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071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11 12:10
조회
23
추천
1
글자
11쪽

챕터7-118. 무명도사- 폭풍전야 (3)

DUMMY

한편 평창 오대산 기슭에 있는 ‘상원사(上院寺)’ 역시 뱀들로 소동이었다.


상원사에 시주를 하거나 공양을 드리러 온 불자(佛子)들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절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사찰 입구에서 나타난 실뱀 무리들 때문에 관광객을 비롯한 절을 찾은 많은 손님들이 우왕좌왕 도망 다니며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이내 젊은 스님들 여럿이 기다란 대나무 빗자루나 키질을 할 때 쓰는 갈퀴를 들고 나와 뱀들을 이리저리 밀며 치우고 있었다.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던 화련스님이 대웅전에서 나와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읊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부터 은은한 연꽃 향이 뿜어져 나오더니 뱀들을 향해 안개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옅은 향냄새가 섞인 잔잔한 연꽃 향냄새에 이내 절은 차분한 분위기로 바뀌며 뱀들이 미친 듯이 여기저기 흩어져 도망가느라 바빴다.


이내 젊은 스님 몇이 화련의 뒤에서 그의 목탁소리에 맞춰 불경을 읊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나이든 노인 불자(佛子)들 서넛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꼿꼿이 서서 그 기도소리에 맞춰 합장을 한 채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자 어느새 경내에 뱀들은 모조리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십여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화련이 조용히 목탁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자 경내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는 등을 돌려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어깨를 몇 번 두드린 뒤 사찰 주변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별 일 아닙니다. 다들 놀라셨겠습니다... 아무래도 뱀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팝나 봅니다. 허허... 이제 그만 경내를 정리 해야겠지요?”


화련스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제자들과 주변에 있는 불자(佛子)들을 따뜻하게 다독거렸다.


정리를 부탁하면서 화련스님은 특히 사찰 입구 쪽에 백반 가루를 뿌려 놓으라고 말했다.


백반가루는 흔히 ‘명반’이라고도 부르는데 여자들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일 때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백반가루는 뱀들이 싫어하는 가루로도 유명하다.


화련의 말에 젊은 스님들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절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화련스님은 고개를 들어 어둑해지는 겨울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깊은 겨울밤이었고, 산 속이었기 때문일까 일찍이 찾아온 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별들이 어지럽게 수놓고 있었다.


화련은 근심어린 눈빛으로 한줄기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밤하늘의 별 하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




모두가 뱀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한결이 일하는 소방서 역시 혼란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한결은 친구 준희의 아귀(餓鬼) 사건을 해결하면서 나찰들에게 몽둥이질을 호되게 당했다.


준희와 한결은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서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상당한 후유증을 앓았다.


특히 준희는 절에서 나온 뒤로 며칠을 앓아누웠는데 결국은 그의 외삼촌 지호의 강력한 조치로 병원에서 입원하여 요양 아닌 요양을 했다.


하지만 사실 한결 역시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몽둥이질을 피할 수 없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무언가에 두들겨 맞은 한결의 몸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평소에 틈틈이 소방훈련을 위해 운동을 해왔기에 근육질로 탄탄한 몸이었지만, 나찰의 방망이질은 준희와 한결을 골병이 들게 만들 정도였으니 이렇게 소방서에 출근을 하는 한결이 어찌보면 무모하면서도 대단한 것이었다.


한결은 실금이 갔는지 저릿저릿한 왼쪽 갈비뼈 부위를 살살 문지르며 조심스레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분명 어깨를 좌우로 돌려봐도 온몸의 뼈가 아작이 난 것처럼 성치 않아서 샤워할 때 머리를 감는 것조차 아팠다.


- 아무래도... 병가를 좀 길게 내야할 거 같은데... 어쩌나...


한결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고민 중이었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다들 힘들어하는 와중에 갓 임용한 신출내기인 소방대원이 장기간 병가로 휴가를 낸다면 다들 쌍욕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한결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동안 갑자기 선배가 휴게실로 뛰어 들어오며 한결에게 소리쳤다.


“야! 한결아! 너 몸 괜찮냐?”


