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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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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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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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7-131(완).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4)

DUMMY


창고 안에 천수도령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선아야, 예를 들어서 말이야. 네가 믿는 종교의 교주가 너한테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을 없앨 악마가 태어난 거라고, 세상을 없앨 위험한 인물이니까 꼭 처단해야한다고 믿음을 주입했다고 가정해봐. 넌 그 교리를 믿고 그 아기를 엄청난 악마처럼 생각하고 믿을 거야. 그치?”


“아마 그렇겠죠? 그래서 북한에서도 김정은이 거의 신처럼 여겨지는 거 아니에요?”


선아의 대답에 천수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런데 만일 그 아기가 그냥 죄 없이 태어난 힘없는 아기였다면, 그 교주 말을 믿은 광신도들이 그 아기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그 아기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거겠지?”


“근데 진짜로 그 아기가 악마의 재림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살짝 인상을 쓰며 꺼림칙한 표정을 지은 선아의 말에 천수도령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의문을 갖는 것.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는 거. 그게 사이비의 가장 무서운 점이야. 진짜 교주님 말이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혹시나 하고 의심하는 거. 그걸 막을 수가 없는 거야. 사이비는...”


선아는 천수도령의 말이 이제야 이해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있는 무명도사와 그의 제자 윤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사형! 있잖아요. 그러면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개념 역시.... 그걸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정한 개념 아닌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뭣도 모르는 어린 애가 말하는 투정 같다고 하겠지만... 흔히 사람들이 믿는 종교라는 교리(校理)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척도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신의 섭리라는 것이 인간이 가진 지식과 정보로는 판단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선아의 질문은 순수했지만 그만큼 정교하고 집요했다.


천수도령은 어린 선아의 질문을 유심히 듣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신의 제자라는 나 역시도... 아직도 올바른 신(神)이 무엇이고, 우리가 믿는 신(神)이 선신(善神)인지 악신(惡神)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이런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인지... 엉덩이나 거하게 한번 걷어차고 싶거든?”


“어머! 사형! 지금 이 말 일월선녀 스승님이 들으시면 당장 죽비로 사형 머리를 후드려 패실걸요? 부정 타요! 얼른 용왕 신께 사죄드려요!”


선아가 무서운 듯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지만 천수도령은 껄껄 너털웃음을 지으며 선아가 귀엽다는 듯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수희는 무명을 태우고 있는 검은 불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 지옥에서 유황불에 튀겨질 새끼는 따로 있는데! 엄한 사람이 희생되는 건 여전하구나. 무명도사를 어찌 구제한담. 아무리 악행을 저질렀다지만... 사람인데! 살려야하는데!


수희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윤재가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수희와 한결의 손을 뿌리치고 무명을 향해 미친듯이 내달렸다.


“스승님! 이 업보는 저를 마지막으로 끝내겠습니다!”


윤재는 무명을 향해 말하며 활활 타오르는 무명에게 다가가 그의 주변에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무언가 결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윤재가 그린 결계는 옥처럼 초록색 빛이 빛나는 북극성 모양이었다.


흔히 일반인들은 밤하늘에 떠있는 국자 모양의 별들을 보고 '북두칠성'이라고 불렀는데 북두칠성의 국자 머리 부분의 두별을 이어 그 간격의 약 다섯 배 떨어진 곳을 찾으면 북극성이 위치하고 있다.


사실 지금 윤재는 일전에 폐아파트 사건 때 수십명의 귀신들을 천도 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으며 그렸던 ‘자미천문’을 여는 결계를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미천문은 천상계를 관장하는 옥황상제에게 이를 수 있는 문(門)을 뜻한다.


예로부터 북극성은 모든 별을 주관하고 모든 신(神)을 관장하는 옥황상제를 상징했으니 지금 윤재는 옥황상제에게 직행할 수 있는 통로를 여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지난번 폐아파트 사건 당시 윤재는 무당귀와 억울한 영혼들을 천도시키고자 자미천문을 열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이 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의 신딸 무당귀들의 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윤재는 또다시 자신의 수명까지 깎아내며 옥황상제에게 다다를 수 있는 문을 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어떤 문양이 완성되자 무명의 몸을 태우던 검은 불빛은 푸른 옥색 불빛으로 변해 환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저 멀리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승주가 그 푸른 불빛을 보고는 깜짝 놀라 수희에게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수희야! 저거 지금 자기 수명 태우는 거야! 저 윤재라는 남자애 지금 자기 수명을 쓰려고 해!”


승주의 외침에 수희가 놀라 쳐다보자 윤재는 고통스러운지 땀을 뻘뻘 흘리며 무명 앞에 무릎을 꿇고 망가진 왼쪽 손가락을 들어 올려 간신히 두 손으로 수인을 맺고 있었다.


- 여기저기 자기 목숨 바치며 나 잡아잡수 하는 사람 천지삐가리네! 아휴! 진짜! 어쩌면 좋지!


수희는 혀를 끌끌 차며 윤재를 막아서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려는 순간이었다.


수희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이내 포기한듯 우뚝 서서는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서 슬픈 표정으로 윤재의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당연히 윤재의 비술을 막아설 것이라 생각했던 승주는 수희가 가만히 있자 이내 그녀의 의도를 깨달았다. 승주 역시 수희처럼 가만히 서서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랬다.


승주 역시 수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저 윤재라는 아이 역시 자신의 스승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따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내던질 것이었다.


그것을 막아서는 것 역시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었다.


