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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숲을보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2:45
최근연재일 :
2024.06.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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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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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더러운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DUMMY

내가 있던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본 최성민은 재빠르게 지휘권을 넘겨 받았지만, 대대장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분노에 휩싸인 그들은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주성은 내 시체라도 구하기 위해 무리한 공격을 진행하다가 많은 병사들을 잃고 말았다. 대대장들의 명령불복종으로 순식간에 많은 병력을 잃은 우리 여단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대대장들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최성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먼저였다.

최성민은 적의 공격속도를 늦추기 위해 건물을 통째로 폭파시켜 길을 막으면서 뒤로 물러났고,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적군은 도로가 막혀 기동이 어려운 기갑병력은 뒤에 남겨 두고 보병만으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적군은 아군의 꼬리를 바짝 따라왔고, 시내중심도로를 건너면서는 미처 건물도 무너트리지 못하고 후퇴하기 바쁜 아군을 목격하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 지휘부가 있던 건물이 파괴되고, 아군의 무모한 공격을 본 적군은 지휘체계가 엉망이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이었다.

이러한 적의 심리상태와 현실을 잘 알고 있던 최성민은 후퇴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도로 건너편 건물들에 비교적 피해가 덜한 예비대를 미리 숨겨두었다. 그리고 적들이 등창구공설운동장을 지나 깊숙이 끌려들어오자 나의 복수를 명분으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적들은 엄폐물을 찾아 주변 건물로 뛰어 들었지만, 대기하고 있던 예비대에 의해 다시 쫓겨났다. 비었다고 생각한 건물에서, 생각지도 않은 아군의 공격을 받은 적들은 유인전술에 말려들었다고 착각했고, 급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적군이 공설운동장으로 되돌아오자 보병과 떨어져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좌우에 숨어있던 아군 전차들은 곧바로 공격에 가담했고, 눈 덮인 잔디위에서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보병들도 운동장을 둘러싼 건물안에서 아무런 엄폐물도 없이 노출된 적군을 향해 미친듯이 총알을 퍼부었으며, 백색의 세상은 삽시간에 적색으로 변해버렸다. 적의 기갑부대가 건물들을 우회하여 포위를 뚫으려 했지만, 보병과 분리된 전차는 시가전에서 큰 활약을 할 수가 없었고··· 수십대의 전차만 잃고 아무런 소득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포위된 병력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적군은 자국의 병사들이 남아있음에도 공설운동장과 그 주변에 포격과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최성민은 재빠르게 병력을 뒤로 물리고 포격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적군들도 모조리 사살했다.

만일 적군이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아군에 비해 적의 숫자가 훨씬 많았고, 최성민을 따라 초반에 반격을 시도한 병사들도 주위의 극히 일부였기 때문이다.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삼면에서 공격받는 적군은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고, 최성민이 지용을 갖춘 명장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여단의 장병들도 백전을 겪은 역전의 용사들이었기에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상대가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한치도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시작된 전투는 저녁 늦게야 마무리되었고, 최성민은 나의 시체라도 찾기 위해 지휘부가 있던 건물에 수색대를 파견했다. 건물을 샅샅이 뒤졌지만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 최성민은 내가 살아 있음을 확신했다.

···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중국의 민간인 병원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적의 정보장교로 보이는 자가 통역으로 보이는 여인과 함께 병실로 들어왔고, 나에게 정보를 캐묻기 시작했다. 입을 열지 않으면 붙여 놓은 팔과 다리를 다시 잘라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몹시 배가 고팠던 나는 음식을 요구하며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보장교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들로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었고, 나는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며 현상황을 무사히 모면하기 위한 잔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만 마땅한 어떠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1시간의 짧은? 식사가 끝나고 심문관은 공책과 펜을 들고 내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아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어서 말하라는 듯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세상 떨떠름한 표정으로 심문관을 마주 보았고, 우리는 잠시 기싸움을 했다.

인내심이 바닥난 심문관은 누군가를 호출했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군인들이 병실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중국어로 한참을 뭐라뭐라 하더니 침대채로 나를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구급차에 실려 한참을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78집단군의 야전병원 중 하나였다. 나는 제일 구석진 병실에 감금되었고, 담당간호사는 언어가 통하는 조선족여성이 배정되었다.

