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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숲을보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5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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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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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 그리고 혹독한 현실!

DUMMY

7.

여단은 혜산시와 인근지역 국경수비와 치안을 맡았지만 우리 대대는 백두삼림으로 가야 했다. 나는 더 이상 군에 있고 싶지 않았기에 전역서를 제출했다. 내가 전역을 하면 부대장이 없는 우리 대대는 이 작전에서 제외될 것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다. 허나 나의 전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옛 북한지역에서의 계엄령은 해제되지 않았기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6개월간 강제 연장된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백두삼림에 있는 사단규모의 파르티잔부대를 소탕하고 명확치 않은 국경선을 확정 짓는 것이었다.

삼림에 의거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는 적을 소탕하는데 있어서 중장비는 효율이 좋지 않았기에 상부에서는 보병대대급 전투단을 기본전투단위로 해서 소탕부대를 구성했다. 덕분에 여단에서 가장 전투력이 강한 우리 독립대대가 차출된 것이었다.

···

보름의 휴가를 마친 우리는 6월 22일 혜산시를 출발해서 6월 25일 삼지연에 도착했다. 우리 대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여러 대대가 이동중에 파르티잔들의 습격을 당했고, 집결지에 무사히 도착한 대대는 전체의 반도 되지 않았다.

14개의 대대가 파견되었지만 집결지에 온전히 도착한 대대가 6개, 그리고 공격받은 대대들에서 살아남은 이가 약 350명 정도였다. 공격당한 이들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부대들이었다.

상부에서는 각 대대에서 살아남은 이들로 1개 대대를 편성했고, 7개의 대대가 구역을 나누어 토벌에 나서야 했다. 솔직히 토벌에는 적 보다 많은 병력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3천명도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적의 병력은 약 5천정도였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삼지연에서 부족한 보급품을 챙기고 이튿날인 26일 원시림속으로 들어갔다. 만약 나에게 그 원시림을 몽땅 태워버릴 수 있는 결정권이 있었다면 주저없이 태워버렸을 것이다. 정말로 싫었다.

우리 독립대대의 병력은 800명이었지만 절반이상이 전역을 하고 343명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무사히 원시림을 벗어난 이는 많지 않았다.

···

숲에 들어선 첫날 저녁부터 우리는 적의 공격을 받았다. 열상감시장비가 있었기에 울창한 삼림에서 적을 먼저 발견했음에도 적잖은 손실을 입어야 했다. 우리는 장비가 우월했지만 적에게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적은 산에 나무가 몇 그루 있는지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첫 전투에서 1개 소대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들을 후송하기 위해 2개 소대가 전장을 이탈했다.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1/3의 병력을 잃었어도 계속 전진해야만 했다. 명령에 불복하면 지금까지 상부에서 눈감고 넘어간 모든 죄까지 합산하여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최소한 사형이었다. 살기위해 사지로 들어가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틀째 저녁 본부에서는 직접 부상자들을 후송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삼림한가운데서 수송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고, 원하는 장소까지 부상자를 데리고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숲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서 나는 경상자는 헬기가 원하는 위치까지 데리고 갔지만 중상자가 발생하면 나무를 베어냈다. 나무를 베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전의 나였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결정이었다. 허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는 오로지 내가 살기위해 부대를 지휘했지만 대원들은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따라주었다. 몇은··· 아니 모두가 알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나의 추악한 내면을··· 하지만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이제 나도 그들을 버릴 수 없었다.

···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숲에 숨은 적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열상감시장비를 키고(배터리가 2시간이면 방전되었기에 가진 모든 장비를 작동시킬 수 없었다. 해서 한 번에 작동시킨 장비는 1~2대가 고작이었다.) 다녔으며, 하루 이동거리는 고작 10km였다. 처음에는 대대들의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각개격파 당하기 일쑤였다. 허나 숲에 들어선지 7일이 되고 나서부터 우리는 훌륭한 연계를 보여주었다. 적군을 천명 가까이 사살했고, 포로는 잡지 않았다. 아군 사상자도 많았지만 병력은 계속해서 보충되었다.

···

우리 대대의 거의 모든 대원이 변비에 걸렸다. 용변을 보다가 적의 습격에 허무하게 죽은 이도 많았기에 대변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신경쇠약에 걸린 대원들도 있었고, 헛것을 보고 오발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혹은 자살을 시도하거나, 아군을 쏘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기에 뭐라할 수도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토벌을 계속했고, 20일째 적의 1개 대대정도의 병력이 머물고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산속에는 백두산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는 용도의 마을들이 곳곳에 있었고, 이 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였다.

나는 손쉽게 끝내기 위해 본부에 폭격을 요청했다. 허나 본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민간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구출하라는 것이었다.