승주나 수희가 무슨 자격으로 그의 희생을 저지하며 막아선단 말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친구를, 가족을, 그리고 스승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윤재가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영혼이 소멸하는 것만큼은 제가 어떻게든 막겠습니다. 육도윤회의 영겁의 처벌을 받으시더라도 꼭 다음 생에 환생하십시오! 부디 다음 생에서도 부족한 저지만... 제 스승님이 되어주십시오! 또 다시! 꼭 제 스승님이 되어주십시오!”


“우리 윤재! 내 스승님도 겨우 해내신 자미천문을 열었구나! 마침내 해냈어!”


무명은 힘에 겨운 듯 했지만 기쁘다는 듯이 환희에 차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에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가 전에 우리 윤재가 나를 넘어서면... 한껏 신이 나서 방실방실 춤이라도 춘다고 했는데... 미안하구나. 내가 지금 춤을 출 몸이 아니라서.... 그래도 나는 정말 기쁘다. 정말로 기뻐!”


윤재는 그런 스승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양 볼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치고 외쳤다.


“스승님! 스승님 존함을 말씀해주십시오. 스승님 이름만큼은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무명은 순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이름은 무명(無名)이다. 이름을 남겨서도 기억해서도 안 된다는 뜻에서 내 스승님께서 그리 정하셨다.”


“아닙니다. 저만은 기억하고 싶습니다.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슬픈 눈으로 하나뿐인 소중한 제자를 쳐다보던 무명이 조용히 속삭였다.


“내 이름은 이학승. 기억해준다면 고맙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무명의 영혼은 검은 안개가 된 그의 사형과 함께 안개처럼 북두칠성의 결계 안에서 옥빛으로 흩어져버렸다.


무명의 영혼이 흐려지며 공중에 산산히 흩어지자 이윽고 긴장이 풀린 윤재가 그대로 땅바닥에 털썩 쓰러져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멀리서 수희가 소리 지르며 자신을 향해 뛰어 오는 것을 느끼며 윤재는 점차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판넬이 찢어지고, 거대한 태풍이 들이 닥친 것처럼 구미 폐공장 내부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어느새 깊게 내린 어둠 속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고, 모든 일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한 상현과 경환은 서둘러 자신들이 부른 후배와 용역들에게 접근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한결은 수희와 함께 윤재를 들쳐 엎었고, 승주는 선아와 천수도령의 부축을 받으며 폐공장 문을 나섰다.


한결과 힘겹게 윤재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서는 수희는 무명도사가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자리에서 반짝이는 푸른 돌 하나를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워들자 영롱한 푸른빛을 가득 뿜어내는 보석 같은 것이 수희 손 안에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 이게 뭐지? 일단 가져가봐야겠네... 무명도사 유품인가... 나중에 윤재한테 주던가 해야지.


짙게 내린 어둠이었지만 수희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겨울밤 하늘은 은하수로 밟게 빛나고 있었다.


수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고, 이내 차갑게 시리다 못해 코가 매운 겨울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수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밤은 길고 처연했으며, 너무나도 아름다워 슬펐다.




<챕터7. 완결>



***



<챕터8. 전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필두로 조선은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에게 끊임없는 침탈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대국들은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각종 이권을 빼앗고, 한국 국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탈을 당하게 된다.


특히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을 통해 대한제국에 대한 침탈을 공고히 하게 되는데, 1905년의 을사늑약을 거쳐 기어이 1910년에 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강탈하는데 성공하여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열강들 대다수는 조선의 식민화를 눈감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하였다.


시대적 상황은 지옥과 다름없이 암울하였으니, 우리 민족은 자유와 해방을 희망하며 많은 국민들이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 쓴 이름 없는 민중들과 애국선열들은 목숨을 걸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내던졌다.





깊이 감추고

팔지 않음이여!

지사의 뜻이로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이사

백일이 비치리라


- 시인 조지훈의 박찬익 선생 추모비 중에서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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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챕터8-133. 전생- 전생의 기억 (2) 23.12.18 20 1 11쪽
132 챕터8-132. 전생- 전생의 기억 (1) 23.12.18 22 1 11쪽
» 챕터7-131(완).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4) 23.12.17 22 1 11쪽
130 챕터7-130.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3) 23.12.17 19 1 11쪽
129 챕터7-129.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2) 23.12.16 20 1 11쪽
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127 챕터7-127.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3) 23.12.15 20 1 11쪽
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0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2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5 1 11쪽
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122 챕터7-122.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1) 23.12.13 26 1 11쪽
121 챕터7-121.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3) 23.12.12 29 1 11쪽
120 챕터7-120.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2) 23.12.12 27 1 11쪽
119 챕터7-119.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1) 23.12.11 21 1 11쪽
118 챕터7-118. 무명도사- 폭풍전야 (3) 23.12.11 23 1 11쪽
117 챕터7-117. 무명도사- 폭풍전야 (2) 23.12.10 24 1 11쪽
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6 1 11쪽
115 챕터7-115.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9) 23.12.09 25 1 13쪽
114 챕터7-114.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8) 23.12.09 27 1 11쪽
113 챕터7-113.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7) 23.12.08 24 1 11쪽
112 챕터7-112.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6) 23.12.08 26 1 11쪽
111 챕터7-111.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5) 23.12.07 30 1 11쪽
110 챕터7-110.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4) 23.12.07 29 1 11쪽
109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23.12.07 27 1 11쪽
108 챕터7-108.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2) 23.12.06 26 1 11쪽
107 챕터7-107.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1) 23.12.06 28 1 11쪽
106 챕터7-106.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2) 23.12.06 26 1 11쪽
105 챕터7-105.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1) 23.12.06 26 1 11쪽
104 챕터6-104(완). 사이비(似而非)- 폐아파트 (9) 23.12.06 27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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