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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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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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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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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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외전1-182.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2)

DUMMY

때양 볕이 가득한 여름 한낮이었다.


새파란 하늘 아래 흰 구름들이 양떼처럼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었고,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을 쌓아올린 밭 가운데로 자신의 어린 손을 꽉 쥔 채 무지막지하게 날랜 걸음으로 뛰어가고 있는 것은 자신의 친할머니였다.


“몽케지 마랑 혼저 오라게! (꾸물대지 말고 어서 오너라!)”


“할망, 내 귀 눈이 왁왁하우다! (할머니, 나 눈이랑 귀가 캄캄해)!”


어린 일곱 살 정숙의 작은 손을 부서져라 꼭 쥔 할머니의 손등은 살가죽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뼈만 남아 앙상했다.


주름이 지글지글한 뼈만 남은 그 가느다란 손으로 어찌나 세게 자신의 손을 잡았는지 자신의 팔뚝과 손바닥에는 할머니의 손가락 자국이 시퍼렇게 남아있을 정도였다.


“너래 놀암시냐? 경허지 맙서! 그슨대 다시 오쿠다양. (너 놀고 있냐, 그러지 말아라! 그슨대가 다시 온다!)”


할머니의 입에서 ‘그슨대’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어린 정숙의 눈에 두렵고도 무서운 듯이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쥐지 않은 반대쪽 자신의 손가락으로 어린 정숙은 두 눈을 비비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코를 훌쩍이며 콧물을 바닥에 팽 풀고 고개를 돌려 너른 밭 한가운데를 바라보니 이상한 형체 하나가 보였다.


제주 서귀포 대포동에 위치한 당근 밭에서 어린 정숙이 본 것은 검은 세모 모양의 형체가 반복해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었다.


어린 정숙은 삼각형 모양의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데 왜 저런 모양일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서 바라본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메께라! (어머!)”


“무사? (왜?)”


“그슨대라 저디 산 것 말이우꽈? (그슨대가 저기 서있는 거 말하는 거에요?)”


어린 정숙은 분명 그날, 또다시 ‘그슨대’를 보았다.


일찌감치 정숙의 아버지는 뱃일을 하다 죽었고, 자신의 어머니는 자신을 할머니에게 버리다시피 하고 뭍으로 떠나 버렸다.


어린 정숙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할머니 한 명이었다.


일곱 살 어린 정숙은 자신의 할머니에게 어제 낮에 동무들과 놀다가 밭 한 가운데서 본 형체에 대해 무심코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형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길로 마을 이장을 찾아가 한참을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할머니는 그 날 자신을 하루종일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 다음 날 새벽에 동이 틀 무렵, 급하게 자신의 팔을 붙잡고 미친 듯이 어디론가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그 검은 세모 모양의 형체가 앞으로 손을 쑥 내밀더니 두 번째 손가락을 위아래로 까딱까딱 하기 시작했다.


그 낯선 형체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어린 정숙의 고개가 위 아래로 까딱까딱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할머니는 어린 정숙의 고개를 돌리고, 세게 뺨을 후려갈겼다.


순식간에 번개처럼 내리꽂힌 할머니의 손바닥에 정신이 번쩍 든 어린 정숙은 펑펑 울며 할머니의 등에 업혔다.


왜소한 체격의 늙은 할머니의 등은 어린 정숙에게 무척이나 따뜻하고 넓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른 채, 할머니는 정숙을 업고 미친 듯이 제주도 선착장으로 내달렸다.


“제주댁! 제주댁! 허참... 연희 엄마!”


자신을 향해 수차례 ‘제주댁’이라 불렀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정숙은 이내 ‘연희 엄마’라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부르는 나주댁을 바라보며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무사? (왜?)”


의식하지 못한 채, 정숙이 제주도 사투리를 내뱉자 주위에 앉아있던 아낙네들이 웃기다는 듯이 일제히 깔깔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자네 몸이 안 좋은가?”


몸이 좋지 않냐는 나주댁의 근심어린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 밑까지 길게 자란 꼬질꼬질한 흰털 때문에 눈이 가려진 삽살개 삼월이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정숙을 올려다 보았다.


나주댁은 얼른 자신의 아들 영웅을 향해 눈짓했고, 영웅은 재빨리 자신의 어머니 나주댁과 함께 집에서 직접 담근 단호박 식혜를 오목한 국그릇에 콸콸 따라 정숙에게 건넸다.


단호박 식혜는 먹음직스럽게 노오란 빛깔을 뽐내며 그릇 가득 담겨 있었다.


