은 엘림복지원에서 나오자마자 3개월만에 돌아가셨다는 아버지의 말을 하고 있는 무당을 슬픈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복지원에 가느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았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손가락에 손톱이 다 뽑히셔서는... 지문도 다 닳아 없으시고...”


그 말을 끝으로 여자무당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만월이 서둘러 앞자리에 놓인 휴지를 꺼내 여자무당에게 건넸다.


만월에게 휴지를 건네 받은 여자 무당은 눈가에 맺힌 눈물들을 닦아내며 만월을 향해 말했다.


“방금 전에 제가 벌레처럼 내쫓은 저 개새끼가 누군지 모르시죠?”


만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 무당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못내 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신을 모시는 입장이 아니라면... 당장 칼로 찔러 죽이던 산채로 불에 태우던 하고 싶은 놈이지요. 아니 부산역 광장에 매달아 놓고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도 시원치 않을 놈입니다! 금기(禁忌)를 어기고서라도 저 개 같은 새끼를 향해 양밥이라도 날려 저주를 쏘고 싶지만... 제가 모시는 신 할머니께서 절대 그러지 말라고 애걸복걸을 하셔서 지금 겨우겨우 참고 있습니다... 저 새끼를 눈앞에 두고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니 원통해 죽겠습니다.”


사실 무속인들 가운데 저주를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비방을 거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극히 드문 사례로 그 후폭풍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저주라는 행위 자체가 무당들 사이에서는 ‘청부살인’과 같은 동급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어지간히 돈에 눈이 멀거나, 사이비 무당 혹은 원한이 깊지 않은 이상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다.


애초에 강력한 신령을 모시며 신통력을 키워야하는 무당이 자신의 몸을 선하고 깨끗하게 만들기는커녕 남을 저주하는 비방을 한다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벌전(罰錢)을 받아 오히려 자신이 죽는 경우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악연(惡緣)이기에.. 그리 하시는지...”


만월이 조심스럽게 여자무당의 눈치를 살피며 묻자 살기(殺氣)가 어린 여자무당이 살기가 잔뜩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박창근 그 개 같은 새끼 아들 놈입니다! 그 악명 높은 ‘아바이 수령’ 아들 놈이란 말입니다!”


무당의 말을 들은 만월의 눈이 경악에 차 한껏 커졌다.



***



- 빰~ 빰~빠바밤


요란스런 아침 기상 나팔소리가 들려왔고, 새벽 4시에 부스럭 거리면서 일어난 아이들은 서둘러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사실 말이 세면장이지 너른 운동장 공터에 수도시설을 대충 지어놓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때는 10월이었고 추위 속에서 그들은 얼어붙을 것 같은 물에 세면을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차가운 물에 씻기 싫다며 며칠 째 씻지 않는 이도 있었다.


새벽 4시 30분까지 세면을 마치고, 구보를 돌아야했다. 아무리 몸이 아프고 죽을 것 같다 하더라도 그 어느 누구 한명 열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구보를 돌고 나면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


죽에 가까운 희멀건 묽은 쌀죽에 나물과 무짠지 몇 개가 전부였다.


그나마 그것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때로는 애기 주먹만한 크기의 소금만 친 작은 주먹밥 하나만 제공되는 날도 있었다.


모두가 고된 노동에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주린 배를 움켜쥐고 엄청난 굶주림에 허덕였다.


서둘러 만원은 만월의 눈가에 붙은 눈꼽과 눌러붙은 눈물 자국을 찬물로 씻어주고 자신이 빨래를 해 말려놓은 작은 손수건으로 그것을 닦아주었다.


만월은 그런 오빠 만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오빠... 큰 오빠는 잘 있을까?”


만월의 말에 만원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자신에게 배급된 작은 소금 주먹밥을 만월의 양손에 쥐어주고는 서둘러 일터로 나갔다.


