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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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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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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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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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DUMMY

예정된 훈련을 모두 받고 나니 시간은 딱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시간표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게 꼭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우린 식사를 위해 훈련장을 떠나 헌터관리국 요원들과 함께 밥차에서 음식을 받아 한쪽 구석에 앉았다.


“⋯⋯⋯⋯.”

“⋯⋯⋯⋯.”


그리고 그렇게 약 5분이 지났다.

하지만 그 5분이 지나도록 식사를 시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배가 고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눈앞에 놓인 음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었다.


“왜 안 먹고 있어? 식기 전에 먹지 그래?”

“형이 먼저 먹어야 아우가 먹지.”

“난 식전 기도 중이라, 네가 먼저 먹어.”

“형 종교 없잖아.”

“오늘 신을 만나고 온 것 같아서.”


내가, 우리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고된 훈련의 후유증으로 말 그대로 숟가락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 땡그랑!

- 뽀각!


서연은 손을 덜덜 떨다 숟가락을 떨어트리고 미즈키는 힘 조절을 못 해 부러트려 버리고 여기저기서 아주 난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오늘 다들 어땠나? 우리가 저 친구들을 너무 과소평가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

“아! 맞아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제 그림자 병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새, 생각보다⋯ 빨리 반응해서⋯ 놀랐어요⋯.”

“오~ 그래? 난 이론 수업만 해서 몰랐네?”

“그럼 내일은 난이도를 조금 높여보도록 하지!”


한편 다른 한쪽에 모여 식사 중인 S급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에휴⋯.”


그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우린 난이도를 올린다는 말에 눈을 질끈 감고 얕은 한숨을 쉬며 절망했다.




***




“일어나, 일어나!”

“어⋯ 어?!”


이제 막 저녁을 먹고 깜빡 잠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를 두들겨 깨우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한참 안 나와서 찾아오게 해놓고 태평하긴!”


갑자기 내 방에 쳐들어온 아린이는 이불을 걷고 나를 침대 밖으로 끌어내며 말했다.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또 소은 누나한테 꿈을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중천에 뜬 해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형을 보자 뒷골이 싸했다.

설마, 설마⋯.


“빨리 옷 제대로 입고 세수만 하고 나와! 미즈키랑 너 기다린 지 20분이나 됐어!”


아린이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대신해 티셔츠를 가져와 머리에 씌워줬고 내가 주섬주섬 그걸 입는 동안 화장실로 데려가 세면대에서 물을 묻힌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주고는 곧바로 밖으로 끌고 나갔다.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꿈이라면 빨리 깨기를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잠깐 눈만 깜빡였다 뜬 것 같은데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아니 더 힘들어진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누군진 몰라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참 미웠다.

첫째론 그 말 때문에 뭐든지 일단 시키고 보는 풍조가 만들어져서 미웠다.

그리고 둘째론 진짜로 적응이 돼서 미웠다.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게 계속 반복하다 보니 점점 쉽고 익숙해지는 게 결국은 그 전의 내가 그저 나약했을 뿐이라는 걸 나 스스로가 증명하게 하는 셈이었다.


“야, 서연아.”

“응?”


나는 옆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서연을 불렀다.

서연은 입에 가득 욱여넣은 밥을 오물거리며 나를 돌아봤다.


- 파악!


그리고 나는 그런 서연의 얼굴을 향해 빠르게 잽을 뻗었다.


- 부웅!


그러자 서연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만 까딱여 내 잽을 피했다.

나는 연속으로 라이트, 훅을 날렸지만 서연은 끝까지 내 주먹을 보며 휙휙, 앉은 채로 아주 편안하게 피했다.


“갑자기 왜 그래?”


밥 먹는 사람한테 냅다 주먹질을 하면 누구라도 화낼 법하다.

하지만 서연은 내 주먹에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았기에 태평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되게 빨라졌다.”

“그래?”


이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고작 일주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그동안 모두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는 것은 단연코 번뜩이는 눈빛이었다.

평소 흐리멍텅한 눈을 하고 있던 서연은 그 차이가 특히 두드러졌고 방금 내가 해봤듯이 달라진 건 단순 눈빛만이 아니었다.


“뭐하냐?”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형이 말을 걸었다.

⋯분명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하는 룸메이트인데 고된 훈련에 맨날 쓰러져 자기 바빠서인지 오래간만에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뭔 생각? 쓸데없는 생각이면 그만두고 잠이나 자라, 넌 옛날부터 생각이 너무 많았어.”

“쓸데있는 생각이야.”


지난 일주일은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훈련을 받고 지쳐 쓰러져 자기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가 반복해온 그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훈련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매일매일 스스로가 단련돼 간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효과적이다.


[네 힘을 잘 사용하면 탑을 공략하는 데도 다른 S급들 못지않은 공적을 세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내 귓가에는 계속 담당자의 말이 아른거렸다.

그는 내가 잘하고는 있지만 특성의 진정한 힘을 개화해내지 못해 아쉽다고 했고 나는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는 말은 난 아직 탑을 공략하는 데 S급 못지않은 공적을 세우기엔 모자란다는 뜻 아닌가?

이 특성의 진정한 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런 훈련을 받을 때가 아니라 내 특성의 진정한 힘이 뭔지 감이라도 잡아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뭐야, 튀려고?”

“이 좁은 나라에서 튀어봤자 어디 숨겠어.”


이제 탑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주.

더 이상 혼자 고민하며 버릴 시간은 없다.

적어도 상담 정도는 빨리 받아보자 하는 생각이 든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 똑똑똑.


“누구세요?”

“저예요.”

“으응?”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소은 누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왜, 무슨 일이야?”

“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당연히 할 말 있어서 오기야 했겠지만 무슨 일인데? 왜 그렇게 긴장했어?”