“좀 마시소!”


영웅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정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받아 천천히 식혜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 저것을... 연희와 혼인을 시키면 좋으련만.... 휴.... 어쩌면 좋소. 할망...


그녀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 연희를 마냥 착해 빠진 영웅이와 결혼시키고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힌 것 마냥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며칠 전, 정숙은 자신이 따온 청각을 너른 망을 깔아둔 평상에 말리고 있었다.


보통 생물을 말리면 그 부피가 엄청나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청각은 특히나 더 그랬다.


청각은 미역보다도 더 오랜 시간 햇빛에 쏘여 정성스럽게 바짝 말려야했다.


짙은 녹색을 뽐내는 청각은 바싹 말린 뒤, 먹기 전 물에 불려 찬물에 빨래하듯이 바락바락 씻어야 했다.


그 다음 구정물 같은 녹색 빛 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수차례 꽉 짜낸 뒤, 액젓과 고춧가루 그리고 국간장과 참기름을 쳐 오물조물 비벼내면 오독오독 씹히는 기가 막힌 반찬이 되었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청각나물 하나면 자신의 하나뿐인 딸 연희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곤 했다. 고기나 생선을 좋아하는 다른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톳무침이나 청각나물을 좋아하는 딸 연희였다.


“어멍(엄마)... 나 할 말이 있는데...”


쭈뼛쭈뼛 자신을 향해 몸을 베베 꼬며 다가오는 연희를 흘끗 쳐다본 정숙은 속으로 생각했다.


- 저것이 또 뭔 꾀를 부린담? 왜 저러는 겨?


혀를 끌끌 차며 평상 한쪽을 치워 앉으라는 식으로 거친 손바닥을 들어 올려 평상 끝을 탁탁 치자 연희는 철퍼덕 하고 엉덩이를 깐 채 앉아 정숙을 바라 보았다.


170이 갓 넘었을까, 자신이 오래 품지 못하고 출산예정일보다 한참 일찍 낳은 탓일까 다른 또래보다 작은 체구의 연희는 아무리 자신이 잘 챙겨 먹여도 마른 체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걸음을 떼자마자 바닷일을 거든 다른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병치레를 자주 해서 방에 틀어박힌 탓일까, 햇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연희의 얼굴은 유독 새하얬다.


하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의 연희의 얼굴은 아버지의 얼굴을 쏙 빼닮았다.


오똑한 코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연희는 웃을 때마다 볼에 귀여운 보조개가 깊게 맺혔다.


자신을 향해 할 말이 있다고 앉혀놓고는 머뭇거리며 입술을 꽉 다문 딸 연희를 보며 정숙이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무사! 뭐 햄시냐! (왜? 뭐하고 있냐?)”


욕지도에 시집오고 난 뒤로 정숙은 제주도 사투리를 말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차피 말해봐야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 방언을 알아듣지 못해 정숙이 번거롭게 다시 말해 줘야만 했고, 정숙 역시 제주도 말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할머니에 대한 생각에 마음 저 깊숙한 곳이 저릿하게 아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자신도 모르게 가끔씩 툭툭 튀어나오는 제주도 말을 들어와서일까. 자신의 딸 연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내뱉는 제주도말을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케 알아듣곤 했다.


아니, 알아듣는 것을 넘어서 제주도 말을 할 줄 아는 연희였다.


“내.... 내사(내가...)....”


“몽케지 마랑! (꾸물데지 좀 마라!)”


한숨을 푹 내신 연희는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힘겹게 말을 꺼냈다.


“나.... 나... 재호가 너무 좋수다!”


“좋기야 하겄지! 너 챙겨주는 동네 또래 친구라고는 재호 하나 뿐이니. 재호가 무사 그리 좋더냐?”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돌려 남은 청각을 펴 말리려던 정숙은 이어지는 딸 연희의 외침에 그대로 몸이 굳어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에 아니라... 내사... 재호랑... 같이 서울 육지로 가서 살고 싶어! 혼인하고 싶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맑은 눈을 소처럼 꿈뻑꿈뻑 거리는 정숙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딸 연희에게 말했다.


“그게 뭔 말이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딸 연희는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삽시간에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힘겹게 말했다.


“얘가 뭘 잘 못 먹었는갑서! 너 아부지가 너한테 했던 말 다 잊어버렸쌌냐?”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젓던 정숙은 손을 벌벌 떨며 딸 연희의 양쪽 어깨를 움켜 쥐었다.