야전병원으로 옮겨진 후 심문관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것이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사형수의 마지막을 배려한 다는 듯한 적막함은 나를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새벽녘 피곤에 못 이겨 눈을 붙이려 하는 순간 심문관이 병실로 들어섰다. 그제서야 나는 놈이 나를 심리적으로 무너트리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은 나를 재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심문관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거의 50일을 적진속에서 하루 한두시간을 자면서 버틴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불면증도 가지고 있었기에 잠을 많이 자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물리적고통에는 약해도 심리적고통에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놈은 나를 체포할 당시 목숨을 끊으려고 한 나의 행동에서 물리적 고문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지만 그 반대였다. 만약 물리적 고문을 시행했다면 나는 5분도 되지 않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불었을 것이다. 허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적에게는 내 모든 것을 드러내서는 아니되기에 최대한 고통스러운 연기를 했다. 수시로 자기 위한 노력을 했고, 놈은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의 숙면을 방해했다. 가장 지독한 것은 방안의 전등이 대낮에도 백색의 찬란한 빛을 뿜어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꺼지는 일이 없었다.

···

8일을 버텼을 때 눈은 빨갛게 충혈되다 못해 모세혈관이 터져 피가 흘렀고, 9일째에는 온몸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맞아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으며, 청각과 미각도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이 와중에도 나는 미쳐버리거나, 무의식상태에서 정보를 누설할까 겁났기에 그 무엇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9일째부터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나의 숙면을 방해할 수 없었던 심문관은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12일째, 나는 약물에 취해 눈을 부릅뜬 상태로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포로로 잡힌 17일째인 1월 31일이었다. 그리고 왼팔은 상박골上膊骨 바로 아래가 잘려 있었다. 다리의 상처는 회복되었지만 팔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괴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상처가 회복되면 포로수용소로 간다는 것을 담담간호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유대감 때문인지, 아니면 동정인지는 몰라도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말해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기가 어디인지 물었고, 간호사는 주저주저 하다가 류허현 소재지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등창구에서 약 53km떨어진 곳이고, 퉁화시 방면군의 목표인 창춘시로 가는 길목이었다. 잘하면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에 아군이 당도할 수도 있었다.

나는 상처가 제때에 회복되지 않게 봉합부위를 침대 모서리에 찧거나, 화장실에 가서는 물을 묻히고, 때가 가득한 오른손 손톱으로 상처를 헤집었다. 간호사는 감염되어 전체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으니 자제하라고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말을 듣지 않아 화가 치민 간호사는 보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지만, 진짜로 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선(禪)’함이었는지,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결국 나는 퉁화시를 점령한 아군이 G1112 고속도로를 따라 류허현 소재지 외곽 5km에 이를 때까지 병원에 남아있는데 성공했다. 2월 10일, 병원에서는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나도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

나는 마지막으로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들어온 간호사에게 간곡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메스를 부탁했고, 간호사는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줄 알고 삶을 소중히 여기라며 강력히 거부했다. 나는 잘린 왼팔과 수갑과 함께 침대에 묶여 있는 오른팔과 상체를 흔들어 보이며 자살은 불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나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한 간호사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나는 더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나가고 10여분 후, 군인 2명이 나를 이송하기 위해 병실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군인들은 이런 나를 무시했다. 이때 나는 정말로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왜냐면 이런 상황에 대비해 4일동안 대변을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만 더 늦었으면 계획이 실패했을 지도 몰랐지만··· 다행히도 하늘은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선자리에서 똥을 지려버렸고, 4일간 숙성된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복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놀란 호송병들은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화장실에 보내 주었고, 나는 왼팔의 붕대를 풀어 이빨을 이용해 오른손에 감은 다음 화장실 거울을 힘껏 가격했고, 쓸만한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쨍그랑! 소리에 호송병 중 한 명이 화장실로 들어왔고, 문 뒤에 숨어있던 나는 망설임 없이 목을 그어버리고, 뒷목에도 힘껏 찔러 넣었다.

놈은 ‘억!’ 하는 짤막한 소리만 내고 쓰러졌지만, 팔이 하나였던 나는 쓰러지는 시체를 미처 잡지 못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에 밖에 있던 나머지 호송병 하나가 잔뜩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왔고, 재빨리 바닥에 누워 쓰러진 척 연기를 하고 있던 나는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숙이는 놈의 목을 찔렀다.

