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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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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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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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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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DUMMY

“이거 어디서 나신 거예요? 여기 위험하니까 빨리 말하세요.”


순찰대원 중 하나의 가방 속 돈다발을 발견한 나는 그 돈의 출처를 물었다.

그 질문에 순찰대원은 한동안 곤란한 얼굴로 침묵을 유지했지만 이렇게 현행범으로 딱 걸려 붙잡힌 걸 입 다물고 있는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무엇보다 언제 어떤 몬스터와 마주칠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서 마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별 건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모았습니다.”

“여기저기가 정확히 어딘데요?”

“아, 그 왜⋯ 마트나 가게나⋯ ATM기 같은 거요.”


허, 참.

당연히 몬스터와의 전투로 위험에 빠진 줄로만 알았지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하지만 뭐, 그리 놀라운 일은 또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완전 무법, 무정부 상태인 서울 여기저기에 주인 없는 돈이 널려있는데 욕심이 안 날 리가.

물론 이 와중에 그런 짓거리를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는 일단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 나머지 순찰대원을 찾아 돌아가려고 물었다.


“예, 뭐⋯ 알겠고요, 나머지 사람은 어디에 있죠?”

“⋯⋯⋯⋯.”


그런데 순찰대원은 답답하게 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마구잡이로 돈을 털고 있어 자기도 모르는 건가.


“아~ 아저씨! 시간 없어요, 빨리 말하세요. 당신들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 쉬지도 못하고 튀어나와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모, 몰라요⋯!”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대충 어디로 갔다, 이 정도는 알 거 아닙니까?”

“지, 진짜 잘 몰라요 저도⋯!”


또 입을 다물자 헌터 한 명이 짜증을 내며 추궁했고 순찰대원은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모르는 눈치가 아니었다.

꼴에 산전수전 겪어봤다고 그의 말투나 표정 같은 데서 모른다기보단 뭔가를 숨기려 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그럼 찾죠.”

“⋯네?”

“모르면 찾아야죠, 근무지를 무단이탈했다고는 해도 우리 편인데 어디서 몬스터한테 당해서 객사하기 전에 데려와야 할 것 아닙니까.”

“하, 하지만 이 넓은 곳에서 어떻게⋯.”

“뭐 방법이 달리 있겠습니까, 마법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뒤지고 다녀야죠.”


그래서 나는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이 순간만 얼버무리려던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게 보였다.


“그래도 확실히 최소한의 기준은 필요하겠네요, 음⋯ 그래, 우선 여의도 쪽부터 가보기로 합시다.”

“여의도요? 거긴 왜⋯?”


내가 난데없이 여의도를 찍자 헌터 한 명이 타이밍 좋게 의도를 물어봐 주었다.


“그쪽에 S급 몬스터의 둥지가 있다고 합니다, 순찰대는 그 사실을 모를 테니 만약 그쪽으로 향했다면 매우 위험해요.”


사실은 A급이고, 그나마도 진작에 아린이가 갔으니 이미 개박살 났겠지만 나는 일부러 사실을 부풀려 말했다.


“허, 헌터님⋯ 동료를 쉽게 버려선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만약 정말 S급 몬스터의 둥지로 향한 거라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이 인원으로 가는 건⋯.”

“저, 저는 못 갑니다, 그건 자살이에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들은 수색대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기겁을 했다.

말이 동료지 얼굴도 모르는 사실상 남을, 그것도 일탈행위를 해 지들 스스로 S급 몬스터의 둥지에 기어들어 간 인간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줄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저희 둘이라도 가야죠.”


하지만 처음부터 진짜로 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순찰대원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예?! 저, 저는 왜⋯!”

“지금 사방에 널린 게 시신인데 당신이 같이 가야 같은 순찰대원인지 알아볼 거 아닙니까?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확인해야죠. 자, 가시죠.”

“아, 아니! 아니, 잠시만요, 잠시만요!”


당장 S급 몬스터의 둥지로 가자고 하니 순찰대원은 땅에 다리를 박고 뻐팅겼다.

하지만 힘은 내가 더 셌고 점점 끌려가기 시작한 그는 결국 비명을 지르듯 시인했다.


“아, 알아요! 다른 사람들 어디 있는지 알아요!!!”


아오~ 이 새끼, 이거 그럴 줄 알았지, 꼭 사람 귀찮게 한다니까.


“안다고요? 아까는 모른다면서요?”

“아니에요, 아, 알아요, 알아요.”

“안내하세요.”


나는 바닥에 거의 꿇어앉다시피 한 그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고 그런 그의 행동에 짜증이 났는지 뒤에 서 있던 헌터 한 명이 그의 다리를 실수인 척 퍽 걷어차기도 했다.

그리고 그토록 수상쩍은 행동을 하던 그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 장소는⋯.


“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네. 팔자 바꿔보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은행이었다.

복귀하지 않은 순찰대는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는 은행을 털고 있었다.


- 까드득! 까드드드득!


은행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은행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헥⋯ 헥⋯ 저기, 형님! 이거 꼭 까야 해요? 너무 단단한데요?”

“말할 힘 있으면 닥치고 스킬 한 번이라도 더 써!”

“이거 까겠다고 벌써 한 시간도 넘게 이러고 있어요! 차라리 다른 은행 가서 따기 쉬운 금고만 터는 게 낫지 않을까요?”

“병신아! 니들 그런 푼돈 주워 먹으러 은행 왔어?! 이게 메인 금고야! 이 안에 달러나 골드바 같은 것도 있을 거라고!”


