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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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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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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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DUMMY

그런 상순의 얼굴을 못 본 척 하며 계순은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작은 물통을 꺼내 상순에게 건넸다.


“목맥혀! 이것도 마시고!”


자신의 동생 계순은 일찍이 경호를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처럼 가족들을 그리고 언니인 자신을 알뜰히도 챙겼다.


가끔 보면 나이는 자신이 계순보다 세살 더 많았지만 하는 짓은 자신이 동생 같고, 계순이 언니 같았다.


아니, 돌아가신 어머니 같았다. 그렇게 언제나 동생 계순이 자신을 만져주는 손길을 따스했고 다정했다.


상순은 그녀에게 물통을 건네받고 꿀꺽 꿀꺽 물을 마셨다.


이윽고 고구마 한 알까지 먹고 나서야 계순은 마음이 편안하다는 듯이 두 다리를 쭉 뻗고 상순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슬며시 기댔다.


“언니! 그거 거사(居士)인지 뭔지... 오늘 폭탄 터뜨리는 거.... 꼭... 해야 하는 거지?”


그녀가 동굴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묻자 상순은 계순의 얼굴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왜... 하지 말까?”


상순의 말에 계순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냐... 언니... 언니가 옳다고 믿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 내까짓 게 뭐라고...”


“계순아... 나는.... 언니는... 상해에서 공부하면서 깨달았어. 가족의 행복보다도 조국의 독립이 더 중요해.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동포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리며 목숨을 내던지고 있어! 그러니 이번 거사는 꼭 해야해. 미안해, 계순아...”


상순의 말은 슬퍼보였지만, 확고했고 확신이 넘쳐있었다.


계순은 항상 주눅들어있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자신의 언니가 이렇게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된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도 알아... 그러니 원돈이도... 일구 아저씨도, 그리고 우리 아부지도 목숨을 걸고 독립단원이 된 거겠지...”


“잘 들어, 계순아. 독립단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어. '바람이 불듯 구름이 흘러가듯 너는 우리 가슴에 남아 있으리'. 목숨을 잃게 되도 죽은 사람들은 다른 독립단원들 가슴속에 바람처럼, 구름처럼 늘 곁에 영원히 존재한다는 뜻이야!”


“바람처럼... 구름처럼...”


계순이 조용히 그 말을 따라 읊조렸다.


계순은 상순의 얼굴을 소중하다는 듯이 한번 쓰다듬은 뒤, 서둘러 일어섰다.


“언니! 남은 건 뒀다가 배고플 때 먹어. 굶지 말고, 아프지 말고. 몸 성히 잘 지내야해!”


계순은 서둘러 언니 상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동굴 밖으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상순이 서둘러 계순을 붙잡으려는 순간 동굴 밖으로 달려가는 계순의 얼굴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물줄기를 보았다.


동굴에 밝혀놓은 양초에 반짝이는 계순의 눈가에 반짝이는 것은 분명 눈물이었다.


상순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죽여 울었다.


- 불쌍해서 어째! 내 동생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어째!




***




태백 탄광 마을사람들은 아침이 되자 일제히 마을 중앙에 있는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탄광 마을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흩어진 광산들 중 4번째 광산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바닷가 마을에서 어업(漁業)을 나가기 전에 어부들이 모여 용왕제를 올려 용왕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풍어(豊漁)를 기원하듯이 탄광 마을에서는 새로운 광산을 개척하고 출갱을 하기 전에 안전을 기원하는 성대한 제사를 올렸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태백산 산신제를 지내오던 철암 마을이었다.


일본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산 첫 출갱을 맞이할 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리 기세등등한 아서그룹 회장 다키치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이 모여 전을 부치고, 떡을 쪄내며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남자들 역시 한데 모여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젊은 처녀들이 한데 모여 과일을 다듬고 제사상을 차리는 동안 그들의 얼굴은 웃음꽃이 만개해있었다.


“얘! 근데 계순이가 안 보인다? 계순이 어디 갔니?”


“그러게, 계순이 어디 갔는지 안 보이네?”


한창 즐겁게 웃으며 희희낙락하던 동무들이 계순을 찾으며 말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동무들이 일제히 마을 어귀 쪽을 쳐다보았다.


순간 고급스러워보이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정색 차 두대가 연이어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곧이어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일본식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귀족이나 관료 같은 사람들을 향해 조선인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그런 조선인들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재빨리 옮겨 광산 입구로 향했다.


일본순사 몇과 조선인 형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그들은 광산 입구에 다다르자 그들을 위해 쳐둔 작은 천막 막사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규언 선생! 내 이런 말을 해서 불편하지만... 어째 전쟁이 점점 어렵게 되 가고 있는 것 같지 않소?”


채만기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이규언이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이규언이라니! 누가 이규언이오? 내 카네코 다이치(金子大地)라 개명을 한지가 언제인데! 쯔쯧!”


창씨 개명한 이름을 말하지 않는 그를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이규언은 채만기에게 구박을 했다.


이규언은 채만기를 째려보던 자신의 시선을 돌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광산 입구를 바라보았다.


“일본 본토가 위험해질 것 같소? 택도 없는 소리. 본토에 미군기가 폭격을 했다는 소문이 돌지만 그것도 다 군자금을 더 내놓으라는 일본 황실의 무언의 압박이오! 전쟁은 절대적으로 일본이 유리하오! 그러니 지금 이렇게 광산 사업이 대박이 난 것 아니겠소? 광산왕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오? 쯔쯧... ”


확신에 찬 이규언의 말에 채만기는 안심이 된다는 듯이 말했다.