아군 한 명을 더 살리기 위해 서슴없이 포격과 폭격을 했던 전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정부에서는 민심을 확보하고 빠르게 내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서의 민간인 구출은 프로파간다적으로 아주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솔직히 수십년을 아무런 교류도 없이 적대한 북한의 주민을 구한다는 것에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북한 주민 백명, 천명 보다 아군 한 명이 더 소중했다. 만명을 죽이고 한 명을 구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나에게는 군인의 기본 자질이 부족했다. 군인은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나같이 손익에 찌든 정신상태가 아닌,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나 스스로가 북한사람들을 동족으로 생각지 않은 것이거나, 혹은 점령군?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

아군은 적군에 비해 많은 야간투시경을 가지고 있었고(적군이 가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아군에게서 노획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지원받은 것도 있었지만 아군의 야시경을 더 선호했다.), 드론과 열상감시장비도 있었기에 야간에 기습을 했다.

나는 1개 중대를 서북쪽으로 보내 퇴로를 차단하고, 1개 중대는 마을 동쪽으로 보내 정면을 공격하는 중대와 협공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본부소대를 이끌고 마을 외곽에 있는 학교를 공격했다.

김정일의 이름을 딴 학교여서 그런지 꽤 아담하고, 예뻤다. 학교는 ‘ㄴ’자 모양의 2층짜리 본관건물과 그와 일자로 마주 보는 단층부속건물 두개가 있었고, 1개 소대정도의 적군이 나뉘어 주둔하고 있었다.

열상감시장비로 적의 위치를 파악한 우리는 적이 모여 있는 교실로 수류탄과 유탄을 발사했다. 그리고 1개 분대는 빠르게 건물 내부로 진입하고 1개 분대는 마을과 학교를 잇는 도로로, 나머지 1개 분대는 밖에서 대기하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적군을 사살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분대는 뛰어내리는 적은 물론, 부속건물에서 본관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오는 적들도 제압했다.

학교가 공격을 받자 마을에 주둔하고 있던 일부 적군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고, 도로에 매복하고 있던 분대가 이들을 저지했다. 이와 함께 마을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대들이 마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은 혼란에 빠졌고, 우리가 공격하지 않은 서북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허나 그곳에는 아군이 매복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적을 사살할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적군은 마을 중심에 있는 ‘영생탑?’과 그 왼쪽에 있는 단층건물에 고립되었다.

우리는 항복을 권유했고, 적군은 인질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대치하고 있었지만 적군은 완강했고, 나는 부대를 뒤로 물려 길을 열어주었다.

포위된 적군을 구하기 위해 증원부대가 오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

나는 인질들을 구했지만 실수로 한 명을 죽이는 바람에 징계(몇 푼 되지도 않은 ‘봉급’이 감면되었다.)를 먹어야 했다.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딱히 변명하지는 않았다. 그럴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대를 뒤로 물린 후, 이주성에게 1개 소대를 주어 적들 몰래 숲을 가로질러 적이 지나갈 만한 곳에 매복하도록 했고, 이주성은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 주었다. 허나 그 과정에 아군의 총에 맞고 인질 중 한 명이 죽고 만 것이다.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엎드려 있으라고 한 아군을 믿지 못하고 혼자서 숲을 뛰어다니다 혼전속에 죽은 것이었다.

죽은 사람은 26세의 여성이었고, 나를 징계먹인 사람은 여성의 남편이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조사관에게 아군이 고의로 총을 발사했다고 증언했고, 상부에서는 사건을 조용히 덮는 조건으로 남자에게 거액의 돈을 주어야 했다. 당시 옛 북한 지역의 민심이 좋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옛 북한의 주민들은 자치를 원했고, 곳곳에서 소요가 끊기지 않았다. 오랜 분열이 만들어 낸 비극의 단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옛 북한지역 주민들은 우리를 점령군이라 생각했고, 우리는 스스로를 해방군이라 생각했다. 단면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북한지역에서는 급격한 변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고, 기업들이 도시와 부동산과 광산 등을 개발하기 위해 자본을 들이는 것을 ‘빼앗긴다(맞는 말도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더해 주민들을 선동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으며(권력을 원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언론, 집회, 결사의 진정한? 자유를 맛본 이들은 법을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기에 극심한 혼돈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함부로 진압하거나, 벌할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에 놓인 것이다. 각 행정구역마다 임시 수장들이 ‘한국’인이었기에 반발이 더 심했는지도 몰랐다.

아무리 ‘임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빠른 시일내에 공정한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믿는 이가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억압받았고, 정부의 감시와 선거조작을 봐온 이들은 ‘공정’ 이라는 단어자체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만연한 부정부패와 사적인(옛 북한의 당, 보위부, 안전부 간부들) 복수와 원한으로 인한 살인과 폭력! 지역갈등,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에 나오는 패배감, 경제력과 전문직(의사, 교사, 변호사, 기술자, 연구원, 등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기술력의 차이에서 나오는 열등감, 질투,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내는 혼란스러웠다. 또한 남쪽지역으로 이주를 한 이주민들과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도 극심했다. 이 혼란에 언론사도 크게 한 몫을 했다. 진실을 전한다는 전제하에 붙는 불에 기름을 얹었으며, 더 자극적인 기사와 제목으로 이목을 끌었다.

