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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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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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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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DUMMY

강식의 딸 계순의 목소리는 묘하게 설레고 들떠 보였다.


“아부지! 아부지! 내일 모레인가 마을 잔치가 열릴 거래요! 제5광산 출갱 축하연이 열린다는데... 그 때 제가 가서 음식 하는 것 좀 옆에서 거들고 음식 많이 받아올게요! 오늘은 이것만 드려서 죄송해요!”


계순의 말에 강식은 더욱더 근심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잔치? 누가 그러던? 어디서 주워 들은 게야?”


“아... 그게... 저... 동무들이랑 개울가에서 빨래하다가 들었어요.”


계순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마을 개울가가 소문이 제일 빠른 법이지. 그래 누가 온다고 말이 돌더냐?”


무심한 듯 툭 내뱉은 강식은 삶은 알감자 하나를 껍질도 까지 않고 그대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물었다.


“무슨 강원도 지사인가도 온다고 하고, 근처 다른 금광 사장도 온 대요! 비행기를 일본에 줬다나 뭐라나? 아버지는 비행기 본 적 있어요? 근데 사람이 하늘을 날 수가 있나? 새도 아니고 사람이 하늘을 어떻게 난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꿈뻑이는 계순이었다.


알감자 하나를 입에 넣고 씹던 강식은 씹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계순을 쳐다보았다.


- 저거... 분명 강원도지사 이규언과 채만기를 말하는 걸 거야!


강식의 눈은 밝게 빛났다.


마을 개울가에서 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강원도 지사 이규언과 금광업자 채만기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규언’은 한성고무 창업주의 후손으로 창씨 개명을 한 후, 강원도지사를 지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찍이 조선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그는 일본의 중국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헌납하는데 아낌없이 후원을 했다.


각종 군사 관련 시설을 짓는 개축비로 십만원 가량을 기부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감수포장을 받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벌인 인물이었다.


그 당시 쌀 한가마의 가격이 16원쯤 되었고, 지금 쌀 한포대의 가격은 20만원 정도이니 그 당시 1원이 현재의 1만원이 조금 넘는 가치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이규언 도지사가 일본에 헌납한 금액은 지금 가치로 따지면 13억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한편 계순이 말한 금광업자는 ‘헌납병 환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금광업자 ‘채만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채만기는 경상북도 영덕을 기점으로 제지(製紙) 공장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


그는 금광을 인수해 돈을 불린 사업가였다.


금광에서 금을 채굴하면서 막대한 부(富)를 쌓았고 일본 공군에 비행기와 군용기들을 헌납한 공로를 인정받아 마침내 구리광산을 얻어냈다.


그는 ‘광산왕(鑛山王)’이라는 칭호까지 듣는 친일기업인이었다.


한참 아버지 강식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쫑알거리는 계순은 아까 낮에 있었던 다키치 회장의 일을 강식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히 아버지 강식의 귀에 그 일이 들어갔다가는 아버지 근심만 더 깊어질 거라고 생각한 계순이었다.


계순은 소우타가 건네주었던 계란 열알 중 여섯 알을 삶아 두 알은 할머니, 그리고 다른 두 알은 어린 남동생 경호, 그리고 마지막 두 알은 아버지에게 주었다.


나머지 네 알은 창고에 잘 두었다가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마다 한 두알씩 삶아드릴 생각이었다.


자신은 이미 먹었다며 배가 부르다고 거절했지만, 눈치 빠른 할머니는 재빨리 계란을 한 알을 까서 계순의 입에 한사코 쑤셔 넣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계란을 씹는 계순의 입 안 가득 닭알 노른자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계순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는 소우타가 고맙고 미안해서 갑자기 눈물이 살짝 맺히려 했다.


애써 눈물을 참아내려 밝고 활기차게 아버지 강식에게 재잘거리고 있던 계순이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싸리울타리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더니 남정네 하나가 꾸벅 인사를 해왔다.


“아부지! 저 원돈입니다. 계순이 만나러 왔습니다!”


공손히 아버지 강식에게 인사를 올린 원돈이 계순을 쳐다보았다.


계순은 한눈에 봐도 급히 뛰어온 것 같은 땀범벅인 원돈에게 집 마당 가운데 있는 우물가에서 물 한바가지를 떠서 건넨 뒤 들리지 않을만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다키치 회장 일 입밖에 꺼내지마! 아부지 모르셔! 이야기하면 가만 안둬! 말하지마!”


그녀의 말에 원돈은 알겠노라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강식은 그런 계순과 원돈을 쳐다보다가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내 저녁 다 먹었다. 여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다 가라!”


강식은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듯이 서둘러 하나 남은 알감자만 먹은 뒤, 계란 두 알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부지! 계란 드시라니까! 안 드시면 저 그냥 이거 갖다 버릴 거에요! 진짜!”


착하디 착해 바보같은 자신의 딸 계순이 엄청 화가 난 듯이 '빼액'하고 소리 지르자 강식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강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계란 한 알은 원돈에게 건네고, 다른 계란 한알은 자신의 손에 쥐고는 자신의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던 계순이 원돈의 손을 잡아 끌고 재빨리 평상에 앉았다.


“왜! 또 왜 온 건데! 초계댁 아주머니가 뭐라 하셔?”


계순이 원돈을 쳐다보며 말하자, 원돈이 굳은 표정으로 계순을 보며 말했다.


“너, 큰 일 날 뻔 했다며! 왜 나한테 말 안했어! 아버지한테도 말씀드려야지. 아버지한테도 숨기려고?”


