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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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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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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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진실 (10)

DUMMY

“조심해!”

“...어···?”


그때, 무언가가 일어났다.

오멜이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나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고, 그 앞으로 오멜의 배리어가 펼쳐졌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가 배리어에 부딪치며 울리는 익숙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것은 오멜과 함께 여러 번 전투를 하며 들어왔던 익숙한 소리였다.


-콰과광!


“크···앗···!”


무슨 일이지.

여전히 생각이 회전하지 않는다.

마나가 주변을 휩쓸어 내고, 오멜의 배리어가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받아치고 있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누가? 왜 우리에게?


“...올리비아··· 어째서.”


마법의 폭풍이 간신히 걷히고, 그 사이에 서있는 올리비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하나로 묶어 올린 그녀의 긴 녹색 머리카락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양옆으로는 어느새 드래곤의 커다란 뿔이 돋아 있었다. 그녀의 평범했던 일상복의 등 뒤로도 당당하게 펼쳐진 날개가 보였다. 드래곤의 날개였다.


“...아아.”


눈빛.

우리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몇 마디 말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었다.


-살의. 또는 분노. 또는 원망.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차마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현실과 생각 사이의 괴리감에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왜 그래···? 언니잖아. 나, 루비야.”

“입 다물어!”


그녀의 목소리는 내 피를 얼어붙게 할 정도로 너무나 차가웠다.


“언니? 네가? 루비 언니는 죽었어. 엄마와 함께 그날 죽었다고.”

“아냐, 올리비아··· 분명히 난 치명상을 입기는 했지만 동굴에서 사용한 그 마법석 때문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어서···”

“그래서? 살아났다고? 기억을 잃고?”

“응, 기억은 잃었지만 기억을 하나씩 찾고 있고··· 나, 그것도 기억하고 있어. 그날에 올리비아 너는 이미 마을로 내려갔고 나도 내려가야 한다고 엄마가 그래서···”

“넌 누구야?”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필사적으로 입을 여는 나에게 올리비아는 내가 누구냐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맞아. 그게 루비 언니의 기억인 것도 부정하지 않아.”

“그렇다면···”

“하지만 넌 누구야? 네가 루비 언니라고? 무슨 근거로?”

“그건···”

“그 모습은, 언니의 모습이 아니야. 언니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누군지도 모를 그런 모습을 하고, 루비 언니의 이름을 가져다가 쓰고 있는 거야? 거짓 기억을 가지고?”

“...뭐···?”


드래곤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마법으로 모습을 바꾸는 의태와는 다르다. 그 드래곤이라는 존재 자체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이다. 각자 드래곤에게는 각자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모습은 루비 케라링그리드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이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루비 언니는 죽었어. 죽었다고!”

“그러면··· 그러면 나는 누구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올리비아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 마법석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내 말을 들은 올리비아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그리고 말이지, 네가 정말로 루비 언니라면, 애초에 엄마의 원수와 그렇게 시시덕거리고 있지도 않았겠지. 아무리 바보 같은 언니라고 해도 말이야.”

“루비! 온다!”


오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올리비아의 주변으로 마나가 휘몰아쳤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었다. 아무런 마법 없이 마나의 움직임만으로도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압도된다. 절대적 강자를 마주하는, 이길 수 없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나를 지배한다.


올리비아의 입술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마나가 공간으로 순식간에 정렬되나 싶더니 거대한 불덩이로 바뀌며 우리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루비, 내 마나로는 안 돼···!”


오멜이 재빠르게 배리어를 펼쳤다. 하지만 오멜 혼자서는 자칫하면 마나 브레이크로 내상을 입을 수도 있다. 오멜의 배리어 위에 나도 마법을 덧대며 충격에 대비했다.


-쿠구구궁···


불덩이가 배리어에 부딪힐 때마다, 그 폭발이 배리어를 휘감을 때마다 금방이라도 배리어가 흐뜨러질 것 같았다.

그렇게 간신히 마법을 버텨 내던 와중에, 올리비아가 폭발을 뚫고 순식간에 배리어 앞으로 바짝 붙었다.


“오멜! 배리어를 거둬!”


올리비아는 창을 다룬다. 그리고 창은 배리어를 파훼하는 데에는 최적의 무기이다.

오멜이 배리어를 풀자마자 나는 검집에서 칼을 뽑아내고 올리비아의 창을 막아섰다. 날카로운 금속의 소리가 귀를 찢기라도 할 것처럼 고막을 때렸다. 고작 한 번 막아 내었을 뿐인데 몸의 균형이 바로 무너졌다.

강하다. 올리비아는 정말로 강하다. 무기를 맞대고 살의 가득한 그 눈빛을 보는 지금, 뼈가 시릴 정도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온전한 드래곤의 힘이라는 건가.


하지만 빠져나갈 수는 있었다.

아무리 이곳이 주둔지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로 마법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 리가 없다. 거기에 이렇게 폭발적인 마나라면 더더욱 쉽게 발각될 것이다.

올리비아는 드래곤인 것을 숨기고 있다. 엘 메이아의 왕실 기사들이 이곳으로 합류하기만 한다면, 도망칠 틈을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때까지만 버틴다면···


“시간을 벌 속셈이구나.”


내 움직임에서 생각을 읽었는지 올리비아는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소용없어. 결계를 펼쳤기 때문에 이곳에서 어떤 소란을 피우더라도 밖에서 눈치챌 일은 없어.”

