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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숲을보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5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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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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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

DUMMY

프롤로그···

기원전 2세기경의 예언서 ‘사해문서’에는 2025년경 최후의 ‘빛과 어둠’의 전쟁이 발발하고, 이 세상을 구할 새로운 메시아가 한국에서 탄생한다고 했으며··· 또 다른 예언서인 법화경에도 한민족이 세계를 구할 영적인 존재임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세계적인 예언자들도 앞으로의 참혹한 전쟁과 한국의 밝은 미래에 대해 예언했다.

···

2024년은 유난히 다사다난 했다. 유럽에서의 끝을 모르는 러-우 전쟁, 중동에서의 이-팔 전쟁, 그리고 이란의 참전으로 인한 5차 중동전쟁···

세계질서의 중심에 있는 미국은 양쪽으로 뚫린 평화의 구멍을 막느라 바빴고··· 미국을 우습게 여기는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그리고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의 제멋대로인 행동···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성향후보의 승리로 인한 정치갈등으로 미국은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거의 없었다. 내전이 발발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감사히 여길 정도로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유엔은 이미 러-우 전쟁이 발발한 시점부터 유명무실한 존재였지만, 2024년에 들어서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세계가 혼돈으로 어지러울 때, 북한의 내부상황은 더 어지러웠다. 1당 1인 지도체제를 고수하는 북한내에서 감히(?) ‘자유정당’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 났으며, 만성적인 식량난과 이에 더한 자연재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억압, 반체제단체의 출현 등··· 북한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김씨 일가를 존경하지 않았고, ‘신’으로 모시지도 않았다.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뿐이었다.

북한은 내부에 쌓인 불만을 표출할 출구가 필요했고, 그 해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제 1 화

2025년 5월 5일 새벽, 엄청난 소음과 진동으로 잠에서 깬 나는 비틀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잠에 취한 눈으로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꿈이라 믿고 싶은 것이었다. 여기저기 불기둥이 치솟고, 어제까지도 우리 아파트의 조망을 해치던 건물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무너지다 남은 건물에 매달려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지만, 고통과 공포는 그대로 전달되었다. 나는 119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수십개나 와있는 '재난문자'를 발견했다. 휴대폰을 집어 든 이유 따위는 잊어버린 나는 문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전쟁이었다.

···

폭풍에 부서진 창유리가 볼을 찢고··· 강력한 진동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제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거실 탁자위에 있는 마시다 남은 생수한병과, 간식을 손에 잡히는 대로 잠옷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을 나섰다.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 가면서 믿지도 않는 신을 계속해서 찾았다. 제발 살려 달라고···

지하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있었고, 사람들의 눈에서 나와 같은 공포를 보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일부 사람들의 눈에는 희망과 일종의 광기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구석에 숨어 제발 '핵폭탄'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죽어도 방사선에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5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더 이상 폭발음이 들리지 않았다. 핵폭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아직 이성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다행(?) 이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나도 따라 나섰다. 밖으로 나와서 처음 든 생각은 살아서 다행이라는 것, 내 집은 아직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집으로 달려 올라갔다. 많은 이들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을 향해 달렸지만, 나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전기, 수도, 가스배관이 망가졌기에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있고, 없는지 알아야 했다.냉장고를 열고 당장 먹어야 하는 음식과 오래 두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분류하고, 생수와 소금, 음식, 휴대용 가스버너와 부탄가스를 점검했다.

휴대용 버너는 쓸만했고, 부탄가스도 많았지만 물은 많지 않았다. 미리 배달시키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

나는 빈 가방을 하나 메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 무너진 아파트 밑에는 마트와 편의점이 있었고··· 사람들을 구하는 척하다가 음식과 생수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챙길 형편이 안 되었거나, 나처럼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려는 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많은 이들은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손을 대지 않았고, 훔치려는 이들은 비난을 받았다. 그들처럼 사회에서 버림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열심히 구조에 동참했다. 가끔 핸드폰을 켜서 회사에서 문자가 온 것이 없는지 확인했지만... 없었다.

하루를 더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혼자 살아남을 준비를 했다.

