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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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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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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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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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나 폭주 (5)

DUMMY

“이봐! 말조심해!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하더라도 레티시아는 우리 탐구자를 이끌고 있어! 벨모어님이 돌아가시며 남기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그래. 벨모어님 말이지. 말 잘했어. 벨모어님이라면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벨모어님이 여전히 우리 탐구자를 이끌고 있더라도 이렇게 지하에서 살다가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로 죽는 것이 탐구자의 운명이라고 하셨을까?”

“이곳을 건설하자는 것은 벨모어님의 생각이셨어. 모두가 동의한 것이고.”

“하지만 영원히 이곳에서 살자고 하신 적도 없으셨지. 마치 묘지에 묻힌 산송장마냥 지하에서 살아가다 죽기를 원하셨던 것도 아니셨을 거야.”

“라이셀, 이 자식이···!”

“그만, 그만 하세요.”


두 남자의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지기 직전, 레티시아가 입을 열었다.


“라이셀의 말도 틀리지는 않아요. 벨모어님과 비교하면 저는 여전히 부족할 따름입니다.”

“레티시아···”

“라이셀, 당신의 의견을 말해주세요. 듣고 대화로 풀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화가 난 것은 맞지만 이 이야기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우발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내 뒤의 모두와 오랫동안 이야기했고 이들은 이미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로 했어. 그래서 나는 대표자로서 너에게 말하려는 거다.”


라이셀의 말대로 그의 뒤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몇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라이셀! 네가 지금 하는 행동은 반역이야!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던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이셀, 부디 말해주시길.”


라이셀을 향해 발끈하는 남자를 레티시아는 손을 뻗어 진정시키고 라이셀을 향해 부드러운 말투로 요청했다.

그 남자 못지 않게 라이셀 역시 꽤나 화가 났는지 붉게 상기된 얼굴을 진정시키듯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우리 탐구자는 이렇게 계속 이 지하에서 살 생각이냐?”

“이 마을 건설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어요. 그리고 진척도는 나쁘지 않아요. 완벽히 건설이 완료되려면 40년 정도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마을로도 서서히 모두의 생활은 안정되고 있어요. 저희는 일상을 되찾고 있어요.”

“40년 말이지.”


라이셀은 코웃음을 쳤다.


“40년이 지나면 젠탈리온에서 게이트포트로 피난을 온 세대는 대부분 다 죽어. 나도, 너도. 벨모어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말이야. 아무리 마법을 연구하더라도 세월의 흐름을 이겨 낼 수는 없어.”

“하지만 라이셀··· 이 마을은 저희 탐구자들의 연구의 결과물이에요. 모두가 몇 번이나 설계를 확인했지 않았나요. 이곳은 비록 땅 밑에 지어진 마을이지만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은 없을 거예요. 이 마을에는 온전한 빛도, 온전한 생명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라이셀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레티시아를 향해 소리쳤다.


“그렇게 이대로 평온하게 살아갈 셈이냐? 젠탈리온을 빠져나온 첫 번째 세대가 다 죽고 나면 과연 이 다음 세대에게는 젠탈리온에 복수할 마음이나 의지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애초에 너에게 그런 마음이 있기는 한 거냐? 그저 몇십 년에 걸쳐 이 마을을 완공하고 모두가 버림받아 쫓겨나서 사는 삶에 만족하려는 거냐?”

“......”

“잊혀진 이들이라고? 하! 그렇게 절망과 자괴감으로만 일평생을 살아가려는 거지. ‘우리’는 그러지 않겠다. 너희들과는 다른 길을 걷겠어.”

“...’우리’라고 한다면.”

“애초부터 시작이 잘못되었던 거야. 우리가 젠탈리온에게서 배신당한 후 의지해야 했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어. 바로 플로리스님이었다.”


플로리스님.

그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묘하게 이질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탐구자 중 누구도 플로리스를 그런 경칭으로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플로리스 블랙님을 가장 중심에 두고 그분의 이념을 좇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분을 모셨던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한다. 썩어빠진 젠탈리온에 대항하며, 마법의 극에 달한 생명체인 최상급 드래곤으로서 보았던 진정한 자유. 우리는 흠이 없는 검정을 섬기며 자유를 추구하는 자, 에본윙이다. 탐구자니, 잊혀진 이들이니, 앞으로 그런 것은 전부 잊으려 한다.”

“네 녀석 정말로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거냐? 플로리스 블랙? 네 녀석도 그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겁도 없이 ‘흠이 없는 검정(Flawless Black)’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도대체 죽어서 다미안의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러는 거냐?”

“아무렴 잘 알고 있고 말고. 플로리스님에게 ‘블랙’이라는 미들 네임을 처음으로 붙여 준 것은 다미안이었어. 그게 플로리스님의 독특한 마법진 색깔인 검은색에서 따온 것도 알고 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그 이름을 잘난 척 내세우려는 거냐? 다미안은 누구보다 뛰어난 탐구자이자 본받을 만한 탐구자였어. 그 탐구자의 이름을 배반하고 반역하려는 네가 그 이름을 가져간다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우리가 그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거다. 그건 이 지하에서 평생을 살아도, 다음 세대가 되어도 결코 이루지 못할 뜻이기 때문이지.”

“레티시아, 이 녀석들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탐구자의 규율을 위해서라도 결코 만만하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문제야.”

“우리를 이대로 안 두면 어떻게 할 셈이냐? 우리를 더 이상 탐구자의 이름으로 묶어 두려고 하지도 마라. 너와는 오랜 친구였지만 에본윙으로서 칭한 이상 공과 사는 분명히 할 작정이니까. 실력으로 붙어보기라도 할 거냐?”

