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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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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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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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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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진실 (3)

DUMMY

“아빠도 많이 고민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오해 받잖아요. 자신의 친딸에게 원로를 물려주는 상황은 저라도 오해할 거예요.”

“오해 받았구나.”

“...네. 하지만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부족 사람들도 나름 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원로라고 해도 그다지 왕국의 왕처럼 엄청난 부가 따라온다거나 하는 직책은 아니라서요. 부족을 지키려는 강한 책임감이나, 희생의 자리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풀지 않으면 결코 허락할 수 없을 거예요. 저와 아빠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어요. 나름대로 증명도 했구요. 하지만··· 쉽지 않았어요.”


펠리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쉽지 않았다’ 라는 한 마디에 너무나 많은 일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냥 다 포기하려고 생각했어요. 그냥 부족의 다른 누군가에게 원로를 넘겨 주는 것이 더 정치적으로 깔끔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저에게는 이렇게까지 싸우면서 원로를 반드시 해야겠다는 독한 마음도 없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빠는 반드시 제가 끝까지 싸우면서 원로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자신의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부족을 위해서였어요. 왜냐하면 아네즈도 꽤 위태로운 상황이거든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

“엘 메이아가 젠탈리온과 전쟁 중에 있는 것처럼 아네즈도 주변 나라와 꾸준히 갈등이 있거든요. 대등하게 싸우는 전쟁은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가 방어하기에 급급한 상황이구요.”


펠리스는 계속 말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아네즈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동물계는 육체적인 능력에 대한 재능을 가진 대신 마법에 대한 재능은 없어요. 원래는 이건 꽤 균형을 이루고 있었단 말이죠. 주변 나라의 마법사들과 아네즈의 전사들··· 마법은 쓰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육체 능력으로 싸울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며 육체 능력은 아무리 정령의 축복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계를 마주했지만, 마법은 그러지 않았어요. 끝을 모르고 점점 더 강해졌죠. 예전에는 9레벨 마법사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9레벨은 꽤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니까요. 심지어 10년 전쯤, 저희와 꾸준히 마찰이 있었던 이웃 나라에서 10레벨의 마법사가 등장하면서부터 상황은 더욱 나빠졌어요.”


아크라고도 불리는 10레벨의 마법사. 내 옆에 있는 오멜이 그 아크라서 꽤나 익숙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10레벨의 마법사는 인간 사이에서는 굉장히 드물다.

주변국을 전투력으로 압도하고 있던 젠탈리온조차 단 세 명의 아크가 있을 뿐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전쟁에서 아크 하나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아빠는 더더욱 물러서지 못했어요. 역사적인 위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부족을 위해서라도 가장 강한 제가 원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오해에도, 정치적으로 불리함에도 끝까지 저를 차기 원로로 추대하려 하셨어요.”

“...좋은 아버지시네.”

“네에. 정말로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니까요.”


이 말을 하며 미소 짓는 펠리스에게서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어째서 가출이야? 아버지랑 싸운 것도 아니잖아?”

“아빠랑 싸우지 않았어요. 저희 부족 사람들과 싸웠거든요.”

“스케일이 크구나···”

“치고받고 싸운 것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제가 강하다는 것을, 원로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몇 번이나 증명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거든요. 끝까지 저에게는 현 원로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어요. 제가 무엇을 보여주더라도 ‘지금 원로의 딸이니까’ 한 마디로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어요. 너무 답답하고, 슬프고, 화가 나서··· 그래서 말싸움을 하다가 다른 곳에서 인정을 받으라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펠리스는 덧붙였다.


“동물계는 정령, 그리고 자연과 밀접한 종족이다 보니까 그 자연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고 모험하는 모험가에게도 아주 호의적이에요. 그래서 모험가에 대해서는 아네즈에도 꽤 알려져 있거든요.”

“나도 아네즈 근처에 꽤나 큰 모험가 협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폰더레이랑 비슷한 느낌으로 모험가들의 성지라고나 할까···”

“오멜 말대로예요. 그래서 제 모험가 등록도 아네즈에서 했거든요.”


그 말을 하며 펠리스는 자신의 모험가 등록증을 식탁 위로 펼쳐 보였다. 빼곡하게 기재된 완수 의뢰와 더불어 여태까지 모험가로서 해왔던 그녀의 노력이 보이는 등록증이었다.

그 등록증의 상단에 있는 등록 정보에는 펠리스의 말대로 ‘아네즈 연합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모험가로서 제가 명성을 떨치고 오면 인정해주겠냐는 이야기가 됐거든요.”

“그래서 모든 의뢰의 완수를···”

“네에. 완벽한 모험가라는 건 정말로 달성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거의 집착하게 됐거든요.”


냐하하, 하고 펠리스는 웃었다.


“하지만 퀸은? 그건 어째서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

“어디까지나 그것도 제 욕심이었어요. 모든 의뢰를 완수한다는 것도 결국 제 부족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니까요. 저 혼자서 의뢰를 해서는 절대로 없을 기회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몬스터 토벌, 그것도 퀸 토벌이라는 위험한 의뢰를 완수할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지도 작성의 의뢰 자체는 이미 완수했으니까 실패해도 기록에 남는 것도 아니고요. 완전히 제 개인적인 목적 때문에 루비와 오멜을 이용했던 거였어요. 거짓말까지 한 채로요.”


