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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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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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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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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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DUMMY

지금 다 같이 함께 모여 빨래 중인 계순의 소꿉친구 순애는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마을 청년에게 조르고 졸라 화장품 분가루를 얻어냈다며 동무들에게 한껏 자랑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번 주가 을(乙) 방 남자들 근무 아니냐? 숙자 너도 옆집 오빠한테 하나 달라고 해봐!”


순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하면서 순애 옆에서 빨래를 꼭 쥐어짜고 있는 친구 숙자를 향해 말했다.


숙자는 무척이나 부끄러운지 귀가 빨개져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야! 순애야! 너 언제 철들래?”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계순이 한심스럽다는 투로 순애에게 말했다.


그런 계순을 향해 입술을 삐죽이는 순애는 자신의 빨랫감을 거칠게 개울물에 적시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야! 넌 원돈이 오라버니한테 달라고 하면 되겠다? 참 얄미운 계집애!”


그녀는 탄광 마을에서 제일 인물이 훤칠하고 듬직하며, 똑똑한 원돈이 계순에게 푹 빠져있음을 질투하고 있었다.


계순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신의 빨래에 집중했다.


본래 일제 강점기 전에 탄광 마을은 주1일 단위로 갑(甲)방, 을(乙)방, 병(丙)방 등 소위 요즘 말하는 3교대 순환제로 근무를 했다.


많게는 4교대까지 일했기에 힘들고 고된 광산 일을 그럭저럭 버티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지배에 놓인 요즘은 갑방(오전반)과 을방(오후반) 2교대로 근무하면서 동네 남정네들은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사실 말이 좋아 오전반과 오후반이지 갑방은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을방은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거의 12시간에 달하는 시간동안 갱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일만 해야 했다.


고된 일에 쉬지 못해 그들의 몸은 서서히 축나며 골병이 들고 있었다.


원돈과 그의 아버지 일구, 그리고 계순의 아버지인 강식까지 모두 오늘 을(乙)방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 아부지가 배부르게 드시면 좋으련만...


계순은 항상 생존을 위한 수준으로만 밥을 조금 먹고 거의 대부분 할머니와 동생 경호, 그리고 아버지의 식사를 위해 먹을 것을 양보했다.


그래서 계순은 삐쩍 곯아 마른 체형이었다.


작고 아담한 몸에도 불구하고 야물딱진 손으로 여기저기 집안일을 비롯해 마을 품앗이 일을 거뜬히 해내는 그녀였다.


그런 계순이 안쓰러웠던 소우타는 계순에게 늘 먹을 것을 선물로 가져져다 주었다.


사실 소우타가 처음으로 계순에게 준 선물은 반지와 목걸이 같은 소위 '금붙이'들이었다.


하지만 계순은 소우타가 자신에게 반지며 목걸이를 줄 때마다 소우타에게 철들라며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다음번 만남 때, 소우타는 일본에서도 구하기 힘든 화려한 붉은 장식통에 담긴 화신장분(花信張粉)을 계순에게 건네주었다.


화장품 통을 보자마자 계순은 소우타의 머리를 세게 후쳐쳤다.


소우타는 계순의 매운 손바닥에 얼얼한 자신의 머리를 잡고 놀라 계순에게 물었다.


“아야! 계순아! 아파! 진짜 아퍼!”


“아프라고 때린 거야! 정신차려! 소우타! 너 이거 살 돈이면, 우리 가족들 한 달은 거뜬히 배 안 곯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당장 돈으로 바꿔서 저축이나 해! 진짜 미쳤나봐! 안 되겠다! 너 한 대 더 맞을래?”


화가 나 씩씩거리는 서슬퍼런 계순의 말에 소우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분가루 통을 챙겨 결국 계순의 말처럼 돈으로 바꾸어 비상금으로 저축을 했다.


대신 소우타는 그녀에게 보리 한가마를 선물해 그녀의 집안 창고에 몰래 숨겨두었다.


계순은 소우타가 그녀를 위해 틈틈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할머니나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집안 창고에 꽁꽁 숨겨두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주 조금씩 티가 나지 않게 꺼냈다.


계순은 자신이 일을 해서 마련한 것처럼 음식을 조금씩 준비하곤 했다.


소우타가 먹을 것을 주었다는 사실이 동네에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이 모두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계순의 꼼꼼한 바느질 솜씨와 그녀를 도와 틈틈이 일을 해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 계순의 집안 형편은 차차 나아졌다.


삐쩍 마른 경호도 끼니를 거르지 않게 되면서 포동포동 볼살이 차오르고, 할머니의 혈색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남들은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되지 않아 주린 배를 움켜잡고 광산 갱도에서 일을 할 때, 강식은 늘 계순이 싸준 도시락을 챙겨 든든한 마음으로 광산에 일을 나갈 수 있었다.


집안 살림을 불리고, 가족들을 지킨 것은 그런 계순의 억척스런 생활력이었다.


계순은 오늘 새벽에도 소우타에게 받은 고구마와 감자 몇 알을 삶아 소금에 절인 무짠지 몇 개와 함께 아버지에게 도시락을 쌌다.


이른 새벽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를 위해 대청마루 앞에 조심스레 보자기에 감싸둔 도시락을 챙겨 놓았다.


갑자기 먹을 것을 생각하니 계순의 배에서 요란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개울가의 방망이질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픈 것은 계순 뿐만 아니었다.


개울가에서 빨래 중인 모두가 굶주려 배고 고픈 상황이었다.