4일째부터 사람들은 슬슬 잔해속에서 이속을 챙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비난하는 이들은 없었다. 먹을 것이 떨어져 가고,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통조림과 라면, 생수, 의약품을 챙겼고, 그것으로 생존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

전쟁 발발 10일 후 많은 사회인프라가 복구되었다. 첫날만큼의 포격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군이 북한군을 밀어내고 휴전선 이북으로 진격했기에 후방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공군과 해군전력이 북한에 비해 매우 우세했던 아군은 적의 허리와 보급로를 끊는 전략을 펼쳤고, 한달 후에는 평양에서 멀지 않은 항해북도 황주군에 이르렀다. 황주군은 평양을 지키는 1차 관문이며, 군용비행장이 있는 요충지였기에 그곳을 점령한 것은 많은 전략적의의를 가졌다.

6월 11일, 아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북한 지도부는 핵무기카드를 꺼내 들었고, 아군은 잠시 진격을 멈춰야 했다. 아군 지도부는 무시하고 진격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으며,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에도 북한군은 아군을 밀어내기 위해 미친듯한 공세를 퍼부었다.

7월 15일 아군은 역사책에서만 배우던 악명높은 중국군을 보았고, 엄청난 물량공세에 서부전선의 일부가 뚫리고 말았다.

...

북한은 핵을 쓰지 않았다. 여름은 동남풍이 불고, 북한이 만약 핵을 쓴다면 중국도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북한이 패하여 직접적으로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다면 많은 부담이 있는 중국은 북한을 도와야 했다.

해서 중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전을 했다. (물론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꼭두각시를 내세워 한반도를 통치할 생각을 했을 것이지만···) 방탄조끼는 물론, 제대로 된 무선통신장비도 갖지 못했던 북한군이 아닌, 최신 장비로 무장한 중국군과의 싸움은 아주 힘에 겨웠다.

서둘러 미군도 참전했지만, 엄청난 물량 공세에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고, 8월 17일에는 전선이 휴전선 근처에서 고착되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들의 도시와 기반시설이 엄청난 포격과 폭격(중국과 북한은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구분하지 않았다. 우리를 몰살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인 듯했다.)을 당하기 시작했다. 제공권과 제해권(중국군은 비행기와 군함을 자국의 영토에서 띄우지는 않았다. 포격도 하지 않았다. 군인과 장비만 북한으로 들여왔다. 자국내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사전에 협약 된 것은 없었지만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었다.)은 우세했기에 남부도시들은 피해가 덜 했지만 서울, 원주, 강릉, 경기도 권 도시들은 그렇지 않았다. 땅덩이가 작다 보니 포격이 너무나 쉽게 닿았고, 사실상 방공망으로는 요격하기 어려운 포탄은 그대로 우리의 생명을 위협했다.

···

도로는 버려진 자동차와 서울을 벗어나려는 사람으로 가득 메워지고, 끊어진 다리와 파괴된 도로에는 사람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길을 뚫기 위해 차를 길 양옆으로 밀어내는 중장비들··· 시체를 치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경찰, 소방관들, 상황을 통제하려는 누군가의 고함소리, 이곳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비명인지, 절규인지, 표현하기도 어려운 소리가 섞여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다이소’ 잔해에서 구한 나침반과 서점에서 구한 지도를 들고 복잡한 도로를 피해 도보로 피난길에 올랐다. 후방에도 침투한 북한군이 있었기에 최대한 낮에만 움직이고, 밤에는 도시에 숨어들어 먹을 것을 구하고, 비어있는 건물에서 잠을 청했다.

5일만에 대전에 다다를 수 있었고, 대전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방향을 동남쪽으로 틀었다.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에는 언제 중국군이 올지도 몰랐기에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내 계획은 경남의 소도시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티던, 부산으로 가서 배든, 비행기든 타고 3국으로 피난을 갈 생각이었다. 나에게 있어 애국심이란 그렇게 중요치 않았다. 나는 이기적이고, 겁 많은 인간이었기에 오직 내가 살기를 원했다. 허나 내 계획은 창원에 이르러 깨끗이 무너졌다.

계엄령에 의한 전시법에 따라... 나는 헌병에게 이끌려 군수공장에 강제 취직하게 되었다. 영업사원으로서 혀바닥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나에게 있어 공장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기계가 대부분의 작업을 맡아 하기는 했지만, 자주 일어나는 정전과 쉬는 시간이 거의 없는 일과,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고역이었다.

평소에도 법과 공권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도망칠 계획을 세웠으나 나보다 일찍 행동에 옮긴 이들이 가차 없이 교도소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바로 포기했다.