진실을 아는 것이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다시한번 알 수 있었다.

···

삼지연에서 천지까지 직선거리는 60km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9월 말이 되어서야 대부분의 적을 소탕, 혹은 국경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삼림을 돌고 또 돌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 단 한 번도 부상을 입지 않은 이가 없었고, 국경에 도착했을 때에는 대대의 90%가 보충병이었다. 즉 90%가 죽거나, 정신적, 육체적 부상을 입고 후송된 상태였다.

국경지역에서는 매일 중국군과 신경전이 있었지만 국지전이나,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백두산의 첫 눈은 9월 말에 내렸으며, 우리 대대가 철수한 시점인 11월 3일에는 사람키만큼 눈이 쌓였다. 우리는 철수할 때도 이동수단을 사용하지 못했다. 눈도 눈이지만 엄청난 강풍으로 날리는 눈가루가 시야를 확보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기에 걸어서 철수해야 했다.

···

1년 6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전세계약은 끝났고, 집주인은 내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준 상황이었다.

정부에서는 전장에 나간 이들(참전한 대부분은 청년들이었고, 그들에게는 돈이 없었기에 살고 있던 집들은 월세나 전세였다.)의 집은 계약기간이 끝나도 다른 이들에게 세를 주는 것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출을 받은 이들의 이자는 '유예'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은 것이었다.

살아남아도 빚에 시달려야 했고, 전사해도 그 배우자나, 부모형제가 빚을 갚아야 했다. 전시상황에서 법이 정한 기간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은행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전사자(유가족들이 전사자 보상금을 받는다 해도 상속포기를 제때에 하지 못해서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대출을 받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랐겠지만,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삶이 끝났는데... 이미 죽은 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보다 부상자가 많았고, 장애 보상금을 받아도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고, 장애가 있으니 다시 취업을 하기도 힘들었다.

청년들을 위한 나라는 없었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라도 없었다. 피를 흘리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대가는 혹독했다.

···

나는 집주인을 찾아갔고, 집주인은 나를 귀신 보듯이 했다. 집주인은 아마도 내가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부모가 돌아가셨고, 결혼도 하지 않았기에 내가 죽었다면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할 이가 없기 때문이다.

광기에 물든, 살인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본 주인은 황급히 미소를 지으며 다음날 바로 입금하겠다고 했다. 허나 나는 물러나지도, 표정을 풀지도 않았다. 내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을 직감한 주인은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가 현금을 들고 되돌아왔다.

내가 액수를 확인했음에도 갈 생각을 하지 않자 집주인은 황당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노려보던 나는 내 짐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집주인은 가전제품과 가구와 옷들은 누군가 훔쳐갔고, 남아 있은 것은 책장과 책이 전부라고 답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책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고, 도서관에 기부했다는 답을 들었다.

돈을 좋아하는 자가 기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숙소를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날 나는 연영과 만났고, 우리는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딱히 대화를 이끌어가거나, 주도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고, 살아남았다는 그 안도감이 주제였고, 안주였다.



작가의말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가난한 자를 위한 나라도 없다. 많이 가지고 있는 자는 더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자는 빼앗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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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마지막 발악! 24.06.21 31 1 10쪽
21 정치의 희생양! 24.06.19 31 1 12쪽
20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 24.06.17 3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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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기습, 그리고 함정! 24.06.12 31 1 17쪽
17 죽지 않는 적군과의 전투! 24.06.10 34 1 15쪽
16 배수진(背水陣) 그리고, 부러진 창! 24.06.08 31 1 21쪽
15 가장 더러운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24.06.05 37 1 24쪽
14 새로운 국면! 24.06.03 33 1 26쪽
13 쥐덫! 24.05.31 39 1 16쪽
12 교활한 여우, 우직한 곰! +2 24.05.29 43 1 14쪽
11 목숨을 건 테스트! 24.05.27 39 1 17쪽
10 70년 만의 참패! 24.05.25 44 0 13쪽
9 새로운 마음가짐! 24.05.24 40 0 13쪽
8 소용돌이의 중심! 24.05.22 47 0 21쪽
» 토벌, 그리고 혹독한 현실! 24.05.20 49 0 15쪽
6 계산된 행동, 해야만 하는 것들! 24.05.17 48 0 17쪽
5 뛰어난 전략가! 24.05.15 55 0 16쪽
4 언제나 길은 있다. 24.05.13 56 1 19쪽
3 고립! 24.05.10 64 0 23쪽
2 장의 자질! 24.05.09 79 1 23쪽
1 평범한 인간 +2 24.05.08 144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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