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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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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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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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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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1)

DUMMY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 곳곳에는 탐구자들이 설치해 놓은 마나 전도체들이 그물처럼 깔려 있네. 그 전도체를 통해서 나는 이곳저곳을 이동할 수가 있고. 따라서 자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블러드바인이 있는 위치 정도는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확인할 수 있다만. 물론 그 마물이 깔려 있는 전도체를 깨부수지만 않는다면 말일세.”

“그런 말은 빨리 하란 말이야!”

“빨리 묻지 그랬나.”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 소리치는 나에게 렘난티스는 그저 뻔뻔스럽게 답할 뿐이었다.

아니, 아니지. 루비, 화내지 말자.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빛 덩어리에게 화를 낸다면 내 쪽이 손해니까. 이건 골렘이다··· 골렘일 뿐이다··· 진정하자. 크게 숨을 들이쉬고···


“...좋아. 알겠어. 미안해. 렘난티스, 부탁할게. 블러드바인의 위치를 확인해줘.”

“알겠네.”


책의 형상을 한 빛 덩어리가 또다시 노이즈가 끼는 것처럼 흐려졌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완전히 그 모습이 사라졌다. 렘난티스의 목소리도, 빛도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한동안 어두컴컴하고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공간인 심층에서 우리 둘은 덩그러니 서있었다.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렘난티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본능적인 공포감이 서로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조금 경박할 정도로 재잘거리는 렘난티스가 꽤나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오면 조금 부드럽게 말을 해줘도 좋을 것 같다.


“...렘난티스?”


십 분쯤 지났을까, 조금 전 사라졌던 그곳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지직거리며 허공으로 모여들었다.


“어, 어, 어이쿠··· 제대로 온 건가?”

“제대로 왔어. 어떻게 됐어?”

“것참. 워낙 시간이 지나다 보니 미묘하게 지형이 바뀐 부분이 있어서 상당히 헷갈리는구만. 그 마물의 위치는 알아내었네.”


렘난티스가 우리에게 무사히 돌아온 것과 블러드바인의 위치를 알아내었다는 소식 두 가지로 우리는 그제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곳으로 가서 녀석의 배를 가르고 카일을 구하는 것뿐이다.


“고마워. 고생했어. 바로 안내해줘.”

“바로 갈 셈인가?”

“응. 시간이 없으니까.”

“괜찮겠나? 자네는 이제 그 무기도 없지 않은가? 회색 머리의 남자도 마법사인 것 같으니까 웬만해서는 그 마물에게 타격을 입히기도 힘들 거고.”

“무슨 뜻이야? 마법으로는 블러드바인에게 타격을 입히기 힘들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나를 대신해서 그 말을 들은 오멜이 렘난티스에게 물었다.


“블러드바인 비늘의 마법 저항력이 굉장히 높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그 정도야?”

“자네의 말대로 그 마물은 마법 저항력이 높기로 유명하지. 모든 마법에 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비늘이 마나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어중간한 마법으로는 쉽사리 타격을 주기는 힘들 걸세. 심지어 비늘이 머금은 마나 덕분에 마법 갑옷과도 같은 강도가 되어서 무기로 피해를 주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고.”

“하지만 분명히 난 녀석을 베어내었어.”


렘난티스의 말은 마치 웬만한 물리 공격으로는 그 비늘을 뚫을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단 한 번이기는 했지만 분명 작은 단검으로도 나는 녀석의 몸통을 베어내었다. 이후의 공격을 위해 한 번의 타격을 미끼로 내주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니까 내가 물었잖는가.”


렘난티스는 말했다.


“그 무기도 없지 않냐고. 소년이 그걸 든 채로 잡혀갔지?”

“...마법 무기가 필요하다는 말이구나.”

“녀석의 비늘은 마법 갑옷과도 같은 원리로 강화되어 있어서 웬만한 날붙이로는 뚫을 수 없어. 다만 그 자체에 마나를 머금고 있는 마법 무기일 경우에는 마법적 강화를 뚫어낼 수 있지. 마법 장구의 전문가인 위대하신 카엘룸 녹스님의 저서를 참조하였네··· 참고로 ‘마법 장구의 전문가인 위대하신’ 이라는 건 카엘룸 녹스가 스스로를 자칭한 말일세.”


뒤에 덧붙인 쓸데없는 사족은 차치하고, 렘난티스의 말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요컨대 마법으로 강화된 갑옷은 물리 공격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다. 이 경우 그 갑옷을 뚫어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마법 무기이다.


내가 단검으로 쓰던 마법석 조각은 이전 툼스크림 토벌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원본에서 조각난 그것을 또 다른 마법석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따라서 블러드바인은 나에게 한 번의 타격을 허용해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자신을 뚫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 단검이 강한 마나를 품고 있는 마법석 조각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곤란해졌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다른 마법 무기가 없다. 마법 무기는커녕 평범한 검 한 자루도 없다. 올리비이와의 싸움에서 박살 난 검이 단검을 빼고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검이었다.


“크흠, 크흐흠.”


예상치 못한 사태에 오멜과 내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동안 렘난티스가 자꾸만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 사나우니 조용히 하라고 한 마디 쏘아붙이려 했으나 조금 전에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것이 떠올라 조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입을 열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그건 질문인가?”

“...그래. 질문할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그 질문에는 내가 탐구자의 유산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싶다고 답하겠네.”

“...무슨 말이야?”


이 골렘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나와 렘난티스와의 대화를 듣던 오멜은 무언가 눈치를 챈 듯 물었다.