···

전쟁이 발발한지 7개월이 다 되어가던 시점에 우리 공장에는 20,30대 남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6개월 만에 로테이션이 있었고, 징집되어 전선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멀쩡한 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요양소나 공장보다 편한 곳으로 갔다. 멀쩡한 이들은 나처럼 아직 징집되지 않은 이들이었고, 전장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우리는 언제 전선으로 불려갈지 몰라 노심초사했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공장이 전장보다는 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죽을 확률도 거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겨울도 시작되었고, 전선은 38선 인근이라 뭐 같아도 따뜻한 밥과 잠자리가 있는 공장 기숙사를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봄이 오고 나서부터 전선은 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제적 잠재력이 북한과 중국보다 우월했기에 생긴 변화였다. 1년정도 버티던 중국은 자국내 경제기반의 허점, 계속되는 자연재해, 반전세력, 중국서부국경을 위협하는 인도의 움직임, 등으로 인해 북한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허나 아군과 미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더 이상 자원입대를 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장기전으로 인한 피로도가 쌓이고 많은 이들이 희생된 것도 있지만, 이성이 감정을 철저히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 외국으로 피난을 간 정계, 재계, 연예인들과 그 가족의 평화롭고, 호화로운 사생활들이 국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계층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마도 중국이나, 북한이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라 생각된다. 이것의 여파로 명령에 불복하고 싸우기를 거부하는 전선부대도 있고, 파업을 한 공장들도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 피난을 떠난 일부 국민들을 송환하기도 하고, 장기간 전선에 있던 부대를 후방으로 보내 휴가를 즐기도록 했다. 덕분에 한동안 전선과 후방 모두가 혼란에 빠져 간신히 먹은 평양을 내어 주기도 했다.

평양이 1차로 함락되기전, 북한의 핵무기는 전부 분해되어 중국으로 넘어갔다. 특수부대가 핵시설을 점령하기 위해 잠수함이나, 낙하산으로 핵기지로 침투하기는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영화에 나오고, 전문가들이 컴퓨터로 만든 시뮬레이션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북한은 ‘핵’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특수부대에 의한 계획이 실패한 미국은 중국을 압박했고, 중국은 북한을 압박했다. 대가로 북한 지도부는 무엇인가?를 약속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내외가 혼란스러운 그 시국에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나처럼 후방에 남아있던 20,30대 남자들이었다. 전선부대의 휴가로 생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전선으로 가야 했다. 예비역 병장이었던 나도 그렇게 전선으로 갔다. 여러 번 탈영을 시도했지만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행범으로 잡힌 것은 아니었기에 군사재판은 간신히 회피했다.

예비역이었던 나는 훈련도 없이 바로 전장에 투입되었고, 첫 전투에서 전장은 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첫 전투를 치른 모두가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전우의 시체를 보고 정신을 반쯤 놓아버렸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전장이 체질이거나, 아니면 바보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첫 전투에서 신병들 절반이상이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혹은 정신병에 걸려 후방으로 이송되었다. 이때 나는 정신병에 걸린 척하려고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허나 걸리면 군사재판을 받아야 했기에 그만 두기로 했다. 만약 이때 내가 앞으로 겪어야 할 고생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죽더라도 탈영을 시도했을지도 몰랐다.

첫 전투에서 분대장이 죽고, 나는 살아남은 사람 중 가장 멀쩡하다는 이유로 분대장을 맡아야 했다. 분대장을 해본적은 있지만 전장에서 누군가를 이끌고 싸우는 것은 처음이라 극구 만류했다. 허나 소대장은 내 이마에 총을 겨누었고,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전투가 있고 나서 3일간은 전투가 없었다. 그 사이 나는 분대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내가 지켜야 하는 고지의 지형을 외웠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평화로운 시절에 있어 보이기 위해, 영업을 위해 읽었던 병법을 실제 전장에서 써먹어야 함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전선에 도착한 4일째 되던 날 야심한 밤, 우리 분대가 속한 대대는 적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가파른 산을 타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쉬고 싶었으나 적이 들을 것 같아 입을 틀어막으며, 기다시피 산을 올랐다.

