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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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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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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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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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나 폭주 (6)

DUMMY

“마디나 할멈의 기록을 말이야.”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마디나 할멈이 직접 쓴 원본은 요구하지 않겠어. 그건 온전히 탐구자의 유산이니까. 다만 그것의 사본··· 그것을 내어주었으면 한다. 젠탈리온이 어떻게 드래곤을 토벌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마법서가 꼭 필요해.”

“탐구자를 배신하려는 네 녀석이 탐구자가 남긴 기록을 가져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도대체 어디까지 뻔뻔할 건가? 레티시아가 목숨을 살려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네 녀석이···!”

“......”


제 삼자인 나조차 그건 말도 안 되는 뻔뻔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지금 라이셀은 탐구자를 배신하고 나가려 한다. 아무리 그게 레티시아에게 약속했듯 자신이 생각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 살아가는 탐구자들에 대한 배신행위다.

라이셀에게 화를 내는 남자의 말대로 레티시아가 얌전히 그들을 나가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터였다.


“...알겠어요.”

“...레티시아?”

“기록고에서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사본을 가져와 주세요.”

“그럴 수는 없어···! 어떻게 이 몰염치한 녀석에게···”

“모든 책임은 제가 질게요. 부탁드려요.”


레티시아 옆의 남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재차 부탁하는 레티시아의 눈빛을 본 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를 악 문 채로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운 그는, 옆구리에 커다란 책 한 권을 든 채로 돌아왔다.


“...고맙다.”


줄곧 공격적인 태도였던 라이셀도 지금만큼은 레티시아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책을 받아 든 후 뒤를 돌아 무리를 이끌고 천천히 심층을 빠져나갔다.

레티시아는 라이셀과 에본윙이라 자칭한 그 무리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멀어져가는 모습을 멍하니 선 채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탐구자의 기록을 저 자식한테 준 건가? 아무리 원본이 아닌 사본이라고 하더라도···”

“...라이셀의 말도 전부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그가 한 말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라도 마음에 두지 말아. 누가 뭐라 하더라도 레티시아 너는 벨모어님께서 직접 선택하여 우리를 이끌고 있어. 지금까지 너는 잘해 왔어. 이 마을도 너 덕분에 이렇게 순조롭게 건설되고 있는 거야. 자부심을 가져.”

“순조롭게, 말이죠.”


레티시아는 고개를 들어 심층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라이셀의 말이 맞아요. 벨모어님의 뒤를 이으면서도 저는 줄곧 저희가 잊혀진 이들이라는 것에 매몰되어 있었어요. 제가 오직 생각하고 있던 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평안하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였어요. 라이셀이 말한 젠탈리온에 대한 복수라니,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라이셀은 너무 극단적이야. 우리에게 당장 지낼 곳과 연구를 할 기반이 필요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 너는 틀리지 않았어.”

“그럴까요···”


레티시아는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시선은 일련의 소동을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던 몇몇 어린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 젠탈리온에서 쫓겨나왔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던 저희가 죽고 난다면, 이 다음 세대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저희는··· 이렇게 젠탈리온에 대한 복수심을 잊어도 되는 걸까요? 그게 모두가 바랐던 것이었을까요?”

“......”

“알아요. 그다지 라이셀의 의견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저의 작은 미련일지도 모르겠어요. 라이셀의 적극적인 행동을, 내가 결코 하지 못했고 하지 못할 그 행동을 간접적으로나마 함께했다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한 변명이에요.”


그녀는 결코 눈물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건설 중인 심층과 주변에 모인 어른과 아이들을 둘러보는 그 눈빛은 그 어떤 눈보다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눈은 직전 장면이었던 20년 전 그녀의 눈동자와 꼭 닮아 있었다. 자신들이 잊혀졌음에 대해 절망하고 애통해하던 그 눈빛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라이셀이 탐구자를 내려놓고 에본윙이 된 것처럼 그녀는 탐구자를 내려놓고 잊혀진 이가 되었다.


“...아.”


나는 분명 멍하니 레티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에 풍경은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다. 마치 생생한 꿈이라도 꾸다가 일어난 기분이었다.

내 앞의 오멜과 카일은 상당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바보 같은 표정이라고 놀려주고 싶었지만, 아마도 나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흐음? 다들 돌아온 모양이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한 시간 정도일까. 슬슬 지겨워서 잠이라도 잘까 고민하던 차였다네.”

“마법 지능체라는 건 잠도 잘 수 있는 거야?”

“농담일세, 농담. 이런 건 재미있는 농담인 게 뻔하지 않는가.”


으하하.

렘난티스는 농담이라며 큰 소리로 웃었지만, 나는 그 농담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는 재미없는 말에 대꾸할 일말의 가치도 느끼지 못하여 가볍게 무시했다.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야.”

“...응?”

“렘난티스,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의 내용을 알려줘! 실물이 묻혀 있더라도 너는 여전히 볼 수 있는 거지?”


탐구자들의 기억에서 막 돌아오며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오멜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급하게 렘난티스를 불렀다.


“오멜, 왜 그래?”

“로웨나가 찾고 있던 게 바로 그거였어.”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

“응. 기억에서 너도 보았지?”

“그··· 분명 라이셀인가 하는 남자가 가지고 간 탐구자의 기록이었지?”

“라이셀이라는 탐구자는 그 기록의 사본을 가져갔어. 원본은 분명히 이곳에 남아 있을 거야.”


오멜의 말대로 레티시아에게 라이셀이 요구한 것은 사본이었다. 원본은 탐구자의 유산이라고 하며 자신이 사본을 들고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 했었다.


“그 기록이 왜?”

