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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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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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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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

DUMMY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그 이후로는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나와 오멜은 그저 달렸다. 올리비아는 엘 메이아의 기사로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결계도 없는 마당에 드래곤임을 드러낼 위험을 안고 우리를 함부로 쫓아올 수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조차 몰랐다. 그저 내려앉은 어둠을 뚫고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향해서 달렸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에게로 가기만 한다면 좋았다.

올리비아도 우리의 생각을 알고 있는지 그다지 우리를 추격해 오는 움직임은 없었다.


“하아, 하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내장을 뭔가가 파고드는 것처럼 옆구리가 쑤셔왔다. 다리에 아무리 힘을 줘도 무거운 추라도 달린 것마냥 자꾸만 신발이 바닥 밑으로 가라앉았다.

나와 오멜은 불빛 근처에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간신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지만 올리비아는 없었다.


“루비··· 괜찮아?”

“싸우면서 몸이 다친 부분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지만··· 내상을 입었어. 오멜은 괜찮··· 잠깐, 오멜 너 피가···”


오멜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며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오멜의 입 주변이 피범벅이 된 것을 보고 말문이 턱 막혔다.


“...응? 피? 나한테?”

“어디 다쳤어? 어디서 난 피야?”


하지만 조마조마하게 오멜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나와는 다르게 오멜은 자신도 영문을 모른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가 가리키는 자신의 입 주변을 손등으로 닦아 내었다.


“아··· 이거 코피야. 외상을 입거나 한 건 아니야.”

“코피? 왜?”

“조금 전에 조금 무리했나봐. 그런 식으로 마법을 쓰는 건 처음이어서 말할 새도 없이 집중했다니까.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는 생각했는데 코피까지 날 줄이야···”

“더블 캐스팅···”


나는 기억도 잃은데다가 누구처럼 그다지 마법 이론에 집착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더블 캐스팅에 대해서는 분명히 들은 적이 있었다.


오멜은 결계를 부수기 위해 두 종류의 마법을 동시에 전개했다. 공간을 압박하여 올리비아가 던진 마법을 결계에 정확하게 명중시키게 했던 마법과 그것과 동시에 결계를 해체하는 디스펠 마법이다.

마법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계산을 필요로 한다. 즉, 오멜은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계산을 머릿속으로 동시에 했다는 뜻이 된다.

그건 마나 레벨이 높고 낮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계산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두 가지의 계산을 동시에 하는 것은 사실상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드래곤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할 줄 알았던 거야?”

“아냐. 몰랐어. 몰랐다고 할까, 사실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한 적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고 그야말로 머리가 깨질 정도로 집중을 해서 겨우 했을 뿐이야.”

“굉장하잖아!”


오멜은 잔뜩 상기된 내 목소리에 머쓱한 표정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건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더블 캐스팅이라니. 이건 정말로 강력한 무기가 된다. 젠탈리온에는 오멜을 빼고 여전히 아크가 두 명이나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들도 더블 캐스팅은 엄두도 낼 수 없을 거다.

이건 나중에 드래곤 나이트와 싸우게 되었을 때 틀림없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당장 써먹기는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만 해도 정말로 머리가 깨질 거 같다구.”

“알아, 알아. 무리는 하지마. 조금씩 연습만 해둬. 틀림없이 필요한 순간이 올 테니까. 거기에 마법사로서도 엄청난 업적이잖아?”


나는 힘내라는 의미로 오멜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것보다 루비, 정말로 괜찮은 거야?”

“말했잖아.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거 빼고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구.”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올리비아의 이야기 말이야.”


올리비아의 이야기.

거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올리비아가 우리를 죽이려 했다. 내가 루비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내 모습은 플로리스의 모습이라고 했다. 올리비아는 내가 루비가 아니라 플로리스라고 말했다.


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왔을 때에는 몰랐지만, 고비를 넘긴 지금에 와서 그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니 잠시나마 잊었던 혼란이 다시금 나를 덮쳐왔다.

무서웠다. 그것들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괜찮아!”

“...괜찮다고?”

“괜찮아. 나는··· 그···”


-훌쩍


오멜의 말에 무언가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가 뭘 말하는지도 모르는 채 허둥지둥 입을 여는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소매로 급하게 눈을 닦아 냈지만 내 마음도 모르고 또다시 흐려질 뿐이었다.


아아. 그래. 뭔가 고장이 난 거다.

고장 난 눈에, 고장 난 마음에, 고장 난 육체에, 고장 난 관계.

나에게는 어느 것 하나 고장 나지 않은 게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똑바로 되어 있던 게 없었다.

이 몸도, 이 기억도, 첫걸음부터 모조리 똑바로 되어 있지 않았다. 망가져 있었다. 고장 나 있었다.