놀란 적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권총을 겨눴지만, 나도 재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놈의 오른쪽 장단지를 찔렀다. 놈은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고, 나는 왼쪽 장단지도 수차례 찔렀다. 놈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나는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놈을 타고 앉았지만··· 두 손은 멀쩡했던 적군은 한 손은 나의 공격을 막고, 다른 손은 허벅지의 군용단도를 뽑아 나를 찔렀다.

반면 다리가 멀쩡했던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공격을 피했고, 다리가 불편했던 놈은 나를 쫓아 일어서려다 다시 주저 앉았다. 놈은 도움을 구하기 위해 중국인 특유의 시끄럽고 높은 목청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구하러 오는 놈은 없었다. 급작스러운 철수로 병원전체가 소음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빙글빙글 돌면서 적을 교란하다가 떨어진 권총을 발로 차서 멀리 떨어트린 후 재빠르게 달려가 권총을 집으려 했다. 그러나, 놈도 필사적으로 나를 막으려 했기에 총을 집지는 못했지만, 내 다리를 끌어안으면서 놈의 목덜미가 하나 남은 내 손에 닿고 말았다.

나는 권총을 허리춤에 숨기고 재빠르게 화장실을 벗어났다.

···

내가 포로로 잡히고 김무경 대령이 우리 여단의 새로운 여단장으로 부임했다. ‘좋은 게 좋다’는 나와 다르게 김무경은 권위와 질서를 고집하는 인간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수시로 상황이 변하는 전장에서도 통째로 외운 교범에 따라 부대를 지휘하는 미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뛰어난 군사전략가들이 만든 교범대로 하는 것은 좋으나 응용이 없다면 실전에서는 거의 무용한 것이었고, 교범에 나오는 전투형식과 지형은 현실과 같지 않았지만, 교범을 너무나 신봉한 김무경은 상황과 맞지 않는 지휘로 필요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었고, 대나무처럼 유연했던 우리 여단을 통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김무경은 정면의 공격이 막히면 양익의 방어가 더 단단함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부대를 우회공격으로 몰았고··· 화력전에도 심취했던 그는 적에게 대공무기와 대전차무기가 많음에도 아무런 사전 대비책도 없이, 무장헬기와 전차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결과, 개개인의 전투능력과 장비들의 기술적 우위로 류허현까지는 어찌어찌 왔지만··· 여단의 피해는 극심했다.

내가 여단을 지휘할 때에는 기갑과 헬기의 파손율이 아군 전체에서 2번째로 낮았고, 보병의 사상자수는 첫번째로 낮은 부대였으나 김무경이 지휘하고 나서부터는 역순으로 1,2위를 차지했다. 허나 김무경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직 승리를 자축하고, 자신의 뛰어난(?)전략과 지휘전술에 대해 떠벌리고 다녔으며, 병사들을 자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소모품으로 여겼다.

보다 못한 최성민은 여러 차례 작전을 바꿀 것을 건의하고, 획기적인 전술을 내놓았지만 이를 따르지도, 참고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성민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참모부를 단순 문서처리반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내부의 갈등은 점점 증폭되었고, 류허현에 이르러 폭발하고 말았다.

···

우리 여단은 무질서속에 질서가 있고, 질서속에 무질서가 있는, 한마디로 외부에서 바라보면 오합지졸이고, 내부에서 보면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복잡하지만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는 부대였다. 그리고 강한 유대감을 가진 부대였다. 이런 부대가 원칙과 명령이라는 단어에 속박되고,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해 전우의 희생을 강요당했으니 폭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휘권을 빼앗기고 후방에서 문서처리를 하던 최성민은 보고를 통해 여단의 마지막 무장헬기까지 파괴되었다는 것과 전차대대의 3/4이 전투불능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무경이 38여단보다 빠르게 류허현으로 진입하기 위해 무리하게 헬기와 전차를 콘크리트 숲으로 밀어 넣은 결과였다.

보다 못한 최성민은 참모부에 남아있으라는 명령을 무시한 채로, 홀로 차를 몰아 보급부대로 향했다. 김무경은 자신의 지휘권을 강화하기 위해 참모부의 참모들을 대거 교체했고, 통신도 감청당하고 있었기에 참모부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무경이 본부대대의 대대장이었던 이주성도 보급부대로 보내 버렸기에 최성민은 이주성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이주성이 본부대대의 지휘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다.