멀어져가는 작은 오빠 만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만월의 시선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라는 검정 페인트로 써진 간판이 보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연이어 파란 츄리닝을 입은 남자들이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며 구보를 돌고 있었다.


9살, 10살 또래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도 따라 뛰고 있었고, 개중에는 아파 보이는지 절뚝거리면서 힘겹게 그들을 뒤쫓아 가는 아이들도 보였다.


‘83090312’ 자신의 수인번호를 읊조리며 만월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가을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엘림 복지원 이곳에서는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들어온 입소날짜에 순번을 매겨 불렸다.


작은 오빠 만원의 수인번호는 ‘83090311’이었다.


이곳에 끌려와 감금된 사람들은 모두가 일을 해야만 했다.


보통 끌려온 성인들은 밭일, 조개 캐기, 염전, 김 양식, 산을 깎고 건물을 짓는 일 등을 맡아 했고, 어린 아이들은 조개껍질로 분필을 만드는 공장이나 낚시 바늘 공장에서 일했다.


모든 일이 힘들고 고되었지만 사실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힘든 노동보다는 소대장을 비롯한 조장들의 구타였다.


어린 10살 또래의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일을 하다가 조그마한 실수가 반복되는 날이면 바로 연이어 발길질과 싸대기질이 가해졌다.


엘림 복지원에서 구타는 일상이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눈치껏, 요령껏 배우지 않는다면 동작이 늦는다고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이 곳에서 생각하고 일을 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거대한 공장을 가장한 강제노역시설에서 만월이 배정받은 일터는 ‘낚시 바늘 공장’이었다.


만월은 어제 개수가 맞지 않는다며 무참히 쳐 맞았던 허벅지가 땡기고 아파서 걸을 때마다 몰려오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손톱에 낚시 바늘이 박히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초록색 바퀴 날을 돌리며 바늘에 찔려 피가 후두둑 떨어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산을 깎아 건물을 짓는 성인 남성들은 다음 날 몸살이 나 앓아누울 정도였지만 어린 아이들이 맡은 노동 역시 쉽지 않았다.


“새마을 정신으로 우리는 유신의 역군이 된다!”


다 같이 목청을 높여 큰 소리로 구호를 소리치며 서둘러 배정받은 낚시 바늘 갯수를 확인했다.


오늘 할당받은 갯수를 채우지 못하면 무자비한 폭행과 기합이 주어진다.


“개새끼야, 일어나! 너 같은 개같은 새끼는 그냥 죽어야 돼!”

“한번만 살려주세요. 조장님! 다시는 안 그럴게요!”

“조장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 멀리서 고함치는 소리와 무릎을 꿇고 살기 위해 애원하는 여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장에 있는 어린 아이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척, 그렇게 그 아비규환의 소리들을 모두 무시하고 묵묵히 초록색 바퀴를 굴리며 낚시 바늘을 구부려야 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개처럼 맞아가며 일했다. 오죽하면 군대나 감옥이 더 낫겠다는 말이 우습게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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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챕터7-131(완).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4) 23.12.17 22 1 11쪽
130 챕터7-130.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3) 23.12.17 19 1 11쪽
129 챕터7-129.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2) 23.12.16 20 1 11쪽
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127 챕터7-127.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3) 23.12.15 20 1 11쪽
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0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2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5 1 11쪽
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122 챕터7-122.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1) 23.12.13 26 1 11쪽
121 챕터7-121.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3) 23.12.12 2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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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챕터7-119.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1) 23.12.11 21 1 11쪽
118 챕터7-118. 무명도사- 폭풍전야 (3) 23.12.11 23 1 11쪽
117 챕터7-117. 무명도사- 폭풍전야 (2) 23.12.10 24 1 11쪽
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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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챕터7-114.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8) 23.12.09 2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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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챕터7-112.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6) 23.12.08 2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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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챕터7-110.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4) 23.12.07 29 1 11쪽
»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23.12.07 2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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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챕터7-105.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1) 23.12.06 2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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