우리는 30여분을 기어올라 적의 참호를 급습했고, 백병전이 벌어졌다. 이때 나는 정신은 멀쩡했지만 다리와 손은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한겨울에 발가벗은 채로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처럼 사지가 벌벌 떨리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한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멀리서 총을 쏘는 것과 코앞에 마주하고, 서로 눈을 바라보며 싸우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

나는 누군가 부르는 듯한 소리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멀리 불타는 나무의 희미한 불빛에 소대장과 소대장을 깔고 앉아 심장에 단검을 꽂으려는 적이 보였다. 소대장은 맨손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단검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나는 적을 죽이고, 소대장을 구해야 함을 알았다. 하지만 첫 발을 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적의 단검은 소대장의 가슴을 파고 들고 있었고, 나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술 취한 사람 마냥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나의 움직임을 간파한 적은 내가 도착하기전에 눈앞의 상대를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 더욱 힘을 주었고, 내가 손에 총이 있음을 깨닫고 적에게 총을 발사하는 순간 적의 단검도 소대장의 심장을 꿰뚫고 말았다.

소대장은 눈을 뜬 채로 나를 바라보며 죽어 있었고, 나는 차마 마주볼 수 없었다. 이 순간 나는 내가 바보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 같은 나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분노했다. 미친듯이 총을 쏘고, 눈에 보이는 적은 가차없이 죽였다. 이렇게 나는 두번째 전투에서 살아남았고, 우리 소대는 1/3로 줄어 있었다. 우리 분대에서 살아남은 이는 내가 유일했다.

보충병들이 오기전 우리는 적, 아의 시체를 정리하고 참호를 정비하고, 고지를 되찾으려는 적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했다. 물론 나의 비겁함으로 소대장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소대장 대리로는 하사인 유정후가 임명되었다. 우리 소대에서 유일한 ‘직업군인’이었고, 유일하게 전쟁초기부터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우리 분대는 나를 빼고 전멸을 했기에 나는 분대장이 죽은 3분대 분대장을 맡았다. 정비가 끝나기도 전에 고지를 빼앗으려는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나는 나의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적의 공격은 집요했다. 영화에서 보던 중공군의 나팔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전차의 기계음과 함성소리만으로도 나의 오금을 저릿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리는 밥도 먹지 못한 상태로 6시간 동안 적의 파상공세를 막아내었다. 총은 달아올라 유효사거리가 600미터인 k2소총은 100미터 앞의 적을 명중하기도 힘들었다. 대부분의 총기는 고장 나고, 포탄과 탄약도 거의 바닥을 쳤다.

대대장은 여단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저녁이 되도록 지원병력과 재보급은 없었다. 나는 이곳이 내가 죽을 자리라고 생각했다. 이름도 없고, 그저 489고지라 부르는 야산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하고··· 총탄과 파편에 갈기갈기 찢겨 여기저기 흩뿌려 질 것이라 생각했다. 6시간의 방어전이 끝나고 440명중 살아남은 병력은 50명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대장은 쓸만한 무기와 탄약을 확인하고 다음 공격에 대비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영업사원으로 있으면서 숫자에 밝았던 나는 다음 공격이 시작되면 30분도 못 버틸 것이라는 계산을 이미 마쳐둔 상태였다. 화가 났다. 소대장에게 욕을 박고 싶었다. 신병인 나보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소대장은 분명히 나보다 더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대장을 노려보았고, 소대장은 전 소대장과 마찬가지로 내 이마에 총을 겨누었다. 명령불복종으로 죽여버리겠다는 의도였다. 나는 적의 손에 죽으나, 아군의 총에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라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한 명이 아쉬운 현상황을 인지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발로 걷어차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남은 분대원 2명과 함께 물도 없이 바삭바삭한 건빵으로 식사를 했다. 긴장감으로 바짝 마른 입에 바삭하고 딱딱한 건빵은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분대원 중 하나인 김준호는 도저히 먹지 못하겠는지 입에 넣었던 빵을 바닥으로 뱉어 버렸다.

우리는 이렇게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더 이상 적의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고, 4일 후에는 신병들이 보충되었다. 그리고 5일 후 우리는 평양을 지키던 북한, 중공군을 도시내에 가두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부전선에 있던 우리는 미끼였던 것이다. 나는 그저 일개 소모품이 된 것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해서 기왕 전장에 나섰으니 장기말이 아닌, 장기를 두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다.


작가의말

인간의 욕망은 다양하고, 그 본성은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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