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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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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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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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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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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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8-139.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3)

DUMMY

소우타가 광산 동굴 벽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던 그 때였다.


갑자기 깜깜한 광산 동굴 안으로 밝은 빛 한 줄기가 보이더니 이윽고 계순의 모습이 보였다.


“계순아! 여기!”


소우타의 목은 다 쉬어있었고,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어머! 이게 뭐야! 소우타! 왜 이래? 왜 이런 거야?!”


계순이 양초 불빛을 비추며 소우타에게 가까이 다가서곤 그의 엉망진창인 몰골을 보고 기겁을 하며 물었다.


“왜 이래! 누가 이랬어? 왜 이렇게 다쳤어?”


계순의 맑고 커다란 눈동자에서 닭똥같은 굵은 눈물을 우수수 떨어졌다.


계순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떨리는 두 손으로 소우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소우타는 그런 계순의 팔을 붙잡고 그녀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기대었다.


“계순아. 일본에서 아버지가 오셨어. 우리... 떠나야할 것 같아. 같이 일본으로 가자!”


“아버지가 이러신 거야? 다키치 회장님이? 그 분이 그러신거야? 왜? 나 때문에?”


계순이 소우타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소우타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계순의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아니라는 듯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순아... 우리 시간이 별로 없어. 아버지가 널 찾을 거야! 지금 위험해. 우리 빨리 떠나야해. 어머니께 부탁드렸어. 아버지 손길 닿지 않는 곳으로... 아버지 피해서 우리 둘이 살 집을 구해달라고 부탁드렸어. 우리 같이 일본으로 떠나자! 응? 떠나자!”


계순은 그의 눈을 말없이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소우타처럼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안돼. 여긴 내 고향이고.... 식구들을 버리고 갈 순 없어. 나까지 없어지면 할머니나 내 동생 경호나... 아버지는 누가 챙겨. 난 못가. 아니 안가... 미안해...”


계순의 목소리를 울음으로 가득 차있어 그녀의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소우타는 마치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계순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우리 계순이는 억지로 내가 끌고 가려해도 절대로 안 갈 거지? 이 놈의 황소 고집을 누가 말리겠어...”


허탈한 듯이 웃으면서 말하는 소우타는 갑자기 기침을 쿨럭였고, 입에서 붉은 핏덩어리를 한 웅큼 토해냈다.


“소우타!”


놀란 계순이 소우타를 부축해 몸을 반쯤 일으켰고, 소우타는 그녀의 이마에 땀으로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귓가로 넘겨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피까지 토하면서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의사를... 의사를 불러야겠어!”


계순은 서둘러 몸을 돌려 폐광산 동굴 밖으로 나가려 했고, 소우타는 그런 계순의 팔을 붙잡고 말렸다.


“여기로 부르게? 아버지 귀에 들어갔다가는 우리 둘 다 그대로 죽은 목숨일 걸?”


'껄껄' 웃으며 소우타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옷소매로 닦아냈다.


그는 계순을 안고 동굴 안 바닥에 그대로 대(大)자로 누워버렸다.


계순은 그가 이끄는 손길대로 바닥에 누워 소우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 멀쩡해! 아버지한테 맞았지만 아버지 원망은 안 한다? 다 이해해야지... 그나저나... 계순아! 진짜 일본 안 갈래? 나 봐봐! 키 되지, 몸 되지, 얼굴 되지, 직업도 아버지 사업 물려받으면 굶진 않을 테니까 나쁘지 않지! 나 진짜 괜찮지 않아? 계순아? 정말 싫어?”


소우타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계순을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에 계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쫌! 장난치지 말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리 당분간 만나면 안 될 거 같아. 회장님 눈 피해서 우리 당분간은 만나지 말자! 이러다가 우리 들킬 거야!”


계순은 아서그룹 회장으로서의 다키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소우타 아버지로서의 다키치는 두렵고 무서웠다.


계순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짐을 챙겨 소우타와 일본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려 자식도 낳고 그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샘솟았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들을 외면하고 소우타와 일본으로 간다면, 한국에 남겨질 가족들은 평안히 살 수 없을 것이다.


상순 언니까지 죽어 없는 마당에 자신마저 떠난다면 자신의 아버지 강식은 제 정신에 살 수 없을 것이다.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계순의 말에 소우타는 미간을 살며시 찌푸리며 그녀의 콧등을 검지로 튕겼다.


소우타는 또 다시 계순을 향해 밝고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싫은데! 나는 계속 우리 계순이 보러 올 건데?!”


“아 쫌!”


계순이 성난 목소리로 소우타를 나무라는 말을 꺼내려하자 소우타는 재빨리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댔다.


그의 입맞춤에 계순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고, 소우타는 계순을 더 세게 끌어 안았다.




***




한편 태백 탄광마을에서 오솔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동네 어미산 동굴에서는 작은 호롱불에 의지한 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잘 지내셨죠?”


낮은 목소리였지만, 다정한 남자의 말에 여자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너도 잘 지냈나보다? 아이고! 몸은 더 좋아졌고!”


“지옥 같은 이곳에서 버티려면 몸이 튼튼해야죠!”


“풋! 넉살은 더 좋아졌고?”


