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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숲을보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5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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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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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길은 있다.

DUMMY

유담리 북동쪽 산으로 오르기 전 정찰을 보냈던 나는 적의 연대, 혹은 사단본부로 의심되는 것이 산 위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연대본부인지, 사단본부인지를 정확히 하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사단이라면 적어도 20km이상 떨어진 곳에 전선이 있을 것이고, 연대라면 2~10km이내에 전선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김준호 중사에게 중대를 맡기고 이주성과 단 둘이 아끼고 아끼던, 하나 남은 야간투시경을 챙겨 산으로 올랐다. (배터리가 얼마 없었기에 그날 이후로 더는 쓰지 못했다.)

나무가 빽빽한 어두운 숲은 바로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웠고, 나뭇가지는 얼굴과 온몸을 찌르고, 할퀴었다. 나침반에 의지하여 기다시피 산을 오른 우리는 야시경의 배터리가 떨어질까 급하게 경비규모와 시설을 확인했다. 연대본부가 확실했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즈음 이주성은 갑자기 나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 입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이주성의 크고 두툼한 손이 내 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언의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고, 내가 진정되었음을 확인한 이주성은 앞쪽을 가리켰다. 무엇인가 움직이는 듯한 것이 보였고, 나는 제발 산짐승이기를 바라며 배터리가 다 되어 깜빡이는 야간투시경을 다시 켰다.

포착된 것은 사람이었고, 아군은 아니었다.

나는 우회하여 중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갈지, 아니면 적의 뒤를 몰래 밟으며 상황을 주시할지를 잠깐 고민했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 나는 이주성의 의견을 물었고, 우리는 뒤를 밟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적의 뒤를 따르던 우리는 적들이 목적지로 삼는 곳이 장진호에서 헤어진 이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였음을 알았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 약속장소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중대원들을 배치했었다. 덕분에 불상사는 피했지만 적의 다음 동선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없는 것을 확인한 적은 정확히 지금 중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합류하기로 한 대원들 중 누군가가 포로로 잡혔고,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적에게 일러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주성과 몰래 도망을 치거나, 이놈들과 싸우거나···

나는 중대원들(남겨진 인원은 15명이었기에 소대보다 더 적은 인원이었다.)을 믿어 보기로 했다. 적을 먼저 발견해서 싸워준다면 나와 이주성이 뒤에서 협공을 할 수 있었고, 적이 잠시라도 혼란에 빠진다면 그 틈에 도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중대원들은 나의 기대에 보답했고, 앞뒤로 공격받은 적(둥글게 포위하고 있었기에 우리도 협공을 받았지만 나와 이주성이 있는 방향은 적이 오히려 포위당한 듯한 형세였다.)은 예상대로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순식간에 십수명의 적(우리를 포위한 적은 한 개 중대였다.)을 죽이고 자그마한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틈새로 휴대한 무기와 탄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은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었지만 뿔뿔이 흩어 놓기도 했다. 늘 하던 대로 서로가 서로를 챙길 수 있는 여유도 없었다. 나는 어디서 집결하라는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밤에는 소리가 너무나 멀리, 잘 전달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사적으로 뛰어서 유담리 북서쪽산의 서쪽 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더 이상 따라오는 적도 없었다. 북서쪽산과 우리가 있던 동남쪽산 사이에는 도로가 있었는데 어떻게 넘어갔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안전하다고 판단한 나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았고, 내가 제일 신뢰하는 이주성과 김준호는 물론,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절망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전선을 넘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듯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나는 중대장을 죽인 ‘마카로프’를 꺼내 총구를 입안에 넣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총을 잡은 두 손은 미친듯이 떨렸다.

···

나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죽을 용기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내가 정말로 싫었다.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위안을 찾는 것 또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분노한 나는 애꿎은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화풀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죽지 않기 위해 돌은 피했다. 참으로 나는 비겁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분풀이 후, 나는 미친듯한 삶의 충동을 느꼈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살아 남겠다 다짐했다.

거의 40일넘게 나와 함께 산속을 방랑한 대원들이라면 나의 다음 행선지를 짐작할 것이고, 의지할 곳이 없는 그들은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북쪽으로 방향을 꺾어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을 목표지점으로 삼았다.

···

나의 계산은 정확했고,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서 김준호와 그의 일행 6명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우회하여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3명을 더 만날 수 있었다. 여군은 5명중 2명만 우리와 합류했다.