“나야 금광에 미쳐서 살아 그렇지 석탄은 내 분야가 아니라오! 그대 말을 듣고 보니 내 안심이 되는 구만! 그럼요 그럼요! 내 일본 공군에 가져다 바친 비행기가 몇 대인지 아오? 절대 일본이 패망할 리가 없지! 중국과의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그 끝을 질 때가 된 것 같군!"


그들이 입가에 웃음을 한가득 지으며 껄껄대고 웃는 와중에 천으로 된 막사 입구가 열리며 다키치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다이치 상! 오랜만에 뵙소! 채만기 사장도 일전에 보고 참으로 오랜만이구려!”


다키치는 그들에게 반가운 듯이 악수를 건넸고, 이규언과 채만기는 황송하다는 듯이 그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키치는 그런 그들의 행동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상석(上席)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 이따 5광산 말고 3광산에서 사진을 찍읍시다!”


“예? 이번에 새로 출갱하는 것은 5광산이 아닙니까?”


이상하다는 듯이 채만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키치를 바라보며 묻자 눈을 가늘게 뜬 다키치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내 사정이 있어 그러하니 이유는 묻지 말고, 군말 없이 따라주면 좋겠소만?”


다키치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규언은 인상 좋아보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채만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며 대답했다.


“암요! 3광산이면 어떻고, 5광산이면 어떻답니까! 어차피 사진을 찍으면 그 광산이 그 광산으로 보이는 것을요. 어차피 다 형식적인 사진 아닙니까.”


“제가 실수를 했군요! 그럼요! 영광스런 대일본 제국의 승전(勝戰)을 위해 야하타(八幡) 제철소에 납품하는 석탄만 잘 나온다면야 3광산이든 5광산이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강원도 도지사인 이규언은 다키치 회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말하고 있었고 채만기 역시 그런 이규언의 아부에 질세라 서둘러 다키치 회장에게 다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랬다.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시(北九州市)에 있는 야하타(八幡) 제철소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 본토 내 철강 생산량 절반을 점유할 정도로 군수산업의 거점이었다.


이 곳 태백 광산 철암마을에서 생산된 석탄은 야하타 제철소에서 군함과 전투기, 어뢰 등을 제작하는데 필수적인 물품이었다. 중국과의 전시(戰時) 상황에서 대규모 철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일본 군부에서는 석탄 납품량과 조달시기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일본 정부에서는 석탄을 받는 대신, 지금 눈앞에 세명에게 엄청난 자금과 권력을 안겨주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다 일어날까요?”


다키치 회장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그를 따라 제3광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막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제3광산으로 향하고 있을 때, 원돈을 비롯한 그의 아버지 일구와, 계순의 아버지 강식은 제5광산 안 깊숙한 갱도 내에 숨을 죽인 채 대기 중이었다.


그들은 광산 폭발에 필요한 폭약인 다이너마이트를 조금씩 빼돌려 모아놓고 있었는데 그 폭약은 독립단장인 강식이 관리하고 있었다.


강식은 가족들 몰래 창고 구석에 숨겨두었던 잿빛 보따리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제5광산 내부 깊숙이 자리 잡은 2편에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편’이라는 단어는 광부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었는데, 깊은 탄광은 19편까지 존재했다. 그것은 해발 마이너스 520미터 쯤 되는 깊이였다.


보통 갱구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니 정확히는 지표면에서 수직으로 600~700미터를 내려가는 셈이다.


편은 쉽게 말해 지하주차장처럼 널찍이 너른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2편은 쉽게 말해 지하주차장 2층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4편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숫자 사(四)의 발음이 죽을 사(死)자와 같다 하여 불길하다는 미신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3편 다음은 바로 5편으로 부르곤 했다.


그들은 언제든 제5광산 입구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3광산 이후로 4광산 개발이 아니라 5광산으로 부르는 이유 역시 같은 이유였다.


광산 갱도 내에 성냥을 비롯한 부싯돌과 같은 불을 낼 수 있는 품목은 금지되었는데, 외부에서 갱 내부로 바람이 계속 불어오기 때문에 불이 한번 나기 시작하면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갱도 내부에는 바람마저 검은 석탄의 타르처럼 끈적끈적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형님! 혹시나 이 놈들이 갱도 내에서 살아남으면 어쩌지요?”


일구가 걱정스럽게 강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강식은 입술을 앙다문 채로 깊은 생각 중이었다.


일구가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광부 인생 40년을 산 강식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갱의 길이 하나뿐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탄광의 갱도는 개미굴처럼 깊고 복잡해 전체 길이만 8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말이 돌았다.


혹여나 폭탄을 터뜨려 광산이 폭발하는 위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작은 폭발 위력에 갱도 입구만 막힌다면 다키치 회장을 비롯한 친일 앞잡이 놈들이 갱도 내에 숨어 있다 구조대에 의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


“혹여나 그놈들이 갱도 내에서 살아남는다면... 총으로 쏴 죽여야겠지...”


강식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품속에 넣어둔 권총 한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원돈 역시 허리춤에 권총 한 자루를 차고 있었는데 이 권총 두 자루는 상해에서 폭탄을 가지고 온 상순이 챙겨온 것으로 원돈과 그의 아버지 강식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일구와 원돈 뒤로 서너명의 독립단원들 역시 품속에서 작은 크기의 단검과 칼들을 손에 꽉 쥔 채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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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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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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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5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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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2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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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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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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