한결은 자신이 친구 준희와 함께 수희가 알려준 ‘나찰’이라는 귀신에게 몽둥이질 당한 사실을 주변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다가와 자신의 몸 상태를 물어보다니 한결은 내심 당황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그럼요! 저 멀쩡해요!”


그의 말에 선배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한결의 어깨를 치며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한결은 그의 손길에 어깨 쪽이 저릿하며 통증을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에게 다시 물었다.


“왜요? 갑자기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한결의 물음에 선배 대원이 말했다.


“아니, 요 근래 자꾸 병가 휴직계를 내는 소방대원들이 많아져서 말이야.”


“네? 병가요?”


“연가도 아니고 병가니까 혹시나 꾀병인가 싶다가도... 또 꾀병이라고 할 수 없는 게.... 병가 낸 소방대원 전부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대지 뭐냐. 피 속에서 무슨 실뱀 같은 작은 지렁이들이 나왔다는데... 죄다 얼굴은 보랏빛으로 변해서는 다들 난리도 난리가 아니다. 소방서장은 소방 차장님 불러다가 발로 쪼인트 까면서 길길이 날뛰고 소리 지르고... 아이고 6.25 전쟁통은 난리도 아니다. 지금이 전쟁통보다 더 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하는 선배의 말을 듣던 한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실뱀이 아니라 기생충 같은 거 아닙니까? 단체 식중독 같은 거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 같은 병원에 입원시켜서 정밀 검사 중인가 본데. 웃긴 게 우리 소방서에 근무하는 소방대원들만 그래! 식중독이나 기생충 감염 이런거면 옆에 경찰서 사람들도 걸려야하는 거 아니냐? 같이 밥 먹는데 우리 쪽 사람들만 걸린다는게 말이 돼?”


선배의 말이 맞았다.


소방서 옆에 붙어있는 꽤 큰 규모의 경찰서는 소방서와 함께 식당을 꾸려 급식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면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조기축구 뿐만 아니라 테니스, 배드민턴과 같은 동호회를 만들 정도로 친목이 두터웠다.


그런데 경찰관들은 괜찮고, 소방대원들만 단체로 식중독이나 기생충 감염이 되었다는 것은 도통 말이 되지 않는다.


“암튼 우리 소방지구대 사람들 다 빠져서 인근 소방서에서 인력 차출되서 지원 나온다고 하더라. 혹시 너도 몸 안 좋으면 참을 생각 말고, 그냥 지금 바로 병가 내! 지금 우리 소방대원 전체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이러다가 누구 한명 죽는 사람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에휴...”


한결 역시 이 상황이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컵라면을 끓이기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던 선배가 문자 알람이 온 자신의 핸드폰을 보고 놀라 한결에게 소리쳤다.


“야! 미친! 지금 소방서장님도 지금 피토하고 쓰러 지셨댄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이것 좀 치워라!”


한결의 선배 대원은 한껏 놀란 눈으로 컵라면에 부으려면 전기포트를 내려놓고 재빨리 휴게실을 뛰쳐나갔다.


한결도 따라 나서려다가 이내 느껴지는 복부와 다리 쪽의 통증 때문에 그만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 오늘 출동 없는 비번이라 다행이지. 아오... 안되겠다. 나도 병가 내던지 해야지. 지금 이 분위기면 병가 내도 뭐라 못하실 듯 한데.... 병가를 내도 되나...


한결은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한결은 문득 오랫동안 수희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수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때 마침 수희에게서 한결에게 전화가 왔다.


한결이 잔뜩 커진 눈으로 바로 수희의 전화를 받았다.


“어! 수희 씨! 진짜 진짜인데요! 진짜 진짜로 제가 지금 막 수희 씨한테 전화 걸려는 참이었는데! 진짜에요!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있나봐요! 수희 씨가 저한테 전화를 먼저 줬네요!”


한결의 목소리는 한껏 신이 난 어린아이 같이 쫑알쫑알 거리고 있었다.


“됐고! 괜찮아요? 몸 아프거나 이상한데 없어요? 뱀 없어요? 뱀이요!”


