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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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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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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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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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DUMMY

동생 계순의 눈물이 잦아들자, 상순은 그녀를 바라보고 천천히 물었다.


“근데, 계순아. 원돈이가 그러던데... 너 좋아하는 남자 생겼어? 원돈이가 계순이 니가 자기랑 혼례 치르기 싫다고 했다고 하던데...”


언니 상순의 말에 계순은 입술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들과 지내며 신흥무관학교라는 곳에서 혹독한 독립운동 훈련 과정까지 마친 언니였다.


그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일본인 소우타라고 말한다면 기겁을 하며 치를 떨어할 것이 분명했다.


계순은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말했다.


“언니... 나중에... 나중에 때가 되면 다 말해줄게.... 그러니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부탁이야...”


계순의 목소리를 한없이 슬프고 처연해서 상순은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상순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동생 계순을 다시한번 꽈악 안아 주었다.


“계순아! 잘 들어. 며칠 뒤에 마을에서 큰 축하연이 열릴 거야. 그 때... 언니가 상해에서 가져온 폭탄을 터뜨릴 거야. 그러니 너는... 가급적 마을에 나타나지 말고 집에서 경호랑 할머니랑 있어. 알겠지? 위험하니까 꼭 집에 있어!”


언니 상순의 말에 계순의 눈이 놀라 한껏 커졌다.


“폭탄이라니? 언니! 위험한 일이면 하지마! 언니 잘못되면 이제 나 진짜로 살 수가 없어! 폭탄이라니 말도 안 돼!”


계순의 걱정 서린 말에 상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 혼자 나서지는 않을거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도와줄거야.”


“다른 사람들이라니? 누구...?”


“으이구! 너 몰랐지? 너도 알만한 마을 사람들 중에 독립단원들 몇이 있어.”


“누구? 내가 아는 사람? 그게 누군데?”


놀란 토끼눈이 된 계순을 바라보던 상순이 작게 웃어 보이며 말헀다.


“음... 단원 공개는 원래 극비(極秘)인데, 너니까 말해준다! 일단 원돈이...”


원돈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계순은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또!? 또 누구?”


“일구 아저씨랑.... 놀라지 마! 우리 아부지!”


“뭐라고?”


비명처럼 내지른 계순의 큰 목소리는 동굴에 가득 울려 퍼졌다.


“어머! 얘 언니 귀청 떨어지겠다. 뭐가 그리 놀랠 일이야! 우리 아부지 대단하신 분이야. 태백 독립단원 단장님이야! 몰랐지?”


상순은 깔깔대고 웃고 있었지만, 계순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 강식이 태백 탄광마을에서 촌장과 다름없이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支柱)임을 알고 있었지만, 독립운동 단원이었다니 그것도 단장이라는 말에 계순은 이 모든 게 장난인 것만 같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고개를 양옆으로 휘저으며 계순은 언니 상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니! 나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


구슬프고 서럽게 울기 시작한 계순을 언니 상순은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너 왜 그래? 왜 그러는거야? 왜 이러는 건데?!”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계순을 붙잡고 상순이 묻자 계순은 말했다.


“나.... 나 이제 진짜 어떻게 해야 해... 언니... 있잖아... 언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아서 소우타야....”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자신의 동생 계순이 말하는 이름은 분명 ‘아서 소우타’였다.


아서 소우타라면 탄광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아서 탄광 그룹의 다키치의 외아들이었다.


평범한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들을 향해 갖은 수탈과 악행을 저지른 악인(惡人)의 자식이었다.


“아니지? 언니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에이, 너 내가 살아있는 거 숨겼다고 복수하려고 장난치는 거면 너무 심하다? 장난이지?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계순아! 너 다시 말해 봐!”


상순의 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계순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만 있었다.


깊은 숨을 한번 들이마신 상순이 계순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아직 아무도 모르지? 계순아, 너! 이거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절대로 남들에게 말하면 안 돼!”


언니 상순의 말에 계순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밝은 달빛만 구름 한점 없는 깊은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




이틀의 시간이 흐른 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모두가 잠에 취해있을 때, 계순은 서둘러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대대적인 마을 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계순은 피가 나기 직전까지 자신의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던 그녀였기에 살짝 현기증이 나려했지만 오늘만큼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계순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들을 위한 아침상을 차렸다.


본래 보리와 조가 섞인 밥은 거뭇거뭇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계순은 소우타에게서 받은 흰쌀을 아낌없이 넣어 흰 쌀밥을 준비했다.


시큼한 군내가 나는 묵은지 투가리에 검은 간장이 담긴 고추 장아찌 종지가 밥사발 옆에 놓였다.


소우타에게서 받은 계란들 중에 남은 네 알 중 두알을 깨뜨려 놋그릇에 계란찜을 했고, 머구잎을 따 머굿대를 살짝 데쳐 껍질을 벗겨 막된장에 무쳤다.


아버지 강식이 좋아하는 쑥버무리를 가득 담아 밥상 위에 올려놓고,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달래와 냉이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도 정중앙에 놓았다.


어린 경호를 위해 계순은 그동안 자신이 모아놓았던 쌈짓돈으로 보리굴비 한 마리를 사놓고 창고에 몰래 말려놓았다.


보리굴비를 조심스럽게 가마솥에 쪄내고 간장과 참기름을 뿌려 먹음직스럽게 담아놓았다.