계순이 얄밉기만 했던 순애가 계순의 뱃고동 소리를 놓칠 리가 없었다.


“어멋! 얘! 계순아! 너 배에서 천둥친다!”


킥킥 거리며 웃기다는 듯이 순애가 계순을 비웃자 모두가 깔깔대고 웃었다.


계순은 벌개진 자신의 귓불을 살짝 어루만지며 순애를 향해 개울물을 손으로 퍼 장난스럽게 그녀에게 뿌렸다.


손사레질을 하며 서로 물장난을 치던 계순이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동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삼사일 뒤에 우리 마을 잔치 열린 댄다!”


계순이 장난스럽게 물을 뿌리며 주변 동무들에게 말했다.


“응? 무슨 잔치? 우린 모르는데?”


“너 뭐 들은 거 있어?”


계순을 둘러싼 동무들이 그녀를 향해 묻자 계순은 며칠 전 소우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폐광산 동굴 안에서 소우타는 계순을 있는 힘껏 껴안은 채 다정스럽게 말해주었다.


계순은 그의 품에 안겨 소우타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계순아, 이번에 제5광산 출갱 행사 때, 높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하더라. 강원도 지사도 오고, 근처 다른 금광마을 사장도 온다는데... 그 사람이 아버지랑 제일 친한 사람이야. 일본 고위층에 비행기도 헌납했다는데 아무튼 대단한 사람들이 올 거야. 아마 거하게 마을 잔치를 할 수도 있어. 간만에 마을 사람들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도 좀 많이 먹고. 맨날 가족들한테 양보하지는 마. 나 너무 마음이 안 좋아! 너 너무 말라서... 너도 먹어야지!”


소우타가 계순을 쳐다보며 다정히 말하자 계순 역시 알겠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다들 항상 굶주려 있으니... 배불리 먹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어. 그치?”


소우타가 안쓰럽다는 듯이 계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안은 자신의 팔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소우타의 가슴 속에 '쏙'하고 들어가 안긴 계순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아버님 오신 것도 그거 행사 때문이야? 나... 나... 잡으러... 오신 건 아니고?”


“글쎄... 회장님은 무서운 분이시니까.... 한 번에 처리하시려고 겸사겸사 오신 거 아닐까.... 아무리 내 아버지라지만... 가끔은 무섭기도 해.”


소우타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소우타 자신의 어머니와도 정략 결혼을 한 아버지 다키치였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榮達)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인생까지도 내던질 사람이었다.


왜인지 서글퍼 보이는 슬픈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말하는 소우타의 오른쪽 볼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댄 계순이었다. 그런 계순을 소우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계순은 소우타의 풀러진 셔츠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 그의 맨가슴에 무언가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계순아! 간지러워! 말로 해 말로! 으악! 간지러워!”


소우타는 자신의 맨살에 계순의 작은 손가락으로 무언가 적어내려가자 간지러워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킥킥대며 말했다.


계순은 그런 소우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계속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소우타는 간지러움을 참아가며 계순이 써내려가는 글자가 무엇인지 집중하려했다.


“아...? 간지러워서! 우... 우리.... ‘아?’ 모르겠어! 뭐라는 거야? 말로 해 말로!”


소우타가 자신의 가슴에 올려진 계순의 손을 꺼내 꽉 잡은 채 그녀를 보고 말했다.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려 소우타의 뜨거운 눈빛을 피한 계순이 작게 말했다.


“나중에... 말해줄게!”


그런 계순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소우타는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동굴에서 소우타와 보낸 뜨거운 새벽밤을 생각하던 계순의 귓등이 바알갛게 물들고 있었다.


계순은 서둘러 고개를 휘저으며 동무들을 향해 밝게 말했다.


“어디서 들었는데, 우리 마을 제5광산 출갱하잖니? 그거 축하한다고 높은 사람들 와서 잔치 연댄다! 우리 가서 음식 만들고 먹을 것 좀 많이 얻어오자!”


계순은 벌써부터 떡이며 전을 비롯한 잔치음식을 얻어올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당장 계순 자신이 먹을 것보다는 할머니와 동생 경호, 그리고 아버지 입에 기름진 음식들을 넣어줄 수 있어 신이 난 그녀였다.


“어머! 진짜?”


“와! 간만에 입구멍에 기름칠 좀 하겠다! 너무 좋다!”


다들 신이 나 흥에 겨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빨래 방망이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거친 손길에 동무 한명이 방망이를 개울가에 놓치며 비명을 질렀다.


“어멋!”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음흉한 미소를 짓는 일본 순사 둘이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일본순사들의 거친 손길에 그녀들이 끌려간 곳은 소우타의 집이었다.


다키치는 때마침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소우타의 집 안 정원이 있는 마당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그녀들이 정면을 바라보자 근심어린 눈으로 손을 비비면서 안절부절하는 초계댁 아주머니와 다른 나이든 가정부들이 보였다.


일본순사의 보고에 다키치는 물 한잔을 들이마신 뒤, 재빨리 정원으로 나왔다.


“여기 있는 게 마지막인가?”


“네! 더 이상 소우타 도련님 또래의 여자들은 이 마을에 더 없습니다!”


다키치는 고개를 반쯤 꺾으며 그녀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다키치의 시선이 계순을 향하려는 순간, 황급히 다다미 바닥을 밟으며 미친듯이 뛰어오다시피 하는 소우타가 정원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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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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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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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1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8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8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7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6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5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9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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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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