“둘 다 그만두세요. 아이들이 보고 있어요.”


두 남자의 감정이 다시 격해지기 시작하자 레티시아는 다시 사이에서 중재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일의 당사자였다. 중재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라이셀. 당신의 행동이 탐구자의 규율에 어긋난다는 것은 저도 동감이에요. 하지만··· 이대로 부딪치는 것이 어느 쪽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확실하죠. 괜한 싸움으로 한 명이라도 잃는다면 저희에게는 큰 손실인 상황이니까요. 당신이 문제라고 여기는··· 그 평안한 삶을 위해서요.”

“우리 에본윙이 바라는 것은 명확해. 우리는 탐구자의 이름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영구적으로 나갈 작정이야. 그 부분은 양보할 수 없어. 끝까지 우리를 막겠다면···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우리는 싸울 거다.”

“...좋아요. 원하시는 분들과 함께 이곳에서 나가 주세요. 저희 탐구자는 당신들··· 에본윙을 막지 않겠습니다.”

“레티시아···”


레티시아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만 약속해 주세요. 이곳을 나가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행동할 것을··· 비록 탐구자의 이름은 내려 놓지만 당신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그 명령을요.”

“약속하지. 우리는 비록 다른 길로 나아가지만 핏줄로 이어진 명령은 결단코 어기지 않겠어.”


레티시아와 라이셀은 한동안 아무 말없이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라이셀은 서서히 레티시아로부터 등을 돌려 한 걸음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라이셀을 따라 그를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몇몇은 레티시아를 향해 짧은 목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셀을 따르는- 탐구자의 이름을 내려놓는 그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라이셀.”

“...왜?”

“어디로 갈 셈인가요? 젠탈리온으로 곧장 가기라도 할 건가요?”


떠나는 라이셀의 등을 향해 레티시아가 물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그는 답했다.


“우리는 드래고니아 산맥으로 이동할 거다.”

“...산길은 고되지 않겠어요?”

“어쩔 수 없지. 탐구자들은 이미 저주받은 핏줄이니 불운을 부른다느니 하며 이 하늘 아래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떳떳하게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산맥을 따라 드래고니아 산까지 향할 거야. 거기에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다.”

“그래서요? 그 다음은요?”

“우리는 말이지, 그 예언석이 조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플로리스가 그 예언석을 남겼다는 소문을 믿는 거군요.”

“벨모어님은 그게 젠탈리온 왕실이 조작한 것이라고 하셨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는 내 눈으로 플로리스님의 분노를 똑똑히 보았어. 그 분노는 고스란히 예언석에 적혀져 있어.”

“하지만, 그것을 플로리스가 남겼다고 한다면···”

“그래. 플로리스님은 이후의 누군가가 자신의 분노와 원한을 갚아 주길 원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신 게 되는 거지. 예언에 따르면 그건 또 다른 드래곤일 가능성이 가장 높고. 우리 에본윙은 다른 드래곤이 예언을 따라 플로리스님의 복수를 이루는 것을 도울 준비를 하겠다.”


라이셀은 말을 잠시 멈추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젠탈리온에 있을 때 마디나 할멈이 정령의 토벌법과 관련해서 왕실에 연구 자료를 보냈었다고 했었지?”

“마디나 할머니는 마법 기초 이론 연구에 한평생 몰두하셨으니까요. 당시에는 왕실에 여러 분야에 대한 탐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내었으니 마디나 할머니께서도 상당히 기여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이미 죽은 할멈을 탓하려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걸리는 게 없어서 말이야.”

“...무엇이 말이죠?”

“자그마치 13레벨의 최상급 드래곤인 플로리스님을 어떻게 초월자는커녕 변변찮은 아크도 없는 젠탈리온의 군대가 토벌할 수 있었던 걸까? 아무리 전국의 실력자들을 모아서 드래곤 나이트니 뭐니 하는 어줍잖은 기사단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마디나 할머니가 연구하셨던 것 중 하나는··· 정령 토벌을 위한 마나 폭주···”

“마나 폭주 이론은 정령 토벌을 위해서만 고안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마나 생명체인 정령과 드래곤은 마나를 다루는 방식이 꽤 닮았단 말이지. 그래서 신경이 쓰였어.”


라이셀의 말을 들은 레티시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왜 하시는 건가요?”

“한 가지 부탁이 있어. 탐구자를 배신하고 나가는 입장에서 거절해도 할 말은 없지만 만약 네게 조금이라도 젠탈리온을 향한 복수에 협력할 마음이 있다면··· 도와주었으면 한다.”

“무엇이죠?”

“탐구자의 기록 중 딱 하나를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해 줘.”


라이셀은 잠깐 말을 멈춘 후에 가지고 가고 싶다는 그 기록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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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8) 24.08.12 7 0 11쪽
62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7) 24.08.08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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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4) 24.07.29 8 0 11쪽
58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3) 24.07.25 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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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1. 잊혀진 이들 (The Unremembered) (1) 24.07.18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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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0. 진실 (10) 24.07.11 7 0 11쪽
53 #10. 진실 (9) 24.07.08 8 0 12쪽
52 #10. 진실 (8) 24.07.04 6 0 11쪽
51 #10. 진실 (7) 24.07.01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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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10. 진실 (5) 24.06.24 6 0 11쪽
48 #10. 진실 (4) 24.06.20 7 0 11쪽
47 #10. 진실 (3) 24.06.17 7 0 11쪽
46 #10. 진실 (2) 24.06.13 7 0 11쪽
45 #10. 진실 (1) 24.06.10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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