연희는 아무런 말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바다로 영영 떠나가버린 자신의 남편은 살아생전 늘 한가지를 신신당부했었다.


절대로 절대로 자신의 하나 뿐인 딸 연희는 바닷일을 하는 남자와는 결혼을 시키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그였다.


“재호는! 재호는? 재호도 그럼 니가 좋대?”


굳은 표정으로 딸 연희를 향해 정숙이 묻자 연희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메께라!(아이고 어머나!).... 아이고... 아이고....”


그대로 평상에 철푸덕 주저앉은 정숙은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딸 연희는 눈물을 뚝뚝 흘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 앉아 있었다.


정숙은 그 동안 때가 되어 자신의 딸 연희를 시집보내야할 시기가 오면 서울 육지에 적당한 혼인처를 구해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다.


절대로 바다에서 시집살이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죽은 자신의 남편 병철과 정숙 모두 같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며칠 전 일을 회상하는 정숙과 재호의 엄마 군산댁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털래털래 걷고 있었다.


그녀들의 한손에는 전복을 따는 비창과 호미가 들려 있었고, 반대쪽 손에는 무언가 가득 담긴 망사리가 들려 있었다.


정신없이 멍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정숙을 향해 군산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신경쓰덜 말어! 목포댁이 영 시샘이 나나보오! 너무 기죽고 그러지 마소!”


다정한 말투의 군산댁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그녀의 아들 재호 역시 군산댁의 그 성품을 닮아 착하고 다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 호젠 호난 속았수다! (일하느라 수고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또 다시 제주도 사투리를 말하고 만 정숙이었다.


정숙은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서둘러 자신의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정숙은 자신이 그토록 빌고 빌었던 용왕신께 딸 연희의 마음을 원래대로 돌려놓아달라고 빌고 싶었다.


일찌감치 잠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바라본 연희의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저 멀리 파도가 치면서 철썩이는 바다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어둠은 안개처럼 짙게 내려 바다와 하늘이 구분이 가지 않았다.


밤하늘에 무심하게 떠있는 별 몇 가닥들이 그런 정숙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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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외전1-193.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1) 24.01.17 16 1 12쪽
192 외전1-192. 신병(神病)- 허주 (3) 24.01.17 17 1 13쪽
191 외전1-191. 신병(神病)- 허주 (2) 24.01.16 15 0 12쪽
190 외전1-190. 신병(神病)- 허주 (1) 24.01.16 14 1 12쪽
189 외전1-189. 신병(神病)- 바보 똥환 (3) 24.01.15 16 1 11쪽
188 외전1-188. 신병(神病)- 바보 똥환 (2) 24.01.15 16 1 12쪽
187 외전1-187. 신병(神病)- 바보 똥환 (1) 24.01.14 14 1 11쪽
186 외전1-186.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3) 24.01.14 15 1 12쪽
185 외전1-185.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2) 24.01.13 17 1 11쪽
184 외전1-184.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1) 24.01.13 15 1 12쪽
183 외전1-183.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3) 24.01.12 16 1 11쪽
» 외전1-182.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2) 24.01.12 19 1 12쪽
181 외전1-181.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1) 24.01.11 18 1 12쪽
180 챕터9-180(완).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2) 24.01.11 19 2 12쪽
179 챕터9-179.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1) 24.01.10 20 2 11쪽
178 챕터9-178.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4) 24.01.10 17 2 12쪽
177 챕터9-177.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3) 24.01.09 17 2 11쪽
176 챕터9-176.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2) 24.01.09 14 2 12쪽
175 챕터9-175.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1) 24.01.08 17 2 12쪽
174 챕터9-174. 화마 봉인- 모두 안녕 (5) 24.01.08 17 2 11쪽
173 챕터9-173. 화마 봉인- 모두 안녕 (4) 24.01.07 17 2 11쪽
172 챕터9-172. 화마 봉인- 모두 안녕 (3) 24.01.07 16 2 11쪽
171 챕터9-171. 화마 봉인- 모두 안녕 (2) 24.01.06 16 2 11쪽
170 챕터9-170. 화마 봉인- 모두 안녕 (1) 24.01.06 16 2 11쪽
169 챕터9-169.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2) 24.01.05 16 2 11쪽
168 챕터9-168.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1) 24.01.05 17 2 11쪽
167 챕터9-167.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2) 24.01.04 16 2 12쪽
166 챕터9-166.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1) 24.01.04 16 2 11쪽
165 챕터9-165.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4) 24.01.03 15 2 11쪽
164 챕터9-164.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3) 24.01.03 1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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