한결은 수희가 절에서 나찰에게 두들겨 맞아서 자신의 몸이 아픈 것인지 확인 차 전화를 준 것인 줄 알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한껏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럼요! 저 몸 튼튼해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우리 소방서 대원들이 문제지! 전 멀쩡해요. 다들 피토하고 쓰러져서 지금 소방서가 난리이긴 해요. 단체로 식중독이라도 걸렸나?”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는 말에 수화기 너머의 수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한결이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다들 식중독같은 거 걸렸는데 나는 멀쩡해요! 걱정 마요. 그 나찰인가 무슨 도깨비인가 하는 것들한테 쳐 맞아도 내 몸 거뜬하다구요! 보세요! 키 되지, 몸 되지, 얼굴 되지, 직업도 공무원이니까 나쁘지 않지. 저 진짜 괜찮죠? 수희 씨?”


“아 쫌! 장난치지 말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지금 당장 여기로 와야 할 거 같아요. 지금 뱀들 때문에 다들 난리에요. 그러니까 한결 씨도 내가 알려주는 주소로 지금 당장 와요! 휴가를 내던지 그건 한결 씨가 알아서 하고 지금 당장 와야 해요! 지금 당장 바로요!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전화 끊자마자 바로 와요!”


수희는 한결이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하고 급박해보였다.


한결은 바로 수희에게 온 문자의 주소를 보고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뛰쳐나간 선배를 찾아 나섰다.


한결은 어차피 장기간 병가 휴가를 낼 생각이었다. 주변 소방서에서 차출된 인력들이 이곳으로 충원된다고 하니 그나마 걱정이 덜 했다.


한결은 문자에 찍힌 주소를 조용히 읊고 있었다.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1843-6? 여긴 또 어디래? 삼척까지 오라고? 같이 바다 구경이라도 하자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결 자신에게 호감은 커녕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는 수희가 자신과 함께 겨울바다를 보자고 멀고 먼 삼척까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결은 등과 허리까지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통증에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힘겹게 소방휴게실을 걸어 나왔다.


한결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한결이 일어선 소파 밑바닥에서 검은 뱀 한 마리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뱀이 소파 위로 얼굴을 막 들어올리려는 순간 작은 새빨간 불꽃이 일면서 ‘캬악’소리와 함께 검은 뱀은 그만 새까맣게 타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작가의말

[email protected]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들의 벽사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3 챕터8-133. 전생- 전생의 기억 (2) 23.12.18 20 1 11쪽
132 챕터8-132. 전생- 전생의 기억 (1) 23.12.18 23 1 11쪽
131 챕터7-131(완).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4) 23.12.17 22 1 11쪽
130 챕터7-130.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3) 23.12.17 19 1 11쪽
129 챕터7-129.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2) 23.12.16 20 1 11쪽
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127 챕터7-127.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3) 23.12.15 20 1 11쪽
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0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2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5 1 11쪽
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122 챕터7-122.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1) 23.12.13 26 1 11쪽
121 챕터7-121.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3) 23.12.12 29 1 11쪽
120 챕터7-120.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2) 23.12.12 27 1 11쪽
119 챕터7-119. 무명도사- 구미 국가산업단지 (1) 23.12.11 22 1 11쪽
» 챕터7-118. 무명도사- 폭풍전야 (3) 23.12.11 24 1 11쪽
117 챕터7-117. 무명도사- 폭풍전야 (2) 23.12.10 24 1 11쪽
116 챕터7-116. 무명도사- 폭풍전야 (1) 23.12.10 26 1 11쪽
115 챕터7-115.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9) 23.12.09 25 1 13쪽
114 챕터7-114.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8) 23.12.09 27 1 11쪽
113 챕터7-113.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7) 23.12.08 24 1 11쪽
112 챕터7-112.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6) 23.12.08 26 1 11쪽
111 챕터7-111.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5) 23.12.07 31 1 11쪽
110 챕터7-110.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4) 23.12.07 29 1 11쪽
109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23.12.07 28 1 11쪽
108 챕터7-108.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2) 23.12.06 26 1 11쪽
107 챕터7-107.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1) 23.12.06 29 1 11쪽
106 챕터7-106.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2) 23.12.06 26 1 11쪽
105 챕터7-105. 무명도사- 만월과 수연 (1) 23.12.06 26 1 11쪽
104 챕터6-104(완). 사이비(似而非)- 폐아파트 (9) 23.12.06 28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