···

적성에 맞지도 않은 재고정리를 하고 있던 이주성은 앞에 나타난 최성민을 보고 반갑기 그지없었다. 최성민도 마찬가지였지만, 회포를 나눌 시간 따위는 없었다. 최성민은 급하게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고, 함께 전선으로 갈 것을 부탁했다. 이주성은 ‘지금 하려는 것이 '쿠테라'라는 것을 아시죠?’라고 물었고, 최성민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민의 표정에서 진심을 읽은, 천상 싸움꾼이었던 이주성은 특무상사에게 ‘뒤를 부탁합니다’는 말과 함께 최성민의 차에 몸을 실었다.

한편 최성민이 참모부를 벗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김무경은 휘하 모든 부대들에 ‘최성민이 중요한 문서들을 가지고 적에게 투항하려고 하니 보는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절대로 자신의 잘못으로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

겁이 많았던 김무경은 전선에서 16km나 떨어진 곳에 야전지휘부를 차렸고, 경호중대 뿐 아니라, 가장 전투력이 강한 본부대대도 주위에 주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전선에서 아무리 지원을 요청해도 예비대만 움직일 뿐, 절대로 본부대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포위되어 몰살당해도, 1개 분대만 더 보내도 구출할 수 있는 부대도 방치했으며, 오직 ‘명령’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덕분에 본부대대는 온전히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무경의 생각과 달리 최성민과 이주성은 전선이 아니라 여단지휘부로 향했다. 둘은 지휘부의 외곽을 지키고 있던 본부대대에 잡혔으며, 오랫동안 이주성의 밑에 있던 병사들은 차마 ‘사살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못하고 현 대대장이었던 황광훈에게 데려갔다.

황광훈은 김무경이 여단장으로 부임될 때 데려온 인물이었고, 황광훈의 아버지는 군참모부 참모인 황광수였다. 황광훈은 이주성과 최성민을 보자 왜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수갑이나, 포승줄도 없이 자유로운 것을 확인하고는 데려온 병사들의 뺨을 갈겼다. 죄인을 포박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자신과 아버지의 지위를 이용하여···

김무경과 황광훈은 근본도 없는, 자신들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나와 최성민이 대령까지 된 것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을 무너트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끼던 병사들을 폭행하는 것을 보고 눈이 돌아버린 이주성은 황광훈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고, 황광훈도 반격하느라 했지만 이주성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부관과 경호원들도 총을 뽑아 들었지만 이주성의 살벌한 눈빛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주성은 황광훈과 그 수하들을 제압하고, 본부대대의 지휘권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대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향했다. 최성민은 홀로 여단지휘부로 갔고, 앞을 막는 경호중대장에게 한마디를 했다. ‘류여단장님과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경호중대장은 잠깐 고민을 하는 듯했지만, 바로 최성민을 제압했다.

최성민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것에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수갑을 차고 여단장 앞으로 끌려간 최성민은 역겨운 김무경의 얼굴을 보기도 싫어 고개를 돌리고 ‘죽여라!’라고만 말했다.

김무경은 최성민의 말을 무시하고 얄밉게 웃으며 조롱하고, 나를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 최성민은 병신 같은 놈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에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한참 재롱을 떨던 김무경은 경호중대장에게 끌고 가서 죽이라는 사인을 보냈고, 중대장은 아무 말없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김무경은 피가 흐르니 나가서 죽이라고 재차 말했지만, 중대장은 기어코 총을 발사했다.

···

총소리가 들렸지만, 최성민은 무사했고, 쓰러진 것은 김무경이었다. 중대장과 경호중대원들은 김무경의 곁에 있던 부관과 참모들, 경호원들에게도 무자비하게 총을 발사했다. 경호중대장이었던 한민국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김무경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기 위해 최성민을 체포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김무경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허나 최성민을 조롱하는 김무경의 치기어린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었다.

김무경이 죽은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갑자기 최성민이 여단지휘를 맡은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

먼저 전선에 도착한 이주성은 도심 깊숙이 들어가 고립된 여단 주력을 구출하기 위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여단지휘부를 점거한 최성민은 지휘부를 전선 가까이로 옮겼다.

