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오시리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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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슬로상일
그림/삽화
천슬로상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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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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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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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운명

DUMMY

지구 연도 1442년 가을, 한양에는 스산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가을 밤하늘은 천문을 관측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상상과 이야깃거리를 선물했으며

때로는 기대감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앞날을 바라보게 했다.


장영실은 주상의 가마를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다.

다행히 주상의 깊은 헤아림으로 중형은 면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반드시 사람 등에 업혀 나가라는 주상의 밀명이 있었다.


신료들의 괴롭힘을 피하게 해주려는 주상의 술책이었다.

장영실은 감사할 따름이었다.


집에 당도하여 자리를 깔고 누웠는데 전갈이 왔다.

김 생원이 보내서 약을 갖고 왔다고 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해서 속 쓰림이 도졌을 텐데 이 알약을 하루 두 번 드시랍니다.”

“그래, 고맙네. 그런데 이 약은 어떻게 이리도 정교한 모양인지 참 귀한 약 같네.”


“네, 이 약을 한 5일만 드시면 거뜬히 좋아지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을 드시는 동안에는 술은 절대로 드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 잘 알겠네. 고맙다고 전해주시게.”


장영실은 다시금 주상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주상의 뜻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반죽음을 당했을 일이었는데 이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신료들에 대해서는 부아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상께서 충분히 뜻을 전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계속해서 모질게 굴다니.

모든 게 장영실 자신의 출신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열흘이 지나니 속도 풀리고 바깥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역시 김 생원은 특출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가 전해준 약은 신묘한 효력을 갖고 있다고 식구들이 숙덕였다.

김 생원에게 감사의 뜻으로 피맛골 주막에서 국밥이나 한 그릇 하자고 전갈을 넣었다.


“아, 이 사람아 표정이 어찌 그러신가?”

“사정을 들어보니 주상께서 이미 용서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일세.”


“김 생원님, 그래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는지. 불충이오, 불충.”


“어허, 어서 막걸리나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세.”

“깊어가는 가을에 그렇게 주상만 생각하지 말고.”

“그만한 일에 신료들은 사람을 이렇게 고생을 시키다니. 쯧쯧.”


“이보시오 김 생원님, 말조심하십시오. 누가 듣겠소.”

“아, 아, 미안하네. 내가 좀 취했나 보구려.”


“에구, 제 나이 이미 52세인데 더 바랄 것은 없어요. 이제 죽어야지요.”

“허허허, 늙은이가 죽겠다는 말을 곧이들을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네그려. 하하하.”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있는 것일까요?”

“이 사람이 왜 안 하던 소리는 하고.”

이 말에 김 생원도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말일세, 자네 죽기 싫으신가?”

“나 원 참,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 생원님 오늘 좀 이상하십니다.”

“허허, 정3품 상호군 나리야말로 이상하십니다.”


“영혼이란 말일세, 살아온 흔적일세.”

“자네의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시게.”


“자네의 기억과 온갖 지식이야말로 자네로 하여금 무슨 일인가 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그게 영혼 아니겠는가?”


김 생원이 자못 진지한 투로 말을 했다.

장영실은 이런 김 생원을 늘 고맙게 생각했다.

특히 뭔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김 생원의 말은 큰 도움이 되었다.


“살면서 생긴 무수한 흔적이 자네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

“그게 영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김 생원은 오늘따라 뭔가를 작심한 듯 이야기를 펼쳤다.


“그런데 영혼만 생각하고 육신을 가벼이 여기면 아니 되네.”

“육신은 어떻게 보면 고깃덩어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장육부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네.”


“그 연결 작용 때문에 육신이 움직이고 생각도 이루어 내는 것이라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육신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네.”

“더불어 생각도 성숙하지 않던가? 같은 이치일세.”

“아니 오늘따라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김 생원은 더욱 진지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 기억들과 오장육부의 연결을 영원히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네.”

“네?”


그제야 김 생원은 얼굴을 풀고 말했다.

“내가 자네니까 이렇게 자세히 말해주는 것이야. 하하하.”

김 생원은 짐짓 호탕하게 웃었다.


장영실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보게 주모, 여기 안줏거리와 술 한 병 더 주시게.”

“저기, 김 생원님 나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허허 자네가 영혼이 있느냐고 물어서 영혼은 그런 거라고 말한 것이네.”

“영혼이 있으면 다음 세상을 한 번 더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렇지요, 영혼을 다룰 수만 있다면요.”


“허허, 맞네그려.”

“아니 그럼 영혼을 잘 다뤄서 다시 한번 더 살 수 있다는 말인가요?”

“아, 그렇다니까.”


장영실은 세종임금의 사랑으로 정3품에까지 올랐을 정도로 총명했고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좋았다.

미천한 출신이라는 마음속 열등감이 그로 하여금 열심히 살도록 했다.

장영실에게는 만약 다시 새로운 생을 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어려서부터 있었다.


“자네는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상상이 되는가?”

“아니요.”

“내 말은 여기보다 훨씬 고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이네.”


“그런 세상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그런 세상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 좀 해주십시오.”