그걸 나만 몰랐던 거다.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오멜이 나를 덥썩 안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얼굴을 틀어막으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올리비아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도, 괜찮냐는 물음에도, 나는 어느 것 하나 답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내 얼굴을 오멜에게 파묻은 채로 한참을 울었다.

정말로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멜이 꼴사납게 소리내어 우는 내 목소리를 막아 주었다는 것이었다.


-


우리가 올리비아와 싸운 곳은 서남쪽에 위치한 기사단 주둔지로부터 조금 벗어난 곳이었다. 그리고 방향도 모른 채 무적정 도망쳐서 도착한 이곳은 게이트포트의 남문 근처였다.

젠탈리온은 역사적으로 엘 메이아를 수탈했고, 국경 바로 앞에 위치한 게이트포트는 항상 그것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 탓에 게이트포트의 서쪽과 남쪽 구획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주둔지 근처의 황량했던 풍경과는 다르게 남문 근처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만 그 사람들과 그 풍경은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다. 남문에는 형성되어 있던 것은 일종의 빈민가였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게이트포트라는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인기가 없는 남쪽 구획으로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곳에는 얼기설기 지어 올린 건물들과 정돈되지 않고 지저분한 거리, 그리고 불편한 시선으로 외부인인 우리를 노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다지 숙박 시설이 있을 것 같지는 않네···”


너무 울어서 기운이 다 빠진 나를 부축하며 오멜은 바쁘게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오멜의 말에 나도 동감했다. 이런 곳에 오는 손님이 있을 리가 없으니 숙박 시설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게이트포트 중심부나 동쪽 구획으로 향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 둘은 너무 지친 상태였다. 내상을 입은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오멜도 내색은 안 했지만 그야말로 마나를 바닥까지 끌어서 쓴 터라 지쳐있을 것이 분명했다.


“됐어 오멜··· 오늘은 적당히 이곳에서 노숙하고 내일 올라가자.”

“노숙을 하기에도 말이지···”


우리는 결국 숙소를 찾는 것은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적당한 공터로 향했다. 작은 공원같은 곳이었는데, 노숙을 한다면 그곳에 있는 폐건물 근처가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폐건물은 지붕도 반쯤 없어진대다 벽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하루 밤 몸을 누이기에는 탁 트인 곳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었다. 이 상황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멜.”

“...응.”

“나 정말로··· 루비가 아닌 걸까. 올리비아의 말대로 루비의 기억을 훔쳤을 뿐인 가짜인 걸까. 나는 그러면 뭐인 걸까.”


그야말로 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내 마음속을 파고드는 두려움과 공포는 조금 가셨다. 하지만 공포가 가셨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무엇 하나 바뀐 것이 없었다.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과연 나는 누구냐는 것이었다. 올리비아의 말대로 그녀의 언니인 루비는 내가 직접 보고 만지기도 했던 그 사체를 남기고 완전히 죽은 것이고, 나는 루비의 기억 조각에 기생하는 플로리스 블랙이라는 걸까. 스스로에게 루비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올리비아도 어느 것 하나 확신하지는 못했어. 나는 그녀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내가 루비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잖아. 나는 여태까지 그 마법석으로 회복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회복이 아니었어. 내 육체는 루비의 육체가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올리비아에게 말했던 것처럼 치명상을 입은 네가 최후의 순간에 굳이 동굴 아래로까지 가서 그 마법석을 사용했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어. 자신을 잃게 되는데다가 갑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플로리스를 살린다는 건 말이 안 돼.”


오멜의 말도 일리는 있다.

올리비아는 자신도 그 마법석을 끝까지 해석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저 그 마법석에 플로리스의 영생 또는 부활과 관련된 마법이 새겨져 있을 거라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마지막 순간에 그 마법석을 스스로에게 사용한 것이었을까? 그 마법석은··· 도대체 뭐였길래?


“그러네. 결국 그 마법석이 무엇인지가 중요할 것 같은데···”


오멜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만약 그 마법석이 올리비아가 말한 대로 플로리스의 부활과 관련된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올리비아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만약 올리비아의 추측이 맞다면?”


올리비아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즉 나는 진짜 루비 케라링그리드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것을 증명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올리비아는 자신의 친언니인 나를 적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만약에 올리비아의 말대로 그녀의 언니인 루비는 그날 죽었고 지금의 나는 루비가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루비.”


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오멜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왔다.

루비. 오멜은 나를 루비라고 불렀다. 항상 듣던 이름이었지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그 소리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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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3) 24.07.25 7 0 11쪽
57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2) 24.07.22 7 0 12쪽
»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 24.07.18 8 0 11쪽
55 #10. 진실 (11) 24.07.15 9 0 11쪽
54 #10. 진실 (10) 24.07.11 7 0 11쪽
53 #10. 진실 (9) 24.07.08 8 0 12쪽
52 #10. 진실 (8) 24.07.04 7 0 11쪽
51 #10. 진실 (7) 24.07.01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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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10. 진실 (5) 24.06.24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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