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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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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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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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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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7-111.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5)

DUMMY

땅거미가 짙게 내린 어스름이 가득한 새벽이었다.


바깥에서 애처롭게 우는 귀뚜라미인지 모를 풀벌레 소리보다 더욱 더 큰 울음소리가 저 안쪽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애타게 울부짖는듯한 울음소리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아니 창고 안에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제발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울부짖으며 애처롭게 애원하는 여자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모두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 쥐죽은 듯이 숨소리 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바깥쪽 세면장에서는 한창 물고문 중인지 물을 첨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각목과 쇠파이프로 폭행을 하다가 만약 원생이 기절을 한다면 바로 차가운 물바가지를 얼굴에 끼얹어 기절한 사람을 깨우곤 했다. 그래서 조장들은 일부러 세면장 근처에서 원생들을 때리곤 했다.


바깥에서는 무자비한 폭행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취침실 안쪽 깊숙한 선도실에서는 여자들의 비명소리와 여자들의 옷을 ‘부욱’ 찢어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여자소대에서는 성(性)적 학대가 일상이었다.


육체적 고문과 더불어 여자 원생들에게는 수치심이라는 정신적 고문이 가해지면 종종 정신이상자가 되는 여자들도 생겨났다.


원치 않는 성폭행으로 몸이 더럽혀진 원생들은 임신을 하기도 했다. 여자들이 배가 불러오는 순간 이상한 주사기를 이용해 낙태를 하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선도실에서는 종종 이쁘장한 남자 아이들도 불려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복지원 내부에서는 계급이 모든 것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복지원 내부에서는 군대처럼 다양한 계급이 존재했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원생을 마주치면 바로 경례를 해야 했으며, 엘림 복지원의 원장인 ‘박창근’을 마주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바로 3단 경례로 충성을 올려야했다.


만일 그를 보고도 바로 3단 경례를 올리지 못했다면 그 날은 작업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 종일 소대장과 조장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야했다.


“찍찌직!”


옆자리 열열이가 매트리스를 들추고 신이 난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얘! 진짜 먹게?”


어린 만월이 눈썹 사이 미간을 있는 힘껏 찌푸리며, 자신의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조용히 속삭였다.


“얘! 이거 없어서 못 먹는 거야. 너도 하나 먹을래? 두 눈 질끈 감고 꿀꺽해 봐! 보양식이야 보양식!”


열열이가 환하게 웃으며 만월이에게 들이민 것은 매트리스 사이에 쥐가 낳은 새끼 쥐였다. 털도 나지 않고 꼬물꼬물 거리는 맨살의 작은 쥐는 살빛으로 새하얬다.


끼니는 커녕 물배로 주린 배를 채우는 나날들이었다.


산속 가운데 있는 건물들은 난방을 하지 않아 추위에 다들 살이 터져 있곤 했다.


삐거덕 거리는 낡은 2층 침대 매트리스 사이에는 그나마 사람 온기가 닿는 곳이라 그런지 쥐들이 몰래 새끼들을 까놓고 가곤 했다.


서너 마리가 뒤엉켜 꼬물거리는 쥐새끼들은 원생들 사이에서 소중한 보양식으로 통했다.


“열열아, 나는 배가 고파서 굶어 죽으면 죽었지, 그건 못 먹어!”


“으이구! 호강에 겨워 요강 걷어차는 소리하고 있네! 야! 그냥 두 눈 꾹 감고 소고기다 생각하고 먹으면 돼! 나는 소고기 먹고 죽는 게 소원이야! 다음 생에 태어나면 평생 소고기만 먹다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 소고기 먹고 싶어 죽겠네! 소고기.... 아...”


두 눈을 꼭 감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열열이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만월이가 속삭였다.


“어이구! 소고기 같은 소리 앉아있네! 얘! 우리가 지금 소고기는 커녕, 닭, 돼지고기 구경을 못한지가 언제인데 복에 겨운 소리하지마! 얘! 너가 소고기 말하니까 나도 입에 침 고인다! 어쩌면 좋니!”


입술을 햝으며 침을 꼴깍이는 만월이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동무 열열이가 말했다.


“그럼 이거라도 먹던지!”


다시 한번 쥐새끼를 권하는 열열이를 보던 만월이 고개를 파르르 가로저으며 기겁을 하며 손사레를 쳤다.


열열이는 그런 만월이를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쥐새끼들을 자신의 파란색 츄리닝 주머니 사이에 넣고 재빨리 침대에 누웠다.


자칫 하다가는 선도실로 끌려가 소대장이나 조장들에게 몹쓸 짓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알아서 몸을 사려야만 했다.


이 곳은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짐승 이하의 취급을 당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려야했으며, 채찍으로 등을 얻어맞아 그들의 등은 상처투성이로 엉망이었다.


그나마 한겨울은 나았다. 땡볕 아래 일을 하다보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기가 일상이었고, 폭행을 당해 생긴 상처는 덧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고름이 생기면서 열이 올라 앓아눕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어허! 누가 웅성거려! 입 닥치고 취침!


어느새 취침시간이 되어 밖에 문을 쇠사슬로 묶는 소리가 ‘철컹’하고 들려왔다.


깜깜해진 어둠 속에서 만월은 숨죽여 울며 생각했다.


- 아마 난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겠지... 큰 오빠는 나랑 만원오빠를 찾고 있을까... 보고 싶다, 우리 큰 오빠...


눈물로 베개를 적셔가며 만월이 울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거칠게 이층 침대에서 그녀를 억지로 바닥에 끌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으악!”


