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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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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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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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DUMMY

‘서걱서걱’ 거리는 마치 칼을 가는 듯한 소리에 눈을 겨우 부른 뜬 윤재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길고 날카로운 얄썅한 모양의 칼을 연마봉에 미친 듯이 비벼대며 칼을 갈고 있는 어린 희경의 모습이었다.


희경이는 각시탈을 쓴 채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잘 먹지 못해 삐쩍 마른 왜소한 체형의 어린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성인 남성도 겨우 들고 다룰 법한 크기의 칼과 연마봉을 장난감처럼 휘두르며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윤재는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손을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화구통의 붓과 가슴 품 속에 넣어두었던 부적들은 각시탈을 쓴 희경이가 치웠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손발은 묶어두지 않은 모양인지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 붓이나 부적은 어디 숨겨 놓았나보네. 보통 영악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수인을 맺을 수는 있겠구나. 그러면 일단....


윤재는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무언가 수인을 맺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 샌가 몸을 일으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윤재를 보고 희경이가 소리질렀다.


“니가 뭔데 껴들어! 조용히 갈길 가라. 나는 허씨 집안 씨만 말리면 그만이야!”


윤재는 순간 허씨 집안 씨를 말린다는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되물었다.


“이 아저씨 성이 허씨인가 보네요? 허씨 집안이랑 무슨 원수를 져서 그래요? 어디 한번 말 좀 해 봐요!”


윤재의 말에 두 눈이 붉게 물들며 피눈물을 뚝뚝 쏟아내는 희경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윤재는 단순한 악귀의 소행이 아니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원한인지를 캐묻고 있었다.


분명 허씨 집안 씨를 말린다고 했으니 이 집안과 관련된 원한귀일 가능성이 컸다.


각시탈을 쓴 희경이 몸을 바르르 떨더니 서서히 윤재의 마음 속에 전음을 시도했다.


윤재는 가만히 서서 각시탈에 깃든 영혼이 보내오는 화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어느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쓰이는 별신굿을 위해 목수로 보이는 장정 하나가 산에서 열심히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탈을 만드는 나무는 아무 나무나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나고자란 오리나무를 정갈한 몸으로 정해진 때와 시에 맞추어 잘라야했을 뿐만 아니라 옻칠을 수십 번의 여러 겹으로 칠해 정교하고 오묘한 색을 내야만 했다.


해마다 별신굿의 탈놀이에 쓰고 난 뒤, 굿에 사용된 그 가면은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순간 커다란 대추나무 옆에 몸을 숨기고 어느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 하나가 보였다.


머리를 길게 땋아내리고 옅은 주근깨가 박혀있는 순박한 시골처녀는 수줍은 듯이 얼굴에 볼이 바알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시골처녀는 마을 사람들 남몰래 흠모하는 사내를 보기 위해 몸을 숨긴 채, 몰래 숨어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흠흠’하는 헛기침 소리와 함께 두 눈을 마주친 사내와 처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 사일 뒤면 작업도 끝나는데 뒷산 어귀에 밤에 산보라도 갈까!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추나무 옆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처녀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것인지 큰 소리로 말하는 사내를 향해 마을 처녀는 환하게 웃어보이며 하얀 잇몸을 드러 내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그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마을에서 키우던 동물들이 연이어 하얀 개거품을 물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기에 이르렀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에 악귀가 있다며 별신굿 준비에 더 열심히 치성을 드렸다.


어느 날, 마을 사내의 꿈에 흰 수염을 가진 노인 한명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 탈을 만들어 별신굿을 지내라! 각시탈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서둘러라. 대신... 절대로 그 누구도 너가 탈을 만드는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아니 마을을 떠돈다는 악령을 물리치고 사랑하는 마을 처녀와 혼례를 치르기 위해 사내는 미친 듯이 밤낮을 지새워 나무를 깎아 탈을 만들었다.


작업을 끝 마치고 턱 부분을 조각하는 늦은 새벽 밤이었다.


가면을 만드는 사일이 되기 전날 밤, 그를 짝사랑하고 흠모하던 마을 처녀가 며칠째 굶고 있는 그를 위해 간식거리를 준비해 새참을 가지고 그의 방 앞에 섰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절대로 탈을 만드는 동안에는 그를 보아서도 만나서도 안 된다는 금기를 잘 알고 있었다.


마을 처녀는 호롱불에 의지해 미친 듯이 나무를 깎고있는 사내의 그림자 실루엣이 창호지 문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하루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처녀는 말없이 오똑한 콧날을 한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순간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서 무언가 자신을 밀어내는 존재에 의해 그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내동댕이 치고야 말았다.


‘우당탕’소리와 함께 방 안에 나뒹군 그녀를 붙잡아 일으킨 것은 검게 변해 버린 얼굴의 사내였다.


사내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처녀를 껴안아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검게 변한 얼굴로 피를 토하고 방바닥에 쓰러져 죽어버렸다.


그렇게 가면은 턱 부분이 완성되지 않은 채, 턱이 없는 탈이 되었다.


- 그래서... 턱 부분이 없었구나... 그러면 이 아저씨가....


- 탈을 만든 사내의 후손들이다!


- 그러면 당신이 저 마을 시골처녀인가요?


윤재의 말에 각시탈에 깃든 영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침묵만을 지켰다.


- 근데...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내의 후손인데 뭐가 아쉬워서 죽여요? 왜 씨를 말립니까?