역시, 다 티나는 건가.

나는 지금 소은 누나의 말마따나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참이었다.


“설마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려고 온 건 아니지?”

“아닌데요.”

“이게 긴장 좀 풀라고 농 쳤더니 정색으로 받아치네?”


소은 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으며 방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뭐, 일단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들어와. 지저분하지만.”


그렇게 소은 누나의 방에 들어온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와, 진짜 지저분하네.’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호텔의 평범한 방은 이소은이라는 인물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았고 소은 누나의 방은 온갖 서적과 필기한 노트, 그리고 구겨버린 종이로 가득했다.


“일단 여기 앉아, 자,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뭔데?”

“저⋯ 그게, 내일부터 저는 다른 훈련을 받으면 어떨까 해서요.”

“다른 훈련? 무슨 훈련?”

“저 말고 제 특성을 강화하는 훈련이요.”

“땡땡이치려고 잔머리 굴리는 건 아니고?”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담당자가 내 특성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을 조금 더 보충해서 소은 누나에게 전해주었다.


“흐음~ 그래? 그럼 네 특성에 정말 뭐가 있긴 있다는 말인데. 솔직히 너 마법저항력 올랐을 때도 꽤 놀랐어, 그게 얻기 쉬운 건 절대 아니거든.”

“네, 저도 그래서 탑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 되는 데까지 특성을 성장시켜보려고요.”

“일단은 알았어. 그런데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아린이가 허락 안 해준다고 대신 설득해달라고 하는 건 아닐 테고?”


서론은 끝났고 여기서부터가 본론이고 멈추려면 지금이 마지막이다.

나는 그새 흔들리고 있는 결심을 다시 붙잡고 말을 꺼냈다.


“실은⋯ 또 누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요.”

“동생이 해달라는 건데 해줘야지. 뭔데?”

“제 특성은 제가 데미지를 입으면 성장해요.”

“응, 듣고 있어.”

“그러니까 딱 죽지 않을 정도의 데미지를 쉴새 없이 입으면 최고속도로 성장할 수 있죠.”

“응, 그렇⋯겠지⋯ 잠깐만, 너 설마?”


아직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말하지 않았지만 소은 누나는 이미 뭔가를 눈치챈 듯하다.


“그 설마가 정확히 어떤 설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걸요?”

“네가 떡밥 뿌리는 걸로 봐선 서울에서 보여줬던 S급 던전 입구 틀어막은 그 마법 써달라는 것 같은데?”

“어? 네⋯ 맞아요.”


그런데 정확해도 너무 정확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뭐 대충 나를 공격해 데미지를 입혀달라는 정도는 누구나 쉽게 예상하겠지만 그저 스쳐 지나간 일에서 내 나름대로 착안한 그 방법까지 정확히 콕 집어내다니.


“너 제정신이니? 그건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나 마찬가지야!”

“그래도 그게 제일 효율적인걸요. 하루 종일 누구 하나 붙잡고 계속 때려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만 생각하면 오히려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버틸 각오는 돼 있어요.”

“각오는 일이 닥치기 전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부탁드릴게요. 지금은 이 방법이 유일해요.”

“대체 얼마나 그러고 있을 생각인데?” “저한테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때까지요.”

“하아⋯.”


내 부탁에 큰 고민에 빠진 소은 누나는 잠시 머리를 짚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역시 똑똑한 만큼 금방 결론이 나왔는지 이내 입을 열었다.


“좋아, 조건이 있어. 첫 번째로 위력은 네 체력의 70%까지만이야. 내가 실수할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수해서 널 죽이게 되면 피해자는 네가 아니라 내가 되는 거니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만 도와줄 거야. 절대 네 체력 거짓말 치지 마.”

“⋯네.”


남은 29%의 효율이 아쉽지만 그건 너무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니 소은 누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너무 힘들면 바로 멈춰. 네 재생력이 대단한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고통은 느끼잖아, 그렇지?”

“네.”

“등급은 제쳐두고 너보다 오래 일한 업계 선배로서 조언하자면 난 이 일을 하면서 정신적인 문제로 은퇴한 헌터를 수도 없이 많이 봤어. 다들 사지는 멀쩡한데 쉽게 말해서 미쳐버린 거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미쳐서 헛것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고 불안장애에 시달리기 직전까지 제일 많이 한 말이 뭔지 알아?”

“뭔데요?”

“난 괜찮아. 그 사람들이 그냥 걱정할까 봐, 센 척하려고 한 말이 아니야. 진짜로 자기는 괜찮다고 믿었어. 정신병 따위 정신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 거지.”

“전⋯ 그렇게 안 돼요.”

“맞아, 두 번째로 많이 한 말은 그거야.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잘 맞추네?”

“⋯⋯⋯⋯.”


이미 한 번, 던전에 갇힌 것을 계기로 그런 경험을 겪어본 나는 소은 누나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두 가지 조건만 지켜줘. 그럼 도와줄게.”

“⋯네. 약속할게요.”

“약속한 거다. 만약에 죽거나, 미치면 평생 용서 안 할 거야. 그때가 되면 용서를 구할 수도 없을 거고.”

“⋯네.”

“좋아, 각오는 했다고 했지, 따라와.”

“어, 어디 가는데요?”

“결정 났고 시간 없다며? 그럼 뭘 망설여, 지금 당장 시작해야지.”


어⋯ 지금 바로?

방금까지 날 말리던 사람이 한순간에 나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나오니 그 갭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 막상 하려니까 쫄려? 내일 해줄까?”

“아, 아니요, 가시죠.”


하지만 결정은 났고 시간은 없다는 그 말이 맞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는 내 마음가짐 외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말 마지막 각오를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은 누나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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