-미안해요.


펠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럴 필요 없어. 나도 멋대로 고집 부려서 루비랑 펠리스를 말려들게 했으니까.”

“그 에본윙의 남자 말이죠? 아니에요. 말려들게 했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오멜의 표정을 봤으니까요. 그런 표정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걸 알고 함께한 거니까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네.”

“...아.”


펠리스는 무어라 말하려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오멜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펠리스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이 테이블 위로 들려왔다.


자신이 거짓말을 했고 우리를 이용한 거라고 했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이용당해도 좋다. 그건 오멜도 똑같을 거다.

정작 펠리스 자신이야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오멜에게 동참해 주었다. 너무나 착한 애다.


“냐하하··· 미안해요. 조금 재채기가 나와서.”

“눈이 빨간걸.”

“원래 이래요. 동물계니까요.”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깨고 펠리스가 얼굴을 들었다. 눈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재채기가 나왔다는 말도, 동물계라서 눈이 빨갛다는 말도 거짓말이 분명했다.


“아무튼, 들어줘서 고마워요. 조금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우리야말로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

“그치만 우울한 이야기니까요. 펠리스 셀롯은 그저 발랄하고 귀여운 여자아이로 남고 싶거든요.”

“이미 충분해.”


기특한 마음에 펠리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니 쑥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당장 내일 게이트포트로 가시는 거예요?”

“응··· 아마. 오멜도 내일 가는 걸로 괜찮아?”

“응. 내일 출발하자.”


내 상처는 비트리스 할머니에게 더 치료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 아물었다. 거기에 펠리스와 경비 대장의 추천으로 오멜과 나 둘 다 모험가 등록증도 받을 수 있었다. 이로써 어느 정도의 신분 증명도 가능하게 됐다.

혹시나 수석 기사인 올리비아가 우리가 찾는 그 올리비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선은 만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게일포트에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아쉽네요. 정말요.”


펠리스는 스스로에게 되뇌이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싸웠던 경험은 정말로 놀랄 정도로 깊은 유대감을 만들어 준다. 서로가 서로의 사각지대를 막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서로가 호흡을 맞춰 하나의 적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파티를 이뤘다는 것은 신뢰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퀸과의 싸움이나 에본윙 남자와의 싸움과 같이 만만치 않은 전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나 역시도 펠리스와 같이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이미 밤은 깊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너무나 맑아서, 빼곡히 채운 별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렇게 적당한 잡담을 하며 길을 걷다가, 우리는 곧 각자의 숙소로 향하는 갈림길 앞에 도착했다. 이것이 펠리스에게 작별 인사를 할 타이밍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펠리스, 괜찮다면··· 게이트포트까지라도 같이 가지 않을래?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사양할게요.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로 기쁘지만요! 저는 게일포트에 조금 더 있다가 동쪽 내륙으로 들어갈 생각이에요. 그렇게 남쪽 해안으로 가서 바닷가도 좀 즐기려구요. 물론 의뢰도 꾸준히 하면서요. 그렇게 대륙을 한 바퀴 크게 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8년 남은 거지?”

“네에. 맞아요.”

“알겠어.”


나도 알고 있다. 게이트포트까지 같이 간다고 한들, 내가 드래곤이고, 올리비아라는 또 다른 드래곤을 찾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도 없다. 거기에 젠탈리온의 드래곤 나이트를 부순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묘한 외로움이었다. 무심코 펠리스에게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해버렸다.

어쩌면 나는 애타게 찾고 있는 내 자매의 모습을 펠리스에게 겹쳐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루비. 오멜.”


갈림길 앞에서 펠리스는 천천히 나와 오멜의 눈을 마주쳤다.


“정말 고마웠어요. 같이 파티를 짜준 것이나, 제 고집에 어울려 준 것이나, 제 이야기를 들어 준 것이나··· 전부요.”

“우리도 고마웠어. 네가 목표한 대로 모든 의뢰를 완수하는 모험가가 되기를 기도할게.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도 소식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냐하하! 좋아요. 곧 소식 전해 드릴게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와락.

펠리스는 나에게 안겨 들었다. 고개를 깊게 파묻고, 냄새라도 맡는 듯 한참 동안 얼굴을 떼지 못했다. 나도 아무말 하지 않고 펠리스를 안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올리비아를 떠올렸다.

여전히 기억은 찾지 못했지만, 나도 내 자매인 올리비아에게 이렇게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걸까. 나도 올리비아를 꼭 안아주거나, 쓰다듬어 주거나 했던 걸까.


“아, 오멜은 안는 건 안 돼요. 루비가 화낼 테니까요.”

“자, 잠깐. 그렇지는···”


펠리스는 오멜에게 손을 내밀었고, 오멜은 그걸 잡고 가벼운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의 오해에 내가 무어라 해명하는 것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안녕히!”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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