포위되었을 때 전사한 2명을 제외하면 이주성과 1분대 부분대장 최일명, 그리고 여군 3명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계속 따라오는 적을 피해 더 이상 북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적은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전선과 가까운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계속 수색대를 보냈기에 허를 찌르기로 한 것이다.

탄약과 식량이 부족했던 우리는 끈질기게 따라오는 적 한 무리를 역으로 매복하여 죽이고 탄약이 떨어진 k2를 버리고, 적의 무기와 탄약, 식량, 군복, 군화(적의 군화는 대부분이 아군의 군화를 빼앗아 신은 것이었기에 아주 좋았다. 북한군 군화는 군화라고 말하기 힘든 고무와 천으로 된, 그런 신발이었기에 적들은 아군에게서 노획한 군화를 애용했다.)까지 빼앗았다.

서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우리의 행선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했고, 지도상 30여 km떨어진 곳까지 가는데 5일이나 걸려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아군 포격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곳까지 이를 수 있었다.

나는 적군 무기와 군복을 입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모험을 하기로 했다. 10명으로 전선을 정면돌파 하는 것은 바위로 계란부수기와 같았기에 ‘모’아니면, ‘도’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

어설픈 사투리와 연기로 적을 속이려던 우리는 첫 번째 검문소에서 정체가 발각되었다. 무기와 군복을 모조리 벗겨간 것을 알고 있던 북한군수색대 지휘관이 북쪽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지 못하자 전선지역 검문소들에 우리의 인상착의를 일러주고 검문을 강화할 것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바보스러운 적이 아니었고, 우리는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준호는 총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단검을 꺼내 적 하나를 제압했고, 우리도 급하게 적에게 달려 들었지만 끝끝내 총소리를 내고 말았다. 검문소 옆 오두막에서는 적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제대로 된 엄폐물도 없이 적과 싸워야 했다.

다행인 것은 오두막에는 출입문이 하나, 창문이 하나였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두 곳에 화력을 집중했다. 창문을 통해 수류탄도 여러 개 집어넣었다.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적의 분대를 순식간에 몰살하고 도로를 벗어나 고지로 올랐다. 이 과정에 아군 두 명이 죽었지만 묻어 주거나,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뒤에서는 적군이 따라오고, 앞에서는 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지의 중간쯤 올랐을 때 아군 포격소리가 들렸고, 나는 잘하면 앞에 적이 거의 없겠다고 생각했다.

적군은 포격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병력은 산에 뚫어 놓은 갱도와 벙커에 숨어있고, 소수의 병력만이 특별히 튼튼하게 지은 참호속에 남아 상황을 주시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군의 정밀한 포격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사지로 뛰어들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대원들도 주저없이 내 뒤를 따랐다. 우리는 위에 입었던 적군 군복을 벗고 당당히 아군 군복을 드러내었다.

역시나 고지위에는 적군이 거의 없었고, 우리는 포탄이 터지는 고지를 뛰어내려갔다.

폭풍에 날라 가고, 흩뿌려지는 흙에 묻히고, 날라 다니는 돌과 나무에 찢기고, 찔렸으며, 바로 옆에 떨어지는 포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

아군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온 몸에 상처가 있는 것과 특히 왼쪽 허벅지에서 엄청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나만이 아닌 파편에 손목이 날라간 것을 모르고 있던 이도 있었고, 복부가 찢겨 창자가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던 이도 있었다.

창자가 찢겼던 이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순간 그대로 심장이 멈춰버렸다. 멀쩡한 이는 심연영 뿐이었다.

포격속을 달린 13명중 살아남은 이는 5명이었고, 김준호는 시체도 남기지 못했다.

당시 우리 몰골은 끔찍했다. 덥수룩한 수염, 더럽고 역한 냄새, 제대로 먹지 못하여 뼈에 가죽을 덧 씌운 듯한 기괴한 모습, 여기에 상처 입어 피를 흘리는 모습은 지옥에서 나온 악귀가 다름없었다.

···

우리는 치료를 받은 후, 여단이 몰살당한 경위를 비롯해서 왜 초기부터 아군이 있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후퇴했으며,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 왜 우리 중대만 북쪽에 있었는가? 등 고립된 기간의 모든 것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통해 나는 우리 여단에서 생존한 이는 우리가 유일함을 알았다. 또한 누구도 내가 중대장을 죽였다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주성을 만났다. 이주성은 여군 한 명과 함께 전선을 넘었고, 이들은 후에 결혼을 했다. 여군의 이름은 이수현이었다.