최성민은 전황보고를 통해 도심에 들어간 부대를 구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주성의 본부대대에서 1개 중대만을 도심에 남겨 완전히 포위당하는 것만 막았다. 그리고 나머지 3개 중대와 몇 대 남지 않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전차들을 류허현 좌측으로 우회시켜 북쪽의 적 포병대를 공격하게 했다.

지금까지 와는 다른, 단순하고 일률적인 공격만 하던 우리 여단의 달라진 전술에 당황한 적들은 포병대를 지키기 위해 급하게 도심을 지키고 있던 부대의 일부를 빼냈다.

오랫동안 후방에 있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던 이주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미쳐 날뛰었고··· 어중간한 병력으로 이주성의 앞을 막으려 했던 적군을 순식간에 몰살하고 말았다. 적군은 어쩔 수 없이 도심에는 최소한의 포위병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이주성을 막기 위해 북서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중과부적인 적군 앞에서는 이주성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츠려야만 했다. 그리고 상황을 보고 받은 최성민은 포대대에 명령하여 도심에서 아군을 포위한 적군에게 포격을 퍼부으라고 했다. 허나 포대대장은 아군과 너무 가까워서 위험하다고 반대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최성민은 경호중대를 이끌고 직접 도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확한 좌표를 포대대에 전달했으며, 최성민도 잃을 수 없었던 포대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여 포격을 진행했다.

도심에 있던 병력은 여단의 주력이었다. 제대로 된 지휘를 받지 못하여 움츠리고 있었지만 아군 최고의 참모 중 하나로 불리는 최성민의 지휘를 받는 순간 활기를 찾고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밀한 포격으로 숨통이 트인 여단 주력은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며 포위를 뚫었고, 수적 열세에도 오히려 적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전면의 포위를 뚫은 최성민은 좌, 우를 무시하고 곧바로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놀란 적군은 이퉁 강의 다리와 얼음에 포격을 가해 아군이 넘어올 수 없게 만들었고, 예상하고 있던 최성민은 전진하던 부대를 바로 되돌려 역으로 도심에 고립된 적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적군은 도심에 남아있는 병력을 구하기 위해 38여단과 대치하고 있던 병력의 일부를 빼서 최성민의 우익을 공격하는 한편, 좌익에 남아있는 이주성과 전차들을 빠르게 몰살시키기 위해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X100국도를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하고 있던 이주성은 적의 심상치 않은 화력을 보고 한자리에 머물면 몰살당한 다는 것을 알았기에 전차를 앞세워 한점 돌파를 시도했다. 후퇴할 줄 알았던 이주성이 갑자기 돌격해 오자 당황한 적군은 돌파하려는 지점에 병력과 화력을 두껍게 배치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이주성은 포대대에 포격을 요청했다. 적은 스스로 포격속으로 뛰어든 꼴이 되었고, 포격을 피해 급하게 양옆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헬기의 지원이 없어 생각보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이주성은 전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김무경의 능력과 인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 여단의 도움은 생각지도 않았던 38여단은 최성민과 이주성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수월하게 전진할 수 있었고, 도심에서 밀려난 적들은 미련없이 후퇴를 시작했다.

도심에 고립되었던 적군은 저항을 포기했고, 수백명이 항복을 했다. 최성민은 혹시 몰라 야전병원을 비롯해 도시내 모든 병원을 샅샅이 뒤지라는 명령을 내렸고, 의류창고 구석에 숨어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똥을 지리고 제대로 닦지 못하여 몸에는 구린내가 남아있었지만, 병사들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최성민과 나는 마주보았고, 서로 말은 하지 않았어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

구출된 나는 사령부로 이송되어 포로가 된 기간의 경위를 철저하게 조사받았다. 결과 아무런 혐의 점도 발견되지 않았고,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사령부에서는 지랄 맞은 나의 성격은 짜증이 났지만, 능력은 높이 샀기에 기존의 여단을 지휘할 것을 권유했다. 물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전역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외팔이었고, 이대로 일반인으로 돌아가면 군에 남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꺼이 그러하겠다고 했다.

이제 나는 군에 뼈를 묻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다른 길은 없었다.

상부에서는 전선으로 가는 나에게 여단에 도착하면 김무경과 황광훈의 죽음을 조사하라고 했다. 진실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을 시사하는 명령이었다. 나는 결의에 찬 얼굴로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작가의말

미련한 지휘관이 신념을 가지는 순간, 휘하 장병들은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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