“이런, 그 건 그렇게 쉽게 설명해줄 수가 없네그려.”

“아니 김 생원님, 왜 이러십니까.”


“지금 자네에게 설명해줄 길이 없네그려.”

“설명을 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걸세.”


“그럼 그곳에서는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습니까?”

“허허, 역시 자네는 똑똑해. 다시 살 수 있다고 하니 대뜸 얼마나 사느냐고 물으니.”


“당연히 물어야 할 말이기도 하지만.”

“글쎄, 여기보다는 열 배는 더 오래 살게 될 텐데 그것은 자네의 운명과 선택에 달렸지.”


“김 생원님, 그런데 그런 세상이 있겠어요? 괜하게 사람 기대감만 생기게 하시고요.”

“허허 사람은,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보셨나?”


“그렇지는 않으셨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장영실은 기대감을 내려놓는 기색을 보였다.


“자네는 나보고 어떻게 그렇게 글을 빨리 읽느냐고 했지?”

“그리고 계산도 어떻게 그리 빨리하느냐고 했지?”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나오는 곳이 있기 때문일세. 그게 궁금하지 않으신가?”

“궁금하다 뿐입니까.”


“내가 바로 그 세상에서 온 사람일세.”

“네?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시구먼요?”


“그런데 거기에도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들이 산다네.”

“그런 세상이 있습니까? 그럼 그 세상에는 어떻게 가는 것입니까?”


“허허 급하시긴, 다시 한번 더 잘 생각해 보시고,”

“그래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결심이 서거든, 그때 말해주시게. 그게 좋겠네.”


“그러지요.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무슨 일이든지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그럴 나이이기도 하지. 지금이 쉰둘이시지? 아마.”


장영실은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이 복잡했다.

주상의 가마를 허술하게 만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실행시험을 했더라면 문제를 잡아낼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이 감독을 잘못해서 그런 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오늘 김 생원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긴 했다.


그런데 자기가 그 세상에서 왔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보다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오랜만에 호기심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궁으로부터 급하게 인편이 왔다.

어서 몸을 피하라는 말이었다.


장영실은 중죄를 지었음에도 가볍게 방면되었으니

다시 잡아다 곤장을 쳐야 한다는 상소문이 올라왔다고 했다.


장영실은 어물거리다가는 큰 곤욕을 치르겠다 싶었다.

저녁때가 다 되었지만, 간단히 여장을 챙기고 김 생원의 집으로 급히 향했다.


“생원님 나 좀 살려주시오.”

“나를 다시 가두고 곤장을 치라는 상소문이 올라왔답니다.”


“저런, 저런, 어서 여기를 뜨세.”

“뜨다니오?”


“어서 결심하시게. 저번에 얘기했던 세상으로 가지 않으시겠나?”

“자네는 여기 살기에 아깝다니까.”


“식구들과 당부 말도 못 하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방법이 있을 걸세.”


“어서 나가세.”

이렇게 초로의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동대문 쪽으로 방향을 잡은 두 사람은 동대문 근처에서 방향을 틀었다.

낙산 성곽길을 오르기 위해 야트막한 오솔길로 숨어들었다.

이미 어두워진 다음이지만 두 사람은 주위에 시선이 있는지 조심했다.


“이리로 나가세”

김 생원은 익숙한 듯이 낙산 성곽의 암문으로 장영실을 잡아끌었다.


“아니 생원님은 어떻게 이런 길도 다 아십니까?”

“내가 가끔 다니는 길일세.”


일단 성곽을 빠져나오니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이미 마음을 정한 장영실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일단 북악산 구진봉까지 가세나.”


“내가 거기서 자네에게 기막힌 물건을 보여주겠네.”

“허, 기대됩니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넘고 있었다.

“자, 이제 다 왔네. 일단 숨을 좀 돌리세.”


“김 생원님을 따라오느라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기왕 쉴 것이면 주먹밥이라도 먹을까요?”

“아니네, 고맙지만 그럴 시간은 없네그려.”


“자, 이리 오시게. 내 옆에 단단히 붙어 서 있어야 하네.”

“조금 있으면 하늘에서 둥근 배 같은 것이 내려올 것이네.”


“그리고 아래쪽에 문이 열리면 우리는 공중으로 떠올라서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일세.”

“공중으로 떠오를 때 나를 꼭 잡아야 하네.”


김 생원은 품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머리 위로 쳐들었다.

잠시 후 하늘에서 어릿어릿한 둥근 물체가 내려왔다.


장영실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둥근 문이 열렸다.


“자, 올라갈 테니 나를 잘 잡으시게.”

“네, 단단히 잡았습니다.”

“자, 올라가네, 이 별에 인사나 해두시게.”


“이 별이라니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둥근 배 같은 우주선은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잠깐을 올라가던 타원형 구체의 우주선은 갑자기 강렬한 빛을 내뿜더니 저 높은 하늘로 사라졌다.

장영실의 운명은 이렇게 조선으로부터 갈릴레이 행성으로 이어졌다.

북악산 구진봉에서 뜨는 우주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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