“어! 숨길거야. 아버지 알면 노발대발 난리나.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려고! 그러니까 너 절대로 말하지마! 진짜로 말하면 안 돼! 말해도 내가 할거야, 그러니 넌 모르는 척 해!”


그녀의 단호한 말을 들은 원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계순의 성격은 그 누구도 쉽게 막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언니인 상순과 계순의 성격은 판박이었다.


자신이 죽지 않고 잘 살아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가족에게 숨기겠다는 상순과 다키치 회장에게 손찌검 아니 개죽음을 당할 뻔 했다는 것을 숨기는 계순을 보면 피는 못 속인다는 옛말이 틀린 것 하나 없는 것 같았다.


상순의 얼굴을 떠올리던 원돈이 계순의 팔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그런 원돈의 팔을 뿌리치려는 계순은 원돈의 말을 듣고 그대로 몸이 굳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잘 들어. 너희 언니 살아 있어. 상순 누님! 살아 있다고!”


“얘가 복날에 미친 개를 삶아먹었나. 너 뭐라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릴해!”


편한 소꿉친구같은 원돈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계순의 눈빛을 어딘가 슬퍼보였다.


가뜩이나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길고 고되었는데 원돈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계순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원돈이 다시 한번 조용히 말했다.


“상순 누님! 지금 살아있다고. 장난 아니다! 지금 어미산에 숨어계신다!”


원돈의 말을 들은 계순의 몸이 흠칫 굳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한껏 놀란 토끼눈이 된 계순의 갈색 눈동자에서 갑자기 하염없이 굵은 눈물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 내가 너랑... 혼인 안한다고 해서....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장난치는거면 너 가만... 가만 안 둬!”


계순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지, 숨을 헐떡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원돈을 쳐다보며 말했다.


말없이 진지한 원돈의 눈빛을 본 계순은 원돈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디 있어! 우리 언니... 상순 언니! 지금 어디 있냐고! 어미산 어디에!?”


계순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자 원돈이 서둘러 계순의 입에 오른손을 가져다 틀어막고는 왼손으로 그녀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계순이 눈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원돈은 그녀의 손을 붙들고 상순이 숨어 지내는 어미산의 깊숙한 동굴로 그녀를 안내했다.




***




어느새 밤이 깊게 내려앉았고, 젊은 남녀 둘이 으슥한 동굴로 향하는 모습을 본다면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릴 일이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 누구 하나 그런 원돈과 계순의 모습을 보고 뒷담화를 까 내리지 않았다.


둘은 오랜 시간 동네에서 소꿉 친구였고, 곧 혼인할 사이였기에 마을의 경사일 뿐 밤에 단둘이 으슥한 곳으로 간다 해서 그것을 흉볼 일이 아니었다. 혼례를 올릴 두 남녀가 정분을 통하는 일이 남부끄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순은 원돈이 이끄는 어미산 동굴에 거의 다다라서야 옅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동굴 안으로 거침없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언니!”


계순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동굴 안에서 소리 지르자 그녀의 외침은 메아리처럼 동굴 속 깊숙이 울려 퍼졌다.


“언니! 나야! 계순이!”


다시 한번 소리치자, 동굴 안에서 숨죽여 인기척 없이 숨어있던 상순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계순 역시 그런 상순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이윽고 상순이 달려들어 계순을 와락 끌어 안았다.


“내 동생! 잘 있었어?”


상순 역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는데, 계순은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질 않는다는 듯이 언니 상순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녀의 얼굴을 더듬고 있었다.


“진짜... 진짜 언니 맞아? 상순이 언니 진짜 맞아?”


“응, 나야! 계순아 보고 싶었어!”


둘은 끌어안은 채,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원돈은 동굴 입구에 서서 그녀들의 울음소리가 작게 동굴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그는 매서운 눈빛으로 동굴 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혹여나 일본인들에게 발각이 될까 싶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언니! 아부지가 언니 죽었다고! 일본인들한테 붙잡혀서 죽었다고! 나 기절해있는 동안 언니 장례까지 치뤘다고 했어!”


하염없이 울면서 자신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해오는 계순의 등을 다정히 어루만지며 상순이 그간의 일들을 천천히 말해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만 듣던 계순이 한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말했다.


“나는 그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서 큼지막한 바위 하나가 올려 진 기분이었어. 언니 죽은 게 나 때문인 거 같아서... 나 때문에 죽은 거 같아서 너무 힘들었어. 처음엔 그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온몸을 짓누르는 거 같아서 죽을 것 같다가.... 1년... 2년 시간이 지나니까 그 집채 만한 바위가 작아져서 속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돌멩이가 된 기분이었어. 밝은 척... 우리 식구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그 돌멩이가 만져지는 것 같았어. 평생을 이 돌멩이를 지니고 살아야겠구나.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어!”


계순의 말을 듣던 상순은 눈물이 타고 흐르는 계순의 볼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했다.


“미안해. 너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으면 숨기지 말고 진즉에 말할 걸 그랬다! 계순아. 이제 마음 편히 살아. 언니 안 죽고 잘 살아 있으니까 이제 마음 편히 지내!”


“응, 그럴게, 언니! 맘 편히 살게, 그럴게!”


고개를 끄덕이는 계순 역시 상순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다정스럽게 닦아 주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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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8 2 12쪽
160 챕터9-160.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1) 24.01.01 19 2 11쪽
159 챕터9-159.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2) 23.12.31 19 2 11쪽
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7 2 12쪽
157 챕터9-157.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3) 23.12.30 17 2 12쪽
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1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9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9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7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6 1 11쪽
»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6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9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21 1 11쪽
139 챕터8-139.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3) 23.12.21 19 1 11쪽
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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