순찰대 소속의 헌터들은 은행 안을 마음껏 누비며 몬스터 잡으라고 있는 스킬과 아이템으로 금고를 까부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집중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우리가 은행에 들어와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한참이나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자~ 자~ 다들 적당히들 하시고 이쪽으로 모이세요.”


처음엔 언제까지 모르나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에 가만히 있었지만 진짜 가만히 있으니 끝날 때까지 모를 기세였다.

나는 결국 손뼉을 치며 그들의 주의를 끌었고 들려선 안 될 사람의 말소리에 열심히 금고를 까던 순찰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시던 일 멈추고 그대로 모이세요.”


그들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판단했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칠 기세였지만 은행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20명의 헌터를 보곤 어쩔 수 없이 얌전히, 하지만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기들끼리 둥글게 모여 섰다.

은행 안 인원은 전부 9명, 우리가 데리고 있는 한 명을 더하면 딱 맞았다.


“저희도 힘드니까 협조 좀 잘합시다, 손에 들고 있는 거 다 놓고 그대로 따라오세요.”


이 와중에 은행이나 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하지만 그 짜증을 그대로 쏟았다간 일이 얼마나 막장으로 치닫을지 모르니 일단은 잃을 것 많은 내가 저자세로 나가기로 했다.


“에이~ 헌터님, 왜 그러십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일을 질러놓고선 좀 들켰다고 바로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순찰대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치근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죠,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일단 들어나 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거 주인 없는 돈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 정부에서 서울 철수령을 내릴 때 이곳에 남겨진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저희가 뭐 강도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제재하실 일입니까?”


그의 말대로다.

정부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통제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했고 지금 이 은행에 있는 모든 물건, 현금, 골드바는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먼저 줍는 놈이 임자인 보물창고였다.


“제재할 일이죠, 통제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데 그걸 그냥 둡니까?”

“그러니까 죄송하다고 하잖습니다. 다신 이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들고 있는 돈은 가지고 갈 수 있게 해주십쇼.”

“안 됩니다. 다 놓고 따라오세요.”


내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단칼에 잘라내자 그는 순간 정색하며 입술을 씰룩거렸지만 뭔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애써 웃음을 지어내며 다시 말했다.


“아⋯ 아~! 이런이런~ 제가 너무 당황해서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하하~!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혼자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그는 내게 굽신거리며 눈짓으로 순찰대원 몇 명을 움직이더니 내 앞에 큰 더플백과 캐리어 다섯 개를 가져와 툭 내려놓았다.


“절반입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꽉 채웠으니 100억은 족히 될 겁니다.”


그의 말에 내 옆에 서 있던 헌터가 후다닥 가방 안을 열어보았다.

가방엔 오만 원권 지폐 다발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우리 지휘관님, 고생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참에 이 정도 보상은 받으셔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대신, 지휘관님께서는 살~짝, 눈만 감아주십시오. 그럼 일은 저희가 다~ 하고 지휘관님께 따박따박 상납할⋯.”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이번엔 경고입니다. 가진 거 다 내려놓고 얌전히 따라오세요.”

“허, 헌터님⋯!”


내가 계속 같은 태도로 일관하자 이번엔 수색대의 헌터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제안을 수락하면 현장을 목격한 자신들도 은행털이 카르텔에 합류해 얼마라도 떡고물이 떨어지는 게 있을 텐데 내가 그 제안을 까버리니 새삼 아쉬운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딴 제안은 절대 수락할 수 없다.

생선은 대가리부터 썩는다고 많은 헌터를 대표하고 이끌어야 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이런 일에 가담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이 일에 가담하기 싫은 이유는 정의감, 사명감, 뭐 그런 낯간지러운 이유가 아니고서라도 그냥 소은 누나한테 뒤지고 싶지 않다.

중책을 맡겨놓고 갔더니 밑에 놈들 제대로 통솔 못하고 오히려 잡아먹혀서 은행털이 뒤를 봐주며 뽀찌나 타 먹고 있는 꼴을 들키면 대체 어떤 고문을 당할까?

대가리도 상대 봐가면서 굴려야지 소은 누나를 감쪽같이 속여 넘기는 지능을 가진 세계관의 박준호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돈은 한 푼도 챙기지 않고 그냥 떠납니다, 지금 당장이요.”


나는 할 말이 많이 보이는 수색대의 헌터들을 향해 확실하게 못 박고 강력하게 명령했다.


“⋯⋯예.”

“빨리 나와!”

“손 떼, 이 새끼야!”


그러자 수색대의 헌터들은 아직 돈에 완전히 눈깔이 돌진 않았는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순찰대의 헌터들을 은행 밖으로 끌어냈다.

뭔가 뒤통수가 싸한 느낌이 들긴 들지만 어쨌든 우린 복귀하지 않고 은행을 털고 있던 순찰대를 데리고 광장으로 돌아갔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미 가방에 주워 담은 돈 정도는 챙기게 해줘도 괜찮겠지만 그걸 한 번이라도 허용해 주는 순간 너도나도, 근무를 내팽개치고 약탈을 시작할 강력한 명분이 생겨버린다.

유치하게 말하면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돼냐는 식의 반발이 나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거고 그런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는 순간, 모든 질서는 와르르 무너지겠지.

나는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 사건을 엄하게 다스리기로 했다.

처음엔 뭐 이런 것까지 만들어놨나 하고 당황스러울 정도였는데 이렇게 빨리 써먹을 일이 생길 줄이야.


“들어가세요.”

“뭐, 뭡니까, 이게?”


나는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한 순찰대원 10명을 감옥에 처넣기로 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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