“렘난티스, 이곳에 우리가 쓸 수 있는 무기가 있어? 특별히 마법 무기말이야.”

“좋은 질문이네. 그렇다고 답하겠네.”


렘난티스는 덧붙였다.


“탐구자들은 평생을 마법 연구에 매달리는 집단이었지. 그리고 마법 연구라는 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들 중에 마법 무기나 장비를 만드는 연구자가 있었던 것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지.”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줘.”


탐구자라는 집단이 연구했던 분야가 상당히 다양했다는 것은 렘난티스가 참조한다던 서적의 종류만 보아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중에 마법 무기를 연구하는 탐구자들도 있었을 거고, 동시에 그들이 마법 무기를 남겨 놓았을 수도 있었을 거다. 마치 기록고에 서적을 남겨 두었듯이.


“안내는 해 줄 수 있네. 다만 한 가지.”


렘난티스는 입을 열었다.


“내가 만들어진 목적이자 역할은 인류의 번성과 마법의 진보를 위한 탐구자들이 연구한 유산의 보존과 전달일세. 다만 이건 아무에게나 전달되어서는 안 되지. 탐구자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남겨 두었어. 따라서 자네들이 그것에 합당하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게.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탐구자들의 유산을 자네들에게 넘겨주거나 그것을 찾는 것을 도울 수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어.”

“더 나은 미래···”


나는 렘난티스가 꺼낸 말을 되뇌었다.


그다지 납득이 안 되는 말은 아니었다.

이미 심층에 살던 탐구자들은 이곳을 떠났다. 아니, 이렇게까지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저 떠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마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 탐구자들은 결국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들이 죽고 세월이 흐르며 그들이 남긴 유산은 이 심층에 고스란히 잠들게 되었다. 그들이 창조한 마법 지능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자신들이 평생을 걸쳐 연구한 결과를 전하라는 유언만을 남겨둔 채.

그 역할을 말할 때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나로서는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나는 심층에 들어오며 탐구자들이 남긴 것들을 조금씩 발견하고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렘난티스가 말하는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꽤나 진지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건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몰두하는 렘난티스 때문이기도 했고, 그 뒤에 있는 탐구자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렘난티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인류의 번성이나 마법의 진보 같은 것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 그것에 내가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탐구자들이 남긴 모든 것을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겠어. 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그건 자격을 갖춘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야.”


나는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다. 그래서 인류의 번성과도 관련이 없다. 마법의 진보도 그다지 필요성이나 욕심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사람의 미래를 구하는 것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탐구자들도 결국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길 바랐던 마음이었던 거잖아? 카일을 구하려는 내 마음과 탐구자들의 기대가 전혀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

“결국 그건 네 개인적인 기대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가?”

“맞아. 부정하지 않을게.”


렘난티스의 물음에 나는 시원스럽게 인정했다.

그래.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인류의 번성이니 마법의 진보니, 그런 것과는 눈곱만큼도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진실이다. 따라서 나는 조금도 눈을 피하지 않고 렘난티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 좋지. 알겠네. 안내하지.”

“...납득한 거야?”

“더 나은 미래라는 말은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은 탐구자들도 인지하고 있었어. 아니, 오히려 탐구자들은 객관적인 더 나은 미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물음에 대해 회의적인 쪽에 가까웠는데···”

“너무 자세한 설명은 적당히 줄여줘.”

“...알겠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믿고 있다면 좋다는 거지. 자네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어.”


따라오게, 라며 렘난티스는 그 이상 말을 더하지 않고 앞서서 나아갔다.


“그나저나 자네들 직전에 나를 깨운 여자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몇 년 전인지, 몇십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말?”

“진심 섞인 믿음 말일세. 그 여자도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은 모든 것을 볼 자격은 없다고 했었어.”


그것참 우연이네요.

모르긴 몰라도 그 여자도 나와 비슷하게 착하고 겸손하며 현명한 여자였을 것이 분명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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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12. 마나 폭주 (2) 24.08.29 6 0 11쪽
67 #12. 마나 폭주 (1) 24.08.26 5 0 11쪽
»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1) 24.08.22 8 0 11쪽
65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0) 24.08.19 7 0 11쪽
64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9) 24.08.15 7 0 11쪽
63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8) 24.08.12 8 0 11쪽
62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7) 24.08.08 7 0 11쪽
61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6) 24.08.05 5 0 12쪽
60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5) 24.08.01 6 0 11쪽
59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4) 24.07.29 8 0 11쪽
58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3) 24.07.25 7 0 11쪽
57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2) 24.07.22 7 0 12쪽
56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 24.07.18 7 0 11쪽
55 #10. 진실 (11) 24.07.15 8 0 11쪽
54 #10. 진실 (10) 24.07.11 7 0 11쪽
53 #10. 진실 (9) 24.07.08 8 0 12쪽
52 #10. 진실 (8) 24.07.04 6 0 11쪽
51 #10. 진실 (7) 24.07.01 8 0 11쪽
50 #10. 진실 (6) 24.06.27 9 0 11쪽
49 #10. 진실 (5) 24.06.24 6 0 11쪽
48 #10. 진실 (4) 24.06.20 8 0 11쪽
47 #10. 진실 (3) 24.06.17 8 0 11쪽
46 #10. 진실 (2) 24.06.13 7 0 11쪽
45 #10. 진실 (1) 24.06.10 8 0 11쪽
44 #09. 흠이 없는 검정 (6) 24.06.06 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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