···

봄이 되고 나서 나는 대위로 진급을 했고, 중대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트라우마를 이유로 전역을 강력히 원했지만(이때의 나는 살아남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는 것을 깨닫고 권력욕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군에서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유능한 장교들을 많이 잃은 상황에서 한 명이 아쉬웠던 것이다.

나는 중대를 이끌고 치열한 고지전이 한창인 개마고원으로 향했다.

겨우내 우리는 북한 대부분 지역을 점령했고, 자강도(군수공장이 밀집된 지역이라 엄청난 공을 들인 결과 대부분 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다. 중국군과 북한 지도부는 많은 북한사람들을 중국으로 끌고 갔다. 우리 나라의 인적자원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이제 남은 지역을 지키는 것은 90%이상이 중국군이었다.)와 함경북도의 일부(청진항과 나진항을 뚫은 아군이 함경북도의 대부분 지역을 점령한 상태였다.), 그리고 양강도만 남은 상태였다.

양강도는 해발 1200m이 넘는 산들이 특히 많고, 눈이 굉장히 많이 내리는 지형이었기에 겨울에는 무리하게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봄을 맞아 대규모공세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 중대가 속한 대대는 백암령(양강도에서 함경도를 잇는 주요 도로와 철도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뒤쪽에 있는 양곡리를 기습하여 보급로를 끊고, 아군 주력부대가 백암령을 점령할 때까지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양곡리는 4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로분기점과 기차역이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을 끊는 다면 적들은 고립될 것이고, 천혜의 요새인 백암령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적들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해서 우리는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해야 했고, 5일동안 눈속에서 살아야 했다.

3월이라고 하지만 북방의 산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은 여전했다. 낮에 녹은 눈은 밤이 되면 얼어붙어 날카로운 살얼음을 만들었고, 얼굴과 손목에 상처를 주기 일쑤였다.

동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젖은 옷과 신발을 제대로 말릴 여유와 공간이 없었기에 적잖은 병사들이 동상에 걸렸다. 나도 왼쪽귀에 동상을 입었고, 오른쪽 귀보다 1.5배 더 커져 있었다. 간지러움과 진물은 덤이었다.

우리는 개고생을 하며 6일째 저녁 드디어 양곡리와 봉우리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대장은 정찰을 보냈고, 나머지는 차가운 눈 속에 몸을 뉘이고 죽을 지도 모를 내일을 기다렸다.

···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는 대대장 호출에 눈속에서 기어나와 대대장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기에 달렸다가 아니라 네발걸음을 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대대장은 봉우리 마다 적의 경계초소가 있기에 총소리를 내지 않고서 통과할 방법이 없으니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산을 넘자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양곡에서 함경남도 북서쪽으로 빠지는 도로를 건너야 했기 때문이었다. 1개 소대정도면 어떻게 들키지 않고 건널 수는 있었지만 우리 대대는 소총중대 3개, 중화기중대 1개, 의무소대, 정찰소대, 통신소대, 대대본부중대 등으로 구성된 800명이 넘는 병력이었기에 불가능했다. 여기까지 들키지 않고 온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더 이상의 모험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적 후방의 도로, 그것도 요충지 가까이에 있는 도로를 가로지르는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허나 작전장교는 내 말을 무시했고 나를 겁쟁이로 치부했다.

그렇지만 나는 물러날 수 없었다. 잘못되면 전멸할 것이고 살아남는다 해도 몇 달 전과 같은 악몽을 되풀이할 수도 있었기에 강력히 반대했다. 대신 다른 작전을 제안했다.

한 개 소대를 뒤로 빼서 상대적으로 적이 적은 ‘양곡역’과 ‘사도역’사이에 보내 적의 거점과 철로, 도로를 파괴하고, 적의 눈이 그쪽으로 돌려졌을 때 나머지 부대가 양곡리를 점령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양곡리가 점령되면 2개 소대 정도의 병력을 ‘사도역’ 방향으로 보내 먼저 간 소대와 합류하여 사도역에서 오는 적 부대를 막자고 제안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대대장은 내 의견에 동의했고, 우리 중대가 그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부중대장인 이주성에게 중대를 맡기고 1개 소대를 이끌고 즉시 ‘사도역’방향으로 이동했다.