깜깜한 정적 속에서 만월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며 허리에 엄청난 통증에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만월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무언가 우당탕 소리가 나면서 서로 뒤엉켜 싸움이 벌어진 듯 했다.


“이 개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는 목소리는 분명 작은 오빠 만원이었다.


“오빠!”


만월이 울면서 말하자 만원은 대답 없이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향해 주먹질을 하기만 했다.


‘퍽퍽’소리가 연이어 나더니 곧이어 무언가 ‘챙’하고 맑은 쇳소리가 났다.


‘털썩’소리와 함께 힘없이 축 늘어진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만월은 그대로 원생 숙소 밖으로 양팔을 붙잡힌 채 개처럼 질질 끌려갔다.


그날 만월이 끌려간 곳은 엘림 복지원 원장 박창근이 기거하는 원장실이었다.


만월을 질질 끌고 온 원생들은 짙은 남색 츄리닝을 입은 28소대와 27소대 그리고 26소대의 소대장들이었다.


각 소대를 관할하는 소대장들은 마치 서로 아바이 수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앞 다투어 삼단경례를 화려하고 큰 동작을 섞어 원장에게 선보였다.


“데리고 왔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경례를 마친 소대장 셋은 마치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원장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미소는 비릿하고 비열했다.


만월이 고개를 들고 옆을 바라보자 자신처럼 끌려온 어린 여자 아이 둘이 보였다.


- 각 소대별로 한명 씩 데려 왔구나!


만월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벌벌 떨었다.


그날 만월은 ‘아바이수령’ 내지 ‘신’이라 불리는 박창근 원장에게 몸을 유린당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채고 만월을 납치하려던 소대장들을 막으려던 작은 오빠 만원은 그대로 소대장과 다른 조장들에게 몽둥이질을 당해 3일을 앓아누웠다.


3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끙끙 앓아대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만원은 4일째 되는 날 새벽녘에 정신을 차리고 만월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만원은 만월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미안하다. 만월아! 오빠가 미안해!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만월은 조용히 오빠 만원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위로했다.


“괜찮아 오빠! 나 때문에 맞아서 아팠겠다... 맞은 데는 괜찮아?”


만월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묻자 만원은 서럽게 울기만 했다.


오빠 만원은 그날의 폭행으로 인해 왼쪽 눈을 실명하여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만월은 왼쪽 눈을 보지 못하게 된 만원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만원은 그 이후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정하고 친절했던 사람이 아니라 항상 화가 나 있고, 한껏 날이 서 있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한없이 착하고 성격 좋던 작은 오빠 만원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 다 자기 탓인 것 같아 만월은 만원 앞에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



꼼짝없이 갇혀 감옥 같은 엘림 복지원에서 하루하루 흘러가다보니 어느새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어느 덧 해가 바뀌어 1984년 1월 31일이 되었고, 만월은 요즘 들어 자신의 몸이 이상함을 느끼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배 안 쪽에서부터 무언가 받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랫배부터 골반까지가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들면서 콕콕 쑤시듯이 아플 때가 종종 있었다.


종종 다른 동무 원생들에게서 느껴지는 체취 냄새에 메스꺼움을 느끼며 구역질이 나오려할 때도 있었고, 소변을 전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보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임신의 징후였다.


만월이 초조한 듯 자신의 엄지손톱을 질근질근 깨물며 자신의 작은 오빠 만원을 찾아 운동장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커다란 버스에서 내리는 새로 끌려온 젊은 부역자들이 보였다.


복지원에서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 있었다.


보통 어린 아이들은 늦은 밤 시간에 냉동 탑차나 군용차 같은 것에 실려오고, 젊은 청년이나 여자들은 이른 아침에 커다란 버스에 실려왔다.


간혹 가다 거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불편한 환자들도 오곤 했는데 대부분 병원차를 타고 그대로 병원 건물로 끌려가 햇빛 한점 볼 수 없이 그들은 죽어서야 병원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만월은 물끄러미 버스에서 내려 생기 잃은 얼굴로 시체처럼 걷고 있는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경악에 찬 눈으로 만월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큰 오빠!”


만월이 부른 큰오빠 만호는 뼈만 남아 앙상한 몰골에 정신이 없어보였다.


털래털래 앞사람의 뒷모습만 보며 발걸음을 떼던 그는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쳐다보았다.


“만월아!”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만월을 향해 달려오는 만호는 얼마 가지 못하고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에게 나무각목으로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만월 역시 울면서 큰오빠 만호를 향해 달려가려했지만 어느 새 자신의 등 뒤에 다가온 동무 열열과 또다른 동무 하나가 만월의 팔을 붙들고 그녀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 막았다.


“쉿! 만월아! 너 이러다가 죽어! 제발 조용히 해! 이따가! 이따가 가보자!”


만월의 옆 침대 동무 열열이 인상을 쓰며 만월을 뜯어 말렸고, 만월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만 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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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챕터7-128. 무명도사- 청출어람(靑出於藍) (1) 23.12.16 20 1 12쪽
127 챕터7-127.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3) 23.12.15 20 1 11쪽
126 챕터7-126.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2) 23.12.15 20 1 11쪽
125 챕터7-125. 무명도사- 군다리명왕(軍茶利明王) (1) 23.12.14 22 1 11쪽
124 챕터7-124.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3) 23.12.14 25 1 11쪽
123 챕터7-123. 무명도사- 밀교(密敎)의 비전 결계 (2) 23.12.13 2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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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챕터7-109. 무명도사- 엘림 복지원 (3) 23.12.07 2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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