보리굴비를 준비하며 겨우 구한 작은 돼지고기 한 덩어리와 무를 듬성듬성 썰어놓고 뭇국을 한소끔 끓여놓아 국 접시 세 개에 가득 담아놓았다.


모든 음식 준비를 끝마치고 계순은 앞치마에 물기가 흥건한 손을 닦으며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어린 남동생 경호는 정신없이 깊은 단잠에 빠져있었다.


“경호야! 일어나야지?”


일찌감치 일어난 계순의 할머니는 머리를 단아하게 빗으며 머리에 쪽을 지고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식사하시라는 눈짓을 하고, 어린 동생 경호를 들쳐 안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이쁜 동생! 누나가 고깃국에 쌀밥 말아놨는데? 안 먹을 테야?”


고깃국에 쌀밥이라는 계순의 말이 들려오자 아침 단잠에 취해 정신이 없는 동생 경호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소리쳤다.


“진짜? 진짜진짜? 고깃굿이야? 보리밥이나 조밥 아니고 쌀밥에? 진짜지? 누나, 진짜지?”


숨도 쉬지 않고 재빨리 웅얼거리는 동생 경호의 얼굴을 소중하게 한번 어루만진 계순은 살짝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이 누나가 경호 주려고 준비해놨어! 얼른 세수하고 마루로 나와!”


“응! 알겠어!”


연신 졸린지 하품을 해대며 두 눈을 양손을 들어 비비면서 경호가 대답하자 계순은 서둘러 싸리 울타리의 문을 열고 집 밖을 빠져나와 언니 상순이 있는 어미산 동굴로 향했다.


계순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왼쪽 옷소매로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힘에 부친 듯 아슬아슬하게 무게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녀가 머리에 인 광주바구니 안에는 지금 막 쪄낸 옥수수와 고구마 몇 알, 그리고 노오란 계란 두 알이 담겨있었다.


그 옆에는 면보자기로 고이 접은 쑥버무래기까지 담겨있었다.


- 우리 상순 언니 배고프겠네. 얼른 가야지!


계순은 힘에 겨웠지만, 언니 상순의 배 안에 이 음식들이 찰 것을 생각하면 기쁜 마음만 가득 차오를 뿐 자신이 힘들고 고된 것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쁜 숨을 '헉헉'거리며 어느새 언니 상순이 숨어있는 동굴 앞에 이르러서야 계순은 잠시 머리에 짊어진 광주리를 동굴 입구에 있는 너른 바위 위에 올려두었다.


깊은 숨을 한번 들이마신 계순은 조심스럽게 동굴 앞에서 신호소리를 내었다.


“뻐꾹! 뻐꾹!”


그녀의 뻐꾸기 소리에 상순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뻑뻐꾹! 뻑뻐꾹!”


뻐꾹이 소리는 상순과 계순이 이미 사전에 정해둔 암호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고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는 “뻐꾹”이었고, 주변에 일본인을 비롯한 위험한 상황이니 절대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신호는 “야옹”이었다.


그녀는 언니 상순의 답 신호를 듣고서야 바위에 올려둔 바구니를 다시 옆구리에 낀 채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 나 왔어! 배고팠지?”


힘겹게 산에 들고 온 바구니를 상순의 옆에 슬며시 내려놓고 언니의 눈치를 살피는 계순이었다.


상순 역시 계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밤새 울었는지 눈 밑은 퀭했고, 눈두덩이는 팅팅 부어있었다.


“너... 밤새 울었니. 얼굴이 왜 이 모양이야!”


상순은 거칠게 계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도 마, 언니! 경호 녀석이 밤새 얼마나 코를 골아대던지. 내가 시끄러워서 밤잠을 설쳤다니까 글쎄! 경호 코고는 소리에 잠을 잘 못자서 조금 피곤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계순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밤새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숨죽여 울었다.


꺼이꺼이 울다가 지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아침이 다 되어있었다.


계순은 결심을 한 듯,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 강식과 할머니, 그리고 경호를 위한 아침상을 차린 뒤, 서둘러 상순의 음식을 챙겨 그녀가 있는 어미산 동굴을 찾아온 것이었다.


남들 눈에는 산나물을 캐러 뒷산에 오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계순은 바구니 안에 호미며 낫을 챙겨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했다.


계순은 억지로 즐거운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이 지고 온 바구니를 덮은 면보자기를 들췄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던 옥수수와 고구마는 어느 새 식어 살짝 만져보니 따뜻한 온기(溫器)만 남아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고구마 한 알을 짚어 상순에게 건넸고, 계란 한알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머리에 내리친 뒤 껍질을 살살 벗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얀 속살을 드러낸 계란을 상순에게 내밀었을 때, 상순은 말없이 계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언니! 내 얼굴 뚫어지겠네. 그만 좀 쳐다봐! 이거나 얼른 먹어!”


계순이 건넨 계란을 말없이 쳐다보던 상순이 한숨을 깊게 내시고는 입을 크게 벌렸다.


계순은 활짝 웃으며 그녀의 입 안에 계란 한 알을 쏙 넣어주었다.


“어이구! 잘 먹네! 착하다! 우리 언니! 먹는 모습이 어쩜 이리 이쁘대! 참 이쁘다!”


계순은 해맑게 활짝 웃어보였지만, 언니 상순의 얼굴은 그늘로 가득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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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8 2 12쪽
160 챕터9-160.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1) 24.01.01 1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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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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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1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8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8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7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5 1 12쪽
»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6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5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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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7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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