···

양곡역에서 사도역사이에는 북에서 남으로 벨트 모양의 숲이 있었다. 그 외 지역은 무리한 벌목으로 벌거숭이(키 낮은 개암나무와 같은 잡관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상태였기에 나는 이 ‘벨트’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이곳은 적이 경계하는 1순위였기에 토치카도 있었다. 대원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기에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야 했다. 나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전장에서 부대를 지휘하는데 있어 명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 곳에 집결되어 있는 적을 한 번에 몰살시키면 당분간은 주위에 적이 거의 없을 것이고, 진지를 구축할 시간도 충분할 것이다. 또한 빼앗은 적의 토치카를 이용하면 많은 적이 몰려와도 증원이 올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고 설명했고, 대원들은 수긍했다.

우리는 밤새 행군하여 새벽녘에 적의 거점에 이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은밀히 토치카에 접근하여 총안으로 정확히 유탄을 명중시켰다. 토치카를 무력화한 우리는 적이 정비할 틈을 주지 않고 맹렬하게 몰아 부쳤고, 10분만에 적을 몰살시켰다.

토치카 안의 따뜻한 공기는 추위와 피곤에 지친 우리를 유혹했지만 사치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양곡과 사도방향으로 각 1개 분대를 보내 철도 선로를 해체하고, 도로에는 지뢰를 매설하게 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대원들을 잠복 시켰다.

나는 나머지 1개 분대를 데리고 토치카를 중심으로 적의 진지를 보강하여 방어진을 구축했다.

오전 6시쯤 양곡과 사도 방향에서 각 1개 중대 규모의 적이 시야에 나타났다. 아울러 아군의 곡사포와 ‘자주포’가 양곡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방향에서 우리를 향해 오던 적군 선두차량들은 지뢰를 밟고 하늘로 솟구쳤고, 뒤따르던 적군은 차에서 내려 도보로 우회했다. 숲에서 잠복하고 있던 아군은 우회하는 적군을 공격했고, 큰 피해를 주는데 성공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적군은 잠시 뒤로 물러났고, 나도 잠복하고 있던 분대를 뒤로 물렸다.

30분의 포격이 끝나고 양곡리 방향에서 총소리와 폭발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대대가 양곡리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양곡리에서 올라온 적군은 급하게 되돌아 갔고, 사도 방향의 적은 전열을 가다듬고 숲을 우회하여 우리를 포위했다.

우리는 빼앗은 적의 토치카를 중심으로 방어에 들어갔다. 적군은 61mm 박격포와 RPG와 로켓으로 토치카를 공격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탄이 토치카 안으로 정확히 들어간다면 큰 피해를 입겠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토치카를 중심으로 별 모양의 방어선을 구축했고,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보완하고 있었기에 총안(銃眼)에 로켓을 명중할 수 있는 각을 주지 않았다. 적은 그저 두터운 콘크리트벽만 공격할 뿐이었다.

아군은 ‘성동격서’로 손쉽게 양곡리에 입성했고, 되돌아 가던 적군은 승산이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와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대장에게 증원을 보내 달라고 급하게 요청했다.

적은 수적 우세를 믿고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내가 구축한 진지의 약점은 모든 별꼭지점에 동시공격을 해서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보완하지 못하도록 만든 다음, 어느 한 곳에 화력을 더 집중하여 꼭지점 한 개만 부순다면 나머지도 잇달아 무너트릴 수 있었다. 물론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조건하에 말이다. 우려한 대로 적군은 수적 우세를 이용하여 끝끝내 9시방향의 꼭지점을 부수는데 성공했고, 나는 나머지 꼭지점의 대원들을 뒤로 물려 원형방어를 구축해야 했다.

5분도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탄약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꼭지점을 부순 적군이 총안(銃眼)을 통해 토치카 안으로 정확히 로켓탄과 유탄을 꽂아 넣었기에 M2중기관총 4정이 무용지물이 되었고, 아울러 토치카 안의 사수 8명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초조하게 양곡방향을 보고 또 보았다.

···

저 멀리 양곡방향(양곡에서 살아남은 적들의 일부가 사도역으로 후퇴하고 있었다.)에서 적의 전차와 험비가 보였고··· 나는 절망했다.



작가의말

길은 언제나 있지만 가고 싶지 않은 길이거나, 용기가 없기에 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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