“라이셀은 젠탈리온이 플로리스를 토벌한 방법을 궁금해했었어. 그건 당연해. 왜냐하면 탐구자들은 젠탈리온에 있을 때부터 플로리스와 교류했고, 그녀가 13레벨의 최상급 드래곤인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그녀를 막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젠탈리온을 도망친 것이 바로 그 이유고. 뭔가 겹쳐보이지 않아?”

“...로웨나는 분명 드래곤을 상대하는 독자적인 마법을 개발했다고 했지.”

“그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개발한 마법이 아니라 이곳에서 찾았던 거야. 어느 정도 어레인지는 했을 수 있겠지만 그 마법의 원류는 바로··· 마디나 베일리즈의 연구야.”


마나 폭주.

라이셀은 마디나 베일리즈가 생전에 마나 폭주 이론을 연구했고, 그 연구 결과를 당시의 젠탈리온 왕실에 보냈다고 했다. 그건 드래곤을 위한 것이 아닌 정령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드래곤은 인간과는 다르게 마나 정제와 저장 마나를 동시에 사용해. 그렇기 때문에 정령을 상대하기 위한 마법이라면 충분히 드래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야. 자세한 것은 책을 살펴보아야겠지만.”


난 오멜의 그 말을 듣고 젠탈리온 왕성에 있을 때 펜하임님께서 마나에 대해 설명해 주신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 마법을 배우기 위해 찾아갔을 때 펜하임님께서 각 생물의 마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펜하임님은 그 시점에 이미 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오멜에게 들어서 알고 계셨을 거다. 그래서 굳이 드래곤의 마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던 것이었을까.


“로웨나는 오버플로우라는 마법을 사용했어.”

“맞아. 그 마법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실제로 드래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을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것만은 모두가 알고 있어. 아마 기사단장님도 그 마법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작전을 진행한 거고··· 우리가 그 마법에 대해 알 수만 있다면 파훼할 방법도 생겨.”


로웨나는 그 마법을 나에게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나는 두 번 그 마법에 적중당했다.

첫 번째는 드래곤으로서다. 엄마가 이미 무력화 된 후, 나도 로웨나의 마법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고 그 동굴로 도망을 쳐서 플로리스가 남긴 마법석을 스스로에게 사용했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그다지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이 나에게 치명적이었다는 파편화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는 왕성에서였다. 드래곤이라는 자각이 없던 나를 훈련장으로 부른 후 제압하기 위해 로웨나는 나를 향해 오버플로우를 사용했다.

하지만 의문이었던 것은 그때의 마법은 나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오멜이 나를 막아서서 배리어를 전개하기는 했었지만 나는 로웨나가 분명히 그건 배리어로 막을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고 중얼거린 것을 기억한다.


로웨나의 그 마법이 젠탈리온을 상대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인 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 마법에 대해 알 수 있다면 방어할 방법도 준비할 수 있을 거다.


“크흠··· 문제가 있네.”


오멜의 요청을 따라 그 기록을 찾는 듯 한참 동안 흐릿하게 노이즈가 낀 상태로 있던 렘난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를 참조할 수가 없네.”

“어째서? 기록고가 무너졌다고 해도 넌 그 안에 묻혀 있는 기록을 참조할 수 있던 게 아니었어? 탐구자의 기억도 이렇게 볼 수 있었잖아.”

“난 거짓말은 하지는 않았어. 아무리 물리적으로 파묻혀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기록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하지만 마디나 베일리즈의 마법서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도저히 볼 수가 없는 상태일세.”

“탐구자의 기록은 보호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 질문에는 여전히 그렇다고 대답하겠네. 다만 그 보호를 뚫어내고 책을 파괴했을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지.”

“젠장!”


렘난티스의 말은 들은 오멜은 지팡이 끝을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오멜의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젠장, 젠장··· 로웨나가 그 책을 읽은 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망가뜨린 거야.”

“하지만 오히려 그 여자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 책 때문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졌어. 오버플로우는 마나를 폭주시키는 마법일까···? 마나 폭주라는 것은 난 들어 본 적이 없어.”

“나도 없어. 정확히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지도 잘 모르겠고··· 렘난티스, 오버플로우라는 마법이나 마나 폭주에 대한 다른 탐구자의 기록은 없어?”

“유감이지만 없군.”


잠깐 기록고를 둘러보는 듯 침묵하던 렘난티스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었으나 실망스러운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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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0) 24.08.19 7 0 11쪽
64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9) 24.08.15 7 0 11쪽
63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8) 24.08.12 8 0 11쪽
62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7) 24.08.08 7 0 11쪽
61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6) 24.08.05 5 0 12쪽
60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5) 24.08.01 6 0 11쪽
59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4) 24.07.29 8 0 11쪽
58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3) 24.07.25 7 0 11쪽
57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2) 24.07.22 7 0 12쪽
56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 24.07.18 8 0 11쪽
55 #10. 진실 (11) 24.07.15 9 0 11쪽
54 #10. 진실 (10) 24.07.11 7 0 11쪽
53 #10. 진실 (9) 24.07.08 8 0 12쪽
52 #10. 진실 (8) 24.07.04 7 0 11쪽
51 #10. 진실 (7) 24.07.01 8 0 11쪽
50 #10. 진실 (6) 24.06.27 10 0 11쪽
49 #10. 진실 (5) 24.06.24 6 0 11쪽
48 #10. 진실 (4) 24.06.20 8 0 11쪽
47 #10. 진실 (3) 24.06.17 8 0 11쪽
46 #10. 진실 (2) 24.06.13 7 0 11쪽
45 #10. 진실 (1) 24.06.10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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