“...그런···”

“죽기 전에 여기를 나갈 생각 따위는 하지마!”


-쿠웅!


분명히 무기를 맞대고 있었을 텐데, 올리비아는 그 사이에 마법을 전개했다. 내 배 아래에서 마법이 폭발하며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법은 정밀한 계산을 요한다. 그래서 집중할 수 없을 때에는 사용할 수 없다. 한 번에 하나의 마법을 전개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애초부터 적용되지 않는 전제였다.


“으긋···!”

“엘데라크!”


나가떨어진 나를 향해 곧장 올리비아의 공격이 쏟아지기 직전에 오멜의 마법이 전개됐다. 바닥에서 대지의 벽이 솟아올라 올리비아의 시야를 가렸다. 잠깐의 틈을 벌 수 있었다.


“루비! 괜찮아?!”

“콜록··· 하아··· 아직은··· 도망쳐야 해. 더 이상 상대하다가는 정말로 우리 둘 다 죽을 거야.”

“결계를 풀어낼게.”

“얼마나 걸려?”

“모르겠어···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분리하는 이 정도로 복잡한 결계를 이렇게 대규모로 전개하다니··· 믿을 수 없어. 최선을 다해볼게. 시간을 벌어 줘.”

“어떻게든 부탁해. 나로서는 이기기는커녕 버틸 수도 없을 거야. 올리비아는 진심이야.”


그렇게 잠깐 숨을 돌리려는 찰나, 벽 너머에서 마나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빠르게 오멜을 그 자리에서 밀치고 나 역시 옆으로 몸을 날려 땅 위를 굴렀다.

그리고 우리가 직전에 있었던 곳을 향해 새하얀 광선이 벽을 뚫어내며 날아들었다. 폭발과 부서진 바위 파편이 몸 위를 쏜살같이 훑고 지나간다.


“...으윽···!”


그리고 폭발 사이로 또다시 올리비아의 창끝이 휘둘러졌다. 칼을 들어 올려 첫 번째 창날은 간신히 막아 낼 수 있었지만, 그 뒤로 또다시 휘둘러진 창에 내가 들고 있던 검신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부서진 쇳조각이 팔을 스쳤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제법 많은 피가 흩뿌려졌다.


“플레어!”


-콰쾅!


던져진 화염구는 올리비아를 맞히며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폭발의 화염 사이를 뚫고 달려드는 올리비아에게는 타격은커녕 작은 그슬림 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반격은커녕 아슬아슬하게 창끝을 피하며 몸을 움직이기에 급급했다. 품 안에 지니고 있던 마법석 단검이 떠올랐으나 짧은 단검으로 창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울 뿐이었다.

한 번, 두 번. 매섭게 휘두르는 그녀의 창을 몇 번은 피했으나, 올리비아는 내 순간적인 움직임의 작은 빈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차마 피할 수 없는 사각에서 날아오는 창날에 나는 급하게 배리어를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크악···”


배리어는 창날을 막아 내었다. 그러나 한 번의 타격조차 버티지 못한 채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이 부서졌다. 배리어가 흡수하지 못한 피해는 고스란히 전개된 마나를 따라 나에게 파고들었다.

마나 브레이크. 마나적 내상이다. 본능적으로 이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젠···장.”


급하게 마법을 바닥에 꽂아 넣어 사야를 가린 후 뒤로 멀리 뛰어올라 거리를 벌렸다.

울컥, 하고 목 아래에서 풍선같은 것이 부풀어 올랐다. 켁켁거리며 몇 번 기침을 하니 비릿한 쇠맛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소매로 입을 닦아 내자 피가 잔뜩 묻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올리비아. 정말로··· 정말로 나는 네 언니가 아니라는 거야?”


후욱, 하고 마법으로 생긴 바람이 흙먼지를 밀어내었다.

그 뒤에서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올리비아가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얼굴색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혐오감과 살의가 가득한 눈빛도 여전했다.


“루비 언니는 죽었어. 그 사체는 엄마의 사체와 함께 젠탈리온 왕성에서 회수했으니 어딘가로 이동되어 보관되어져 있겠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뭐야? 기사단에게 치명상을 입고 동굴로 내려가서··· 마법석을 쓴 나는 뭐라는 거야?”

“기억을 잃었다고 했지?


올리비아는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억나지 않겠지만. 내가 그 마법석에 대해 위험하다고 경고했던 것도 기억나지 않을 테고.”

“...그 마법석에 대해 알고 있어?”

“내가 찾은 마법석이니까. 바보 같은 언니가 고집을 부려서 차마 부수지는 못했지만 나는 줄곧 그걸 없애버리고 싶었어. 발견한 이후로 줄곧 말이야.”


나는 내 품속에 있는 그 단검을- 마법석 조각을 무심코 확인했다.

내 기억에서 나는 치명상을 입고 동굴로 내려가 그 마법석을 스스로에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나는 기억은 잃었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당장 먼저 해야할 것들이 많아 이 마법석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머리 한 켠에서는 줄곧 신경 쓰였다. 이 마법석에는 도대체 어떤 마법이 새겨져 있었으며, 에본 윙의 제단이 있던 그 마법석 광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다.


“그 마법석. 플로리스가 남긴 마법석이었지.”


플로리스.

나는 올리비아의 입에서 엉뚱하게 튀어나온 그 이름에 내 귀를 의심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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