윤재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각시탈을 쓴 희경이 갑자기 ‘으악’하고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운 듯이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쥐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희경의 손에 들려있던 날카로운 칼과 연마봉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챙’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순간 머리를 찌르는 듯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윤재의 머릿 속을 잔뜩 헤집기 시작했다.


사내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안쓰러워한 것이 아니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가 작업을 끝마치고 무사히 가면을 완성해야만 마을에 있다는 악귀를 해결하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죽어버린 이상, 마을의 악귀는 커녕 앞으로 마을은 불행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생각이 마을에 팽배해지자 그 원망의 화살은 그대로 사내를 죽게 만든 마을 처녀에게로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를 몰아세워 마을에서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배척했다. 소위 말하는 ‘왕따’를 행한 것이다.


이를 악물고 사내를 추모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처녀는 어느 날 밤, 자신의 집에 들이닥친 괴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나무탈을 깎을 때 쓰는 정과 망치에 의해 머리를 맞아 죽은 처녀는 그대로 자살한 것으로 위장되어 마을 뒷산에 있는 야산 나무에 목이 매달렸다.


- 누가...? 누가 죽인 건데요?


깜짝 놀란 윤재의 말에 각시탈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울부 짖었다.


- 허씨 집안 놈들이 죽였다! 그러니 씨를 말려야지!


순간 윤재의 머릿 속에 두 눈을 이글거리며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그는 분노가 가득 담긴 서슬퍼런 눈빛으로 마을 처녀의 흰 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검게 변해버린 얼굴로 피를 토하며 죽은 사내와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보아하니 그는 분명 그 사내의 동생이 분명해보였다.


이를 바락바락 갈며 소리치는 희경의 얼굴은 각시탈을 쓴 채, 두 눈을 이글거리며 윤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무탈 사이에 보이는 희경의 두 눈은 이미 하얗게 까뒵혀져 있었다.


자신의 형을 죽게 만든 이 처녀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사내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었다.


자신의 시동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니 그 원한이 얼마나 깊을 것인가.


윤재는 옅은 탄식을 내뱉으며 각시탈을 쓴 처녀귀신에게 말했다.


- 그럼 이 아저씨 아버지라는 분도 당신이 죽인 건가요?


- 죽이긴 뭘 죽여! 가족들 죄다 죽이라고 세뇌시키려고 했는데 이 개같은 이 년 할애비가 눈치는 빨라서 지 스스로 목숨줄 끊은 거지! 죽이긴 내가 뭘 죽여? 억지도 못 죽게 하니까 내가 못 덤비게 지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이던데! 허씨 집안 사내 놈들은 원체 그리 독한가? 하기사 독하니까 신성하게 별신굿에 쓰이는 나무탈을 만드는 칼을 소나 돼지 잡는 칼로 바꿔든 거 아닌가? 천하기 천한 백정놈들!


- 아, 진짜! 너무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요즘 백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직업에 귀천이 없는 세상이거든요?


- 허! 짐승이나 잡는 놈이라 그런지 지 자식도 잡아죽이려고 불귀신 되어서 지 아들 몸에 깃든 거냐? 그게 백정이란 다를 게 뭐야!


- 이 아저씨 몸에.... 깃들었다고? 화귀가 되어서? 그렇다면... 불에 타 죽은 것도....


- 그래! 화귀(火鬼)는 남이 만드는 게 아니야. 스스로 되는 거지! 스스로의 의지로 깃든거다! 내 저 덕배라는 놈 딸년 꿈에 나타나서 저승 음식 먹이려고 그렇게 애를 썼건만 그 때마다 저 덕배 애비라는 새끼가 나타나서 방해를 하는 통에 성공을 못해 분하구나!


순간 윤재는 무언가 찌르르하고 온몸을 스쳐지나가는 찌릿한 감정에 몸을 부르르 떨고야 말았다.


윤재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았다.


화마가 왜 수희의 왼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는데 그것은 수희가 강제로 가두거나 무언가 양밥이나 결계를 친 것이 아니라 화마 본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화마가 수희의 왼팔에 담긴 것이 그동안 수희의 강력한 의지나 염원에 의한 봉인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던 윤재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수희를 둘러싼 수희 주변 사람들 모두 화마가 수희 왼팔에 봉인되어있다고 생각했지 화마 자신 스스로의 의지로 수희의 왼팔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화마의 의도는 무엇일까. 분명 그것은 어떤 복수일 수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일 수도 있다.


윤재는 난감함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우선 눈앞에 닥친 이 각시탈의 악귀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보통 귀신이 꿈속에서 나타나 준 음식을 받아먹으면 그대로 그 귀신을 따라 죽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음식을 먹이는 귀신을 모서니 귀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금 각시탈에 깃든 처녀귀신은 모서니 귀신의 힘까지 구사하며 허씨 집안 사람들의 씨를 말려버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윤재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머릿 속에서 생각들을 하나하나씩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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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챕터9-163.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2) 24.01.02 16 1 12쪽
162 챕터9-162.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1) 24.01.02 16 2 12쪽
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8 2 12쪽
160 챕터9-160.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1) 24.01.01 20 2 11쪽
159 챕터9-159.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2) 23.12.31 19 2 11쪽
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7 2 12쪽
157 챕터9-157.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3) 23.12.30 17 2 12쪽
»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2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9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9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7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6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6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6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9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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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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