“형님이나 남파 선생님은 잘 지내시죠?”


그들의 그림자가 촛불에 일렁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서서히 밝히고 있었다.


바닥에 앉은 채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원돈'과 '상순'이었다.


“그럼! 지금쯤 경돈오라버니랑 남파 선생님은 백범 선생님 모시고 난징에서 장제스 총통이랑 만나고 계실거야!”


“오!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응. 군대를 만들려면 군자금이 필요해. 장제스한테 필요한 자금을 받아내실 거야!”


원돈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근데 누님! 하필... 숨어 계셔도 이곳에...”


원돈은 주변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랬다.


지금 상순이 숨어있는 동굴은 계순이 3년전 세이지에게 겁탈을 당할 뻔 했던 그 동굴이었다.


그런 원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순이 그에게 짓궂게 말했다.


“에구. 난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 당장 세이지가 살아있다고 하면 바로 메치고 엎어치고 아주 개작살을 내줄 만큼 내가 무술 훈련을 얼마나 했는데! 그나저나 넌 계순이 언제 데려 갈거야? 애 계속 그렇게 혼자 냅둘거야? 이제 혼인해야지?!”


두려움 없이 웃어보이며 짓궂게 말하는 상순의 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표정의 원돈이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 누님... 그게... 저... 계순이가요...”


“응. 계순이가 왜?”


“저랑 혼인하기 싫다고 하네요.”


“뭐라고?!”


순간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상순을 보고 원돈은 놀라 그녀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눈짓했다.


“누님! 소리가 너무 크오! 아무리 뒷산 동굴이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의 타박에 상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원돈의 손을 슬며시 내렸다.


“계순이가 너랑 왜 혼인하기 싫다는 건데! 둘이 어렸을 때부터 죽지 못해 살더만. 너 계순이한테 뭐 잘 못한 거라도 있어?”


상순의 질문에 원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낫겠네요. 계순이가 저 말고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하아’ 하고 동굴 땅이 꺼질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쉰 상순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원돈을 쳐다보고 말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그렇다고 계순이 포기할 거야? 다른 새끼 좋아하면 그 놈한테 뺏어 와서 다시 널 좋아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어휴! 이 답답아!”


상순은 뿔딱지가 난다는 듯이 가슴을 펑펑 치며 말했다.


원돈은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이며 계면쩍은 듯이 말했다.


“누가 포기 한답니까? 저 절대로 포기 안 해요! 계순이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꼭 계순이랑 혼인할 거에요!”


원돈의 순박한 말투에 상순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한번 쳤다.


“누님! 그런데... 이제 집으로 가보셔도 되지 않아요? 언제까지 이 동굴에 숨어계실 겁니까?”


원돈은 그녀에게 계순의 집으로 가 가족들을 만나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원돈을 향해 말했다.


“안돼!”


“왜요?”


원돈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고, 상순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을 해봐라. 우리 가족들은 모두 내가 죽은 줄 알아. 떡하니 살아서 집에 돌아가면... 다들 놀랄 거야. 할머니는 기절하실지도 몰라. 그리구...”


“그리구요?”


“세이지 놈 가족들... 아직 마을에 있지?”


상순이 인상을 쓰며 묻자 원돈이 흠칫 놀라며 말했다.


“아직... 있죠. 히로 새끼... 아직 마을에 있어요...”


원돈의 말에 상순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지 아들새끼 죽인 거 알면 길길이 날뛰면서 우리 식구들 죄다 잡아서 죽일 거야. 작은 빌미나 여지라도 주어선 안 돼. 방심하는 순간 잡힌다...”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고, 원돈은 그런 그녀를 존경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님... 누님 외양이 예전이랑 많이 달라지셨고.... 머리카락도 자르시고 해서... 이제 못 알아볼 거에요.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기억하는 이가 없을 겁니다. 누님이 살아있다는 걸 알면 계순이네 식구들이 모두 좋아서 춤을 출겁니다! 계순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데요. 강식이 아저씨 힘들어할까봐 자기는 슬픈 거 티 하나 내지 않고, 계순이는 묵묵히 일만 했어요! 이제는 밝혀야 합니다.”


“우리 계순이 많이 컸네. 아버지 위해서 마음도 숨길 줄 알구...”


상순은 슬며시 터져 나오려는 눈가의 눈물을 옷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그런데 문제가 더 있어!”


“또 무슨 문제요?”


원돈이 답답하다는 듯이 눈 앞의 상순을 바라 보고 물었다.


“너 아서 그룹 회장 다키치가 우리 마을로 온 거 알지?”


“네! 그럼요! 그저께인가 왔다고 마을에서 환영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죠. 환영은 개뿔!”


원돈은 화가 나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원돈은 당장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다키치 회장을 찾아가 단칼에 목을 썰어버리고 싶을만큼 그를 증오했다.


어디 원돈만이 그럴까.


철암 탄광마을에 사는 사내들이라면 아서 그룹의 회장 타키치라고 하면 부모를 죽인 원수라 생각할 만큼 이를 갈 정도로 모두가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독립단원들 사이에서도 척출 1순위 대상에 속하는 요주의 인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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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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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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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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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8-139.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3) 23.12.21 19 1 11쪽
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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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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